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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13화 (113/342)

Chapter 113 - 탈출.(14)

솔직히 너무 부끄러운 기억이라 떠올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둥글게 부풀어 오른 배는 그 사실을 잊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았다.

"...으음."

작게 신음을 내뱉는다.

이날만큼은 유독 배가 더 불렀다.

복부를 짓누르는 듯한 감각이 평소보다는 배로 더 심하다고나 할까.

그래봐야 이번이 겨우 다섯 번째였지만, 다섯 번 정도라도 그 차이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용사."

힘 없이 용사를 부른다.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상당히 우스웠다.

비웃음 따위가 아닌, 내 옆에 있는게 용사라는 것에서 기인하는 웃음이었다.

과거였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상황인데, 이거.

실실 웃다가도 찌릿, 하고 울리는 통증에 표정을 찌푸렸다.

"손 좀, 잡아줘."

반사적으로 몸에 힘이 들어가서 그런지, 쥐가 날 것만 같았다.

무언가를 쥐고 싶어서 용사를 부르니 순순히 손을 내밀어줬다.

내 것보다 훨씬 큰 손을 꼭 붙잡으니 조금은 덜 아파진 것 같기도 했다.

"괜찮아?"

"...아니."

괜찮을 리가 없잖아.

너무 아파서 그런지 신경질적인 반응이 나갔다.

그럼에도 걱정이 가득 담긴 눈빛은 그대로라, 더 이상 짜증을 내지는 않았다.

게임이었다고는 해도 사람들을 죽여댄 고통을 이렇게 받는 걸까.

출산의 고통을 백만 번이나 받으면 과연 내가 살아있을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역시, 하루에 하나를 낳는 건 그만두자."

"..."

태연하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사실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이런 고통을 하루에 한 번씩 느낀다면 분명 일주일도 가지 않아 충격으로 쇼크사할 것이 분명했다.

아기를 낳다가 죽다니, 그건 너무 비참하잖아.

그런 결정을 내리자마자 목표치 도달까지의 기간이 최소 두 배로 껑충 뛰어버렸다.

뭔가 더 불행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천천히 낳아도 되니까, 제발 아프지만 마."

"...응."

아프고 싶지 않다는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픈 건 이제 질색이야.

물론 아기를 낳을 때는 아파야겠지만,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른 것들에 고통 받고 싶지는 않았다.

개인적인 욕심이었지만.

"흣, 아?!"

"아리엘?!"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배에서 작은 충격이 느껴졌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깜짝 놀라서, 반사적으로 신음이 터져나왔다.

안전부절 못하는 용사가 우스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아기가, 발로 찼어."

자, 이리 와서 잘 느껴봐.

무슨 생각으로 용사의 머리를 끌어당긴 건지는 모르겠다.

내 배에 귀를 딱 붙인 모습에 푸스스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로 미친 걸까.

조금 지나 느껴지는 아기의 발차기에 용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래도 그 또한 이런 경험은 처음인 듯 싶었다.

"네가 만든 아기야."

배에서 귀를 떼어낸 용사가 내 말을 듣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치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기의 움직임을 되새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됐나.

눈동자를 굴리는 것도 힘들어, 누운 그대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은 얼룩이 없구나....'

얼마 전까지 엉망이었던 방 안에 비해, 천장만큼은 깨끗했다.

아무래도 천장을 더럽히지는 못하니 그런 듯 싶었다.

멍청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하반신에 감각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시작될 것 같은 조짐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요, 용사... 흐악..."

진통은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언젠가 느꼈던 고통의 딱 두 배 정도 되는 통증이 내 골반을 뒤틀어댔다.

감각이 사라진게 아니라, 너무 아파서 마비가 된 것 같았다.

"흐, 흐아, 흐...."

아무런 느낌도 안 드는데, 내 몸뚱이는 알아서 힘을 주고 있었다.

얼굴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이 기분 나빠 표정을 찡그리니, 용사의 손이 다가와 그것을 떼어주었다.

고맙다고 말할 힘도 없어서 끙끙거리기를 잠시.

복부가 훅, 하고 꺼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가랑이 사이로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조금 쉽게 나오는구나.'

진통은 평소보다 심했지만, 정작 나오는 건 순탄하게 나왔다.

아기를 받아든 용사에 반사적으로 혐오감이 느껴졌지만, 오늘만큼은 봐주기로 했다.

"아, 아기를..."

"여기 있어."

용사의 손에 안긴 아기는 너무도 자그마해서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바스라질 것만 같았다.

그 사실을 용사도 인지하고 있었는지, 아기를 나에게 안겨주는 그 잠시의 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려댔다.

"예쁜 아기구나..."

"...그렇네."

방금 전까지의 고통이 거짓말이라는 것처럼 기쁨이 몰려왔다.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아기.

머리 위에 달린 귀와, 엉덩이 쪽에 난 꼬리가 특징인 아기였다.

결국 수인을 낳았구나.

