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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15화 (115/342)

Chapter 115 - 탈출.(16)

"으으음..."

바닥에 쓰러져 있는 수인 소녀를 들어다가 이불 위에 올려두었다.

아기들과 똑같은 새하얀 머리카락, 그리고 귀와 꼬리까지.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을 되새기며 쓰게 웃었다.

"엄마, 아빠라..."

그런 중얼거림에 품에 매달려 있던 아기들이 내 쇄골을 앙 물었다.

벌써 이빨이 나서 조금 따갑기는 했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 아기들이 수인 소녀의 부모님이라니.

그 사실이 뭔가 웃겨서 킥킥 웃었다.

"아리엘, 다녀왔ㅡ 그 아이는 뭐야?"

문을 열고 들어오는 용사에게 슬쩍 고개를 끄덕여줬다.

내 자리를 차지하고 누운 수인 아이.

그 아이를 보자마자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튀어나오는게, 아무래도 수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싫은 모양이었다.

확실히, 그 빌어먹을 여신을 모시는 무녀인가 촌장인가와 대화를 나누다 왔으니 그럴 만 할지도.

"아무래도, 아기들과 인연이 있는 아이인 모양이구나."

"...그래?"

내 옆에 앉은 용사가 아이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초췌한 얼굴에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가득했고, 무엇보다 귀가 하나 밖에 없었다.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로 뜯겨나간 것 같달까.

"가엽구나."

뭔가 동정심이 들어서 머리카락을 슥슥 쓸어내렸다.

부드러운 실타래가 손가락을 따라 흘러내리는 감각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한쪽만 텅 비어있는 귓가를 볼때면 반사적으로 손을 피했다.

"...으응."

그렇게 얼마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을까.

작은 신음 소리와 함께 눈을 뜨는 아이의 모습에 마른침을 삼켰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던지, 일단 이쪽은 기본적으로 마족이었다.

존재 자체만으로 적대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심지어 마족들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이어서야 말 할 것도 없겠지.

"마족!"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는 아이의 모습에 쓰게 웃었다.

뿔이 없는데도 용케 알아보는구나.

아이의 외침에 깜짝 놀라 울먹이기 시작하는 아기들을 살살 달래주었다.

부모님을 울리는 아이라니 나쁜 아이구나.

물론 농담이지만.

"내가 왜 쓰러져 있었지? 내가 쓰러져 있는 동안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짓도."

머리를 쓰다듬은 것도 그 범주에 포함하자면 무언가를 한게 맞기는 했지만서도.

내 대답에도 경계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다면 심해졌겠지.

솔직히 당장 달려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최대한 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리로 오거라."

"내가 왜ㅡ"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일 텐데, 싫은 건가?"

아기를 이용하는 것 같아서 조금 마음이 아팠지만, 딱히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이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칠 기색이 보인다면 곧바로 칼을 뽑아들 것만 같았으니까.

품에 안긴 아이를 보이도록 조금 내미니, 날카롭게 떠져 있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둥글둥글하게 변했다.

이제서야 조금 아이처럼 보이는구나.

"그, 그게 내 부모님이라는 증거가 어디에 있는데?!"

아이가 외쳤다.

아무래도 마족의 뱃속에서 태어난 아기를 향한 본능적인 거부인 듯 싶었다.

"없지. 그래도, 너는 알고 있지 않느냐?"

말 그대로였다.

소중한 사람을 그토록 쉽게 잊어버릴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하물며 그것이 부모라면 더더욱.

"거짓말, 거짓말이야! 이건 전부 마족이 나를 속이려고 하는 거짓말ㅡ"

발작하듯이 외치는 아이에게 다가가, 그 품에 아기를 안겨주었다.

"아."

짧은 단말마와 함께 고개가 덜컥 숙여진다.

이제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진 듯한 아이가 멍하니 제 품에 안긴 아기를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짓다가도 천천히 얼굴을 숙인다.

아기의 목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은 아이가 이내 뚝뚝 눈물을 흘려대기 시작했다.

"엄마아아아아아......"

서럽게 울면서도 웃고 있는 이상한 장면이었지만, 우습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나였어도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아이에 대한 경계를 푼 용사가 내 옆에 앉았다.

눈빛이 가라앉은 것이, 아무레도 제 가족 생각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가족들이 보고 싶나?"

"..."

용사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느리게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괜한 질문을 했네.

보고 싶지 않을 리가 없었다.

가족이란 건 그런거였으니까.

"마족은, 여전히 용서 못해."

아이가 말했다.

여전히 뾰족했지만, 그 끄트머리가 조금은 뭉툭해져 있었다.

품 안에 있는 아기가 옹알거리자 날카롭던 기세가 더더욱 누그러졌다.

그래도, 그래도...

목소리에 물기가 섞였다.

"...감사, 합니다."

아이가 고개를 숙였다.

숙여진 머리 위로 하나만 남은 귀가 처량하게 흔들렸다.

귓가를 물들이는 감사의 말에 눈가가 시큰거렸다.

벌써 두 번째다.

