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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18화 (118/342)

Chapter 118 - 탈출.(19)

"싫어, 안 돼, 안 돼, 안 돼!!!!!!"

등 뒤에 매달린 여덟 개의 꼬리 중 하나가 허무히 사라진다.

마치 별빛과도 같은 빛을 뿌리며 소멸하는 꼬리에 엘리가 나지막이 감탄했다.

별무리를 보는 것 같네요.

하지만 겨우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 둘, 그리고 셋을 넘어 일곱까지.

단 하나만 남기고 전부 사라져가는 꼬리를, 미코는 허망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잡으려고 해도 소용 없다.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빛무리에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마는 것이었다.

"아, 아아, 이럴 수는..."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작아진다.

풍만했던 여성의 몸이 점점 쪼그라들고 축소되어, 마침내 엘리의 허리춤에나 올 법한 크기로 자그마해졌다.

그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고 있던 엘리가 눈을 빛냈다.

처녀를 잃으면 어려지다니, 참 신기하네요.

딱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흐, 흐아아아아앙...!!"

몸이 어려져서 그런지 눈물이 쉽게 터져나왔다.

어쩌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을 잃었기에 나온 설움일지도 모르지만.

바닥에 주저앉은 미코가 세상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했다.

크기가 맞지 않아 흘러내린 옷가지 사이로 새하얀 피부가 돋보였다.

어린아이가 고간에서 피를 흘리며 서럽게 울고 있는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범죄적이었다.

"자, 자아 뚝 해야죠, 뚝!"

"...손, 손 치워요!!"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의 손이 저 멀리 떨어졌다.

어린아이가 때리는 정도라 별로 아프지도 않았다.

눈꼬리에 커다란 눈물 방울을 매달고 노려보는 꼴이 퍽이나 가여웠다.

'커다란 몸일 때는 몰랐지만, 어려지니 조금 불쌍하기는 하네요.'

전직 성녀라는 이유 외에도, 엘리는 아이들에게 약했다.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눈물만 뚝뚝 흘리는 아이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달까.

애초에 아리엘 씨를 적대하게 된 이유도 여신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신성력을 사용할 수 없는 이상은 더 싸울 필요도 없겠지.

애초에 저런 몸으로는 싸우고 싶어도 싸우지 못할테지만.

"자아, 이리로 오세요."

"힉, 흐, 때리지 마세요..."

머리에 손을 얹으니 커다란 귀가 납작 내려앉았다.

겁을 잔뜩 집어먹어서는 바들바들 떨고 있으니 뭔가 아이를 괴롭히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정작 괴롭힘 당한 건 아리엘 씨인데.

엉덩이를 마구 때려줄까 하다가도 어린아이에게 폭력을 사용하면 안 된다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아이에게는 사랑과 친절로.

비록 어른에서 아이가 된 것이었지만, 그래도 아이는 아이였다.

"꼴 좋네, 이 망할 여우!"

"히야악?!"

"할리벨 씨!"

따악, 하는 소리와 함께 미코가 비명을 질렀다.

힘을 조절하기는 했겠지만, 작은 몸으로는 꽤나 아팠던 모양인지 미코가 다시 눈물을 뚝뚝 흘려대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폭력은 안 돼요!

엘리가 외쳤지만, 할리벨은 그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알게 뭐야, 저 녀석 때문에 내 예쁜 피부에 상처가 났는데!

"그보다는, 빨리 도망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꼬맹이!"

한창 투닥거리던 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그마한 아이의 모습에 할리벨이 소리를 질렀다.

아이의 등 뒤에 매달린 아기는 어느새 쑥쑥 자라서 엄청 커져있는 상태였다.

"용사는 알아서 올 테니, 어서 빠져나가도록 하죠."

아무리 용사가 다른 수인들을 막고 있다고는 하지만, 몇몇은 이쪽을 향할 터였다.

마왕님도 구했고, 저 망할 여우 수인 녀석도 쓰러뜨렸으니 더 이상 이곳에 볼 일은 없었다.

그러면, 가볼까.

신성력으로 인해서 몸이 저릿하긴 했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왕님, 정신이 드세요?"

"...그래."

두 손으로 가뿐하게 안아들고는 빠르게 몸을 날린다.

엘리는 아이와 아기를 들고는 서둘러 달려오고 있었다.

등 뒤에 금색의 무언가를 매달고서는.

"야, 그건 또 왜 들고 오는 건데?!"

"그, 그치만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이 아이가 붙잡고 있는거거든요?"

신경질적인 외침에, 미코가 울상을 지었다.

"나, 나를 이런 꼴로 만들었으니 책임지세요!"

처녀를 잃어선 이런 비참한 모습이 되다니...

이딴 몰골로 동족들의 앞에 설 자신이 없었다.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여우 수인이라는 사실 하나가 자신의 전부였는데, 지금에서야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으니까.

심지어 처녀까지 잃었잖아.

다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수치스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아니, 차라리 죽어버리면ㅡ"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힉..."

엘리의 호통에 솜털 가득한 귀가 움츠러들었다.