그럼에도 내가 낳은 아기인 것에는 변함이 없어서,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윽?!"

눈치챘어야 했는데.

아기를 낳았는데도 어째서 배가 부풀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어야 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방심한 순간, 두 번째 진통이 느껴졌다.

하나가 아니었어.

둘, 이었다고?

"아, 아아아악?!!!!"

"아리엘, 괜찮아?! 아리엘!"

멋대로 휘둘러진 손에 용사의 몸뚱이가 맞았다.

하지만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의 진통이랑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페이스를 되찾으려 끙끙거리니 용사가 내 몸뚱이를 꾹 눌러줬다.

힘을 줬음에도 느껴지는 친절함에 찔끔거리며 눈물이 흘러나왔다.

'왜, 왜 이러지 진짜.'

사람은 자신이 가장 힘들 때 도움을 준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고 했었나.

상대가 그 용사인데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니, 아니야.

이건 그냥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착각하지마.

내가 용사에게 그런 감정을 가질 리가 없잖아.

"조금만 더 힘을 줘. 거의 다 나왔으니까, 응?"

"나, 나 너무 힘들어어..."

"진짜 조금 남았으니까, 버텨줘."

한 번에 둘을 낳으려니 힘이 픽픽 풀렸다.

아기의 머리가 입구 쪽에 걸려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도대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열심히 힘을 주고는 있었지만, 아기가 나올 정도는 되지 않은 듯 싶었다.

'차라리 누군가가 빼줬으면, 좋겠어.'

억지로 벌려져 있어서 그런지 고간 쪽이 너무 아팠다.

다리를 내리니 골반 쪽이 쑤셔왔고, 다리를 올리니 아기가 안쪽으로 슬슬 밀려들어갔다.

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품에 안긴 아기는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젖을 쪽쪽 빨고 있었다.

그런 아기를 보며 미소를 짓는 나도 제정신이 아니라면 아니겠지.

"나온다, 나온다. 그래. 나왔, 다!"

상당한 탈력감에 온몸이 축 늘어졌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함이 내 뇌를 물들였다.

그러니까, 으응, 응...

"...쌍둥이네."

"그러네."

방금 태어난 아기를 품 안에 받아든다.

왼쪽의 아기가 여자아이.

오른쪽의 아기가 남자아이.

품 안은 가득 채운 온기에 속이 울렁거렸다.

"흑, 흐아아앙..."

고통만 변함 없는 것이 아니었다.

아기를 낳은 다음 느끼는 심장의 고동과 감동 또한 그대로였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축 늘어진 채로 그렇게 한참이고 울었다.

옆에서 용사가 안절부절하지 못하는게 느껴졌지만,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

언젠가 꿈꾸던 광경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리엘과 나.

그리고 둘 사이에 낳은 아이들까지.

어렸을 적에는 그런 미래를 그려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었는데.

수 년 간 잊어왔던 소망이 이런 식으로 실현될 줄은 몰랐다.

아리엘이지만, 아리엘이 아닌 존재.

인간이 아닌 마족.

그리고, 마왕과 용사.

"애들이 참 조용하네."

"그렇구나."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을 뒤져보면, 아기들은 언제나 시끄러웠더랬다.

매일마다 울고, 울고, 칭얼거리고, 울고.

옆집의 아주머니가 잠시 애들을 봐달라고 하면 한참이고 고생했던 기억도 있었지.

아리엘과 함께 돌보며 가족놀이를 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렸던 마음이었지만,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네 소꿉친구를 생각하고 있구나."

"미안."

툭, 내뱉어진 말에 반사적으로 사과한다.

아무리 중요한 기억이라고 하더라도, 그녀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분명 실례일 터였다.

결국 내가 선택한 건 소꿉친구인 아리엘이 아니라, 마왕인 아리엘이었으니까.

만약 이대로 시간이 지나 아리엘이 아리엘을 낳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무 아득한 미래처럼 느껴졌다.

"여전히 너를 싫어해... 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주거라."

무슨 노력인지는 묻지 않았다.

그저 말 없이 그녀의 손을 쓰다듬을 뿐.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작은 중얼거림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시 서로를 마주보다가, 아기의 칭얼거림에 아리엘이 시선을 돌렸다.

젖가슴을 겉으로 내보이고 있음에도, 그녀의 모습은 조금도 천박하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건 오직 아이들의 어머니 뿐.

"혹시, 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사실 통성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사이였다.

증오와 증오로 엮여서 서로의 이름을 알고 있던 것이지, 그 이외의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알고 싶었다.

그녀와, 그녀의 삶에 대해서.

"...나중에. 나중에, 때가 되면 알려주마."

아리엘이 슬쩍 시선을 돌렸다.

황금색 눈동자가 처연하게 내려앉았다.

그녀는 무언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사람처럼 한참이고 슬퍼했다.

물론 그것이 표정으로 들어나지는 않았지만, 마치 울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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