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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31화 (131/342)

Chapter 131 - 떠나보내고, 받아들이다.(3)

"이봐, 괜찮나? 괜찮느냐?"

"이미 죽었어요, 마왕님."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진 남자를 흔들었지만, 안타깝게도 숨이 끊어져 버렸다.

안타깝구나, 길이라도 물으려 했건만.

이놈의 골목길은 어찌나 복잡하던지, 한 번 들어오니 도통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여기에 갇혀버릴지도 모르겠어.

"...누구세요?"

"...응?"

골목의 그림자 속.

달빛이 비추지 않은 곳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포와 고통으로 버무려진 어두운 음성.

폭풍 속의 파도처럼 덜덜 떨리는 눈동자를 보니 절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괜찮느냐? 가엾게도, 떨고 있구나."

"인간, 은 아닌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선다.

뿔에 대못이 박힌 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마족의 모습이 시야 한 곳을 채워냈다.

손을 뻗어야 할까.

내 손에 닿은 것들은 언제나 나를 떠났기에, 조금은 겁이 났다.

"자, 일어나려무나."

"...감사, 합니다."

떨고 있구나, 안쓰럽게도.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런지 마족은 몇 번이고 발을 헛디뎠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무게감에 딸려 넘어질 뻔 했지만,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었다.

할리벨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후후 웃고 있기만 했다.

"마왕님의 매력에 빠질 마족이 하나 더 생겼네요."

"매력이라니... 겨우 목숨을 구해준 것도 매력으로 쳐주는 건가?"

갓 태어난 새끼양처럼 바들바들 떨어대는 마족의 등을 슥슥 쓸어줬다.

쉬이, 괜찮아.

이제 괜찮으니까 떨지 않아도 돼.

물론 뿔에 대못이 박힌 고통 때문에 떨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있다가는 계속 아플 뿐이니까, 자."

"흑, 흐으..."

근처에 널브러진 집게를 슬쩍 집어들었다.

내 손에 들린 공구를 보며 눈물을 뚝뚝 흘려대는게, 어지간히 무서운 듯 싶었다.

"이건 너를 괴롭히려고 하는게 아니야. 안심하려무나."

"..."

슬며시 고개를 숙이는 마족에 기특하다며 정수리를 슥슥 쓰다듬어줬다.

조금만 참아. 조금만.

완전히 박히지는 않아서 집게가 물 정도의 틈은 남아있었다.

...한 번에 빼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우윽, 흑, 으으으으..."

딸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게 뿔에 박혀 있던 대못이 뽑혀져 나왔다.

바닥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있는 마족의 등줄기를 슬슬 쓸어내려줬다.

잘 버텼어. 그리고, 잘 참았어.

아팠을 텐데, 참 착하기도 하지.

"...감사합니다."

비쩍 마른 몸이 안타까워, 식량을 조금 나누어 주었다.

배가 고팠는지 자그마한 빵조각을 허겁지겁 먹어치운 마족이 다시 한 번 고개를 꾸벅 숙였다.

너무 감사하지 않아도 좋은데.

이건 결국 대리 만족일 뿐이었다.

나조차도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 라는 만족감을 얻기 위한 행동 정도일까.

"혹시 왕도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느냐?"

"...그건."

우물쭈물거리며 시선을 피한다.

그 작은 반응에도 나는 눈앞의 마족이 왕도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노예상에게 팔린 이를 길잡이로 쓰는 건 조금 미안했지만, 그녀 만큼 여러 의미로 믿음직한 길잡이는 더 없을 터였다.

아무리 개목걸이를 하고 있어도, 마족은 마족이었으니까.

"나를 왕도까지 데려가면, 그 목에 걸린걸 풀 방법을 찾아주마. 대신 개목걸이가 풀린 뒤에는 죽은 듯이 살아야 해, 알겠지?"

"..."

내 이야기를 들은 마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반쯤 억지인 거래, 성립인가.

다친 사람을 이용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용사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앞섰다.

너무 꺼려하지는 않아서 다행이구나.

그 사실 하나에 안도하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빨리 증명되었다.

나를 납치하려는 인간들을 막아설 때나 숲속에서 짐승들을 만났을 때가 그러했다.

지금껏 마족은 할리벨 정도를 만난게 다여서 그런지, 형편 없이 놀라버리고 말았다.

"정말 강하구나."

"...당신은, 놀랍도록 약하네요"

상대의 말에 심장이 아팠지만, 그 속에 악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나저나, 마족이면서 말에 악의가 없구나.

지금까지 쌓인 모든 것들이 그저 편견에 불과한 건지, 아니면 내 앞에서만 그러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딱히 알아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잘 먹었습니다."

입맛이 맛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잘 먹었다.

아니, 말라비틀어진 빵조각조차 맛있게 먹어치우던 그녀였으니 구운 고기 정도는 거의 성찬에 가깝겠지.

