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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21화 (121/342)

Chapter 121 - 진실에 대하여.(3)

"용사!"

제 품에 안겨드는 아리엘을 보고 느낀 것은 더 없을 정도의 만족감이었다.

불안에 떨리는 몸이 어찌나 가련하던지.

그녀가 기다리던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묘한 우월감까지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 감정에 매몰되서는 안됐다.

아리엘이라는 존재에게 있어서 용사란 죄인이었으니까.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순수한 걱정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소유물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에 가까운 감정이었으니까.

절대 제 곁에서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던 존재를 기다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너도,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용사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 상대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처음 손이 닿을 때는 흠칫거리다가도, 이내 그의 손길에 익숙해졌는지 가만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생각에 빠져있다는게 맞겠지.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흐려진 눈동자는 어느샌가부터 용사의 모습을 담고 있지 않았다.

"용사."

"..."

"잠시, 잠시만 나랑 이야기 좀 하자꾸나."

제 소매를 잡아당기는 아리엘에 순순히 걸음을 옮겼다.

애초에 거절할 생각도 없었지만, 저렇게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말해오는 것을 거절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저기, 그러니까..."

비어있는 방 안으로 용사를 데려온 아리엘이 천천히 운을 띄웠다.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까.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말은 했으니, 할리벨의 상태에 대해서 말해야 할까.

아니면 마족들을 소환한게 인간들이라는 사실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무엇을 입에 담던 태연하게 있을 자신이 없었다.

"천천히 말해도 좋으니까, 조금은 진정해줘."

어느새 입술을 깨물고 있었는지, 용사의 손길에 입술을 짓누르던 이빨이 떨어져 나갔다.

멍하니 자신을 올려다보는 시선에 용사가 한숨을 내뱉었다.

네가 그만 힘들었으면 좋겠는데, 어째서 혼자서 속을 썩이고 있는 걸까.

물론 그녀의 고민을 듣는다고 해결해줄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털어놓는 편이 더 마음이 편할 터였다.

"...마족이, 어떤 이유로 나타나게 되었는지 알고 싶지 않느냐?"

"..."

표정이 굳었다.

무슨 말을 들어도 태연하려고 했지만, 이 경우에는 느낌이 달랐다.

마족들이 무슨 이유로 나타났는가.

그리고, 어떻게 나타났는가.

그녀는 그것에 대한 답을 알려주기 위해서 자신을 따로 불러낸 것이었다.

"사실 나도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알았다만, 그래. "

아리엘이 잠시 헛기침을 내뱉었다.

목이 막히는 듯 몇 번이고 켁켁거린 그녀가 머뭇머뭇 말을 이어나갔다.

응, 그러니까.

마족들이 나타나게 된 이유는.

"인간들이 마족들을 소환했다."

아주 단순한 사실이었다.

인간들이 마족들을 소환했다.

간단하고도 확실한 답.

하지만 용사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인간이 마족을 소환했다고?

왜? 무슨 이유로?

"역시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느냐? 내가 너를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 말을 하는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듯 축 처진 눈꼬리에서 용사는 짙은 슬픔을 느꼈다.

마족들을 소환한 장본인은 인간이다.

심지어 그 말을 마왕이 말했다면, 그 누구도 믿지 않겠지.

"아니, 믿어."

하지만,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내뱉어진 답변에 황금색의 눈동자가 잘게 떨려왔다.

불안이 가득 섞인 모습에, 그 자그마한 몸을 꼭 껴안아 주었다.

할 수 있는 건 겨우 그 정도 밖에 없었다.

"나는, 나는 네가 믿지 못할 줄 알았다. 그도 그럴게 처음 만났을 때는 그렇게나ㅡ"

"..."

"ㅡ그렇게나, 믿지 못했었는데."

손가락을 들어 눈물을 닦아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쌓아두었던 것이 터져나온 듯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울지마. 내가 잘못했으니까, 울지마."

"흑, 흐아, 으..."

네가 울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달래주려 할 때면 더욱 울기 시작하는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그저 힘껏 껴안는 것 뿐.

"할리벨이, 할리벨이... 나, 나를 살리려고 무리해서. 그래서, 그래서 진정시키려고 뿔을 잘랐는데ㅡ"

"..."

"안 일어나. 나, 어떻게 해야 해? 나 때문에 영원히 못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겁에 질린 얼굴에 시선을 피하고만 싶었다.

상대의 겁에 질린 얼굴은 과거 자신이 했던 짓들을 떠올리게 했기에.

하지만 마주해야만 했다.

죄악을 피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했다.

"다들 내 탓이 아니라고 하는데, 내가 아니었으면 할리벨이 저렇게 될 일도 없었잖아."

내가 마왕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 연약한 몸이 아니었다면.

차라리, 그 창관에서 할리벨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무너진 자존감이 그녀를 어둡게 물들였다.

"내가, 내가 어떻게 해야 돼? 모르겠어, 모르겠단 말이야아..."

