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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36화 (136/342)

Chapter 136 - 겨울의 끝은...(1)

감기에 걸렸다.

이 연약한 몸뚱이는 길게 이어지는 한기를 제대로 버텨내지 못했다.

뭐가 마왕인데.

웃기지도 않는 신체 능력이었다.

"마왕님, 간수에게 입을 것이라도 달라고 해보세요."

"...아직은 버틸만 하다."

다른 이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행동 자체가 싫었다.

특유의 삐딱한 성격이 목구멍을 타고 왕왕 터져나왔다.

나 혼자 알아서 해.

나한테 신경 쓰지마.

속이 느글거렸다.

분명 아무것도 먹지 않았을 텐데도.

"지하 감옥이라 그런지 아침인지 밤인지 알 수가 없구나."

창문조차 나있지 않은 넓은 감옥 안.

더 넓다는 것을 제외하면 원래 살던 곳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곳이었다.

어둡고, 습하고, 곰팡이가 피고, 겨울에는 죽을 듯이 추운, 그런 곳.

"할리벨, 사실 내가 마왕이 아니라면 믿어줄 테냐?"

"..."

충동적으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마왕 따위 되고 싶지 않았어.

내가 왜 이딴 몸이 되어야 하는 건데?

그런 생각을 하자니 빌어먹을 여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씨발 년.

"마왕이 아닌, 그저 평범하디 평범한ㅡ 인간이었다면 어떠겠느냐."

부모를 여의고, 반지하 방에서 혼자 살아갈 뿐인 평범한 인간 남자 캐릭터.

그것이 바로 원래 세계에서 내가 맡고 있던 포지션이었다.

아니, 분명 처음에는 평범했었는데.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그리고 멀쩡힌 집도 있던 그런 인생이었더랬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지."

인간의 생명은 생각보다 쉽게 사라진다고, 아버지도 딱 그 꼴이셨다.

죽은 사람은 말도 없고 돈도 없다고, 사고를 낸 당사자도 휑 하니 죽어버렸기에 무어라 따질 수도, 받아낼 수도 없었다.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할리벨, 나는 겨울이 싫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계절이니까.

그리고, 어머니 또한 돌아가신 계절이니까.

'...네 아빠가, 희망을 주고 갔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에게 남긴 것이 있었다.

부풀어 오른 배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해주었다.

동생이었다.

엄마는 웃었고, 동시에 울었다.

본인의 뱃속에 있는 것이 귀여운 여동생이라고 말씀하셨더랬지.

"...그런 식의 희망은 바라지도 않았는데, 웃기지도 않지."

희망은 어머니를 좀먹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잔뜩 망가진 어머니의 몸은, 역설적이게도 아버지가 남긴 희망을 품을 수준이 되지 못했다.

그 점이 싫었다.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찬 아기가, 어머니를 죽이고 있었다.

'엄마.'

'응, 왜 그러니 아들?'

'...아무것도 아니야.'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아니,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뱃속에 든 아기가 죽기를 바랬다.

입 속에 맴도는 낙태라는 두 글자를 꾹 삼키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기를 계속 품으면 엄마가 위험해져요.

아기를 낳으면, 엄마가 죽어요.

얼굴도 모르는 아기보다는 차라리 엄마가 사는 편이 더 좋았다.

'아들.'

어머니가 쓰러졌다.

병원에서 깨어난 어머니는 초췌해진 얼굴로 나를 불렀다.

밥 잘 먹고.

운동도 좀 하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일 할 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이빨은 잘 닦고.

무단횡단은 절대 하지 말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엄마 따라서 오지말고, 동생 좀 잘 보살펴주렴.'

그걸로 끝이었다.

엄마는 나를 위로하지 않았다.

걱정하지도 않았고.

엄마가 나에게 준 건 깊은 상실감과 슬픔, 절망, 그리고 책임이었다.

"할리벨. 평범이라는 건 그 어떤 것보다 특별한 거야."

평범한 가족. 평범한 삶. 평범한 마무리.

그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누구보다 특별한게 아닐까.

지금 내 꼴을 봐, 특별해지니 이런 지독한 곳에서 점점 죽어가고 있잖아.

"많은 일을 겪으셨군요."

"지금도 겪고 있지."

차가운 벽, 차가운 쇠창살, 차가운 몸, 차가운 심장.

오래전에 찾아온 겨울은 아직까지도 내 속에 잠들어 있었다.

대체 언제쯤 온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집착하는 것도, 그것 때문일지 모르지."

용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다.

용사와 함께 만들어내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었지.

나는 지금까지 그것을 용사를 향한 사랑이라 착각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린이 보고 싶어. 라일라도 보고 싶고."

무릎을 그러모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어찌나 외롭게 느껴지던지, 혼잣말을 했음에도 이상할 정도의 만족감이 솟아올랐다.

그래, 아무도 없지는 않잖아.

최소한 여기에는 내가 있으니까.

