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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52화 (152/342)

Chapter 152 - 무너지다.(6)

엘리가 다시 본 건, 에밀리를 품에 꼭 껴안고 있는 아리엘의 모습이었다.

마치 애착 인형처럼 절대 떼어놓지 않는 것이 상당히 이상했다.

아리엘 씨가, 에밀리를?

"...그렇게 보지마."

에밀리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불만 가득한 표정에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가까스로 참아낼 수 있었다.

나조차도 저렇게 아리엘 씨의 품에 안겨본 적이 없는데!

이가 갈렸다.

저 빌어먹을 여자가 어떻게 감히...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게 아니니까."

"거짓말 하지 마세요."

충분히 떨쳐낼 수 있으면서도 가만히 있는 주제에.

그러면서,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게 아니라고?

웃기지도 않았다.

그렇게나 아리엘 씨를 괴롭힌 주제에.

그런 주제에, 뭐?

"당장 아리엘 씨에게 떨어ㅡ"

"...내 아이한테, 화내지 마!!!"

돌연, 비명 소리가 들렸다.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와 함께 검게 물든 눈동자가 엘리를 쏘아보고 있었다.

아리엘 씨, 왜 그러세요.

저에요. 저, 엘리에요.

마른침을 삼켰다.

"부탁이니까, 내 아이에게... 화 내지마..."

"...아리엘, 씨."

린을 잃은 충격이 이 정도까지 컸던 걸까.

아니, 분명 클 수밖에 없겠지.

그녀의 반쪽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소중하게 여기던 아이였으니, 분명 자신 따위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충격을 받았을 터였다.

저렇게, 에밀리를 품에 안고 있을 정도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놓아둘 수는 없잖아."

에밀리가 피투성이로 엉망이 된 아리엘의 손을 천천히 그러쥐었다.

마치 망가진 보석을 대하는 듯한 행동에 엘리는 속에서 치솟는 구역질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역겨워.

역겨워서 미칠 것 같아!

"당신이 아리엘 씨에게 저지른 짓을 떠올리세요. 그런 잘못을 저질러 놓고, 그녀의 곁에 태연히 붙어있는다고요?!"

아리엘이 발작하지만 않았다면, 당장 저 품에서 에밀리를 떼어냈을 터였다.

자격이 없는 자가 그 품을 차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죽은 린과 똑같은 색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저런 대우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랬기 때문이 그러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뻔뻔한 말이었다.

지금 당장 저 머릿속을 열어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을 정도로.

"내가 잘못 했으니까, 스승님이 돌아오실 때까지는 내가 그 자리를 채우는 수밖에 없어..."

"..."

하지만, 엘리는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아리엘이 미친 만큼, 그녀 또한 미쳐버린 것이라고.

린과 똑닮은 눈동자 안에는 깊은 슬픔과 광기가 잠들어 있었다.

스승을 잃었다는 슬픔에서 나오는 짙은 광기.

그리고, 자신을 낳은 존재에게서 그 잃어버린 온기를 찾으려 하는 본능까지.

"하, 정말, 어이가 없어서..."

본래라면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본래라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심장 안에 잠든 무언가가, 눈앞의 원수를 찢어 죽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인간의 것이 아닌 마족의 것.

발화점이 극히 낮은 감정의 격류가 엘리의 몸를 불사르기 시작했다.

'참아, 참아야 해. 에밀리를 죽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아리엘 씨가 겨우 되찾은 안정인데, 그걸 내 손으로 무너뜨리면 안 되잖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자그맣게 솟아오른 마족의 뿔이, 극한의 분노를 이기지 못해 신경 줄기 하나하나에 통증을 주입해댔다.

참아. 참아 엘리. 할 수 있어.

크게 숨을 들이키고는, 시야가 희게 변할 때까지 숨을 참았다.

그대로 숨을 토해내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허튼 짓, 할 생각 마세요."

"이런 꼴이어서야 하고 싶어도 못 해."

머리를 제외한 전신을 붙잡혀 있는 상태에서 고개만을 까딱인다.

그 행동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별 다른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다가가면 분명 아리엘 씨가 발작할게 분명하니까.

그러니까 이대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

"...린."

용사는 그곳에 서있었다.

꽝꽝 얼어붙은 대지 사이에 솟아오른 붉은색의 언덕 앞.

그 안에 묻혀있는 건 분명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사랑하던 아이였다.

린이라는 애칭을 지닌, 자그마한 소녀.

아이의 죽음이 어떤 경위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과정이 어둠에 물들어 있다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어째서 그녀만 고통 받아야 하는 걸까."

소중한 이를 잃는다는 슬픔을 그녀는 대체 몇 번이나 겪어야 하는 걸까.

