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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42화 (142/342)

Chapter 142 - 분홍빛 봄.(3)

"어머, 예쁘다~ 아이구, 이뻐~♪"

"...적당히 좀."

"역시 이 머리도 어울리는구나."

앞에서 무어라 무어라 말하는게 들려왔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 할 일이라고 한다면 그나마 멀쩡해진 오른손을 이용해서 에밀리의 머리 모양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이었으니까.

처음에는 포니테일, 그 뒤에는 땋아보기도 했다.

심지어 이제는 트윈테일까지.

'키는 안 크는에 머리카락은 쑥쑥 자라는구나.'

길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의 결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니, 아이가 몸을 움찔거려왔다.

그 행동에 담긴 짙은 혐오를 알고 있었지만 나는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

"그만, 두라고, 했지!!!"

그리고 이건, 내가 멍청하게 선을 넘어서 생긴 사고에 불과했다.

"...내가 너무 신을 냈구나."

짝, 하는 파열음과 함께 튕겨진 오른손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은 팔뚝이 잘게 떨리며 한계를 외치고 있었다.

그레, 원래 이런 관계였었지.

분노를 토하고, 증오를 쏟아내던 그런 관계.

"너는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감히 엄마 행세 하려고 하지 말라고, 알겠어?"

"..."

그 말을 끝으로, 에밀리는 제 머리카락을 묶어두었던 머리끈을 풀어내렸다.

신경질적인 손길에 아이의 머리카락이 산발이 되었다.

아, 정리 해줘야 하는데.

반사적으로 손을 뻗으려다가, 방금 전의 일이 떠올라서 다시 손을 거두었다.

'지금 뻗으면 안 돼, 아리엘.'

지금 뻗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게 될 테니까.

"잘 참으셨어요, 마왕님."

할리벨이 속삭였다.

그래, 잘 참았지.

잘 참았고 말고.

"후우..."

덜덜 떨려오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꾹 억눌렀다.

약지를 감싸고 있는 반지의 모습에 천천히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기도 했다.

"엄마 행세를 하려고 하지 말라, 인가..."

엄마 행세를 하지 않는다면, 나와 에밀리의 사이에는 과연 무엇이 남을까.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과연 그 아이에게 무엇을 주게 될까.

"하, 하하, 하..."

"...마왕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네가 내 배에서 태어나지만 않았더라면, 몇 번이나 죽었을 것 같아?

겨우 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고통 받지 않고,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주제에.

심지어 린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약속까지 해줬는데!!

"하, 하흐... 흐..."

미친걸까.

미쳤다면 어떻게 미친 걸까.

미쳤다면, 무엇이 미친 걸까.

아이가 나를 엄마로 인정하지 않아서 살의를 품은 것?

아니면, 겨우 본인이 배 아파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원수를 죽이지 않고 있는 것?

"어느 쪽인지 모르겠어... 나는, 모르겠단 말이야..."

눈물이 쏟아졌다.

대체 내가 뭘 선택했어야 했던 건데.

아아, 차라리 에밀리가 자살을 하도록 놓아뒀어야 했던 건가?

괜히 복수 따위를 하겠다며 심장에 꽂힌 송곳을 비틀었더랬지.

겨우 그 단순한 행동 하나가 지금 이런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할리벨, 내가 저 애를 죽이는게 맞다고 생각하느냐?"

이미 방 밖으로 나가버린 에밀리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끝은 과연 피투성이가 될까, 아니면 사랑 받는 모습이 될까.

괴상한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자 할리벨이 내 등을 천천히 두드려줬다.

당연하지만,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라리 린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무책임한 말이었지만, 린에게 맡겼다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지.

괜히 울적해지는 마음에 느릿느릿 눈을 깜빡였다.

우울한 와중에도 달 만큼은 밝게 떠있는게 원망스러웠다.

***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기를 낳은 뒤의 산모는 극도로 취약해지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그것이 하루 아침에 태어난 아이라면 더더욱.

그런 이유 때문에, 하루에 하나를 낳겠다는 이야기는 절대 성사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하물며 이틀에 하나 또한 이 연약한 몸뚱이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미안."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녹초가 되어버린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은 아서가 이마에 작게 입맞춤을 해줬다.

잔뜩 부풀어 오른 고간이 그가 지니고 있는 성욕의 크기를 일러주는 것 같아서 더더욱 미안했다.

누군가를 향한 사랑.

그리고 그것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는 그 맛을 알아버린 이상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겠지.

"너무 무리하지 말고 푹 쉬어. 에밀리는 내가 돌보고 있을 테니까."

"...응."

아기를 낳은 뒤에는 취약해지는게 맞았지만, 당시에는 이상하리만큼 힘이 넘쳤다.

모성애나 그런 느낌이려나.

아무튼 에밀리가 태어나고 며칠이 지난 뒤, 그 아이가 초등학생 가량의 크기로 자랐을 무렵에는 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를 않았지만서도.

