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54화 (154/342)

Chapter 154 - 그 이상으로.(1)

"아리엘."

"..."

이불을 두른 채 입을 꾹 다문다.

상대가 무섭다는 것 이외에도, 부끄럽다는 감정이 앞섰다.

그렇게 분위기란 분위기는 다 잡아가며 투신했는데, 결국 발목을 붙잡혀서 살아나다니.

고개를 숙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미안."

사과의 말은 생각보다 쉽게 튀어나왔다.

앞뒤를 전부 자르고 한 말이었지만, 일단 뛰어내려서 미안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차라리 아무도 없을 때 시도했다면 좋았을 텐데.

나 혼자만 있는 공간에서 쓸쓸하게 죽는 편이 다른 이들을 위해서는 최선이 되었을 터였다.

결국 이렇게 살아버렸지만.

"제발, 죽으려고 하지 말아줘. 아무리 린이 죽었다고 해도ㅡ"

"내가 죽였는데도?"

"..."

순식간에 입을 다무는 용사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너도 할 말이 없는 모양이구나.

하긴, 뱃속에서 난 딸아이를 제 손으로 죽여버릴 정도의 극악무도한 살인자에게 질리는 건 당연한 일일 터였다.

벌이라도 받는다면 좋을 텐데.

멍하니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이유가 있었겠지. 물론 그게 옳은 일이라는 건 아니지만,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했을거잖아. 맞지?"

"..."

이유, 이유라.

그걸 이유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냥 나 혼자만의 욕심이 아니었을까.

아이가 죽어가는 꼴을 보기가 싫어서, 결국에는 내가 먼저 죽여버렸다.

내가 죽인다면 분명 건강한 모습으로 되살아날 수 있을 테니까.

"...그냥, 내 이기심 때문에 저지른 일이야."

어때, 더럽지 않아?

환멸하고 싶지?

죽이고 싶지?

지금까지의 환상이 전부 깨져나가는 것 같지?

"아리엘."

"...응."

"울지마."

울다니, 누가. 내가?

내가 울 리가 없잖아.

나 같이 나쁜 년이, 눈물 따위를 흘릴 리가 없잖아.

그래, 용사인 너라면 알 수 있잖아.

눈앞의 마왕이 얼마나 악랄한 녀석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잖아, 그렇지?

"울지마, 아리엘."

"...안 울어."

제 손으로 딸까지 죽여버린 살인마가, 울거 같아?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울 리가 없잖아.

응, 그럴 리가... 없는데.

"흐, 으흑... 흑..."

왜 울고 있지?

나는 나쁜 년이잖아.

이런 생각 따위 당연할 텐데, 왜.

대체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나, 나도, 죽이고 싶지 않았어. 나, 린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내가 어떻게 그 아이를 죽여..."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를 세뇌했더랬지.

이대로 린이 죽어버리면 버틸 수 없으니, 린을 다시 낳기 위해서 린을 죽이자.

그런 생각으로 그 아이를 내 손으로 죽였더랬다.

"...나 같은 건, 엄마 실격이야."

앞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아니, 낳는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돌볼 수 있을까.

언젠가 아이들이 아프게 된다면 이번과 같은 일을 똑같이 또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이가 죽는 걸 원하지 않아서 아이를 죽이게 되는 그런 짓거리를 다시금 저지르겠지.

"차라리, 네 손으로 끝내줘."

봐, 이런 비참한 모습이 진짜 나야.

나는 네가 사랑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마왕이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고 했었나?

아니, 전혀 아니잖아.

애초에 레이나부터 내 손으로 죽였는데, 아무도 죽인게 아닐 리가 없잖아.

"싫어."

"왜, 왜?! 추하잖아. 이렇게 살아있는 건, 추하잖아..."

"내가 너를 죽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아리엘."

"..."

말문이 막혔다.

당연한 말이었지만, 그 무게감이 달랐다.

나를 죽이고 싶지 않다고...

자신의 손으로 사랑하는 이를 죽이고 싶지 않다는 절절한 마음이 심장을 울렸다.

그래, 나는 너에게 소중한 존재였구나.

그랬지. 응, 그렇구나.

"...나는 네가 무서워."

"알고 있어."

"너를 용서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도 증오스러워 미쳐버릴 것 같아."

"알고 있어."

"너를 죽여버리고 싶어 미칠 것 같아. 그런데도 스스로를 가장 죽이고 싶어서, 너무 비참해."

"...알고 있어."

알고 있다. 알고 있다. 알고 있다.

그렇게나 잘 알고 있는데, 왜 내가 죽는 걸 허락하지 않는 거야?

왜 나를 죽이지 않는 거야? 대체 왜?

'답을 알고 있잖아, 아리엘.'

답을 알고 있다고? 내가?

멍하니 용사에게ㅡ 아서에게 시선을 던졌다.

살짝 찡그려진 얼굴 사이로 녹색의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아서.

"...하지만, 동시에 너를 사랑해."

"..."

"이것도 알고 있었어?"

멍청히 물었다.

나를 향해 손을 뻗어오는 아서에 몸이 움츠러 들었지만, 그건 본능적으로 취하는 행동이었다.

아서. 너는 나에게 무슨 답을 들려줄까.

알고 있었다고 할까, 모르고 있었다고 할까.

느릿하게 뻗어진 손이 그대로 내 손을 그러쥐었다.

부드러움과 함께 느껴지는 열기에, 심장이 쾅쾅 뛰어댔다.

"아니. 하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어."

"..."

"내가, 너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다고."

