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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07화 (107/342)

Chapter 107 - 탈출.(8)

오두막에서의 생활은, 그래.

아주 거지 같았다.

촌장인지 무녀인지 모를 여우 수인은 그렇다고 쳐도, 그녀를 모시는 다른 수인들의 행동이 너무 과했다.

"어머, 미안? 실수로 물을 엎어버렸네?"

아무리 마족들에게 쌓인게 많다고 하지만, 이건 조금 아니잖아.

머리 위에 뜨거운 물을 들이붓는 행태에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이게 벌써 몇 번 째더라.

그나마 봐줄 만한게 얼굴 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아주 화상 자국으로 범벅이 되어버렸다.

"...흐으."

"울어? 울어? 기뻐라~ 그런데, 불에 타 죽은 내 동생은 그것보다 훨씬 더 크게 울었겠지?"

그건, 내가 한 짓이 아니잖아.

다른 녀석들이 한 짓이잖아?!

뜨거움이 사라진 다음 남는 건 차가움 뿐이었다.

다른 방은 난방도 잘 해놓았으면서 이 방만 유독 차가웠다.

순식간에 식어버린 신체에 손발이 오들오들 떨려왔다.

"누가 먼저 비명을 지르게 하는지 내기할래?"

"좋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몇 번 건들다가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며 사라진다.

말할 수 없는 비참함에 눈물을 뚝뚝 떨궜지만, 위로해주는 사람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싫어.

이런 곳에서 평생 갇혀 살아야 한단 말이야?

"이럴거면 차라리ㅡ"

차라리, 용사와 함께 있을 때가 나았어.

무릎을 끌어모아 그 위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참이고 울음을 삼키다가 고개를 들어올리면, 추해질대로 추해진 내 모습이 거울에 비쳐있었다.

"정말이지, 엉망이 되어버렸구나."

얼굴은 울긋불긋하고, 팔다리는 멍자국으로 가득했다.

며칠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런 꼴이라니.

악의가 담딘 괴롭힘은 사람의 마음을 망가뜨리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거울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생각이 나게 하다니, 우습네.

"엘리, 할리벨, 린..."

어쩌면, 내가 무너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긴, 저런 식으로 구는 사용인들을 그냥 놓아둘 정도면 그것 밖에 이유가 없기는 했다.

실제로 거의 다 꺾였다는게 그 증거이기도 했고.

"목을 찌르면, 많이 아플까."

허튼짓을 하면 목이 댕겅 잘려버린다고 했었나.

목을 감싸듯이 둘러진 부적은 약간의 이물감을 제외하면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들은 것이라고는 허튼 짓을 하면 점점 조여와서 결국 목을 잘라버린다는 이야기 뿐이었다.

자살을 시도하는 것도 허튼 짓의 범주에 포함될까?

실실 웃으며 거울에 손을 대니, 목에 둘러진 부적이 작게 발광해댔다.

"흣, 케, 켁, 켁켁?!"

...씨발.

목을 조여오는 부적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내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걸 힘으로 떼어낼 수 있기는 해?

한껏 좁혀진 숨통 덕분에 발버둥을 치고 있자니, 작게 열린 문틈 사이로 동그란 눈동자가 보였다.

"사, 사려... 켁, 흐..."

손을 뻗어봤지만, 미동도 없었다.

그저 나를 바라보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듯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꺼져.

보기만 할거면, 그냥 꺼져버리라고.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이 무색하게도, 문틈 사이의 눈동자는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 아흐, 켁, 켁..."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그렇게 보고만 있지 말도, 모습을 드러내서 비웃기라도 해.

아니면 사라지던지.

왜, 내 비참한 모습을 그 눈동자 가득 새겨넣고 싶었어?

"흐아, 하..."

눈물 콧물을 쏟아내기를 한참.

발광을 멈춘 부적에 겨우 숨이 쉬어졌다.

숨을 쉰다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될 줄은 몰랐는데.

실실 웃으며 팔다리를 제멋대로 풀어뒀다.

축 늘어지는 꼴을 보니 내 팔도 다리도 힘들어 죽을 노릇인 모양이었다.

"며칠 사이에 아주 엉망이 됐구나."

여우 냄새가 났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냄새.

가까이 오면 뺨을 후려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상대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하지만 어쩌겠느냐. 너희 마족들이 그토록 원한 살 짓을 많이 한게 잘못이거늘."

불쌍하다는 듯 머리카락을 쓰다듬지만, 눈동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었다.

너, 나를 경멸하고 있잖아.

그런 주제에 잘도 그런 표정을 짓는구나.

...역겹게도.

"눈빛이 불경한 것을 보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구나."

"...윽."

상대가 내 어깨를 가볍게 쥐자, 관절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뽑혀져 나갈 것 같은 통증에 고개를 돌렸다.

"모시는 신과... 큭, 똑같은 짓거리를 하는구나."

"...뭐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죽여버릴걸.

무슨 동물신을 모시는 자애로운 무녀 같은 느낌일 줄 알았더니, 저와 똑같은 신을 모시는 싸이코 무녀였다.

눈을 부라리는 꼴이 우스워 피식거리니 얼굴에 핏대가 솟아올랐다.

"지금, 뭐라고 했냐고 물었다!!"

아홉 개의 꼬리가 정신 없이 흔들린다.

처음에는 푹신푹신한 꼬리가 아홉 개라며 신기해 했던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저 짜증날 뿐이었다.

