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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14화 (114/342)

Chapter 114 - 탈출.(15)

벨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하나 같이 불행한 일들 밖에 없었다.

다른 동족들보다 작은 크기로 괴롭힘을 받기는 첫째, 힘이 약해서 놀림 받는 것이 둘째였다.

하지만 그런 건 별 것 아니었다.

상대가 나를 바보 취급 한다면, 나 또한 상대를 바보 취급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괴롭힘 당한다면, 그냥 나가지 않으면 될 뿐이었다.

그래, 그날도 그냥 얌전히 집에만 있었는데.

"엄마? 아빠?"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눈앞에서 이렇게 사람이 찢어발겨질 수 없을 테니까.

귓가에 맴도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아니었다면, 감히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했을 터였다.

사실 도망치면 안 됐는데.

그곳에서 부모님과 함께 죽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몰랐다.

"벨..."

자신을 안아든 랴뇨리가 아니었다면, 분명 그렇게 됐을 텐데.

결국 살아남은 나에게 남은 건 귀 하나 뿐이었다.

집도, 부모님도 모두 잃은 불쌍한 고양이 수인 하나.

킥킥 웃었다.

스스로의 삶이 참으로 고달퍼서, 한참이고 웃었다.

"...엄마."

사지가 찢긴 시체는 어머니의 것이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 얼굴이 너무 가여워, 벨은 반사적으로 제 어미의 눈꺼풀을 감겨주었다.

편히 잠드세요, 어머니.

부디 마지막으로 느꼈던 고통이 그곳까지 이어지지 않기를.

"헉, 흐억, 헉..."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시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는데, 그 광경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왔다.

왜 너만 도망쳤어.

내가 이렇게 됐는데, 왜 너만 살았어?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견딜 수가 없었다.

"죄송해요, 혼자 살아남아서 죄송해요. 차라리 제가 죽었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죄송..."

잠에서 깨어난 뒤에는 부모님께 사과를 드렸다.

혼자 살아남아버린 불효자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속죄였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상처가 무뎌진다는 이야기가,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흉터조자 되지 않아 여전히 붉은 피를 뚝뚝 흘리는 심장이 너무도 아팠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는게 좋을까.'

죽지 못해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미래가 없었다.

그저 현재를 붙들고 있을 뿐.

거울을 볼 때마다 하나 밖에 없는 귀가 눈에 띄어서 울적해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언가 삶의 의미를 찾아야 했다.

원래는 죽으려고 했지만, 이렇게 죽어버리기에는 너무 억울했으니까.

"...내가 이렇게 된 건 전부 마족들 탓이잖아."

그렇다면, 그 녀석들에게 복수를 하는게 가장 좋은 선택 아닐까?

상처가 분노로 뒤바뀐다.

붉은 핏방울이, 타오르는 불꽃으로 치환된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벨이라는 존재가 마족을 향한 복수에 목을 매게 된 것이.

"벨, 요즘 괜찮은거냥?"

"...나는 괜찮아."

왜, 너도 내가 이상해 보여?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해맑게 웃어보였더랬다.

어머니는, 그리고 아버지는 이것보다 더 아팠을 거야.

정확하게 17조각으로 나뉘어진 마족의 몸뚱이에 칼날을 찍어누른다.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괜찮지 않은 건, 이 빌어먹을 세계지."

마족이 사용하던 날붙이로, 마족을 죽인다.

그것만이 오직 그녀의 삶이자 의미였다.

끝까지 맞서 싸우는 자는 끝까지 죽인다.

이길 수 없는 상대라면 방심시켜 죽인다.

만약 죽였다면, 사지를 찢고, 조각내 짐승들의 먹이로 준다.

"촌장님께서 마족을 거두셨다는데?"

"마족으로 뭔가 중요한 일을 하실거라는 소문이 있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어."

"그래서 말이지ㅡ"

"그 마족이ㅡ"

마족이. 마족. 마족. 마족.

"닥쳐!!!!!"

목 끝까지 열이 뻗쳐, 결국 참지 못하고 외쳤다.

다른 수인들의 시선이 몽땅 이쪽으로 향했다.

부모님이 살아있을 적에는 전부 얕보는 듯한 눈빛이었으면서, 지금은 하나 같이 두려움에 절여져 있었다.

벨. 가여운 벨.

가여운 피투성이 벨.

미친 년.

마족들의 피로 범벅이 된 그녀를 지칭하는 별명이었다.

상대가 어떤 마족이던지, 죽었든 살았든 잘게잘게 조각내는 행위로 빚어진 또 다른 이름.

"...저 녀석이랑 엮이면 무슨 꼴을 볼지 몰라."

"도망치자."

"별 꼴이야, 진짜..."

하나 둘 떠나간다.

같은 수인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마족이라는 공통의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아니, 바뀌었다면 바뀌기는 했지.

멸시와 비웃음이 아닌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한 회피였으니까.

"벨, 오늘도 다른 녀석들 겁 주고 있는 거냥?"

"...랴뇨리."

가장 껄끄러운 상대가 말을 걸어댄다.

