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6 -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7)
에로스적인 접촉은 없었다.
이건 그저 언제나 악몽에 시달리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환자 둘의 상처 핥아주기에 불과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의 일.
서로를 원수 보듯 하던 이들이 이토록 가깝게 붙어있을 수 있을까.
"...아리엘."
"...그래."
어색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서로 고개를 돌린 채, 이어져 있는 건 손을 마주잡은 것 뿐이었으니까.
용사에게 있어서 그런 접촉은 속에 들어찬 죄책감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제 손길이 닿을 때마다 움츠러들던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반사적으로 손을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
손가락이 얽힌다.
도망치지 말라는 듯 집요하게 얽혀오는 다섯 개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용사가 몸을 굳혔다.
굳은살이 진 제 손바닥 위로 부드러운 감촉이 잔뜩 느껴졌다.
"왜, 내가 이러는게 이상한가?"
등을 돌려 마왕과 마주하니, 둥글게 휘어져 있는 황금색이 그를 맞이했다.
마치 놀리는 듯한 모습에 제 소꿉친구가 떠올랐다면 거짓말일까.
언젠가 제 손을 잡아당기며, 붉어진 얼굴을 놀려대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미안."
바짝 굳혔던 몸을 천천히 풀어낸다.
자신이 어색해 하면 어색해 할수록 상대 또한 긴장한다는 사실 정도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손바닥과 손바닥 사이에 들어찬 식은땀이 차갑게 식어갔다.
끈적하게 물드는 감촉이 기분 나쁠 법도 했지만, 지금은 체온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레이나의 무덤을 만들어줘서 고맙구나."
"그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
당연한 일에 감사를 받는 취미 따위는 없었다.
마주 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심장 소리에, 아서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너라는 사람을, 이제 모르겠다.
무슨 의도로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원망을 토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아이를 그런 꼴이 될 때까지 내버려 두었냐고,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해?"
"..."
슬쩍 뻗어진 입술이,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건 너에게 하는 복수야.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야.
"나는 지금 너를 용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야, 아서."
용서라는 것이 오히려 벌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
마음 속에 새겨진 상처가 사라질 일 따위는 없겠지만, 보이지 않게 가려두는 것 정도는 가능할 테니까.
상처를 가린 베일을 바라보며 용사가 계속해서 죄책감을 가지기만 해도 충분했다.
...복수를 위해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행동은, 더 이상 힘들었다.
"아이가 있으니까,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결국엔 모성애 때문이었다.
내가 이렇게 되게 만든 빌어먹을 감정, 혹은 본능.
쓰러진 아이를 보며 용사의 탓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내려진 결론이 있었다.
"내가 너를 증오하면 증오할수록, 그 아이도 너를 증오하겠지. 그런데, 나는 아이가 다른 이를 증오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누군가를 증오한다는 행동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용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미안해."
"......"
용사의 사과에 눈을 꼭 감는다.
마치 사과하는 인형이 된 것처럼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뭔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렇게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었잖아.'
처음부터 사과를 했다면, 이 정도까지 힘들지는 않았어도 됐을 텐데.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그대로 용사의 팔을 끌어당겼다.
마치 용사의 팔을 껴안고 잠을 청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별로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잘 자."
귓가에 울리는 작은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부디, 악몽을 꾸지 않았으면.
***
용서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 말 한 마디가 얼마나 무거운지, 용사는 알고 있었다.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그 얼굴에 상대가 얼마나 무방비한지 깨닫기도 잠시.
길게 뻗어오른 속눈썹을 건드리자 살풋 얼굴을 찡그린다.
그래, 너는 언제나 그런 표정이었지.
언제나 얼굴을 찌푸리고, 나를 보며 증오를 불태우는, 그런.
하지만 처음에 봤을 때는 아니었다.
마왕성에서의 첫 조우에서, 너는 어딘가 다급한 모습으로 우리를 설득하려고 했었지.
...차라리 그때 믿었다면.
감성이 아닌 이성에 몸을 맡겼다면.
"...엄마."
몸이 굳는다.
자그마한 입술에서 튀어나온 두 글자에, 용사의 숨이 멎었다.
엄마.
그 두 글자.
머릿속에 떠오른 환상을 지워내며, 울듯이 일그러진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엄마, 보고 싶어......."
그제서야 용사는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막연하게 생각만 해오던 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마왕은, 아리엘은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고.
제 손을 양팔 가득 껴안은 모습.
그것은 마치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의 행동과도 같았다.
"......미안해."
그 상처 입은 귓가에 속삭인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제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것 뿐이었기에 속삭이고, 속삭이고, 또 속삭였다.