누린내가 조금 심하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그나저나, 이름을 묻지 않으시네요?"

"..."

할리벨이 물었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눈앞의 마족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다.

처음에는 왕도에 도착해, 용사를 찾고 나면 헤어질 인연이라서 그랬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또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겨우 이름을 나누는 것 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

"혹시, 겁나시는 건가요?"

"겁이라니, 설마."

하지만 부정의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스스로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이름을 나눈다는 건 정을 나눈다는 것이고, 정을 나눈다는 건 기억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죽는 것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할 터였다.

레이나에 이어서 할리벨까지.

누군가는 겨우 둘이라고 타박할지도 몰랐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 둘은 겨우 따위로 치부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래도, 저 아이가 먼저 말해준다면 모르지."

아이는 나에게 제 소개를 해줄 생각이 없는 듯 싶었다.

나보다 큰 마족을 아이라고 부르는게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일단 마왕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나에게 있어서는 대충 아이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물론 옆에서 키득거리는 할리벨을 보니 그런 건 아닌 것 같았지만.

"아이들 상대를 많이 하시다 보니 이제 전부 다 아이로 보이시는 것 같네요."

확실히 그럴지도.

내가 어른스럽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누구를 보던지 어려 보인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저거 봐, 저 동그란 눈동자를.

아이가 아니라면 저렇게 순진한 눈을 할 수 있을 리가ㅡ

"누구냐!!!"

ㅡ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의 눈매가 더러워졌다.

순식간에 고개를 돌려 서풀 너머를 바라보는데, 아무래도 무언가를 느낀 듯 싶었다.

역시 믿음직스러워.

사람. 아니, 마족 보는 눈 하나는 잘뒀다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있자니 수풀을 헤치고 사람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이거, 누군가 했더니 귀하신 분이셨군요."

"...누구지?"

깔끔하게 넘긴 올백머리에 붉은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

머리카락은 검정색인 주제에 백색의 신부복을 입어서 그런지 대비가 상당했다.

물론 누구인지 기억이 안나서 문제였지만.

"기억을 못하신다니 조금 안타깝기는 합니다만 ... 뭐, 그때는 정신을 잃은 상태셨으니 이해 해드려야죠."

"...도망쳐."

빙긋 웃어보인 남자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마족 아이는 나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도망치라고 말하고 있었고.

도망쳐? 왜? 그 정도로 위험한 상대라고? 저 남자가?

내 눈이 평범한 것이겠지만, 그런 평범한 눈으로 봐도 과하게 평범해 보이는 존재였다.

"그러니까, 마왕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요?"

"...뭐?"

"..."

마족 아이의 눈동자가 덜덜 떨렸다.

그러면서도 몸을 움직이지 않은 건, 방금 들은 마왕이라는 단어가 나를 뜻하고 있다는 걸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일 터였다.

놀랍도록 약한 마왕이라서 미안하게 됐구나.

"마, 마왕님이 어째서 이런 꼴이..."

"뭐, 용사에게 패배한 것이겠죠. 그것도 아니라면 힘을 숨기고 있거나."

그런 말을 하면서도 남자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설사 내가 힘을 숨기고 있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아니면 허세?

"살아있다는게 가장 중요한 사실이겠지만 말이죠."

"...인간!"

칼날이 뽑혀져 나왔음에도, 남자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마치 귀여운 재롱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처럼.

"참 웃기지 않습니까. 마수라는 것이 사실은 인간보다 마족을 더 많이 죽였고, 마족들이 사실은 마냥 사악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었다는게."

"..."

"유쾌해서, 웃음을 멈출 수가 없더군요."

잘 짜여진 미소 뒤여 숨겨진 악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왕 뿐만이 아닌 마족 전체에게 향하는 진득한 증오.

그는 지금 마족들이 인간과 같은 평범한 지성체라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안타깝구나, 정말로.'

차라리 마족은 처음부터 끝까지 괴물이었어야만 했다.

그저 하나의 몰아치는 파도였어야만 했고, 쏟아지는 낙뢰였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저 정도까지 증오를 쌓아올리지는 않았겠지.

"마족을 이루는 건 악의 하나로 족했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남자가 팔을 들어올리자 마족 아이의 경계가 극에 달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곧바로 그 목덜미를 물어 뜯을 것 같은 기세였는데, 정작 먼저 달려들지는 않고 있었다.

겁을 먹은 걸까.

아니면, 나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 걸까.

"마왕님!!"

"...윽?!"

그 대치가 깨지는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들지 않았다.

수풀 너머에서 날아온 촉수를 쳐낸 마족 아이가 나를 지키듯 자리를 잡았다.

마수.

그 혐오스러운 것들이 바로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 그러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확인을 해보도록 하죠."

남자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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