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46화 (146/342)

Chapter 146 - 분홍빛 봄.(7)

언젠가는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식의 재회일 줄은 몰랐는데.

"..."

"...스승님."

린과 그 일행들이 북부에 도착한 건, 엘리가 도착한 뒤로부터 정확히 열흘이 지난 뒤였다.

똑 닮은 분홍빛 머리카락과 분홍빛 눈동자가 서로를 마주한다.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무기질적인 시선.

눈치를 보듯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시선.

"에밀리."

그 목소리는 언젠가 들었던 것과 같이 무감정했지만, 예전과 같은 상냥함이 결여되어 있었다.

지인보다는 이름만 아는 타인과도 같은 느낌의 대우에, 에밀리의 심장이 쾅쾅 뛰었다.

"제가, 제가 잘못 했어요. 제가, 잘못 했으니까..."

"뭘 잘못 했는데요?"

"스승님을 알아보지 못한 거랑, 뿌, 뿔이랑 날개랑 꼬리를 자른 거랑, 또ㅡ"

말을 하면 할수록 싸늘해지는 분위기에 결국은 고개를 숙여버린다.

스승님이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입에 담는 순간 돌이킬 수 없어질 것만 같았다.

내 가족을 죽인 마족, 그 가장 위에 있는 마왕이잖아.

그런 취급을 받아도 쌌다고.

"에밀리."

"...네 스승님."

"저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한답니다."

예상치 못한 답에 에밀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스승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해주셨어.

그래, 내가 잘못한게 아니었다니까?

이건 전부 그 마왕이ㅡ

"그리고 이건,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에요."

"네?"

짜악!!!

파열음이 울려퍼졌다.

꺾이듯이 돌아간 고개에 시야가 빙글거렸다.

뭐야. 방금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아파."

맞았어.

스승님이 날, 때렸어.

뜨겁게 달아온 뺨을 타고 눈물을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이 정도로 거부 당했던 적도 없었는데.

"그, 그치만 그 년이 잘못한게 맞잖아요. 그 녀석들이, 마족들이 스승님을 죽였잖아요?!"

"..."

린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낮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에밀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차라리 혼을 내셨다면, 차라리 욕을 하셨다면 이 정도로 비참하지는 않았을 텐데.

한참이고 변명을 해봤지만, 그 중에서 단 한마디도 린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는 없었다.

"으, 으으으으으으..."

말조차 되지 않는 괴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인다.

그 옷자락을 붙잡으며 제발 외면하지 말라고 빌고 싶었지만, 입을 여는 것보다 스승님이 제 손을 떨쳐내는 것이 더욱 빨랐다.

저를, 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전부 다 스승님을 위해서 한 일이란 말이에요.

제발, 제발, 제발...

"에밀리 디체페이글."

"...스승님?"

"이 시간부로, 당신을 파문하겠습니다."

마탑이 멸망한 뒤로부터는 별 의미가 없는 말이었지만, 에밀리에게는 그 누구보다 커다랗게 다가왔다.

파문.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부정하는 말이었다.

"시, 싫어요. 제가 더 잘 할 테니까, 제발... 제발, 스승님..."

"편견을 가지지 말라고 그렇게나 말했는데, 당신은 처음 만났을 때와 전혀 변한게 없더군요."

골목길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에밀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적대하는 듯 날선 느낌이었다.

증오와 분노, 살의.

체념 아래에 짙게 깔려 있던 것들이 자신감과 자존감을 되찾으며 수면 위로 떠올랐더랬지.

그렇기에 편견을 버리는 법을 가르쳤다.

그래, 분명 가르쳤었는데.

"그만. 제가, 당신을 거둔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해주세요."

"..."

린이 몸을 돌렸다.

그 자그마한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에밀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두 손으로 쥐고 있던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

"어머니."

"린."

아이의 자그마한 몸이 내 품에 폭 안겼다.

보지 못한지 채 며칠도 되지 않았건만, 몇 년 동안 떨여져 있다가 다시 만난 것만 같았다.

"마지막에 봤을 때와 똑같구나."

"이 편이 더 좋지 않나요?"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확실히, 내가 낳은 아이들은 성장이 빨라서 조금 정도 이질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도 이렇게나 자라지 않은 건 마음이 아프구나.

뿔이 잘려서 그런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보들보들한 정수리를 쓰다듬으니 아이가 내 품에 뺨을 비벼왔다.

"고맙구나, 린."

언제나 내 품을 떠나가는 아이들과 달리, 여태껏 내 곁에 있어준 아이.

고마움을 표현하자면 말 뿐으로는 부족했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사랑을 주는 것 뿐이었다.

"...에밀리는 만나봤니?"

"네."

그 뒤에는 에밀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미화를 하거나, 악담을 퍼풋는 류의 내용은 아니었다.