나에게 힘이 있었다면, 저 꼬리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렸을 텐데...

"꺄, 흑..."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똑같아.

이 힘.

이 신성력.

직접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기시감이었다.

눈앞의 무녀가 모시는 신은, 분명 여신이 맞았다.

그녀에게 내가 이 근처를 지나갈 것이라고 일러준 것도 분명 여신이겠지.

어쩌면, 이단 심문관들이 마을에 온 것조차 그녀의 짓일지도 몰랐다.

"아니, 아니지..."

다음에는 어떤 고통이 찾아올까 기다리고 있었더니, 갑자기 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저 꼬리를 잡아 뜯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 상대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그려졌다.

"고통에는 익숙해 보이는 듯 하니, 다른 방법을 써볼까."

톡, 하고 건든 부위가 붉게 달아올랐다.

아니, 뜨겁게 달아올랐다.

복부를 타고 흐르는 기묘한 열기에 뇌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이 느낌. 그리고 이 감각.

할리벨의 체액을 마셨을 때와 비슷한 감각에 몸을 웅크렸다.

지금은, 이게 최선이야.

"헉, 흐으... 흐..."

버틸 수 있을까?

아니,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강제적으로 부여되는 신체의 쾌락이란 저주와 다를 바가 없었다.

신체 뿐만이 아니라 정신조차 무너뜨리려 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이게, 이게 똑같다는, 거다..."

저가 하는 짓거리들이 별로 유쾌하지 못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과 신이 똑같다는 말을 듣고 분노할 리 없겠지.

나를 때리려 하다가도 눌러 참는 듯한 모습에 실소를 멈추지 못했다.

본인의 잘못 때문에 멈춘게 아니라 본인의 행동으로 신을 욕보여서 멈춘 것이었다.

'네가 무슨 짓을 해도 여신에 미치지는 못할 텐데.'

어쩌다가 그런 쓰레기를 모시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동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겠어, 그게 다 팔자인 걸.

저 녀석이든, 나든.

"꺄아아아아악?!?!!!"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것.

정확히는 앞에 있던 여우 수인의 것이었다.

다행히도, 버림 받는 팔자는 아닌 모양이었다.

***

추적술 정도는 마을의 사냥꾼들에게 배웠다.

짐승이 아닌 수인의 흔적을 쫒는 것이라 조금 까다롭기는 했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이 주변 전체가 수인들의 영역인 것 같은데.'

심지어 한 종류도 아니고 여러 종류.

고양이 수인의 털부터 시작해서 늑대, 개, 토끼, 여우까지.

아무래도 마족들이게 동족들을 잃은 수인들이 서로 힘을 모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의 위치를 찾기가 어려웠다.

아니, 어려웠었다.

"읍, 으으읍, 으읍?!"

"...해치지 않아. 마을의 위치만 말해준다면, 안전하게 풀어주지."

다른 녀석들이 몰려올세라 입을 틀어막고는 목에 검을 겨눈다.

알아들었으면 고개를 끄덕거려.

그 한 마디에 목을 마구 흔드는게 꽤나 간절한 모양이었다.

"저, 그... 아리엘이라는 마족을 구하러 온거지냥?"

"...거기에 있나?"

단지 그 한 마디를 했을 뿐인데, 분위기가 급격하게 험악해졌다.

'이, 인간 주제에 마족을 구하려고 하다니, 제정신이 아니다냥!'

인간들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마족들에게 가장 목숨을 많이 잃은 종족을 꼽으면 한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기에 불쌍하다고는 생각했으면 했지.

그렇기에 랴뇨리의 입장에서 이 미친 인간은 말 그대로 미친 인간이었다.

인간이 마족을 구한다니.

마왕이 수인을 낳는다는 소리와 같은 수준의 정신나간 이야기였다.

"저, 저기... 혹시 칼은 치워주지 않을래냥? 도망치지 않을 테니까ㅡ"

"그걸 어떻게 믿지?"

"꼬리! 꼬리를 잡으면 되지 않냥!"

제 은신을 간파할 정도라면 수인에 대해 잘알고 있는 인간이 분명하겠지.

그렇다면 고양이 수인이 꼬리를 내어준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알고 있을 터였다.

무조건적인 항복.

꼬리가 없는 고양이 수인은 균형을 잡지 못해 제대로 걸어다니지 못하게 되니, 꼬리를 건넨다는 건 완전한 항복을 뜻했다.

"흐냥?! 조, 조금 살실 잡아달라냥..."

그렇게 세게 잡지 않아도 도망치지 않으니까!

울상을 지으며 걸음을 옮기니 제 걸음에 맞춰서 천천히 따라온다.

마치 어미의 꼬리를 잡은 새끼 수인과도 같은 모양새였지만, 실제로는 목숨줄을 붙잡고 붙잡힌 살벌한 사이였다.

'촌장님한테 들키면 진짜 완전 죽음이다냥...'

그래도 뭐, 인간이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위칠 알려줬다고 하면 괜찮지 않을까.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집어담을 수는 없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냥.

마지막으로 보았던 마족의 얼굴을 떠올린다.

다 그 녀석 때문이었다.

그래, 차라리 성격이 더러웠다면.

웃지도 않는 냉혈한이었다면.

약골이 아니었다면.

하물며 뿔이라도 있었다면!

'그 마족, 역시 다시 생각해 봐도 마음에 안든다냥.'

랴뇨리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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