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47화 (147/342)

Chapter 147 - 무너지다.(1)

아리엘이 지내던 저택에 화재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서는 가장 먼저 에밀리의 얼굴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저택에 불을 피워올린 건 다름 아닌 에밀리였다.

처음에는 그녀를 죽일 기세로 찾아가려 했지만, 그것보다는 아리엘의 무사가 중요했더랬지.

"...아리엘."

다행히도, 몸 곳곳에 난 화상 자국만 아니라면 거의 멀쩡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화재의 크기에 비해서 부상의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상처입었다는 사실 만큼은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너무 부주의했어.'

에밀리 쪽에 더 신경을 썼더라면 이런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을 터였다.

어쩌면 아리엘이 말리더라도 목숨을 취하는 쪽이 더 나았을지도 몰랐다.

곤히 잠들어 있는 아리엘의 뺨을 쓰다듬으며, 아서는 한참이고 자책했다.

"수인은 참 오랜만에 보는군."

"냐아, 냐아..."

지금은 비록 원수 비슷한 사이였지만, 일단은 타인보다는 지인에 가까운 존재였다.

저택을 불태운 것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지.

여왕의 옆에 들러붙어 있는 두 마리ㅡ 아니, 두 수인의 모습이 눈에 띄었지만 일단 고개부터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니 됐다. 어차피 별로 사용하지도 않는 저택이었으니."

전투적으로 고양이 수인들의 뺨과 턱을 공략하는 여왕의 모습에 속으로 작게 안도했다.

이 까다로운 여왕에게 잘못 걸린다면 무슨 짓을 당할지 예상되지가 않았으니까.

"그러고 보면, 그 아이가 왔다고 했었지..."

린.

아리엘이 가장 사랑하고, 가장 의지하고 있는 존재.

동시에 아리엘을 가장 사랑하고,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이기까지.

최근 그녀의 불안정함은 모두 린의 부재에서 나오는 것들이었기에, 아이의 도착 소식에 아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그녀도, 그녀의 아이들도, 그리고 나까지도.

모두 행복해질 수 있겠지.

'아직 해결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난다면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그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겹쳐진 불행 끝에 행복이 온다.

왼손의 약지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아서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대로만 가면 돼.

그녀는, 아리엘은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까.

"당신."

그렇게 아리엘이 지내는 방으로 향하던 도중,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아서가 몸을 돌렸다.

자그마한 몸집과 잠에 취해있는 듯 몽롱하게 물든 눈동자까지.

마지막으로 봤던 것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반사적으로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혹시 어머니께 가려고 하시는 건가요?"

"그래."

"가지 않는 편이 좋을거에요. 특히 당신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아이의 말은 그의 표정을 굳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짙은 경멸을 담은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두 주먹이 꽉 쥐여졌다.

아이를 향한 분노 때문이 아닌, 이유 모를 불안이 심장을 찔러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ㅡ"

"저는 말씀드렸어요."

그 말을 끝으로, 아이는 저 멀리 떠나갔다.

"아리엘, 아리엘!"

숨이 거칠어졌다.

그녀가 현재 무슨 상태인지 알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 끝에 도착한 방.

무채색의 손잡이를 멍하니 바라본 아서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끼익ㅡ

"...용사님."

"엘리."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눈을 내려깐 엘리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어쩔 수 없었다니, 뭐가?

대체 무엇이?

스쳐지나가는 엘리를 붙잡지 못한 아서가 잠시 그 자리에 멈춰섰다.

들어가지마.

속에서 꿈틀거리는 불안감에 몸이 절로 굳었다.

'후회할 거야.'

마음속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지금 잡고 있는 손잡이를 돌려서, 이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절대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놓아야 해.

하지만, 그럴 수 없어.

"아리엘ㅡ"

절망과 역경을 이겨내는 것이 용사라고 했던가.

낡은 경첩이 삐걱거리는 비명을 내지르며 문을 열었다.

어둠으로 물든 방 안, 침대 아래에 웅크린 그림자 하나가 애처롭게 떨고 있었다.

"아리엘."

목이 막히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물러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고요함으로 물든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아리엘, 괜찮ㅡ"

"...요."

"...아리엘?"

푹 숙여진 고개로 인해 흘러내린 머리카락.

그리고 그 머리카락 사이에 숨겨져 있던 황금색의 눈동자가 하염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절망, 슬픔, 고통, 공포.

온갖 어두운 감정들을 쏟아넣은 듯한 색체에, 아서는 반사적으로 숨을 집어삼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리고ㅡ

"살려주세요..."