결국 잘못한 건 나다.
상처를 받는 것 또한 내가 되어야 할 터였다.
"흑, 흐으..."
눈물을 쏟아낼 때 쯤에는,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단지 그 새하얀 얼굴에 눈물 자국이 남는게 싫어, 계속해서 닦아냈더랬다.
촉촉하게 젖어드는 것으로 모자라 눈물 범벅이 된 손을 바라보며 아서가 숨을 내뱉었다.
"...아."
그러다가 문득, 황금색으로 물든 눈동자가 저를 바라보고 있으면 탄식을 흘리고 마는 것이었다.
깨울 생각은 없었는데.
멍하니 제 얼굴을 바라보는 시선에 용사가 어색히 고개를 돌렸다.
무슨 반응을 보여줄지 두려워서가 아니라, 자신이 상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는데서 나오는 부끄러움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잘못, 했어요."
"..."
"때리지, 마."
아파.
범하지 말아주세요.
아파.
살려줘.
때리지마.
살려주세요.
제 잘못이 아니에요, 제발ㅡ
"진정, 진정해!"
"아, 아으아아아아아?!!?!?!!"
제 얼굴을 보자마자 온몸을 뒤틀며 발작하기 시작하는 마왕에, 용사가 몸을 날렸다.
제 몸이 망가지는 것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처절한 몸부림.
이미 이곳저곳 부딪혀 울긋불긋 달아오른 몸뚱이를 어떻게든 붙잡는다.
"네 잘못이 아니야."
"잘못, 잘못했..."
"네 잘못이 아니야."
잘못이 있다면, 나에게 있다.
그러니 네가 사과하지 않아도 좋다.
네가 고통받지 않아도 좋다.
울지 않아도, 발작하지도, 비명을 지르지 않아도, 하물며 나를 용서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그만, 그만 멈춰줘."
마왕의 주먹질이 제 몸을 두들겼지만 딱히 아프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육체는 멀쩡했고, 심장이 아려왔지만서도.
때리고, 할퀴고, 휘두르고, 비명을 지르고.
한밤중에 일어난 소란은 주변의 정적과 뒤섞여 진한 비참함을 자아냈다.
"학, 하흐... 하......"
아리엘이 몸을 멈춘 건, 그리고 그 황금빛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온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괜찮아?"
"......으."
시선을 마주하니 눈을 꼭 감는다.
아직까지 제 얼굴을 무서워하는 듯 움츠러드는 모습에 용사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바짝 굳은 등허리를 천천히 토닥이자, 긴 한숨이 토해졌다.
방금 전까지 발작하던 것이 거짓말이라는 듯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그의 시선을 피했다.
"......미안하구나."
"네가 왜 미안해."
짧게 들려오는 사과의 말에 반사적으로 답했다.
너를 그렇게 만든 건 나인데, 왜 네가 나한테 사과하는 건데.
전부 내가 감내해야 할 것들이었다.
만약 그 손에 칼이 들려있었더라도, 나는 기꺼이 받아들였을 터였다.
"용사."
잠시 숨을 고른 마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나머지 사람들을, 전부 낳을 수 있을까."
마왕군의 손에 죽은 사람들, 아리엘, 그리고 레이나.
그 모두를 되살릴 때까지 과연 버틸 수 있을지.
까마득한 미래를 생각하며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란, 여느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무섭다면, 하지 않아도 좋아."
누가 감히 그녀에게 강요할 수 있느냔 말인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사?
마왕군에게 소중한 이들을 잃은 사람들?
그것도 아니면, 저 하늘 위에서 지켜보고 있을 여신?
"아무도 너에게 강요할 수 없어."
그 말을 내뱉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말이 무슨 의미를 가진 건지.
...아리엘.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응어리가 녹아내린다.
용사는 제 심장을 끈질기게 붙잡았던 마지막 끈, 사랑이라는 이름의 저주를 제 손으로 풀어헤쳤다.
"설령 그게 나라도, 하물며 신이라도."
그 누구도.
"너를 아프게 할 자격 따위, 없으니까."
그러니까.
"더 이상은 휘둘리지 말아줘."
황금빛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다.
그 안에 가득 찬 눈물이 흘러넘칠 때 즈음에는, 제 시야가 뿌옇게 물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울고 있구나, 나.
"아리엘."
더 이상 상대의 이름을 불러도 아무렇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은 제 소꿉친구의 얼굴이 겹치는 일 따위가 벌어지지 않았다.
그래,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지.
너무도, 오래.
'......안녕.'
과거와의 짧은 작별 뒤 남은 건 과연 무엇일까.
멍하니 생각해봤지만,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