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11화 (111/342)

Chapter 111 - 탈출.(12)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처음 보는 수인에게 범해지느니 용사에게 범해지는 편이 낫다니.

스스로 떠올린 생각에 속으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어느 하나를 고른게 겨우 용사라고? 바보같기는.

'하지만...'

처음 보는 이에게 강제로 범해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았으니까.

그렇기에 후자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의 공포와 고통을 다시 느끼느니, 차라리 역겹지만 익숙한 녀석과 하는 편이 나았다.

"그런데 용사, 문제가 있다."

옷을 반쯤 벗어내린 상태로 잠시 머뭇거린다.

그런 나를 보며 울적한 눈동자를 하고 있던 용사가 왜 그러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다.

그래, 그러니까.

으응, 그러니까...

"할리벨의 체액이 없구나."

지금까지 용사와의 관계를 통해 아이를 가진 건 통 세 번.

그 세 번 중 두 번이 바로 체액의 힘을 빌어 이루어진 것이었다.

가장 처음의 것은 잠을 자고 있던 와중 엘리에게 당한 짓 때문이었지만.

...아니, 차라리 그 편이 더 좋은가?

"그런 의미에서, 내가 자고 있을 테니 자고 있는 나를 범하는 건 어떤가?"

"...뭐."

"...내가 저주의 말을 내뱉는 걸 듣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편이 너에게도 더 좋을ㅡ"

몸에서 답답함이 느껴졌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용사가 내 몸을 꽉 껴안은 것 때문이었다.

마치 내 말문을 막으려는 듯 필사적인 움직임에,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를 한암 안고 았는 품에서 간헐적으로 떨림이 느껴졌다.

...왜 그러는 거야.

"제발, 제발 그런 말은 하지마."

"..."

"너 자신을, 조금 더 소중하게 생각해줘."

간절하게 말하는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했다.

울고 싶은 건 나인데, 정작 울고 있는 건 용사인 것만 같았다.

범인의 눈물, 같은거려나.

점점 더해지는 압박감에 용사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알겠으니까 일단 떨어져.

길게 숨을 내뱉으며 말하니 순순히 떨어져줬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오르가즘을 느껴야 임신할 수가 있다니.

용사의 얼굴을 봐도 전혀 젖지 않는 몸뚱이로 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를 모르겠다.

여우 수인이 사용하던 발정 마법 미스무리한 것이 떠올랐지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딴 년의 도움을 받느니 차라리 자위를 하는 편이 더 낫ㅡ

"...히끅."

"아리엘?"

그러고 보니 경험한 적이 있었더랬다.

단탈리온의 체액에 절여져, 한껏 가랑이 사이를 만지작거렸더랬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딸꾹질이 터져나왔다.

너무 가서 무섭다는 건, 그때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으니까.

"아니, 흑. 아무것도, 아니다..."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용사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자위, 자위라...

잘 할 수 있을까.

애초에 당시의 일은 정신 없이 움직여서 벌어진 일이었다.

했다는 사실만 어렴풋하게 기억났지, 정작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만, 고개 좀 돌려보거라."

내 말에 용사가 순순히 고개를 돌렸다.

음, 하고 작게 신음을 내뱉다가도 천천히 팔을 움직였다.

슬며시 내려간 곳에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민둥산.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작은 샘이 손가락 끝에 닿았다.

"...별 다른 느낌이 들지는 않는데."

겉면을 살짝 만져봤지만, 그렇게 자극적이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역시 동인지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구나.

아니, 거기에 나온대로라면 나는 이미 용사의 좆에 함락되었겠지.

'...우웩.'

용사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스스로를 떠올리니 속이 안 좋아졌다.

이럴 때는 뭘 상상하는게 나을까.

자위라는 행동을 하는게 너무 오랜만처럼 느껴졌다.

애초에 이 몸뚱이로 하는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여기를 만지면ㅡ 흣?!"

균열 위로 난 자그마한 공알에 손가락을 올리니, 무언가 짜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어라, 방금 뭔가가...

멍하니 가랑이 사이를 내려다보니, 허벅지 사이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니, 설마..."

이렇게 느끼기 쉬운 몸뚱이었다고?

그런데 왜 용사랑 할 때는 젖지를 않았지?

물론 상대가 남자라는 것에서 나오는 심리적인 거부감 때문일 터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 민감하다면 분명 범해지면서 무언가를 느껴어야 할 텐데...

"흣, 흐아...♥"

손가락 끝으로 돌기를 살짝 눌렀다가, 뭉근하게 짓누르니 입에서 달큰한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야해. 내 목소리지만, 너무 야해.

스스로의 신음 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뭔가 몸이 점점 더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으응...

"히얏, 흐♥ 기, 기분이이...♥"

이, 이상한데.

지, 진짜로 이상한데?

무슨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팔다리가 덜덜 떨렸다.

좌우로 흔들리는 허벅지가 중력을 이겨내고 공중으로 떠오르는 순간, 짙은 쾌락과 함께 바닥에 등이 닿았다.

