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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49화 (149/342)

Chapter 149 - 무너지다.(3)

린은 차마 아리엘이 있는 방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어머니를 위해서 한 일이라고는 했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이토록 큰 절망을 안겨줄 줄은 몰랐다.

"...어머니."

아직까지도 그녀의 비명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당신을 그대로 놓아두었어야 했던 건가요.

당신이 여신의 저주에 집어먹혀 점점 죽어가도록 놓아두었어야만 했던 건가요?

심장이 저릿거렸다.

"...스승님."

아리엘이 지내는 방 근처에서 서성거리던 와중, 익숙한 얼굴과 마주쳤다.

저를 스승님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존재.

자신과 똑 닮은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존재, 에밀리였다.

"...에밀리."

아이의 얼굴은 창백했다.

마치 죽다 살아난 사람처럼 입술이 푸르게 질려있기도 했고.

가느다란 목덜미에 그려져 있는 선명한 손자국에 저절로 시선이 갔다.

목을 졸렸구나.

누구에게?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죄송, 해요. 제가 괜한 짓을 해버려서ㅡ"

"방으로 돌아가세요, 당장."

파문을 당한 뒤의 에밀리는 마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굴었다.

자신감을 잃고, 자존감을 잃고, 결국에는 무기력해졌다.

마법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버려서, 어쩌면 스스로의 쓸모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물론 추측일 뿐이었지만서도.

"스승님. 조금만 같이 있어주시면, 안 될까요?"

아이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절여진 눈동자는 이미 물기로 가득찬지 오래였다.

예전이었다면 그 몸을 끌어안고는 한참이고 자장가를 불러줬겠지.

에밀리라는 존재가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이었던 때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방으로, 돌아가세요."

심장이 쓰리기는 했지만, 매정하게 쳐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에밀리가 아닌 어머니였으니까.

그래, 나에게 중요한 건 어머니 뿐이야.

지금까지 고민했던 것이 거짓말일 정도로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똑똑.

"어머니, 들어갈게요."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짙은 어둠이 시야를 가듯 채웠다.

불빛 하나 없는 공간 속에서,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어째서 그리 서럽게 울고 계세요.

울음 소리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다가간다.

"...울지 마세요."

"..."

"제가 왔으니까, 이제 괜찮아요."

잔뜩 웅크려서 작아 보이는 몸뚱이를, 그대로 껴안았다.

제 체온과 별반 다르지 않는 온기에 짙은 안도감이 느껴졌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저 여기에 있어요.

어디 안 갈 테니까, 그러니까 제발 울지 말아주세요.

"린, 린..."

"네, 저 여기 있어요."

덜덜 떨고 있는 등줄기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물기 가득한 목소리에 덩달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당신은 이렇게 무너져서는 안 되는 사람인데.

당신은 이렇게 절망할 필요가 없을 사람인데, 왜.

"다행이야. 떠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린..."

"...제가 어머니를 떠날 리가 없잖아요."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몽마가 뿔과 꼬리, 날개까지 잃어버렸다면 치명상에 가까운 부상이었다.

분명 그 영향은 제 신체에 확실하게 남아있겠지.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반쯤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떠나기 전에, 어머니의 마음은 강인해질 것이라는 걸.

"그렇게 바닥에만 계시면 감기 걸려요, 어머니."

"...으, 응."

마왕이라기보다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소녀처럼 보였다.

쭈뼛쭈뼛 몸을 일으키는 어머니에 눈동자가 촉촉하게 물들었다.

어떻게하면 좋을까.

방 밖으로 끌어낼 수도 없었다.

이곳은 그녀의 세계이자 전부였으니, 억지로 끌어내려고 했다가는 다시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일단 여기에 앉으세요."

"...응."

괜찮아진 것처럼 보여도 괜찮아진게 아니었다.

덜덜 떨리고 있는 몸과, 한 곳을 바라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눈동자가 그녀의 상태를 대변했다.

바람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제 피부에 닿는 모든 것들을 몇 번의 확인을 거친 후에야 붙잡는다.

마음을 닫은 존재에게 있어서 세계란 지옥과도 같겠지.

"제가 잘못한 걸까요."

멍하니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어쩌면, 자신이 잘못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제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반사적으로 어머니 만큼은 오랫동안 살기를 원했더랬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몸에 잠들어 있는 신성력을 몰아내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다.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저주ㅡ 혹은 저주와도 같은 축복.

하지만 그녀의 상처는 그 무엇보다 깊었고, 커다랬다.

