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0 - 무너지다.(4)
강간을 당한 피해자는 이성에 대해서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거나, 성에 대해 극도로 집착하게 된다고 했었나.
"...읏, 으흐..."
정액이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한 감각에 억지로 균열을 벌려댔다.
나와.
나오라고.
어서, 빨리!
물론 그런 것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기에 나올 일도 없었지만, 제정신이 아닌 나는 병적으로 손가락으로 질내를 휘적일 뿐이었다.
"흐♥ 흐으..."
신음이 터져나온다.
이미 생식기의 자극을 통해 쾌락을 얻어버린 몸이었기에, 스스로가 하는 행위에서도 기분 좋음을 잔뜩 느껴버리고 말았다.
분명 처음에는 이 더러운 느낌을 빼내기 시작한 행동이었는데...
"히, 히으... 기분, 죠아...♥"
최소한의 촉촉함을 유지하던 균열에서 투명한 꿀이 질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속적으로 자극을 줘서 그런지 몸이 제대로 달아오르기까지 했다.
뜨거워진 하체에 자그마한 균열을 활짝 벌려내니, 차가운 공기가 펼쳐진 꽃잎을 마구잡이로 유린했다.
"간, 닷♥"
뜨거움과 차가움이 만나자 강렬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순식간에 오르가즘을 느끼고는 그대로 다리를 쭉 뻗었다.
'그냥 혼자서 하고 있는 건데도, 기분 좋아...'
손가락이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늘어난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발정한 몸뚱이가 쾌락을 위해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조금 더 기분 좋아지고 싶어.
아픈 건 싫으니까, 그냥 기분 좋아질래.
기분 좋아지고 싶으니까, 그러니까ㅡ
"하, 하악, 학... 흐아아아악... 흐..."
숨이 점점 거칠어져, 마침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할 지경까지 치닫는다.
부족해지는 공기에 시야가 어질어질해지고, 동시에 뇌가 검게 점멸했다.
생명체라는 것은 목숨이 경각에 달하면 후손을 남기기 위해 더더욱 발악하는 법.
내 손가락을 감싸고 있던 질육이 점점 가까워지는 죽음 앞에서 그 조임을 더욱 강하게 했다.
"갸, 갸흣, 갸아아아으으?!?!?♥♥♥"
이젠 사람 소리조차 아니었다.
천박하게 조수를 뿜어내면서 양 다리를 쭉 들어올렸다.
파르르 떨리는 몸뚱이와 함께, 숨 넘어가는 소리가 귓가를 물들였다.
'가, 가버려써... 엄청나게, 가버려써...'
몸은 여전히 달아오른 채였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대로 축 늘어졌다.
침대 위에서 이러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때는 그랬지.
엉망으로 범해져서 침대를 마구잡이로 더럽히고 그랬었지, 으응...
"흣... 흐..."
그때를 상상하며 손가락을 집어넣으니 허리가 저절로 튕겨져 올라갔다.
아니, 거기가 아니야.
거기로는 부족해.
균열의 겉면, 그 곡선을 타고 올라간 손가락이 그대로 둥글게 부풀어 오른 공알을 발견했다.
"하아, 하으♥"
이걸 만지면, 이걸 문지르면 분명 또 가버리겠지.
누구에게도 보여주면 안 되는 천박한 표정을 하면서, 천박한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엉망으로 가버리겠지.
처음의 나였다면 죽어도 버텼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 그냥 죽어서라도 절대 암컷이 되지 않았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기분 좋아지고 싶었다.
"흐, 아?!"
닿고, 붙잡고, 비트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뜨거운 열기가 하반신을 타고 흘러올라, 내 뇌를 검게 불태웠다.
이거, 이거, 이상, 이상해...
좌우로 달달 떨려오는 다리는 둘째 치더라도, 시야가 검고 하얗게 점멸하는 것을 보니 절대 정상은 아닐 터였다.
겨우 혼자하는 행위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기분 좋아질 수 있다니.
"...흐."
만약,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알고 있잖아.
기억하고 있잖아.
용사의 물건이 네 몸속을 헤집을 때의 감각을 떠올리는 거야.
"...아윽."
고통이 느껴졌다.
내 배를 때리는 감각과 함께, 목이 잔뜩 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맞아, 용사와의 섹스는 이런 느낌이었지.
사랑 한 점 없는 폭력적인ㅡ
나를 망가뜨리고 망겠다는 듯한, 그런 섹스였었다.
".....으, 으으."
기껏 달아올랐던 몸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여전히 남아있는 쾌락과 차가운 몸뚱이의 괴리감에 나는 한참이고 덜덜 떨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용사와 정을 나눌 때의 쾌락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내 상상은 그 순간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머릿속에 있는 건 오직 트라우마와도 같은 강간의 순간들 뿐.
"린, 린, 리이인!!!"
발작적으로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언제나 나쁜 기억들이 떠오르면, 나는 린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내 유일한 빛. 내 유일한 사랑.
이불보를 움켜쥐고는 비명을 지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열렸다.
"어머니..."
"린, 리이이인..."
어디 갔던 거야.
내 곁에 계속 있어주기로 했잖아.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이 전부 울음 소리가 되어 토해졌다.