아서의 입술이, 내 손등 위에 내려앉았다.

마족보다 짙은 색채의 붉은색에 내 얼굴 또한 같은 색으로 물들었다.

'정말이지, 부끄러운 소리를 망설임도 없이 하는구나.'

그 어느 때보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건 두려움으로 인한 걸까, 아니면 사랑으로 인한 걸까.

달뜬 한숨이 목구멍을 타고 터져나왔다.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지.

그런 짓을 당하고, 그런 일을 겪었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증명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해줘.

그 사랑을 내 몸에 새겨서, 내가 절대 잊지 못하게 만들어줘.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하게, 그 사랑으로 나를ㅡ

"..."

입술이 맞닿는다.

인간의 체온은 마족의 것보다 뜨거워서, 그저 키스를 하는 것만으로도 불에 데인 듯 뜨거웠다.

이건 사랑의 온기일까, 아니면 그저 착각에 불과한 감각일까.

내 입술 사이를 뚫고 오는 말랑말랑한 무언가를, 아무런 저항 없이 안으로 들여놓았다.

"츄으, 흐읏... 흐...♥"

혀와 혀가 얽히는 소리가 농밀했다.

겨우 그 정도의 행동인데도 불구하고,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사랑이, 사랑이, 느껴져. 진하고, 뜨거운게 내 안으로ㅡ'

밀어내려고 했지만, 내 등허리를 둘러안는 굵은 팔뚝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이고 진한 입맞춤을 하다가, 결국 숨 쉬기가 어려워지는 순간이 되어서야 아서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쟈, 쟘시만... 냐, 수, 숨을 못쉬게써..."

"..."

"하, 하흐... 흐으...♥"

뇌가 녹아버린 건지, 혀가 녹아버린 건지 구분이 가지를 않았다.

머릿속이 몽롱해져, 이제는 아서의 얼굴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아서, 아서, 아서...

너는 안 죽을 거지?

너는 나를 떠나지 않을 거지?

"아서..."

"...응, 아리엘."

"나, 아기가 낳고 싶어졌어."

그 말이 그의 마음을 자극한 걸까.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내려보니, 아서의 고간이 커다랗게 부풀어 있었다.

언제 봐도 살인적인 사이즈에 질겁했지만, 이미 저것이 주는 쾌락을 깨달아버린 몸뚱이가 어서 받아들이라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아서, 어서♥"

여전히 두려움이 존재하는데도, 아서를 향한 사랑이 그 두려움을 덮어냈다.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

그건, 나도 그래.

나도 널 사랑해서, 참을 수가 없어.

내가 너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완전히 잊을 수 있도록, 나를 엉망으로 범해줘.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다른 것을 눈에 담을 수 없게.

오직 너만을 바라볼 수 있게ㅡ

"아, 긋♥"

들어왔다.

들어, 왔어.

"아, 아서어어...♥"

찌걱, 찌극...

단순한 삽입에 불과했지만, 내 몸뚱이는 극상의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이름을 부르며 신음을 토해내자 그에 맞춰서 아서의 음경이 점점 더 부풀어 올랐다.

"아, 안에서 커지는 건, 반칙... 흐극♥"

안 되겠어.

전혀, 못 움직이겠어♥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서로 마주보고 앉은 자세였지만, 위쪽에 있는 내가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가버려...'

아니, 어쩌면 지금도ㅡ

"흐, 흐이야아아아앗♥♥♥"

아.

으, 아?

"아리엘."

"...으, 으응♥"

목소리가 무서워.

나를 억지로 범할 거야.

나를 이 거대한 육봉으로, 꿰뚫어 죽일 거야.

'아니, 아니야.'

나를 죽이려는게 아니야.

나를 사랑하려는 거야.

이 거대한 사랑으로, 내 마음을 꿰뚫어 줄 거야.

두려움을 없애고, 그 안을 뜨거운 애정으로 채워내기 위해서.

"아, 아서...♥ 움직, 움직여줘... 나를, 나를ㅡ"

엉망으로, 만들어줘.

"으, 으흣...♥"

찌걱ㅡ

살짝의 움직임이었을 뿐인데 고개가 치켜올려졌다.

천장으로 바라보며 입을 벌리니, 그 안에서 붉은색의 혓바닥이 주욱 튀어나왔다.

'머리가, 아파.'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내 자궁구를 찔러대는 귀두의 끄트머리가, 동시에 뇌를 범하고 있었다.

다시는 이것에게 거부하지 못하게.

내가 허튼짓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움직일게, 아리엘."

"응, 움직여줘. 격하게, 움직여줘. 움직여, 으, 으흐으으으으으응♥♥♥♥"

입을 활짝 벌려, 그대로 아서의 어깨를 깨물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뇌가 불타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범해져. 엉망으로 범해져.

마왕 주제에 용사의 허리놀림에 잔뜩 가버려서, 죽어, 버려...♥

"흐, 으흡♥ 으흡♥ 으힉... 흡♥"

몸을 움직이는 것 따위는 불가능했다.

지금은 그저 아서의 좆에 꿰여 위 아래로 흔들리는 것만으로도 한계였으니까.

그래, 어쩌면 이런 비루한 몸뚱이로 이런 격렬한 섹스를 버티는 건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리엘, 아리엘?!"

"가버려써...♥ 이미, 가버려쓰니까...♥ 사려져... 흐...♥"

아서의 어깨에 머리를 쳐박고는, 그대로 실신했다.

섹스를 시작하고 단 몇 분도 되지 않은 순간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