그때 그 감옥에서 자신을 기절시킨 일은 아직까지 기억에 담아두고 있었다.

물론 그런 일 따위로 랴뇨리를 원망한다던가 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겠지.

그야, 나보다 그 마족 따위를 우선했으니까.

조금만 생각한다면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을 이어나갈 기분이 아니었다.

"그 마족, 촌장님의 집에 지내면서 꽤나 고생하고 있다고 하니까 너무 신경쓰지 말라냐~"

"...인간도 왔다면서."

마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화가 날 것 같아서,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인간의 이야기가 나오자 랴뇨리의 귀가 쫑긋거렸다.

뭔가 알고 있는 이야기라도 있는 걸까.

"뭐어, 그렇지냥."

무언가 얼버무리는 것 같았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인간에게는 관심 없으니까.

자신이 관심 있는 건 오직 마족.

수인들의 마을에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그 증오스러운 마족 뿐이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아기를 낳는다고 하던데냥. 어떤 입 가벼운 녀석인지는 몰라도 참 터무니 없는 소리를 했다냥."

"...뭐?"

아기를 낳는다.

왜?

그걸 가만히 두고만 있는다고?

설마 죽인 만큼 낳게 하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마족이 낳는 아기 따위, 당연히 마족일게 분명하잖아.

아니, 애초에 마족의 피가 섞인 시점부터 혐오스러운 덩어리에 불과할 텐데.

"헛소문일거다냐. 아기를 낳는게 무슨 하루 이틀로 되는 것도 아니고냐."

"..."

"벨? 벨?! 어디 가는 거냥!"

말 없이 걸음을 옮기는데, 어깨를 붙잡혔다.

어디로 가냐니 당연한거 아니야?

시선 끝에 위치한 오두막을 바라보며 이를 득득 갈았다.

그런 벨을 바라본 랴뇨리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무슨 짓을 당하려고 그러는 거냥! 잘못했다가는 진짜 크게 혼날 수도 있다고냐!"

"확인만, 확인만 하려고 하는 거야."

유일한 친구를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딱 확인까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확인만.

하지만,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참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마족도, 마족이 낳은 아기도 전부 죽이는 수 밖에.

"랴뇨리, 언제나 폐를 끼쳐서 미안해."

"응? 으응, 알고 있으면 됐다냥..."

갑작스러운 사과에 랴뇨리의 귀가 쫑긋거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 몸을 꼭 껴안으니 마주안아줬다.

나에게 언제나 미운 소리를 하지만 그것이 나를 위한 말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그래도 말이지, 나는 납득하지 못하겠어.

마족을 향한 증오를 어떻게 눌러둘 수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폐를 끼칠게."

"무ㅡ"

슨.

덜컥, 하며 랴뇨리의 목이 꺾였다.

바닥에 쓰러지는 신체를 붙잡아 근처의 나무 그늘 아래 눕혀두었다.

미안해.

그렇지만, 나는 언제나 이렇게 살아왔는걸.

이제서야 무를 수는 없었다.

삶의 방식이란,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다음에 또 봐."

짧은 인사 끝에 몸을 날린다.

고양이 수인의 몸은 그 자체만으로 꽤나 탄력적이라,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곧바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변을 지키는 수인들이 있기는 했지만 숨어드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냄새가 너무 섞였어."

마족의 향이 희미하게 맡아지기는 했지만,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왼쪽? 그것도 아니라면, 오른쪽?

가만히 있다가는 분명 들킬게 분명하니 서둘러 움직여야만 했다.

망설이지마.

네 목적을 생각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

"...마족, 어디있어."

"...힉."

"말해주면, 순순히 놓아줄게."

근처를 지나가던 사용인을 붙잡아, 그 턱 밑에 칼날을 들이민다.

마족들을 사냥하던 칼로 동족을 위협하는 것이 조금 안타까웠지만,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니까.

"오, 오른쪽 끝 방에 있어요..."

"고마워."

"힉, 네, 네에..."

겁을 잔뜩 집어먹어서 그런지 바닥에 주저앉아서는 오들오들 떨어댄다.

조금 가여운 모양새였지만 이대로 넘어갈수는 없겠지.

지금은 모르지만 다른 동족들에게 말하고 다닐 수도 있으니까.

근처의 빈 방에 기절한 동족을 집어넣은 벨이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거짓말은 아닌 것 같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마족의 냄새가 짙어지는게, 아무래도 정답을 고른 듯 싶었다.

다른 냄새랑 섞여 있기는 했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냄새, 어디에서 맡아본 듯한 냄새인데..."

정확히 네 걸음.

네 걸음을 가까워진 다음에야 희미하게 맡아지는 향에, 벨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설마.

쾅!

"......누구지?"

바로 눈앞에 마족이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상대의 품에 안긴 아기들에게로 향해 있었다.

새하얀 털. 머리 위로 뾰족하게 솟은 귀. 엉덩이 근처에서 살랑이는 꼬리.

그리고 이 냄새.

태어날 때부터 맡아왔던, 그립고도 그리운 냄새.

"엄마... 아빠..."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벨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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