마치 피를 쏟아내는 심정으로 엉엉 울며 아이의 자그마한 몸체를 꼭 껴안았다.
이제는 싫어.
다 포기하고 싶어.
더 이상은 망가지기 싫단 말이야.
"미안, 미안해.... 이런 못난게 엄마라서 미안해..."
자괴감이 들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아이의 엄마가 나 따위라니.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진짜 엄마고 아니었지만서도.
아이는 그런 내 말을 듣고서도 말 없이 내 허리를 꼭 껴안을 뿐이었다.
그 사실이 너무 기뻐서, 다시 한 번 눈물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잘못이 아니에요. 제가 매일마다 말했잖아요."
아이가 어머니를 달래다니, 입장이 반대가 된게 아닐까.
숨만 쉬어도 겁에 질리는 쓰레기를 위해 이 아이가 희생될 필요가 있을까?
아니, 절대 그럴 필요 따위 없겠지.
"...응."
그럼에도 긍정을 토해내는 건, 아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미안, 린.
나아지는게 아니라 점점 더 망가지고 있는 거야.
더 이상 네가 없으면 잠시도 버티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 결국 무너져 내리는 과정에 있는 거니까.
'린은, 모르고 있겠지.'
내가 본인의 몸 상태를 눈치챘다는 것을, 절대 모르고 있겠지.
어떻게 모르겠어.
내 몸에서, 내가 낳은 아이의 몸 상태를 내가 어떻게 모르겠냐고.
그것이 바로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고, 몰아넣는 이유였다.
"린."
"네, 어머니."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푹.
"...아."
"미안, 미안해, 미안... 하, 하지만, 이렇게 밖에, 흑... 할 수가 없어... 하, 할리벨도 없는데 너, 너까지 죽어버리면 난, 나는, 나는!!!"
"어, 머니..."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 자그마한 몸체를 꿰뚫는다.
약해진 심장이 점점 맥박을 줄여가고, 동그랗게 떠진 눈동자가 생기를 잃기 시작했다.
"아, 아하, 아하하하하하하!!!!! 흐, 흐으으으으으으으으......"
아이는 죽는다.
내가 아니더라도, 반드시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저주를 해제하는 물약의 재료.
그건 바로 린이 지니고 있던 팔찌를 사용한 걸 테니까.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언제나 팔에 두르고 다니던 것이, 다시 만난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으니까.
"부디, 나를 용서하지 말아줘..."
"...어머, 니."
아이의 심장은 마신전에 있을 때보다 약해져 있었다.
싸늘하던 온기도, 이제는 그 조각을 겨우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해졌다.
린은 죽을 거야.
나에게 말도 없이, 혼자만의 최후를 맞이하겠지.
나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내 손으로 자신을 죽이지 못하게 하려고.
"내 딸, 내 아이, 내 린..."
아이의 숨이 희미해졌다.
덜덜 떨리는 손이 내 뺨을 스쳤다.
마치 내 눈물을 닦아주려는 듯한 행동에, 나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네가 그렇게 된 건 전부 내 잘못이니까, 내 손으로 끝내는 거야.
내 손으로 끝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어머, 니... 울지..."
"...린?"
"..."
이빨이 딱딱 부딪혔다.
빛을 완전히 잃어버린 눈동자에서는 아무런 생기도 찾을 수 없었다.
죽음.
완전한 죽음.
다시 돌아오지 못할, 영원한 죽음.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슬픔과는 궤를 달리하는 감정이, 내 뇌를 도려내기 시작했다.
"아, 아그, 으, 그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
울음 소리와 절규, 그 너머를 지나 마치 짐승과도 같은 음성이 방 안을 채운다.
죽였어.
내 손으로 린을 죽였어.
내가 린을 죽였다고.
손에 진듯하니 묻은 피가 이 모든 것들이 현실이라는 걸 일러주고 있었다.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어.
린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린을 죽여버렸다고...
"왜, 왜! 왜!!!!! 나만, 나만 이렇게 불행해야 하는 건데?!?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건데?!?!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왜!!! 왜 나한테만!!!! 아아아아아아아!!!!!"
쾅, 하고 바닥에 머리를 짓이겼다.
조절 따위 하지 않은 행위에 순간 의식이 끊겼지만, 내 몸뚱이는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죽어버려, 죽어버려, 죽어버려!!!
너 따위는.
네 뱃속에서 낳은 아이조차 죽여버린 너 따위는, 더 이상 살아있어서는 안 된다고!
"여신, 이게 전부, 그 년 때문이야... 전부 그 년이, 그 년이... 흐으... 흐아..."
그래서 어쩔 건데?
이 모든게 여신의 탓이라고 해서, 무언가 변하는게 있어?
그녀에게 복수할 수 있는 수단 따위가, 과연 존재할 것 같아?
머릿속의 목소리가 나를 조롱했다.
너는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거라며, 내 증오를 꺾어내려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마신이라면."
여신을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족들의 신이라면 분명 여신을 죽여낼 수 있겠지.
인간들보다 강인한 힘을 가진 마족들의 신이니, 인간들의 신 정도는 가뿐히 상대할 수 있을 터였다.
그래, 내가 할 수 없다면 다른 존재의 힘을 빌리는 거야.
그것이 비록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이라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