텅 빈 공간 만큼 외롭지는 않겠지.

"식사다."

어제와 같은 목소리였다.

간수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내게 건네는 음식을 제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이 음식을 먹어치우는 건 본인일 텐데도.

"...오늘은 나눠먹자꾸나."

며칠간 굶었더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빵을 반으로 가르려다가 내 오른팔이 망가졌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숨을 흘렸다.

그에 투박한 손이 뻗어져 그대로 빵을 반으로 갈랐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밍밍한 스프와 딱딱한 빵은 생각 이상으로 맛있었다.

이 정도라면 지하 감옥에서 먹는 것 치고는 상당항 만찬이 아닐까.

혼자 외롭게 먹는 것이 아니라 같이 먹을 상대가 있다는 것도 꽤 나쁘지 않았다.

"너는."

"응?"

"너는 정말로, 마왕인가?"

딱딱한 질문에 피식,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마왕, 마왕이라...

마왕이지.

내가 마왕이 아니면 누가 마왕일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괜히 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 한 행동이었다.

"네가 보기에 따라서 다르겠지. 하지만, 봐라."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뿔이 있던 자리를 보여준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상대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다지 유쾌한 표정을 하고 있지는 않을 터였다.

왜냐하면, 지금 내 표정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으니까.

"마족이군."

"마족이지."

그대로 대화가 끝났다.

무거운 침묵이 감옥 안을 가득 채웠지만, 그다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어떤 때는 대화보다 침묵이 더 갚질 때도 있는 법.

숨을 내뱉자 새하얀 구름이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벌써 이렇게나 추워졌구나.

"이러다가는 정말로 얼어죽을지도 몰라요. 팔이랑 다리도 벌써 빨갛게 달아올랐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니 마치 동상이라도 걸린 듯 뻣뻣했다.

손을 뻗어 그 끄트머리를 꾹꾹 붙잡으니 조금은 나아진 것 같기도 했다.

"뭐, 여기서 얼어죽으면 팔자 아니겠느냐."

"..."

어차피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이었다.

그래, 그랬었지.

딱히 죽는 걸 무서워 할 필요가 없었는데 왜 그렇게 무서워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공포가 사그라들었다.

공포라는 건 떨쳐내려고 그렇게 노력했을 때는 꼭 들러붙어 있더니, 정작 받아들이려고 하니까 저 멀리 도망친다.

"린은 잘 지내고 있을까?"

"벌써 그 질문만 다섯 번 째에요, 마왕님."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뿔과 날개, 꼬리가 잘려나갔는데 멀쩡할 리가 없었다.

일단은 마왕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나조차도 몸뚱이가 이따위로 망가졌는데, 과연 그 자그마한 아이는 얼마나 고생하고 있을까.

언제나 태연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잠이 들었을 때의 얼굴을 보면 절대 괜찮은게 아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 앓던 아이의 얼굴이 아직까지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차라리 용사를 찾으러 오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도 몰랐다.

"마왕님이 낳았다고 해도, 그 아이들은 타인이에요."

"..."

나와 전혀 다른 종족을 낳고, 나와 전혀 닮지 않은 아이를 낳고, 다른 사람이 추억하는 이를 낳는다.

그곳에는 나 혹은 용사, 그 누구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태어난 아기를 과연 내 아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할리벨이 말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아니, 그 뒤의 것을 말하기 위해 나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언젠가 진짜 마왕님의 아이를 낳게 되신다면, 그 아이에게 줄 애정이 줄어들까봐 걱정이에요."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

"뭐,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남은 아이들을 전부 낳게 되면, 내 마음속에는 과연 애정이라는 것이 남을까?

하지만 애초에 할 필요도 없는 전제였다.

아이들을 전부 낳게 되는 순간 나는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갈 테니까.

그렇게 된다면 아이를 향한 애정이든 뭐든, 더 이상은 신경쓸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내가 뭘 하고 싶은건지 나 자신도 모르겠구나."

나는 죽고 싶었던 걸까, 죽기 싫었던 걸까.

아니면 아이를 낳고 싶어했나?

돌아가고 싶다고도, 돌아가기 싫다고도 생각했더랬지.

사람의 마음이란 스스로의 것이라고 해도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지금의 나는 대체 무엇을 원하고 있는 걸까.

"이럴 줄 알았다면 내 손으로 너를 죽이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구나."

"아뇨. 만약 그러셨다면 엄청 후회하셨을게 분명해요."

내 말에 할리벨이 단호히 답했다.

그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마왕님이 저를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실 리 없잖아요. 그 엘프를 죽인 것도 아직까지 신경쓰고 계시면서."

"..."

그래, 그렇지.

아직까지도 레이나의 죽음을 잊지 못하고 있는데 할리벨까지 내 손으로 죽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분명, 다음에 살해했을 생명은 나 자신이 되었을 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를 죽이지 않은 건 다행인 일이었다.

이런 추한 몰골로도 아직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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