Chapter 92 -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3)
무덤가 위에 꽃을 올려두고는 작게 숨을 내뱉었다.
다른 이들은 레이나 씨의 무덤으로 향했겠지.
본인 또한 따라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 무덤이 텅 비어버릴 것만 같아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에밀리, 우리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안에 묻혀있는 너와 내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보여줬던 절망 어린 표정을 떠올린 용사가 근처의 나무 그늘 밑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는,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이대로 왕도로 떠나는게 맞는 걸까."
마왕군의 전멸과 마왕의 처단을 알리러 떠난다고는 했지만, 자신은 이미 지쳐버린지 오래였다.
그걸 알린 뒤에는 어떻게 할 거지?
바로 앞의 미래조차 뿌옇게 물들어 버린 것만 같았다.
'...당신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자신은 마왕이 아니었기에, 그녀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스스로가 잘못했다는 것만 깨달을 뿐, 그 고통과 절망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감히 단정지을 수 없었다.
감히 내가, 어떻게 그러겠어.
"어쩌면, 여신의 저주를 받은게 나 뿐만이 아닐지도 몰라."
너 또한 그랬을지도 모르지.
품 안에 쥐여진 뿔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내쉰다.
물론 여신의 저주를 받았다고 해서 그 잘못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지.
"여기에 있었군요."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하늘에 둥글게 떠있던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쯤이 되었을 때, 옆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밀리의 스승.
지금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반인만마 아이였다.
"걱정하고 있어요. 그러니 돌아가도록 하죠."
확실히, 최근 들어서 그녀들을 마주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더랬다.
그녀들이 웃으면 웃을수록 스스로의 죄악을 마주하게 되었으니까.
마치 자신이 없어져야만 그 행복이 유지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엘리한테 폐를 끼쳤ㅡ"
"그녀가 아니에요."
용사의 말에 아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한 아이는, 불만스럽게 고개를 까딱이고 있었다.
...그러면, 누군데?
사실 답은 알고 있었다.
그저, 믿을 수가 없었기에 마음속으로 되물었을 뿐.
"어머니가, 당신을, 걱정하고, 있어요."
두 번은 말해주지 않는다는 듯 딱딱 끊어 내뱉어진 목소리였다.
그 말에 담긴 내용은 용사의 정신을 뒤흔들기 충분했다.
누가 누구를 걱정한다고?
마왕이, 나를?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눈앞의 아이가 자신을 속이려 한다고 생각될 정도로,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거짓말 같다고 생각된다면 믿지 않으셔도 되지만요."
"어째서?"
등을 돌리는 아이에게 묻는다.
어째서?
어째서 그녀가 나를 걱정하지?
마왕에게 있어서 용사란ㅡ 나라는 사람이란 찢어죽여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존재임이 틀림 없었다.
그럼에도 나를 걱정한다고?
왜?
"...당신이라면, 절대 자신을 떠나지 않을거라고 믿고 계시니까요."
그것이 증오든, 분노든, 미련이든, 집착이든, 혹은 죄책감과 연민이든.
용사가 그 중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던지, 영원히 자신을 떠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마왕은 믿고 있었다.
뒤틀리고 뒤틀린 믿음이었지만, 걱정의 이유로는 충분했다.
"..."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던 용사가 반쯤 벌려져 있던 입을 꾹 다물었다.
반쯤 가려져 있던 죄책감이 다시 한 번 그 덩치를 불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너무 멀리 와버렸어요."
당신이 조금만 더 사악하게 굴었다면 이러지도 않으셨을 테지.
당신의 그 애매한 상냥함이, 그녀를 더더욱 망가지게 만들었다.
...그러니, 그 책임을 지세요.
"당신이 싫다고 해도, 이미 어머니께서는 마음을 굳혔어요."
제 손으로 죽인 엘프ㅡ 레이나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그것이 용사에게 몸을 맡기는 일이라도 결코 해낼 것이다.
만약 용사가 마왕과의 관계를 거절한다면, 분명 그녀는 상처받게 되겠지.
"내가, 내가 어떻게 하면 될까."
하지만 용사는 답을 찾지 못했다.
마치 처음 여정을 떠났을 때처럼, 눈앞이 뿌옇게 물들어 있을 뿐이었다.
이 이상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그냥, 전부 포기한 뒤에 주저앉고 싶어.
"그녀를 이해해야죠."
그녀의 입장이 되어서.
그녀의 모든 고통을.
아이가 싱긋 웃어보였다.
분명 부드러운 미소였지만, 그 속에 감춰진 슬픔에 심장이 쿵쿵 뛰어댔다.
"...어떻게?"
당연한 물음이었다.
자신이 마왕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방법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물음에도, 아이의 미소에는 변함이 없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이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느린 움직임이었지만, 용사는 감히 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몽마란 꿈을 먹는 존재. 그렇게 먹어치운 꿈을 다른 이에게 주입하는 것도 가능하죠."
