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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01화 (101/342)

Chapter 101 - 탈출.(2)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큰일났을지도 모르겠어.

창 밖에 보이는 이단 심문관들의 모습에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어디서나 광신도들은 조심하라고, 저 녀석들에게 걸렸다가는 뼈도 못 추릴게 뻔했다.

"흑..."

"괜찮으세요?!"

...그것보다는 배가 아픈게 우선이었지만.

지끈거리며 아파오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곧 있으면 태어날 것처럼 구는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할리벨이 허겁지겁 달라붙어 왔다.

"...괜찮아."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았지만, 일단은 그렇게 말했다.

마차 안에서 아기를 낳는 건 또 어떨까 싶은데.

실실 웃으며 몸을 축 늘어뜨리니, 엘리가 내 손을 꼭 붙잡아줬다.

"그러게, 왜 그렇게 무리하신 건가요..."

"..."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여신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엘리가 너무 죄책감을 가질 것만 같아서, 그저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미안, 엘리.

"흐, 흐아아악..."

일단은 이 고통을 어떻게 하는게 중요했다.

손에 잡히는대로 붙잡고는 힘을 주자, 하복부에서 투명한 액체가 질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벌써?

"힉, 히으, 흐으으......"

아기가 자궁을 빠져나와 질내를 통과하는 감각이란.

내장이 압박 당하는 것 같은 통증에 눈을 꼭 감으니, 엘리가 내 귓가에 괜찮다며 속삭여줬다.

"괜찮아요. 다 잘 될거에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으, 흐아아아아악?!?!?!""

배가, 배가, 배가...

격통을 이기지 못해 팔다리를 버둥거린다.

날뛰기 시작하는 신체를 찍어누르는 두 사람 덕분에, 다행히 이 이상으로 난리가 나지는 않았다.

"으, 으으으......"

"으앙, 으앙, 으아아아앙..."

그렇게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지나고, 귓가에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전신이 땀으로 끈적해지고, 반쯤 탈진해서 정신이 오락가락 했다.

그럼에도 아기를 향한 손길 만큼은 막을 수가 없어서, 팔을 휘적휘적 움직여 그 온기를 찾았다.

"예쁜 따님이에요, 아리엘 씨."

"...그렇구나."

내 품 안에 안겨 울음을 토해내는 아기의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그 뒤에 천천히 가슴을 가져다대니, 그 자그마한 입을 오물거리며 젖꼭지를 쪽쪽 빨기 시작했다.

...귀여워라.

후흐, 흐.

"이거 보렴, 예쁜 동생이란다."

"...그렇네요."

잠에서 깨어난 아이에게 아기를 보여주니, 뭔가 멍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봐왔다.

아기를 보는 건 또 처음이려나.

아이의 반응에 고개를 끄덕이며 길다란 한숨을 토해냈다.

...이걸로 또 하나.

"멈춰라!"

바깥에서 들려온 강경한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숨을 멈췄다.

움직이던 마차가 점점 느려지는 것도 그때 즈음이었다.

"그렇게나 급하게 마차를 끌고 어디 가는 거지?"

날카로운 물음이 마차 안을 가득 울렸다.

불안이 가득 찬 분위기 속에서 엘리가 입술을 덜덜 떨었다.

이단 심문관들이 아니라 평범한 경비인 것 같았지만, 마족인걸 들키게 된다면 분명 상상 이상으로 곤란해질 터였다.

"어, 어떻게 하죠?"

"..."

입술을 꾹 짓누른다.

용사, 이 바보 같은 놈아.

네가 거기서 대답을 망설이면 대체 어쩌라는 건데?

머뭇거리는 건 상대의 의심을 더욱 키울 뿐이었다.

무언가,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필요했다.

"...으."

"어머니?"

문득 떠오른 생각에 신음을 흘린다.

걱정이 담긴 시선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싫어, 진짜 진심으로 싫은데.

...머릿속에 떠오른 방법이 이것 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

"...여보."

구역질이 솟아올랐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마차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그렇게 말했다.

주변이 정적으로 물든 건, 그와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

"그렇게나 급하게 마차를 끌고 어디를 가는 거지?"

무언가 변명할 거리가 필요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많았지만, 정작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자신이 마차를 몰 일 따위는 없었을 테니까.

'...대답을 할 시기는 이미 지났어.'

때를 놓쳐버린 이상,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의심 받을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된다면 남은 건 무력으로 제압하는 방법 뿐이겠지.

...하지만, 역시 내키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손을 쓴다는 것이.

혹여 누군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스스로에게 향하는 분노를 멈추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잠시간 이어지던 대치를 뚫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가느다란 목소리였지만, 그 두 글자 만큼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여보라니, 대체 누가?

처음에는 의문이었다.

이 목소리의 주인ㅡ 아리엘이 그 두 글자의 호칭으로 부를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을 무렵, 작은 발소리와 함께 흑색의 머리카락이 불쑥 튀어나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잔뜩 경계하고 있던 이들의 창날이 방향을 잃은 건, 동시의 일이었다.