린의 제자이던 시절의 에밀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뿐이지.

그랬던 때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솔직히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해주용 포션은 드셨나요?"

"해주용 포션이라니, 무슨..."

"여신이 어머니께 건 저주를 해주하는 포션을 만들었거든요. 엘리씨에게 전해달라고 말해뒀었는데, 혹시 받지 못하셨나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마 까먹었나?

엘리라면 그저 까먹어서 그랬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날 돌볼 때 보여주던 그 표정.

어딘가 불안해 하는 듯한 얼굴을 떠올리며 작게 신음을 토해냈다.

"린, 오랜만에 만났지만 잠시만 자리를 비우마."

"천천히 다녀오세요."

밖으로 나가기 위해 겉옷을 걸쳤다.

화상 자국이 남아있는 피부에 닿아 쓰라렸지만, 지금은 엘리를 만나는게 우선이었다.

엘리,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지?

"마왕님, 여신의 저주를 해주하는게 최선일까요?"

"...할리벨."

부드러운 목소리가 속삭여왔다.

그러면,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거야?

할리벨의 말에 표정을 찌푸렸다.

이 몸뚱이에 걸려있는 저주ㅡ 혹은 축복.

그것을 해제한다면 분명, 분명?

"...헉, 흐윽."

잿더미가 된 풍경 속에서 느꼈던 공포가 다시금 심장을 좀먹었다.

여신은 축복이라고 표현한, 일종의 저주.

정신이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고 있는 그것을 해주하게 된다면, 과연 나는 나로 존재할 수 있을까?

'린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차라리 해주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행복과는 먼 삶을 살고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상태가 가장 행복에 가까운 형태였다.

결혼.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아이.

그리고 소중한 친구까지.

물론 이 자그마한 행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몰랐지만, 지금 당장 놓아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엘리."

엘리는 별을 보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에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하늘을 향해 하염 없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리엘 씨."

내 목소리에 엘리가 고개를 돌렸다.

고뇌로 가득찬 눈동자가 내 모습을 가득 담았다.

분명 내 저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마구 솟아올랐다.

"린에게는 이야기를 들었다."

"..."

"그걸 내게 전해주지 않았다는 건, 전부 이유가 있는거겠지?"

엘리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살풋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숙여보일 뿐이었다.

고뇌가 이어진다. 그건 내 앞에 섰음에도 마찬가지였다.

"무서워요."

"..."

"저주를 해주한 뒤의 아리엘 씨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아리엘 씨와 달라질까봐 두려워요."

여신에게 몸뚱이를 반쯤 지배당하고 있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 만큼은 알 수 있었다.

지성체라는 것이, 그런 일을 당하고 멀쩡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만약 그것이 모종의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면.

혹여, 이 모든 것이 여신의 안배였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여신의 저주를 오래 지니고 있을수록 어머니의 몸은 점점 약해져만 갈거에요.'

마족이 신성력을 몸에 품고 있는 것이 절대 좋을 리가 없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인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약해져 온 신체가 그 사실을 증명했다.

신성력을 지니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죽음에 가까워진다.

어쩌면 그녀가 아이를 전부 낳기도 전에 숨이 끊어질지도 몰랐다.

"그래도, 해주하지 않으면 아리엘 씨가 위험해지시니까... 그러니까ㅡ"

"..."

"ㅡ선택은, 아리엘 씨가 하는거에요."

그 말을 끝으로, 엘리가 제 품에서 작은 병을 꺼내들었다.

보라색과 분홍빛이 섞인 듯한 색으로 반짝이는 물약에, 심장이 쿡쿡 쑤셔왔다.

'...반응하고 있어.'

내 몸 속에 잠들어 있는 신성력이, 물약을 앞에 두고는 잔뜩 예민해져 있었다.

절대 마시지 말라며 외치고, 협박한다.

당장에라도 심장을 터뜨리겠다는 듯 날뛰기 시작하는 힘에 이를 악물었다.

"...여신의 저주가 해주되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다시 한 번 그런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이런 생각 자체가 여신의 저주로 인한 것일 수도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왕님,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신가요?"

"..."

등 뒤에서 뻗어진 팔이, 그대로 내 목을 둘렀다.

귓가에서 들려오는 가느다란 목소리에 마른침을 삼켰다.

후회.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모르겠다."

하나도 모르겠어.

지금껏 후회만 하고 살아온 삶이었기에, 이번 또한 다를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모든 행동에 대해 후회를 했다면 어차피 무얼 선택해도 상관 없는게 아닐까.

인간이란 결국 후회를 하는 생명체였으니까.

...지금은 마족이지만.

"마왕님."

길었언 고민에 비해, 병의 뚜껑은 손쉽게 열렸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할리벨의 목소리를 끝으로, 그대로 내용물을 집어삼켰다.

그리고ㅡ

그리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