현실보다 더 생생한 경험이 되도록.
꿈을 꾸는 듯한 목소리로 읊조린 아이가, 그대로 까치발을 들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뻗어진 손가락이 이마에 닿는 순간, 용사의 몸이 허무히 쓰러져 내렸다.
***
아파, 싫어, 역겨워, 다가오지마, 내 안을 휘젓지마, 제발 그만 둬, 아파, 아파, 아파!!!!
"켁, 케헥, 켁, 켁?!?!!"
"죽어, 죽어버려, 죽어!!!"
아서는 지금 일어나는 일들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제 뱃속을 파고드는 거대한 불덩이에 정신이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아파. 아파서, 죽어버릴 것 같아.
"그만, 그만... 이제 그만......"
울며 애원했지만, 움직임이 멈추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ㅡ 그녀의 절규에 힘을 얻은 듯 상대의 움직임이 더더욱 거칠어졌다.
'이, 대로라면 정말ㅡ'
죽어버린다.
순간 떠오른 가정에 심장이 멎었다.
비유가 아닌 말 그대로 멈춰버린 심장에, 아서의 몸뚱이가 힘 없이 늘어졌다.
"사, 사려, 사..."
살려...
쿵, 하고 떠오르는 몸뚱이와 함께 꽉 막혀있던 목구멍이 허공에 모여있던 공기를 허겁지겁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살기 위한 발버둥에 잠시 멈춰줄 법 했음에도, 저를 범하고 있는 존재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내, 내가 뭘 잘못 했는데."
"..."
"칵, 그, 그만 둬..."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제 내장을 짓이기는 듯한 압력에 아서가 비명을 참지 못했다.
아파, 죽어버려, 이대로라면 분명...
"흑, 흐아... 으아아아아아......"
불룩 튀어나온 배가 비현실적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커지만 배가 터져버릴 것 같은 상황에, 아서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이제는 본인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왜 이런 꼴이 되었는지 떠올릴 수 조차 없게 되어버렸다.
'...어라,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멍하니 고개를 처박고 있자니, 다시 한 번 고통이 느껴졌다.
저를 범하고 있던 그림자가, 기다란 막대를 손에 쥐고는 자신의 몸뚱이를 마구잡이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그, 그만... 둬... 제발, 그만......"
팔이 부러지고, 어깨가 빠지고, 다리에 금이 간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아서를 바라보며, 검은 그림자가 기괴한 웃음 소리를 흘려댔다.
마치 자신이 이런 꼴이 된 것이 우습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차라리 죽어버린다면, 괜찮을까.'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축 늘어진 고개 끝에 보이는 유리 조각이 그녀의 시선을 빼앗았다.
저거라면, 충분히 죽을 수 있어.
검은 그림자는 잠시 휴식을 취하는 듯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헉, 흐어, 흑......"
힘을 쥐어 잡으니 날카로운 통증이 손바닥을 타고 흘러내렸다.
붉은 피로 끈적하게 물든 손이 이토록 기괴할 수가 있다니.
'어서, 어서 죽어야 해.'
하지만 머뭇거릴 틈 따위는 없었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결심을 지키지 않는다면, 앞으로 영원히 죽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지금 해야 해.
뾰족하게 튀어나온 조각이 그대로 자신의 목을 향했다.
푸욱.
"케, 으..."
스스로 제 숨통에 유리 조각을 꽂아넣는건 그다지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구멍 뚫린 목구멍 속으로 빠져나가는 공기와, 그 사이로 흘러나오는 다량의 피.
그리고 점점 희미해지는 의식까지.
모든 차가움과 두려움, 그리고 고통을 껴안고 천천히 죽음의 늪 속으로 빠져든다.
'.....그래도, 죽을 수 있어.'
지옥 속에서 비참하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았다.
비참할 정도의 도망이었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은 그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설령 그것의 끝이 죽음이라고 하더라도.
'아...'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가만히 있던 그림자가, 그대로 아서의 목줄기를 잡아챘다.
설마 목을 조르려는 걸까.
흩어지는 정신 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상대의 행동은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설마, 설마...'
"그만, 둬..."
빠져나오던 생명의 정수가 서서히 멎어간다.
목을 조르는게 아니었다.
상대가 하는 건, 반대로 그녀가 죽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겨우 이 정도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듯 그림자의 입가가 기괴한 모양새로 찢어졌다.
"이대로 도망치면 안 되잖아, 응?"
"...아."
아서가 탄식을 흘렸다.
이 목소리. 그리고 이 행동들.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온 그림자에 이를 악물자, 그 얼굴에 둘러져 있던 흑색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본 아서는 숨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눈동자에 비친 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