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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63화 (163/342)

Chapter 163 - 사랑과 평화.(4)

솔직히 야외에서 아기를 낳는다는 건 조금 수치스러웠지만, 내 몸 상태를 생각한다면 이게 최선이었다.

그래, 방에서 낳으면 그냥 추울 뿐이니까.

거기에 고생은 덤이고.

"...으응, 으."

확실히, 어제에 비해서 훨씬 커졌다.

그래도 다행인 건 세계수의 씨앗이 들어있을 때보다는 훨씬 작다는 걸까.

아기 하나가 들어있을 법한 몸집에 움직이는 것이 불편해졌다.

애초에 어디를 잘 돌아다니지 않았기에 별로 불편한 점은 없었지만서도.

"아리엘, 아기 언제 나와?"

"...조금 있다가."

아이가 묻기에 그 새하얀 정수리를 슬슬 쓸어내렸다.

분명 다 컸다고 들었는데, 몸집이나 하는 행동은 어린 아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벨이나 랴뇨리가 고양이 수인 치고 훨씬 어른스러운 걸까.

괜히 궁금증이 생겨서 둘을 바라보니,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댔다.

"냐, 그렇게 우리를 바라봐도 말이지냥..."

"...저희도, 어렸을 때는 심했어서..."

요점을 말하자면, 그런 이야기였다.

고양이 수인들의 성체는 전부 아이들과 같은 느낌이었지만, 마족과의 전쟁을 겪은 뒤로부터 정신 상태가 성숙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물론 아주 어린 아이들은 마을에서 보호 받았기에 해당이 없었지만, 벨이나 랴뇨리 같은 경우에는 곧 성인이 될 나이였기에 어쩔 수 없이 전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동족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다들 고생했구나, 마족들 때문에."

처음에는 내가 하지도 않은 짓에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건가 싶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비록 강제로 얻게된 몸뚱이라고 한들 같은 동족이 저지른 일이었기에 충분히 미안해야할 이유가 있었다.

"나, 아리엘이 아기 낳는거 볼래! 내가 낳을 때는 엄청 아파서 기억도 안 났거든!"

"어, 엄마!"

"분명 태어났을 때는 엄청나게 작았는데 말이지... 왜 나올 때는 그렇게 아팠는지 모르겠다니까?"

길게 늘어진 꼬리가 ? 모양으로 휘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품에 꼭 안자, 아이도 기분 좋았는지 잔뜩 골골거리는 소리를 냈다.

응, 고양이 수인은 성체 때도 이렇게 아이 같은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

귓가에 울리는 소리 덕분인지, 조금 싱숭생숭했던 마음이 차츰 진정되어 갔다.

"여기요, 아리엘 씨. 근처에 산모에게 좋은 약초가 잔뜩 있더라구요."

"고마워, 벨."

슬며시 내밀어지는 소쿠리를 받아들며 빙긋 미소지었다.

...음, 이거 엄청나게 쓰겠지?

쓰지 않는 약초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물끄러미 약초를 바라보고 있자니, 품 안에 매달린 아이가 자신에게 관심을 달라는 듯 잔뜩 칭얼거려왔다.

"그래, 그래. 알겠으니까, 응? 그러다가 벨이 구해온 약초들이 땅에 떨어질지도 몰라?"

"가만히 있을게!"

뭐, 땅에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대충 씻어내면 충분히 먹을 수 있겠지만.

"그나저나, 나 때문에 이렇게 다들 모인 거야?"

고양이만 넷.

이러니까 대가족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 중에서 둘은 내 뱃속에서 나왔는데, 그 둘의 딸까지 있으니 이러면 거의 할머니 느낌 아닐까.

...뭐, 엄청나게 꼬이고 꼬여버린 족보였지만서도.

"아리엘, 또 이상한 생각하고 있지냐?"

"...어떻게 알았어?"

"너는 표정에서부터 티가 엄청 난다고냥~"

그런가?

포커페이스에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무슨 생각을 했는데 그런 표정이었던 거냥?"

"...그런 표정이 어떤 표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이상한 상상은 안 했는데."

그냥 벨에게 있어서 나는 어떤 사람ㅡ 콕 집어서 말하면 할머니 느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니까.

그것마저도 그냥 반쯤 재미로 떠올린 것이었지만서도.

"그냥ㅡ 이 아이들이 내 아이면, 벨은 내 손녀가 되는 건가 싶어서."

"푸핫?! 냐하하하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냥, 바보! 너 같이 탱탱한 할머니가 있을까보냐!!"

역시 그렇겠지.

깔깔 웃으며 꼬리로 내 뺨을 꾹꾹 짓누르는 랴뇨리에 아하하, 하고 웃어보였다.

아니, 그보다.

점점 찌르는 힘이 강해지고 있는 것 같은데...

"냐앙?!"

"그만, 랴뇨리."

"이, 이거 놔라냐아아아아..."

괘씸해.

아무리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고 그렇지, 그 정도까지 웃을 필요는 없잖아?

놓아달라며 발버둥 치는 랴뇨리를 끌어다가 그대로 품에 안았다.

너는 잔뜩 껴안기 형이다, 랴뇨리.

"흐, 흐냐아아아아..."

고양이는 따뜻한 걸 좋아한다고, 랴뇨리의 뺨에 얼굴을 마구 비비니 한껏 늘어져 버린다.

그래, 이제야 좀 조용하네.

랴뇨리는 전부 다 좋았지만 놀릴 때의 텐션이 너무 높다는게 유일한 단점이었다.

그리고 한 번 놀리면 끝을 본다는 것도.

"하, 항복이다냐아아..."

"놀리는 건 좋지만, 앞으로는 적당히 해줘."