아기를 낳고, 그 아기가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분명 좋아해야 할 일이 맞는데도 불구하고 찔끔찔끔 눈물이 흘러나왔다.

"제 부모님을 되살려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꾸벅이는 아이의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움찔거리며 고개를 들어올리는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귀 한쪽이 없는 건 상당히 안타까웠지만.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니 귀가 마구 쫑긋거렸다.

"혹시 이름을 물어도 될까?"

"...벨, 벨이라고 합니다."

"예쁜 이름이구나."

빙긋 웃어보이니 얼굴이 붉어진다.

그런 아이를 보며 용사가 내 몸을 끌어당겨 제 품에 안았다.

얘는 또 왜 이런데.

표정을 찡그리며 내 허리춤에 둘러진 팔을 탁탁 두드리니 스르르 힘이 풀렸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이 바보는.

"나는 아리엘이라고 한단다."

"...네, 아리엘 씨."

벨의 꼬리가 천천히 살랑이다가, 소리도 없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니, 내 손등을 콕콕 찔러대기 시작했다.

잡아달라는 뜻일까.

그런데, 수인들은 꼬리가 예민하다고 하지 않았었나?

"...읏."

"미, 미안하구나. 너무 세게 잡았나?"

"아, 아니에요!"

작은 신음 소리에 괜히 미안해져서 빠르게 사과했다.

그런 내 반응에 아이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꼬리 진짜 부드럽네.

슥슥 쓰다듬으니 간지러운지 좌우로 막 꿈틀거렸다.

털 달린 뱀 같은 느낌인걸.

뭔가 감촉이 좋아서 계속 만지고 있었더니 용사가 내 손을 스윽 가져갔다.

"? 왜 그러느냐?"

"아니, 그냥..."

갑작스럽게 손깍지를 껴대는 모습이 조금 수상했다.

왜, 내가 벨을 좋아하고 있는 것 같기라도 해?

나를 이 애한테 뺏길거 같아서 불안한 거야?

어이가 없어서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물론 나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던 전적이 있는 놈보다 눈앞의 미소녀 쪽이 더 취향이기는 했지만서도.

"...아리엘 씨는, 정말 상냥하시네요."

용사의 손을 떼어내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으려니, 벨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붙여왔다.

상냥하다니, 내가?

딱히 상냥하게 대한 기억은 없는데.

아니면, 다른 마족들에 비해서 친절하다고 말한 걸까.

"다른 마족들은 전부 쓰레기들 밖에 없었는데."

역시 그렇구나.

다른 마족에 대해 신랄하게 말하는 것 치고 꽤나 후한 평가였다.

솔직히 할리벨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반박할 수가 없어서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어딜 가나 마족은 미움 받는구나.

[벨이 또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니까냥!]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문 밖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벨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제 품에 안긴 아기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머뭇거리다가도,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 그대로 몸을 날렸다.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데도 잘도 날렵하게 다니는구나.

"...마족! 괜찮냥!"

"나는 괜찮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고양이 수인, 랴뇨리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나를 걱정한다기 보다는 벨이 사고를 쳤는지를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사이가 좋구나.

용사와 시선이 맞을 때 쯤에는 화들짝 놀라 꼬리를 가리는게 조금 수상하기는 했지만서도.

"무사하다면 다행이다냐. 벨 이 녀석, 다음에 만나면 엉덩이를 두들겨 줄 테니까냥!"

제자리에서 방장 뛰던 랴뇨리가 이내 씩씩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녀를 뒤따라 오던 수인들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언제나와 같은 취급이었기에 딱히 아무렇지 않았다.

응, 나는 괜찮으니까.

"...괜찮아?"

용사가 물었다.

내 표정이 이상한 걸까, 싶어서 얼굴을 만지작거리니 입꼬리가 바닥을 향한 채 처량하게 늘어져 있었다.

괜찮지. 괜찮고 말고. 괜찮아야지.

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거잖아.

당연히 기뻐해야 할 일이니까.

당연히, 당연, 히...

"흐, 흐으, 흐아아..."

"..."

"싫어. 더 이상, 싫어어..."

품에 있던 온기가 사라지는 건,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품은 아이들인데.

내가 고생해서 낳은 아이들인데.

내가, 내가 사랑하던 아이들인데.

설움이 멈추지 않았다.

잠시의 시간이었지만, 최대한의 사랑을 줬기에 느끼는 슬픔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몸을 감싸는 온기와 함께, 등을 두드리는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내 심장 박동에 맞춘 듯한 박자로 달래며 천천히 속삭인다.

괜찮아, 괜찮아, 하고.

그래, 어쩔 수 없잖아.

내 아기이지만, 다른 이의 소중한 가족이니까.

돌려보내줄 수 밖에 없겠지.

"...용사."

너 만큼은, 나를 떠나지 말아줘.

내가 너에게 마음을 준 것이 후회되지 않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나를 바스라뜨릴 기세로 껴안을 뿐이었다.

용사의 체온이 주는 뜨거움에 몸을 맡겨 그대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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