"...뭐?"

"살려주세요때리지말아주세요제발다가오지마세요아프게하지말아줘요더이상은무리니까넣지말아주세요제발제발제발제가잘못했으니까한번만봐주세요아무한테도말안할게요그러니까, 그러니까, 흐으으으아으......"

그 엄청난 감정의 파도에, 무어라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진득하고, 끈적거리고, 질척거리고, 차가우면서도 불에 타듯이 뜨겁고, 흔들거리며 심장을 텅 비우는.

지옥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존재나 낼 법한 절규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아리엘, 아리엘... 정신 차려, 아리엘!"

"흐극, 흐, 살려, 주세요, 흐, 흐아아아아......"

손길을 뿌리치고, 저 구석진 너머로 몸을 파묻는다.

어둠과 하나가 될 기세로 웅크리는 아리엘의 모습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왜 그래.

아리엘, 대체 왜 그래?

"제발, 제발, 나가, 나가주세요... 제발..."

"..."

그제서야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용서한 것이 아니라, 용서하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니, 어쩌면 용서라는 말 자체 이상한 것일지도 모르지.

왜냐하면 지금의 아리엘에게는 그 어떠한 분노도, 증오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 마음에 가득 찬 것은 오직 공포와 절망 뿐이었다.

"엄마, 엄마 어디있어...나, 나 여기 있는데, 으, 살려줘... 나쁜 사람이 나를 죽이려고 해... 엄마... 나 죽어... 살려줘... 엄마..."

"......"

입술을 깨물자 진한 고통이 몰려왔다.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움에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대리석 바닥을 적신 노란빛을 띄는 액체는 마치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마, 말 잘 들을 테니까 제발 죽이지, 흐끅, 말아주세요...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흐, 흐으..."

"...너를, 죽이려는게 아니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몸의 떨림이 멎었다.

이제서야 내 목소리를 들어주는구나.

어둠 속에서 자그마한 빛을 발견한 사람처럼, 아서의 눈동자에 희망이 서렸다.

지금부터라도 고쳐가면 돼.

다시금 망가진 관계라고 해도, 분명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ㅡ

'원래대로, 라니.'

마왕과 용사의 관계란 서로에 대한 분노와 증오만으로 충분한 법이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었지.

어쩌면, 지금 같은 상태 보다는 가장 처음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오로지 증오와 분노만이 남은 관계로.

"나는, 너를 도와주러 온 거야, 아리엘."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겨우 얻게 된 행복을, 사랑을, 그리고 연인을.

그 모든 것들을 제 손에서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아리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 그녀의 손을 잡아, 자리에서 일으키기만 하면 얼마 전과 같은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고 아서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과연.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아, 아, 아아, 아아아아아아아!!!!!"

쿵, 하고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용사의 손길이 닿자마자 경기를 일으킨 마왕이 그대로 제 뒤통수를 등 뒤의 벽에 박았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마왕은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댔다.

마치 만 년 동안의 한이 서린 듯한 음성에 용사가 표정을 찡그렸다.

물론 마왕의 행동이 혐오스럽다거나, 기괴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그런 표정이라도 짓지 않는다면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기에 만든 얼굴이었다.

"흐, 흐아, 흐아아아악..."

"..."

"이제, 나가시죠."

어깨에 올려진 절망의 감촉을 그대로 고개를 떨궜다.

성녀에게 반쯤 끌려가듯이 방을 빠져나온 용사의 얼굴에는 짙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무엇이 행복이었단 말인가.

무엇이 희망이었단 말인가.

결국에는 전부 자신의 착각에 불과했거늘.

"엘리."

"..."

"우리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쩌면 마왕이 버릇처럼 하던 말대로 처음 만난 순간 그녀를 죽이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몰랐다.

감히 해서는 안 될 생각이었지만, 벼랑 끝에 몰린 듯한 느낌에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추락하고 있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우리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이 길을 계속 걷다보면 끝에 도착할 수 있을까?

머리가 어지러웠다.

비틀거리며 걸어간 끝에 보이는 건, 오직 어둠 뿐이었다.

누군가, 답을 알고 있다면 나한테 좀 알려줘.

간절함에서 나오는 중얼거림이었다.

"...아리엘."

그렇게 그날, 용사는 술을 진창 마시고는 한참이고 취했다.

목을 넘어가는 불길에는 오직 슬픔의 향만이 가득했다.

절망의 맛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