아무래도 지금까지 무리한 것에 대한 반동이겠지.

원래라면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탓임이 분명했다.

"그나저나, 네가 에밀리를 돌본다니... 불안하구나."

"..."

아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저 머릿속에는 지금 당장에라도 에밀리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꽉꽉 들어차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절대 아이를 죽이지 않겠지.

그 이유라고 한다면, 그래.

내가 그것을 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서."

"...응."

"네 동료잖아."

"정확히는, 동료였었지."

전장에 있을 때는 그렇게나 끈끈한 관계였는데, 정작 지금 오면 이만큼 얄팍한 관계도 없었다.

...아니, 아니지.

나에게 그런 짓을 했는데 쉽게 용서할 리가 없잖아.

정신이 오락가락 했다.

아무래도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러면, 부탁할게."

"알겠어."

문 너머로 사라지는 아서의 뒷모습에 숨을 내뱉었다.

겨우 붙잡고 있던 의식을 놓으니 순식간에 꿈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

처음에는 아리엘에게 붙잡혀 있던 에밀리였지만, 단 며칠 사이에 그 입장이 바뀌었다.

신체가 성장하면서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그녀가 마법으로 아리엘을 위협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아리엘은 드디어 반항기가 왔다며 허허로이 웃을 뿐이었지만, 아서에게는 가볍게 받아들일 문제가 아니었다.

"에밀리."

"..."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데?"

상대는 등을 돌리지 않았다.

그저 하염없이,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볼 뿐이었다.

점점 겨울이 가까워져 밤 공기가 차가움에도 불구하고, 에밀리는 아무런 겉옷도 걸치지 않은 채였다.

"마왕과 부부 놀이라니, 참 재밌네."

잔뜩 비꼬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과거와 같은 강렬한 증오가 들어있지는 않았다.

이미 달관한 듯이 키득거리던 에밀리가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서, 너는 알겠어? 우리의 여정이 어디서부터 잘못 됐는지를 말이야."

"..."

그녀는 모르겠지.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물론 진실을 말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터였다.

마족이 그녀의 가족을ㅡ 그리고 스승을 죽였다는 사실 만큼은 절대 바뀌지 않는 사실이었으므로.

"나는 후회하지 않아."

"..."

"후회하는게 있다면 딱 하나."

그때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한 것. 오직 그거 하나 뿐.

에밀리의 눈은 언제나 광기에 가득 차있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본인이 되살아난 것을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다시 죽지 못한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그렇지, 아서. 너는 나를 죽이고 싶어하잖아. 지금이라면 어떤 원망도 없이 받아들일 테니까, 자."

"..."

"죽여주지 않을래? 내가 더 비참해지지 않게."

자그마한 손이 뻗어져, 그대로 아서의 손을 붙잡았다.

이 커다란 손으로 저 가느다란 목을 쥔다면 분명 순식간에 숨통을 끊을 수 있겠지.

녹색과 분홍색이 얽혔다.

제 목덜미에 손가락이 닿자 들어차는 환호에, 아서는 아리엘이 어째서 그녀를 살려두려고 했는지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제발."

죽음을 원하는 자에게, 죽음은 벌이 아니다.

아이의 목덜미에 닿았던 손가락이 빠른 속도로 멀어져갔다.

에밀리는 그저 그 광경을 허망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나쁜 새끼."

"..."

"이 나쁜 새끼야. 한 번 정도는 죽여줄 수 있잖아, 응?!"

다 자라지 않은 주먹이 아서의 몸을 두들겼다.

타다닥, 하고 빠른 속도로 휘둘러지던 손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느려져만 갔다.

그렇기 잠시 뒤.

비명을 질러대던 입에서 흐느낌이 새어 나올 즈음이 되서야 에밀리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마음대로 해. 그 년이랑 물고 빨던, 애새끼를 마구잡이로 낳던, 마음대로 하라고."

축 늘어진 어깨가 안쓰러워 보일 법도 했지만, 용사는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았다.

죄를 지었다면, 벌을 받는 것이 옳은 일이었다.

죄인인 그녀에게 내려질 벌은 바로 삶.

스스로의 죄에서 도망치기 위해 목숨을 끊으려 했던 존재에게 가장 걸맞는 벌이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오래 갈 것 같아? 너는 그냥 네 소꿉친구와 이름이 같은 존재에게 이끌린 것 뿐이라고! 알아?!"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왜?!?!!"

이번에는 답하지 않았다.

답할 수 없는게 아니라, 답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리엘, 그녀를 사랑하게 된 건 단순히 제 소꿉친구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그거 수 많은 이유 중 하나일 뿐, 전부가 되지는 못했으니까.

"아무리 말해도, 너는 모를 거야."

그 한 마디에 에밀리가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몸을 돌린 아서가, 아리엘이 지내는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저런 것을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마 그의 관심은 아리엘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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