우연도 계속되면 필연인 법이었다.

하늘에 있는 것이 그 여신이라면, 앞으로도 그녀는 계속해서 불행을 겪게 될 터였다.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구나."

"...여왕."

무감정한 목소리가 적막을 치워냈다.

용사의 어깨에 손을 올린 에반젤린 여왕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왕국이 병력을 일으켰더군. 아무래도 내부의 반란을 전부 제압한 듯 하다만."

"...그렇군요."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지금은 집중이 필요할 때였다.

바로니스 왕국이 북부를 향해 오고 있다.

여왕의 얼굴에는 그 어떠한 의혹도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과 마족이라면 몰라도, 인간과 인간 간의 전쟁에 있어서는 그녀가 전문가였으니.

"한 가지 묻지. 같은 인간을 죽여본 적은 있나?"

"...마족만을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여정 중 인간들과 부딪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지원을 주지 않으려는 부패 귀족.

적대국.

그리고 마족의 편에 붙은 배신자들까지.

그 모든 이들이 인간이었고, 그들을 처리하는 것 또한 용사의 의무였다.

"그런가. 그러면, 믿으마."

어쩌면 지금까지 해왔던 전투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전투가 될 터였다.

마족의 힘을 가지게 된 인간.

그들을 상대하려면 얼마나 더 많은 피를 흘리고,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만 할까.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고 불행하지 않을 세상을 꿈꿨건만, 결국은 이렇게 되는구나.

"...바로 전장으로 향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준다면 나야 좋지만, 작별 인사 정도는 해야하지 않겠나? 신혼인데 이대로 전장으로 쩌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을 텐데?"

"......"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바라본다.

사랑을 약속하고, 영원을 약속했었지.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피를 마심으로 하나됨을 맹세했더랬다.

하지만 그랬던 그녀는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아니, 처음이 아니라 원래 마땅히 그래야 했을 모습이 되어버렸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녀를 만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아리엘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

자신의 목소리만 들어도 발작하는 이에게 무슨 염치로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니,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겨우 얻어낸 행복과 사랑을 이대로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피해낸 용사가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향하는 곳은 제 심장이 있는 곳.

만나야 할 건 바로 자신의 반쪽.

"아리엘, 안에 있ㅡ"

"...아서."

돌연 문이 열렸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정작 제 앞에 있는 사람은 아리엘이 아닌 다른 이였다.

에밀리.

제 사랑을 지독할 정도로 괴롭힌 존재이자, 원수.

"네가 왜ㅡ"

"미안하지만, 오늘은 이만 돌아가. 더 이상 발작 했다가는 정말 큰일날지도 모르니까."

올려다보는 눈동자에는 여러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미안함. 걱정. 슬픔. 그리고 후회.

그 어느 것 하나 그녀와 어울리지 않은 감정들이었다.

가식이 아니라는 점이 더더욱 화가 났다.

지금껏 그런 식으로 행동 했으면서, 이제 와서 그런다고?

"네가 네 동료였다는 사실이 역겨워, 에밀리."

"알아."

나도 내가 역겨워서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

한숨과도 같이 튀어나온 중얼거림이었다.

"...마왕은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일단 오늘은 돌아가줘."

"..."

믿어야 할까.

그녀가 아리엘에게 무슨 짓을 하지는 않을까.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엉망으로 물들였다.

그럼에도 눈앞의 에밀리를 밀쳐내지 않은 건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없다는 것도 한몫 했다.

아리엘이 나를 보고 공포에 질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대로 돌아가는 편이 낫겠지, 하는.

"린은?"

말을 꺼낸 순간 곧바로 입을 꾹 다물었다.

알고 있잖아, 아서.

그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잖아.

방금 전까지 그 무덤을 보고 온 주제에, 뭐?

어쩌면, 현실감이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스승님은,"

에밀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니, 원래도 어두웠지만 더더욱 어두워졌다.

마치 이 세상의 고통을 전부 겪고 있는 것 같은 표정에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뒤이어 이어지는 말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돌아가셨어."

너도 알고 있잖아?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어떠한 거짓도, 기만도 섞여있지 않은 가장 순수하디 순수한 슬픔.

그런 에밀리를 보고 용사는 뒤늦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린이 죽었노라고.

이제 아리엘의 마음을 지켜줄 수 있는 존재 따위는 아무도 없노라고.

"지금의 그녀는 방어기제 때문에 나를 스승님으로 착각하고 있는 상태니까, 일단은 안심해도 좋아."

착각이 깨지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그렇게 읊조리는 에밀리였지만, 용사는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 무엇보다 짙은 우울감이 몸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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