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8 - 사랑과 평화?(9)
"...이거 안 놔?"
"당연히 안 놓지. 그 자존심 높은 천재 마법사님을 마음대로 할 기회인데 말이야."
신경질적으로 목소리를 높였지만, 돌아오는 건 진한 비웃음 뿐이었다.
차라리 태연한 척 반응했다면 달랐을까.
이를 갈며 팔을 비틀었지만, 돌아오는 건 손목에 가해지는 진한 압력이 전부였다.
"나를 계속해서 창녀라고 불렀었지, 아마?"
"...왜, 사과라도 바라는 거야?"
"아니, 딱히 사과를 바라지는 않아. 그냥, 내가 온갖 고생을 할 동안 무엇을 배웠는지 알려주고 싶어졌달까?"
능글맞은 미소 뒤에 숨겨진 진한 격류를 마주하고는 숨을 집어삼켰다.
설마, 아니지?
마른침을 꿀꺽, 삼키자 상대의 미소가 더더욱 진해졌다.
"미친년."
"죽었다 살아났는데 사랑하던 사람이 원수랑 결혼했다면 미치는게 당연하지."
촉, 하고 입술이 뺨을 꾹 찍어눌렀다.
마치 주변을 먼저 천천히 점령하듯이 다가오는 부드러움에 에밀리가 최대한 고개를 비틀었다.
'나는 전부 스승님의 것인데, 이 빌어먹을 쥐새끼한테 빼앗길 수는 없어...!'
하지만 저항에도 한계가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과 동시에 망가진 몸뚱이는, 더 이상 그녀를 건강함과 가까워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그만ㅡ 츄읍, 흣?! 야, 흐읏, 야?!!!"
"츄으, 츄릅, 츄흡ㅡ"
입술이 부딪히고, 그대로 틈새를 벌려낸다.
어떻게든 막아내려고 했지만, 수 년간 다져온 경험을 이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결국 제 연약한 방어벽을 뚫고 들어오는 말랑한 혀에, 에밀리는 잔뜩 농락당할 수밖에 없었다.
"야, 잠, 흐... 깐ㅡ"
"츄르읍♥ 츕♥"
입 안 전체를 쓸어내리고, 입 천장을 툭툭 두드리며 이곳으로 혀를 가져다 대라고 협박해댄다.
그 무언의 명령에 굴복하기 싫어 최대한 혀를 뒤쪽으로 빼면, 치열을 따라 훑어내고는 그대로 잇몸 사이사이를 계속해서 핥아댔다.
'미친년, 미친년, 죽여버릴 거야, 진짜!!'
"흡, 흐읏... 흐아..."
혀와 혀가 얽히는 것으로 모자라, 뿌리채 뽑아갈 듯이 빨아들여졌다.
혀뿌리가 얼얼해질 정도로 쭉쭉 잡아당기다가도 마치 달래듯이 혓바닥을 톡톡 두드리는데, 그 행동이 얼마나 상냥하게 느껴지던지 아주 눈물이 쏟아질 지경이었다.
그래,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이건 본인의 패배나 마찬가지였다.
겨우 키스 따위로 패배를 인정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ㅡ
"이, 이졔 그먄... 그먄ㅡ"
"멀었어."
엉망으로 유린당해서 그런지 혀가 잔뜩 풀려서는 발음이 줄줄 새어나갔다.
분명 정신은 멀쩡한테 이딴 목소리를 내뱉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해 미칠 노릇이었다.
"츄읍♥ 츄으읍♥ 츄릅♥"
"하아, 흐으, 하으, 그마안.... 흣♥"
그렇게 한 십 분 정도 지났나?
아니면 한 시간?
바로 눈앞에 있는 쥐새끼의 모습조차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정신이 몽롱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두게 해야 하는데...
그러니까ㅡ
'숨을, 못 쉬겠어...'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는데도 느려지기는 커녕 점점 빨라지는 혀놀림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분명 코는 멀쩡하게 뚫려있는데,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가슴이 답답해지기만 했다.
밀쳐내.
밀쳐내야해.
그런데, 이렇게 붙잡혀 있어서는 밀쳐낼 수가 없잖아.
"푸흐, 푸하하하...!!"
"...?"
"눈빛은 밀어내야 한다고 말하는데 정작 밀어내지도 않고 말이지! 귀엽네, 에밀리."
"그건 네가 붙잡고 있어서 그런ㅡ"
"안 잡고 있는데?"
그 말 한 마디에 눅진눅진 녹아내린 정신이 퍼뜩 깨어났다.
뭐야, 안 잡고 있었다고?
정말?
"저, 저리 꺼져!!"
"방금 전까지는 잔뜩 녹아내린 표정을 짓고 있었으면서 싫은 척 하기는."
어때, 더 할까?
그렇게 말하는 듯한 표정에 에밀리가 순식간에 몸을 뒤로 물렸다.
이딴 몸뚱이로는 제대로 도망도 치지 못하겠지만, 최소한의 안전 거리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한 행동이었다.
"내가, 내가 잘못 했으니까... 그만, 해."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꼬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더 이어진다면 분명 입술을 빼앗기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터였다.
어쩌면, 지금껏 지켜온 순결을 잃을지도 모를 노릇이었으니까.
"뭐, 좋아. 건방진 마법사 님도 적당히 혼내준 것 같으니까 말이지~"
"...너, 진짜 싫어."