랴뇨리의 몸을 슬쩍 놓아주니 흐물흐물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런 랴뇨리의 얼굴을 콕콕 찌르는 아이들에, 피식피식 웃음을 흘려댔다.

고양이들이 이리저리 엉겨붙은 광경은 언제 봐도 좋구나...

"나도 랴뇨리처럼 잔뜩 녹을래!"

"그래, 그래."

"흐아아아아..."

내 옷깃을 죽죽 잡아당기는 아이를 달랑 들어올려 부드럽게 품에 안았다.

랴뇨리와 마찬가지로 잔뜩 녹아내리는 모습이 마치 늘어붙은 찹쌀떡 같았다.

"벨, 너도 해달라고 말해보라냥."

"나, 나는 괜찮아..."

꽤 오래된 일이었지만, 벨은 나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듯 싶었다.

너무 그렇게까지 미안해하지 않아도 좋은데.

살랑살랑 손을 흔드니 머뭇머뭇 다가와 내 앞에 자리를 잡았다.

뭔가 겁 많은 고양이가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 같아서 귀여웠다.

"착하지, 착해~"

"...읏."

하나 밖에 남지 않은 귀가 마구 쫑긋거렸다.

언제나 느끼는 사실이지만, 고양이 수인들은 머리 쓰다듬는 걸 엄청나게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벨은 그래도 뭐, 녹아내리지는 않았지만.

"전부 여기 모여있었구나."

"미코다!!"

"윽?! 요놈, 그렇게 달라붙지 말래도 그러네?!"

"푹신푹신~"

"꼬, 꼬리 붙잡지 말거라!"

뭔가 애들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하는구나.

몸집이 비슷해서 그런지 말괄량이들에게 엉망으로 괴롭혀지고 있고.

물론 어느 정도는 봐주고 있는거겠지만서도.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이야?"

"쫒겨났다."

"응?"

"털갈이를 한다고 쫒겨났단 말이다! 칫, 인간 놈들. 내 털이 얼마나 귀한 줄도 모르고..."

털갈이?

으음, 확실히 털 색이 조금 달라졌다고 해야 할지... 조금 변했네.

아무래도 방 안에 털을 마구잡이로 흩뿌리고 다니니 청소를 하는 사람들이 미코에게 밖으로 나가달라고 말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부드러워졌네. 따뜻하기도 하고."

"마음대로 만지지 마라! 여우 수인에게 있어서 꼬리는 자존심과도 같은ㅡ"

"꼬리 하나 달린 구미호면서."

"야!!"

예민한 부분을 쿡 건드니 왁, 하고 소리를 지른다.

마치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장난감 같아서 꽤 재미있었다.

많이 놀리면 잔뜩 삐져버릴지도 모르니 적당히 하는 편이 좋겠지만, 뭐어.

"자자, 쓰다듬어 줄 테니까 화 풀어. 응?"

"겨, 겨우 그런 걸로 화를 풀 리가ㅡ 우읏..."

"여기지? 여기를 쓰다듬어주는 걸 좋아하잖아."

"으으으으, 싫어..."

입은 싫다고 하지만 몸은 솔직하구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역동적으로 굽이치는 꼬리가 미코의 상태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개과 동물이 꼬리를 흔든다는 건 기분 좋을 때 밖에 없지, 응.

여우는 개과니까.

"앙..."

"케헹?! 무, 뭐냐! 갑자기 꼬리를 물고?!"

"으무으으..."

"...말을 하려면 입에 있는 건 뱉고 하거라!"

눈앞에서 격하게 흔들리는 꼬리를 참지 못한 아이들이 그대로 미코의 꼬리를 깨물었다.

갑작스러운 일격에 당황한 미코가 왁왁 소리를 질렀지만, 그 정도로 그만둔다면 고양이가 아니지.

그나저나, 여우의 꼬리를 물고 있는 고양이들이라니...

"귀여워라..."

"귀엽다고 하지 말거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입꼬리는 비죽 올라가 있잖아, 미코.

또 머리를 쓰다듬어줄까 싶었지만, 이번에는 참기로 했다.

아니, 참는다기보다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는게 더 맞는 말이겠지만서도.

"...읏."

"! 괜찮느냐?!"

"응, 괜찮아..."

확실히, 저번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냥 조금 아리다고 해야 하나...

배가 꽉 찬 상태에서 대로 수축하는 느낌이라 몸 전체가 압박 당하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자, 누워라. 어서!"

"...응."

꼬리에 고양이 둘을 달랑달랑 매달고 있으면서도 착실하게 내 몸을 바닥에 눕혀주는구나.

등에서 느껴지는 풀들의 감촉에 마음이 안정되는 것만 같았다.

...고통은 점점 심해지기만 했지만서도.

"흐, 흐으으윽...?!"

"자, 손이라도 잡거라. 아니, 꼬리는 잡지 말고!"

내가 잡으려고 잡은게 아니야!

애초에 손을 가만히 두고 있는데 어떻게 꼬리를 잡겠어, 응?

"아리엘, 이거 꼭 잡아!"

"부드러워서 기분 좋으니까, 괜찮아질 거야!"

고마워. 고맙기는 한데, 미코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 거니?

고통이 임계치에 달했는지 이제는 아주 울기 직전의 상태가 되어버린 미코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저 얼굴을 계속 보고 있다가는 죄책감 때문에 힘을 주지 못할 것 같았다.

...미안, 미코. 이번에만 실례할게.

"너, 너희... 끝나고 보자!!"

"미코가 화났어!"

"화났어, 화났어!"

"읏?! 은근슬쩍 귀 깨물지 마라!!"

...정말이지, 잠시라도 조용한 순간이 없구나.

눈앞의 소란을 바라보고 있자니 피식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찰나였는데, 덕분에 마음이 한껏 풀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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