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9 -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10)
길을 돌아다니다가도, 묘한 이끌림을 느껴 걸음을 옮겨보면 한때 교단이었던 폐허가 있었다.
분명 이곳에서의 일은 전부 마무리가 되었을 텐데 어째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걸까.
이제는 뼈대 밖에 남지 않은 잿더미를 응시한다.
"...아리엘."
마왕의 이름을 부르며 걸음을 옮기기도 잠시.
그나마 깨끗하게 치워진 복도를 통과한 용사가 근처에서 들려오는 울음 소리에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익숙한 목소리.
그래서 더더욱 다가갈 수 없는 목소리였다.
'설마 또 악몽을 꾼 걸까...'
레이나를 제 손으로 죽인 꿈을 꿔서, 그 죄책감에 이곳으로 향했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이곳에 오면 안 됐다.
이 칙칙하고 어두운 지하실은 레이나가 죽었던 장소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마왕, 이제 돌아가자."
"...용사."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용사에게 향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마왕의 모습은 보는 사람이 처량해질 정도로 비참해서,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레이나가 죽은 건 네 탓이 아니라 에밀리의 탓ㅡ"
"용사."
걸음을 멈춘 용사를 향해, 가느다란 팔이 뻗어졌다.
상처투성이가 된, 얇디 얇은 손목.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며 뻗어진 그 새하얀 것을 붙잡기 위해, 용사가 반사적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부탁이, 있다."
제 옷자락을 쥔 손아귀는 쉽게 떨쳐낼 수 있을 정도로 연약했지만, 용사는 그러지 않았다.
부탁이 있다는 상대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더라도, 나는 그것을 위해 어떠한 망설임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맹세였다.
...그런 맹세였을 터였는데.
"나를 범해다오."
"...뭐?"
방금 들은 소리를 이해하지 못해 멍하니 되묻는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다시 한 번 같은 소리를 내뱉음과 동시에, 용사가 팔을 뻗어 마왕의 몸을 감싸안았다.
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대체, 왜.
"그저 악몽일 뿐이야. 네 잘못이 아니었다고. 굳이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ㅡ"
"해야 돼."
아이를 낳아야 돼.
멍청히 내뱉어진 말에 힘을 푸는 순간, 그대로 밀쳐 넘어진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손을 짚은 용사가 멍하니 마왕을 올려다 봤다.
"왜, 왜 안 세우는 거야? 왜?!"
제 고간을 만지작거리던 마왕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반쯤 정신을 놓은 듯 보이는 모습에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상대의 손길이 품 안으로 파고드는 것이 먼저였다.
"이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손에 들린 자수정 색의 뿔을 흔들며, 마왕이 속삭였다.
이게 여신의 저주를 방해해서 세우지 못하는게 분명해.
손을 뻗어 새하얀 손을 붙잡으려 했지만, 상대가 뿔을 집어던지는게 먼저였다.
"큭..."
"...역시 그렇구나."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저 어둠 너머로 사라진 뿔과 함께, 몸속에서 성욕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못한 일을 해야지.
저 빌어먹을 뿔 때문에 얼마나 참고 있었는지.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제 고간이 폭발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하, 하하... 흐."
매마른 웃음소리는 마치 하나의 선고와도 같았다.
앞으로의 여정에 행복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그만, 둬. 그만!!"
"......이미 늦어버렸어, 아서."
네가 성검에 내 피를 묻힌 그 순간, 여신이 이 세계에 강림힌 그 순간에 모든 것이 끝나버린 거야.
황금빛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림과 동시에, 마왕의 신체가 그대로 추락했다.
용사의 좆 위로.
"흐, 꺄아..."
마치 잘 벼린 창날처럼 솟아오른 자지를 마왕의 보지가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쥐어짜낼 듯 조여오는 질에 용사가 반사적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천장을 바라보며 비명을 내지르는 모습이, 이토록 비참해 보일 줄이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그러니까ㅡ"
"...거짓말."
"큭?!"
하지만 그의 몸은 솔직했다.
배 밖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볼록 튀어나온 흔적을, 그 새하얀 손으로 쓸어내리는 순간 짙은 사정감이 느껴졌다.
뷰르릇, 하는 소리와 함께 질 안에 정액을 싸지른 용사가 형언할 수 없는 쾌감에 고개를 비틀었다.
...물론, 비참함은 배가 되었지만.
"역시, 전혀 기분 좋지 않아..."
용사의 좆이 박힌 상태로 무릎을 모은 마왕이, 찡그린 표정 그대로 신음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제 품에서 작은 병을 꺼내드는데, 용사는 그것이 무엇인지 반사적으로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안 돼.
"그걸 마셔버리면ㅡ"
"꿀꺽..."
정적 사이로, 절망이 스며들었다.
이건 과연 무엇을 향한 절망일까.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것에서 나오는 절망?
그것도 아니라면, 완전히 망가져버린 마왕을 보며 느끼는 절망인 걸까.