"...!!!"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쾌락에 몸을 맡기자,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공알을 타고 올라 아랫배에서부터 퍼지는 쾌감.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몸을 굳히니, 가랑이 사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생각해보니까, 용사가 여기를 만진 적이 없었구나.'

동정 주제에 여자에 대해서 뭘 알고 있어야 말이지.

생긴 건 무슨 하렘물의 주인공처럼 생겼으면서 하는 짓은 만년 동정이라니...

어쩐지 스스로가 우스워져서 헛웃음을 내뱉었다.

확실히, 그런 이유였다면 용사와의 관계에서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할만도 했다.

"으?!"

그러다가 문득, 옆에 용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서둘로 몸을 일으켰다.

미친, 미친!

내가 지금 용사 앞에서 자위를 했다고?

자괴감은 둘재로 치더라도, 이딴 꼴을 용사가 봤는지가 중요했다.

"용사, 이상한 소리를 내서 미안ㅡ"

분명 고개를 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랫쪽에 달린 것.

흉악할 정도로 거대하게 부풀어오른 자지가 그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

내가 자위하는 모습은 보지 않았더라도, 신음 소리는 당연히 들었겠지.

아니, 이제와서는 진짜 안 봤는지 확신할 수도 없었지만.

"...고개, 돌려도 좋으니까."

괜히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얼굴에 열이 몰리는 것을 느끼며 소심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용사에게 화를 내기에는 내 잘못이 맞았기에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저, 그, 음..."

삐걱삐걱 고개를 돌린 용사가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빤히 바라보며 얼굴로 모자라서 귀 끝까지 시뻘걸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 정도로 부끄러워 하는 건 또 처음보네.

물론, 이쪽도 부끄러워 죽일 것 같은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러고 보면, 너도 내가 첫경험이었겠구나."

"콜록, 콜록?! 아, 아니거든?!"

"...아니라고?"

".......사실, 맞아."

되도 않는 거짓말에 뾰족한 목소리를 내던지니 시무룩해진다.

남자 새끼가 시무룩해진 꼴을 보고도 주먹을 날리지 않다니, 나도 참 대단한 꼴이 되었구나.

그런 와중에도 시무룩해지지 않은 용사의 고간에 작은 감탄이 터져나왔다.

역시 뇌가 저쪽에 달린게 틀림 없어.

"자 그러면, 그래."

그 모습에 심술이 나서 용사에게 바짝 다가섰다.

가슴이 용사의 팔뚝에 닿아 마음껏 뭉개졌지만, 지금은 상대를 놀리는게 우선이었다.

"나랑 아기 만들기 하자, 아서."

"..."

반쯤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대사였지만, 정신 상태가 동정인 용사에게는 꽤나 효과가 강한 모양이었다.

나를 향해 주욱 뻗어진 팔에, 상대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예상이 갔다.

분명 넘어뜨려서는 마음대로 범하려고ㅡ

ㅡ이 쓰레기 같은 새끼.

"너무, 자극이 강하니까 그만둬 줘..."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거절이었다.

넘어뜨리려도 한 것이 아닌, 멀찍이 밀어내려고 뻗어진 팔.

슬쩍 다시 고개를 돌린 용사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내가 싫다고 할 때는 억지로 범하더니."

"..."

"지금은 왜 도망쳐?"

손을 뻗어, 용사의 옷깃을 붙잡았다.

누구 때문에 그런 수치스러운 짓을 했는데, 이제 와서 도망치려 한다고?

몸에 퍼지던 열기가 가라앉은 상태였지만, 하복부에서 느껴지는 고동만큼은 여전한 채였다.

"지금은 너무 흥분한 것 같으니까 나중에 하자, 나중에."

"...나중 같은 건 없어."

백만이라는 숫자를 낳으려면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시작해도 모자랄 수준이었다.

단순 계산으로 하루에 한 명을 낳는다고 쳐도 2000년이 넘게 걸렸다.

네가 그때까지 살아있을게 아니라면, 시간이 아까운 줄 알아야지.

"겪고 싶지 않았던 첫경험을 그렇게 가져갔으면 책임을 져."

비겁한 말이었지만, 나에게는 그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억지로 범해졌을 때는 네 의지였으니, 이번에는 내 의지로 하는 거야.

어쩌면 내 몸속에서 태어나는 생명으로 만족감을 채우려는 것일지도 몰랐다.

마키나, 그리고 케룸.

내 곁에 있었비만 순식간에 떠나간 소중한 존재들의 얼굴이 아직까지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정도로 큰 상실은 앞으로도 쉽게 잊을 수 없겠지, 분명.

"그러니까 아서."

내 안을 채우고, 나를 외롭지 않게 해줘.

엘리나 할리벨이 있는데도 외로움을 느끼냐고 물을 수도 있었지만, 그런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이 세계에 오로지 나 혼자 떨어진 것 같은 외로움.

피가 이어진 존재가 곁에 있었기에 그 외로움을 버텨낼 수 있었다.

"내가, 혼자가 되지 않게 해줘."

그게 바로 내가 아이를 낳으려는 또 다른 이유였다.

...스스로도 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