내, 내가 죽는다는데 무슨 상관인데요.

웅얼거리듯 튀어나간 말에 엘리가 표정을 찌푸렸다.

"죽지 않고 살면 어떻게든 돼요. 그러니까 살아남으세요."

"...네, 네에."

그렇게 말하는 기세가 대단해서 긍정을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마수의 시체를 보자마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솟아오른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죽음이란 건 언제나 허무하고도 슬픈 것이었지.

언젠가의 기억을 되새기며 자신을 업고 있는 건방진 인간에게 꼭 달라붙었다.

역시,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무난하게 끝난 것 같네요."

"마왕님도 크게 다치신 것 같지는 않으니ㅡ"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십니까, 다들?"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들을 가로막았다.

***

형제님, 그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마수라고 불리우는 저 짐승들이, 사실 인간들보다 마족들을 더 많이 죽인 것을 말입니다.

저 짐승들이 마족들에게 길들여진 숫자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왜 저것들이 마수라고 불려야 합니까?

형제님, 기억하십시오.

세상에 아무리 죽음과 공포가 넘쳐난다고 해도, 진실에서 눈을 돌리지 마십시오.

마족이 그 짐승들을 길들인다면, 저희 또한 길들이면 될 뿐입니다.

인간을 죽이는 마수가 아니라, 마족을 죽이는 신수로써 말이죠.

오, 흥미가 생기신 모양이군요.

그 정도로 마족들이 원망스러우셨습니까?

당신들의 가족을 죽인 것이 바로 그 마수들인데 말이죠.

그래서 방법이 어떻게 되느냐고요?

그건 교단으로 오시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실 겁니다.

제가 왜 당신을 형제라고 부르겠습니까, 형제여.

여신의 품에 안기십시오.

그리고 진실을 보시길.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지.

인간이 아닌 신의 눈으로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왕을 품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성녀님.

빅토르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 어떠한 비웃음도 담기지 않은 순수한 미소.

하지만 어떤 미소보다 불안감이 든다면 거짓말일까.

"..빅토르 경."

"기껏 성녀님을 위해 신수까지 보냈건만, 아깝게도 죽어버렸더군요."

빅토르의 옷소매가 흔들리자, 숲의 그늘 속에서 마수 몇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라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저렇게 많은 숫자는 무리였다.

어떻게 하지?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뒤에서는 수인들이 쫒아오고, 앞에는 마수들이 있다.

어느쪽을 선택하더라도 무난하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설마, 저 녀석이!"

엘리의 등 뒤에 매달려 있던 미코가 이를 갈았다.

지금까지 저 마왕이라는 녀석이 마수를 조종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저 인간이 조종하고 있었다니!

원망의 방향이 틀어지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힘만 있었다면, 저 빌어먹을 작자에게 복수할 수 있었을 텐데.

괜히 억울해져서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그저 의심이었습니다만, 역시 이상하더군요. 혹시 몰라 성녀님이 지내시는 여관에 심문관들을 보내봤지만 이미 자리를 떠나신지 한참..."

"..."

"거기에 마을 어귀에는 레이나 님과 에밀리 님의 무덤까지 있더군요."

"그건...!"

"배신한겁니까? 그 배신이 당신 혼자인게 맞습니까? 혹여 용사 또한 동참했다면 그 이유가 뭔지 궁금하군요.

솔직히 의심 따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수준 낮은 인간이라서 말입니다."

지금까지 세계를 위해 싸워온 당신들이 세계를 배신했다는 가정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빅토르의 눈동자가 검게 빛났다.

어쩌면 그는 제 눈앞에 있는 존재가 마왕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몰랐다.

"빅토르 경, 저는ㅡ"

"저기 있다!!"

소리가 들려왔다.

등 뒤에서 외쳐지는 분노 어린 목소리에 엘리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여기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ㅡ'

"뭐하고 있어, 빨리 뛰기나 해!!!"

입술을 꾹 깨물며 머뭇거리다가도, 먼저 달려나가기 시작하는 할리벨에 허겁지겁 따라붙었다.

어느쪽이 더 위협적인가.

빅토르 경과 그 마수들?

아니면, 잔뜩 화가 난 채로 죽일 듯이 달려오는 수인들의 무리?

"대답은, 다음에 듣겠습니다."

빅토르와 그 옆의 마수들을 스쳐지나가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얼거리듯 내뱉어진 말이었지만, 뇌리에 새겨질 정도로 선명하게만 느껴졌다.

이 사람, 우리를 쫒아올게 분명해.

가정이 아닌 확신이었다.

대답을 들을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들의 뒤를 따를 터였다.

"뒤 돌아볼 시간에 빨리 뛰기나 하라니까?!"

아리엘을 안아들고 있던 할리벨이 그녀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그녀의 품에 안긴 아리엘은 어느새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엘리가 그대로 속력을 높였다.

'빅토르 경, 부디 무사하시길.'

아니, 이럴 때는 무사하지 말기를 바래야 하는 걸까.

자신만이 알고 있는 진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릴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입맛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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