그 상처를 덮어둔 오물을 걷어내는 순간 곧바로 검붉은 피가 터져나올 정도로.

"...아니. 린은 잘못 없어. 나를 위해서 한 일이니까, 응. 괜찮아."

"...어머니."

"이건, 전부 내가 약해서 그런거니까..."

아니에요.

저는, 태어나서 당신 만큼 강한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그런 일들을 겪고도 저에게 그 정도로 커다란 사랑을 주셨잖아요.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당신이 저를 변화시킨 것을 아십니까?

제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스승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당신은 아십니까?

"제가 옆에 있을게요. 계속해서, 절대 떨어지지 않고, 영원히."

나의 존재가 당신의 마음에 조금의 안정이라도 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당신의 옆에 있겠다.

손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온기에 슬쩍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황금빛의 눈동자 속에서 울면서 웃는 자신의 모습이 비쳐보였다.

'나,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구나.'

지금까지 표정이라는 건 참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잘못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래, 참 바보였구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가녀린 몸체를 꼭 껴안았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하나로 얽혀, 서로가 서로를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는 양 하나로 겹쳐진다.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부디, 행복하시길.

***

선과 악은 그 경계가 모호해, 각 사람마다 추구하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도 다른 법이었다.

마족과 마왕을 증오했지만, 그 증오의 대상이 몇몇의 인간에게로 옮겨졌더랬지.

지금은 또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망가뜨린 여신에게도 향했다.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그녀를 그렇게 만든 존재들이야.'

여신, 그리고 바로니스 국왕까지.

칼날을 겨눌 상대가 정해졌다.

속에서부터 치솟는 분노가 과연 어떤 결과를 빚어내게 될까.

헛웃음을 토해냈다.

북부 특유의 차가운 바람이, 용사의 몸을 차갑게 식혔다.

"용사님."

"...엘리."

간만에 보는 엘리의 눈동자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그렇지 않아도 창백해진 얼굴이 더더욱 창백해져, 이제는 살아있는 것으로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몸은, 괜찮아?"

"...저보다는 아리엘 씨가 문제에요."

억지로 머릿속에서 떼어놓고 있던 사실이 다시금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죄 없는 그녀가 어째서 다시금 고통 받아야만 하는가.

겨우 행복을 얻어내, 상처를 회복하려던 그녀가 대체 왜.

"뱌람이 차다, 들어가자."

차라리 고통을 받을 거라면, 내가 받는 편이 나았다.

그녀에게 죄를 저지른 것도 나고, 고통을 준 것도 나인데 벌은 아리엘이 받다니, 이상하잖아?

...이건 전부, 신이라는 작자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빌어먹을 정도로 쓰레기 같은 신이 저 하늘 위에 앉아있기에 지상의 모든 존재가 쓰레기로 변해가는 것이 틀림 없었다.

"여신이 없었더라면, 뭔가 달랐을까요?"

"그랬겠지."

엘리의 질문에, 용사가 단언했다.

여신이 없었더라면 이런 일 따위 벌어지지 않았을 터였다.

그 간사한 혓바닥에 속지 않고, 그때와 같은 죄를 짓지 않았겠지.

"아리엘은, 내가 어떻게든 할게."

물론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목소리ㅡ 아니, 숨소리만 들어도 발작하는 그녀를 정면으로 마주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 내 발걸음은 그녀가 있는 방으로 향하는 걸까.

나를 보고 비명을 지를 걸 알고 있는데, 대체 왜.

"..."

이 문을 열기만 하면, 그녀와 만날 수 있겠지.

그녀의 얼굴을 보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 터였다.

그래, 분명 그럴 수 있을 텐데.

"...아리엘."

그녀의 이름를 부른다.

가장 소중했던 소꿉친구의 이름이었던, 지금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의 이름을.

겨우 문 하나로 나눠져 있었지만, 얼마 전까지는 사랑을 속삭이던 사이였더랬다.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상대가 듣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용사는 구태여 다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듣지 못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발작하는 것만큼 끔찍한 일 따위는 없을 테니.

"나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매일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어쩌면 후회가 부족했을지도 모르지.

그녀를 다치게 하고, 아프게 한 것에 대한 후회가 모자랐기 때문에 이토록 진한 불행을 안겨주는게 분명했다.

"..."

차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직접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그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싶었다.

문을 등에 두고 주저앉은 용사 그데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무채색의 천장은, 마치 그의 미래를 일러주는 것처럼 칙칙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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