"자, 흣...♥ 힘내서, 전부 낳아야지, 응?"
"정신, 차려..."
성기 간의 연결부가 젖어듬과 동시에, 짙은 암컷의 향기가 용사의 머리를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범해라, 범해라, 범해라.
눈앞의 암컷을 임신시켜라.
뇌가 머릿속이 아닌 좆으로 가버린 듯한 감각에도, 용사는 필사적으로 이성을 붙잡았다.
'이대로라면 그저 둘 다 망가질 뿐이야.'
누구 하나 행복한 사람 없이, 그저 쾌락만을 쫒게 될 그런 관계가 되어버리겠지.
하지만 저항할 수가 없었다.
마왕의 몸이 제 좆을 집어삼킨 순간부터, 제 몸뚱이는 주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흐, 흐약♥ 헥, 헤흐...♥"
달뜬 신음 소리가 저 너머로 흘러간다.
질꺽 질꺽 울리는 천박한 물 소리와 함께, 용사의 좆에 강렬한 쾌감이 덧씌워졌다.
"가, 간다♥ 간다아아앗♥♥"
"...큭?!"
"흐, 헤에에에엑♥♥♥"
다시 한 번 느껴지는 사정감.
그와 동시에, 마왕의 상체가 용사의 얼굴 위로 무너져 내렸다.
귓가에서 들려오는 헐떡임에 단단해진 좆은, 이제 용사에게 있어서 자괴감 이상의 것을 안겨주지 못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하아♥ 흐으, 하♥"
"...마왕."
"......이거라면, 충분히 임신했을지도."
하하, 하고 웃음을 토해낸다.
망가진 태엽 인형처럼 몇 번이고 몸을 들썩이던 마왕이 이내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다.
마왕의 눈물로 가슴팍이 축축하게 물들어가자, 용사가 입을 다물었다.
오열을 참아내는 듯 꺽꺽거리며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그의 심장을 때려댔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흑, 흐, 흐으윽......"
"잘 될 거야. 전부 다, 잘 될 거야..."
애처로울 정도로 떨기 시작하는 몸을 끌어안고는, 그 자그마한 귓가에 계속해서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이건 그저, 사고였을 뿐이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네 잘못이 아니야.
"...이제 돌아가야지, 응?"
아이가 기다리고 있어.
너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하며 걱정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돌아가자.
마왕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봤지만 돌아오는 건 서러운 울음 소리 뿐이었다.
***
"...미안하구나."
우물쭈물거리다가 사과를 내뱉는다.
뱃속을 가득 채운 정액보다도, 용사를 반쯤 강제로 범했다는게 조금 충격이 컸다.
이 연약한 몸뚱이로 용사를 범했다는 말이 아이러니했지만, 아무튼.
"제대로 말리지 않은 내 잘못이야."
"...그래도."
그때는 조금 제정신이 아니었다고나 할까.
몸 위에 둘러진 망토를 용사에게 건네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마음껏 망가진 것 치고는 생각보다 정신을 일찍 차렸구나.
...이것도 전부 여신이 말한 축복 때문이겠지만.
"용사."
무거워진 무게에 용사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하루 아침에 아이가 들어차는 감각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분명 움직인 건 내 쪽인데 왜 이렇게 허리가 아픈 걸까.
"허, 허리가 아파서 그런데... 혹시 안아줄 수 있겠느냐?"
"...얼마든지."
슬며시 내 등을 받쳐오는 손길에 천천히 몸을 맡겼다.
아니, 그보다 내가 방금 뭐라고 했더라.
안아달라고 했었지.
...안아달라고 했다고?
내가? 용사한테?
"으..."
"괜찮아?"
반사적으로 신음을 흘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걱정이 가득 담긴 눈빛이 상당히 부담스럽다.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니 머리 위에서 작은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비웃지마.
...짜증나니까.
"돌아가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는데."
"다 네 잘못이다."
그게 그렇게 걱정 됐으면 나를 말렸어야지.
용사가 나를 들어올림과 동시에, 고간 사이에서 진한 백탁액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끈적하게 늘어지는 감각이 혐오스러워 표정을 굳혔다.
정말이지, 많이도 싸질렀구나.
뱃속에 들어있는게 아기인지 정액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묻지 않는 건가?"
용사의 품에 몸을 맡기기를 잠시, 아무런 말도 없는 상대에 슬며시 운을 띄운다.
내가 어째서 너를 덮쳤는지, 궁금하지 않아?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왜 울고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아?
네가 정말 궁금하다면 말해줄 수 있어.
"언젠가 때가 되면, 네 마음이 편해지게 된다면 그 때 말해줘."
"..."
부드럽게 울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픽 돌린다.
뭐야 그 대사.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한 말투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알고 있는 용사는 언제나 화가 난 싸이코패스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역시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용사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꼴에 가려주겠다며 내 몸 위에 제 망토를 얻는 행동이 상당히 꼴불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