천천리 마차 아래로 내려선 아리엘이, 품에 안긴 아기를 달래며 용사에게 다가왔다.

마부석에 앉아있는 그에게 손을 뻗으니, 반사적으로 그 손을 잡고 마부석 위로 끌어올렸다.

"제가 조금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런데, 혹시 무언가 문제 되는 부분이라도 있을까요?"

희미한 목소리는 잔뜩 지친 이 특유의 것이었다.

하반신을 물들인 젖은 자국과 품에 안긴 아기까지.

갓 태어난 듯 축축하게 젖어있는 아기의 모습을 보면, 그 누구라도 그녀가 산모라는 것을 눈치챌 수 밖에 없을 터였다.

"너무 무리할 필요 없어, 여보."

여보. 그 두 글자를 말할 때 왜 그렇게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던지.

감히 자신의 입으로 내뱉을 수 없는 단어인 것을 알기에 그런 걸까.

그 말을 듣자마자 아리엘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지만, 다른 이들은 그저 그녀의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착각할 뿐이었다.

물온 그 착각을 바로잡아줄 생각 따위는 없었지만서도.

"토, 통과!"

"...감사합니다."

희미한 미소와 함께 침몰하는 경비병의 모습에, 괜히 신경질이 솟아올랐다.

아리엘의 미소에 헤벌쭉해진 남자를 흘긴 용사가, 힘 없이 늘어진 신체를 받치고는 천천히 마차를 몰았다.

"괜찮아?"

"...조금, 힘들구나."

얼마 전에 그런 일을 겪고 또 아기를 낳았으니, 절대 몸 상태가 정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녀의 품에 안긴 아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젖을 빨고 있었다.

이 아기도 분명 죽은 사람들 중 하나겠지.

그런데, 죽은 사람들을 되살리겠다고 살아있는 사람이 희생하는게 과연 맞는 일일까.

"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가 있어."

"...아니. 나온 김에, 그냥 여기에 있으마."

쌕쌕 내뱉어지는 숨은 마치 곧 끊어질 것만 같이 위태로웠다.

그럼에도 제 온기를 놓지 않겠다는 듯 달라붙어 오는 신체에, 용사가 이를 악물었다.

"아기도 생각해야지. 그러니까 어서 들어가."

"...조금만."

조금만 있다가, 들어가마.

스르르 감기는 눈꺼풀에 순간적으로 심장이 덜컥였다.

서둘러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니, 규칙적인 호흡이 느껴졌다.

"잠든, 거구나..."

마치 죽은 사람과도 같은 창백함이었다.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귓가에 스치는 자그마한 숨소리마저 없었다면 그 누구도 그녀가 살아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터였다.

"하아..."

"왜 그렇게 한숨을 쉬고 그래?"

마을 빠져나와 근처의 숲으로 들어간 뒤 잠시, 마차를 멈춤과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면 창 밖으로 상체를 꺼낸 할리벨이 자신을 마구 노려보고 있었다.

"마왕님을 그렇게 만든 건 너잖아."

"...그렇지. 그런데, 딱히 너한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뭐?"

불쑥 튀어나간 말에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을 되새기며 천천히 말을 꺼낸다.

"네가 한 짓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어."

"..."

여정을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지.

제 꿈속에 나타나, 소꿉친구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나를 범하려고 한 서큐버스.

그 서큐버스가 눈앞의 할리벨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잊겠어, 그 끔찍한 기억을.

"내 소중한 사람으로 장난질을 친 네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본인이 잘 했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저, 눈앞의 몽마에게만큼은 그런 말을 듣기 싫었을 뿐이지.

아리엘이 직접 구해온 것만 아니었다면 분명 단칼에 도륙냈을 정도의 존재였다.

상대가 한 행동은 고인을 능욕한 것과 다름 없는 짓이었으니까.

"그건..."

솔직히 말하자면, 기대 따위는 하지도 않고 있었다.

아리엘을 제외한 마족들은 전부 똑같은 녀석들 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미안, 해."

하지만 상대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다름 아닌 사과였다.

시선을 피하며 내뱉어지는 그 한 마디에, 용사는 다시 한 번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어쩌면, 마족 전체가 사악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면서.

"그,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아리엘의 어깨에 두르고 있던 손을 태연하게 쳐낸다.

자신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바라보는데도 그녀를 들어올리는 행동에 망설임이 없었다.

"우리 불쌍한 마왕님, 저 망할 용사 때문에 많이 추우셨죠?"

"..."

"침묵은 긍정이라고, 역시 저 놈이 문제였네요."

그런 어처구니 없는 말을 내뱉는 할리벨에, 용사가 말문을 잃었다.

대체 자고 있는 사람한테 뭐라는 거야.

"베에ㅡ"

혀를 비죽 내미는 것을 마지막으로 마차 안으로 사라진다.

그 모습을 보며 용사는 제 생각을 정정할 수 밖에 없었다.

마족이라는 것들은, 하나 같이 성격 나쁜 녀석들 밖에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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