이내 무너져 내리는 아리엘을 보며 아서가 고개를 떨궜다.

괴롭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워서 미쳐버릴 것만 같다.

어째서 그녀여야 할까.

아무런 죄도 없는 그녀가 어째서 이토록 고통 받아야만 할까.

마왕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겨우 그런 것 때문에?

"네 탓이 아니야. 할리벨이 그렇게 된 건, 전부 내 탓이니까."

처음 만난 순간 그녀의 말을 믿었더라면.

여신을 불러내지 않았더라면.

여신의 저주를 받지 않았더라면.

그 저주를 눈치채고 이겨냈다면.

하물며, 그녀의 뿔을 잘라내지 않았더라면.

"...전부, 네 탓이라고?"

흐려져 있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던 아리엘의 안에 검은 감정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래, 내 탓이 아니야.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걸.

이건 전부 용사 잘못이잖아.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겠어, 응?

용사가 있으니까 이렇게 힘든 거라고.

'하지만.'

"하지만, 네 탓이 아니잖아."

알고 있어.

네 잘못이 아니라는 것 따위는 나도 잘 알고 있다고.

할리벨이 그렇게 된 건, 그녀가 그런 선택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살려내기 위해 마석을 이용하고, 결국 마석에 의해 폭주했더랬지.

그 폭주를 막기 위해 뿔을 잘라내는 것까지가 그녀의 선택이었다.

거기에 용사는 단 한 조각도 끼어있지 않았다.

"모든 건, 마족들을 소환한 녀석들의 잘못이지."

용사가 읊조렸다.

맞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기는 했지만,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대답이었다.

이래서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건데.

그 눈동자에 깃든 것이 무엇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복수심.

나를 처음 봤을 때 담겨있던 그것이 다시 한 번 넘칠 듯 채워져 있었다.

***

누가 마족을 소환했는가.

왜 마족을 소환했는가.

어떻게 마족을 소환했는가.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마족을 소환했다는 사실 그 하나.

그 하나만이 중요했지.

'마족들이 이 세계에 나타난 이유가 뭘까요?'

언제나 입에 올렸던 물음이었다.

마족들이 왜 이 세계에 나타나게 되었는가.

그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대체 무엇을 원하고 있기에 이토록 잔혹한 짓을 일삼는가.

'마치 화가 난 것처럼 굴잖아. 먼저 죽인 쪽은 그쪽이면서.'

전장에서 성대한 마족들은 하나 같이 화가 난 듯이 행동했더랬다.

자비 없는 손속.

죽을 때까지 피와 살점을 탐하는 집념.

그리고 끝 없이 몰아치는 분노까지.

사람을 갈기갈기 찢고, 강제로 범하고, 아이를 산채로 먹어치운다.

그들에게 있어서 마족이란 괴물에 불과했다.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괴물.

'저주한다. 저주한다, 빌어먹을 인간들아! 네 녀석들은 우리와 함께 지옥에 떨어져, 결국 그곳에서 두 번째 전쟁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저 단순한 저주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사악한 것들이 목숨이 경각에 달하니 내뱉는 단순한 발악이라고만 생각했더랬지.

하지만 그런 말들에도 전부 이유가 있었다면 어떨까.

물론 그 이유가 어떤 것일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어쩌면 없을지도 모르지.

그런데도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 건, 다름 아닌 눈앞의 마족 때문이었다.

"내가 복수할게."

눈앞에 있는 마족은 마족답지 않았다.

다른 마족들과 다르게 힘이 강하지도, 빠르지도, 사악하지도, 잔혹하지도 않았다.

아픈 걸 싫어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겁이 많았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미소가 어여쁘고, 눈물을 자주 흘렸더랬지.

"이건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죄니까."

그런 그녀를 마왕이라고 그냥 두었던 이들이다.

정말로 그들이 마냥 사악한 존재였다면, 그런 그녀를 가만히 놓아두었을까?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애초에 그들이 소환되지만 않았더라면 이런 비극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을 터였다.

'어쩌면,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지도 모르지.'

이 손으로 마족들만 죽였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마왕군과 내통한 배신자들은 마족이 아닌 인간이었다.

제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막대한 금전을 얻기 위해.

권력을 위해.

혹은 힘을 위해.

그들이 배신한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의 손에 처단당했다는 것 만큼은 똑같았다.

'확실히, 미심쩍었던 부분은 있었어.'

그들은 마왕군이 침공할 것을 어떻게 예측하고 있었는가.

배신에 대한 준비는 겨우 하루 이틀로 끝날 정도가 아니었다.

최소 몇 년.

하지만 그들이 마족들의 소환에 가담했다고 한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졌다.

소환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준비했다.

그런 가정을 한다면 모든 것들이 들어맞았다.

진정으로 복수해야 하는 대상은 따로 있던거였어.

하지만ㅡ

"...가지마."

"..."

"가지, 말아다오."

ㅡ어째서 너는, 그렇게 말하는 걸까.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