"어린애도 아니고 뭐야, 그 말투는? 몸도 어려지더니 정신도 어려진 건 아니지? 귀여워라~"
잔뜩 비꼬며 머리를 쓰다듬는 케이에 에밀리가 와락 표정을 구겼다.
온갖 험한 말들이 입 속을 맴돌고 있는 와중에도 침묵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언젠가는 그 건방진 아가리를 갈기갈기 찢어주겠어.'
타오르는 복수심을 끝으로, 에밀리가 눈을 감았다.
지금 필요한 건 빌어먹을 쥐새끼의 얼굴을 가려줄 어둠과 수치심을 참게 해줄 인내심 뿐이었다.
***
내 배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전부 나를 좋아할 수만은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직접 겪으니 심장이 너무 아렸다.
그래, 그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
증오와 혐오 정도야 언제나 받아오던 감정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다가가도, 가까워지려고 해도 절대 허락하지 않는 모습은 나에게 큰 상처를 주기 충분했다.
'저 아이가 마지막이 아니라면 어쩌지...'
앞으로 태어나는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라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평생 동안 나를 원망한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마치 지금까지의 사랑이 전부 쓸모 없는 것이라고 말해지는 것만 같아서, 조금이지만 울적해졌다.
"마왕님, 그렇게 울적하게 계시다가는 좋은 일이 찾아오지 않는다구요?"
옆에서 방긋거리며 웃는 환상 서큐버스도 그렇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냥 백만 명을 낳으라고 한다면 차라리 더 나았을지도 모르지.
괜스레 침울해져서는 손에 잡히는 풀잎을 쭉쭉 잡아당겼다.
...물론 뽑지는 않았지만.
"야."
그렇게 한참이고 화풀이를 하고 있던 찰나 머리 위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려 누구인지 확인하니,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눈에 띄었다.
"에밀리?"
내 옆에 풀썩 주저앉는 아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평소보다 더 화가 난 것 같은데, 기분 탓이려나.
그렇다고 나 때문에 화난 거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이건 마치 위로해주기를 바라는 고양이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고양이보다 200 배 더 까칠했지만서도.
"무슨 일 일었어? 뭐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난 건데, 응?"
"...아무 일도 없었어."
아무 일도 없기는 무슨, 바로 표정이 구겨졌는데.
얼굴에서 다 티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내뱉는 에밀리에 슬쩍 손을 뻗었다.
지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예를 들자면 이런ㅡ
"..."
"화 풀자, 응?"
"...어린애 취급 하지마."
어깨에 팔을 둘러, 슬며시 머리카락을 쓸어내린다.
불퉁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돌아왔지만, 딱히 밀쳐내거나 하지 않는 걸 보니 막 엄청 싫은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기분이 묘하네...'
분명 처음 만났을 적에는 죽일 듯이 달려들어, 엉망진창으로 괴롭혔는데 말이야.
어쩌면, 이 사랑의 저주에 걸린 건 나뿐만이 아닐지도 몰랐다.
나를 그렇게도 못살게 굴었던 이가 그저 내 뱃속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의 사랑을 주게 된 만큼, 내 뱃속에서 태어난 아이 또한 내가 주는 사랑을 쉽사리 거절하지 못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이루어진 사랑은 진짜일까.'
저주를 받았기에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원래부터 사랑하도록 되어 있는 걸까.
머릿속이 혼란스럽게 물들어가고 있었지만, 내 손은 쉬지 않고 에밀리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 말투, 하나도 안 어울리거든? 소름끼치니까 원래대로 말하지 그래?"
"...너는 그 말투가 어울리니, 계속 사용하려무나."
반쯤 비꼬는 듯한 말을 내뱉으니 순식간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게 미움 받을 소리를 대체 왜 하는 거야.
신경질적으로 팔을 흔드는 에밀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꼭 붙잡았다.
어디 가려고.
네가 선택했으니까, 내 마음이 찰 때까지는 절대 못 가.
"그래서, 무슨 일이느냐. 뭔가 일이 있으니 기분이 나쁜 것 아닌가?"
"너랑 상관 없는 일이거든?"
상관이 없기는.
내 배로 낳은 아이인 이상, 자그마한 것 하나까지 전부 나와 상관 있는 일이었다.
언제까지 자존심을 부릴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그래봤자 자기만 손해라는 걸 왜 모르는 걸까.
"그보다, 계속 이렇게 안고 있을 거야?"
"그렇다만."
"...너도 참 팔자가 좋네. 그렇게나 괴롭혔는데도 이딴 짓을 할 정신이 남아있고."
확실히 아이의 말대로였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분명 나 같은 짓거리를 하지는 않았겠지.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달라붙고, 애정을 주고, 관심을 보내는 이유는ㅡ
"ㅡ사랑하니까, 라는 이유로는 안 되는 건가?"
"..."
아주 잠깐이지만, 에밀리가 멍청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예상 외였던 걸까, 아니면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한 걸까.
"...너한테 그런 짓을 했는데, 사랑한다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하지마!!!"
"린도 너에게 그런 짓을 당했는데 끝까지 사랑하지 않았느냐."
"..."
태어나자마자 몇 번이나 바닥을 향해 내동댕이 쳐지고, 뿔과 날개, 꼬리까지 잘렸음에도 끝까지 에밀리를 사랑했더랬지.
그리고, 그 사실을 스스로가 가장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침묵하고 있는 것일 터였다.
정말, 불쌍하게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