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71 - 미끼.(3)
"...뭐야, 또 왜 그래?"
나를 가장 먼저 찾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에밀리였다.
특유의 뚱한 얼굴로 내려다 보는데, 그 눈동자 사이에 한심함과 더불어 미약한 걱정이 잠들어 있었다.
...역시 다시 봐도 신기하네.
이 아이가 나를 걱정하고 있다니.
"...걱정해줘서 고마워."
"걱정이라니, 누가? 그냥 네 한심한 꼴을 비웃으려고 온 건데?"
표정이나 바꾸고 말하지.
괜히 웃음이 나와서 입꼬리를 씰룩이니, 찡그려져 있던 표정이 더더욱 찡그려졌다.
"그래서,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몸 상태가 아주 개판이잖아."
"...그냥."
마족을 별로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었으니, 굳이 말을 할 필요는 없겠지.
물론 내 사정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 더 컸지만서도.
"왜, 나는 쓸모 없다 이거야? 마법도 못 쓰는 인간 나부랭이가, 위대하신 마왕님께는 너무 하찮아 보였나?"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잖니, 응?"
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래.
손을 뻗어 분홍빛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린과 같은 색.
하지만 다른 사람, 다른 아이였다.
'나는 에밀리에게서 린을 보고 있는 걸까.'
그저 색이 닮았다는 이유 하나 뿐인데도 이 정도나 사랑할 수 있다니.
아니, 오히려 이런 단순한 것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다른 복잡한 이유 없이, 분홍색이라는 것만으로도 원수나 다름 없는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심장과 몸 전체에 무리가 갔다더구나. 당분간은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 좋겠어."
"...그렇구나."
조금은 잦아졌지만, 여전히 맹렬한 기세로 달음박질 치는 심장에 깊은 숨을 토해냈다.
진정해.
계속 분노했다가는 몸만 망가질 뿐이야.
어서 그 사실을 깨달으란 말이야, 응?
"미안하군. 설마 그 정도로 충격을 받을지는 몰랐다."
말투나 표정은 무미건조했지만, 뭔가 진심으로 미안해 하고 있다는 듯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이게 바로 한 나라의 여왕이 가질 법한 분위기구나.
이름만 마왕인 나는 그런 건 커녕 제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데.
"아리엘 씨, 괜찮으세요?!"
"엘리ㅡ 윽?!"
"가,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하셔서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갈비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나를 껴안아 오는 엘리에 신음을 내뱉었다.
저, 저기... 걱정하는 건 좋지만 조금만 좋아주는게 어떨까.
소심한 움직임으로 엘리의 등을 톡톡 두드리자, 그제서야 내 몸을 놓아주었다.
...조금만 더 껴안고 있었으면 뼈가 부러졌을지도 모르겠네.
"그래서, 어쩌다 그러신 건가요?"
"...그건."
나에게 쏟아지는 올곧은 눈빛에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거짓말을 못 하겠어.
입을 열면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한 이유가 쉴 틈 없이 쏟아질 것만 같아, 오히려 입을 꾹 다물었다.
이야기 해주고 싶지 않은게 아니야.
그냥,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니까.
"말해주지 않으면 몰라요, 아리엘 씨."
"..."
말해도 될까.
네가 약해서 벌어진 일을 너에게 말해서, 너를 휘말리게 하는 것이 맞는 걸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엘리를 향한 불신이 아닌, 혹시 만에 하나라도 엘리를 잃었을 때의 절망이 두려웠기에 나오는 불안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혼자 떠안고 있을 수는 없어.'
만약 내가 그 아이에게 간다고 해도, 과연 구해낼 수 있을까?
분명 어림도 없겠지.
사람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체 어떻게 복수를 할 수 있겠어, 응?
"...나와 함께 왕도로 향하던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인질로 잡혔어."
"..."
"나 때문이야. 내가 약해서, 지키지 못했으니까..."
애써 잊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저 잘 도망치기를 바라고만 있었는데, 결국 붙잡혀서는 그런 꼴을 당히고 있었다니.
어쩌면 혼자 도망친 것에 대한 벌을 받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아리엘 씨의 탓이 아니에요. 나쁜 건 아리엘 씨가 아니라, 그 사람이죠."
하지만, 엘리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 보듬어 주었다.
단순한 생각의 전환일 뿐이었지만, 다시 떠올린 뒤 천천히 고민하니 확실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래, 이건 전부 그 인간의 잘못이야.
나와 아이를 그 상황 속으로 떠민, 그 빌어먹을 새끼의 잘못이라고.
"내가,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이를 구하고, 아이를 그 꼴로 만든 인간들과 여신에게 복수하기에는 가지고 있는 힘이 너무도 미약했다.
분노에 몸을 맡겼을 때의 힘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 잠시 동안의 폭주 후 찾아온 반동을 생각하면 제 살을 깎아내는 것과 다름 없었다.
"도와달라고 말씀하시면 되잖아요. 이래 봬도 전직 성녀였다구요, 저."
"...그렇네."
전직 성녀가 과연 도움이 될까는 둘째로 치더라도, 그녀가 말한 방법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맞을 터였다.
도움을 요청한다.
내 힘으로 이룰 수 없다면, 다른 이의 힘을 빌려 이룬다.
'그게, 주변 사람들에게 폐가 되어도?'
고통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다른 이들이 고통 받지 않기를 원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깨달았기에, 다른 이들이 죽지 않기를 원했다.
내 잘못으로 벌어진 내 일이니까, 힘든 건 나 하나로 충분해.
나 하나로 충분한데, 나 하나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엘리, 미안해. 언제나 폐만 끼쳐서, 미안해..."
"...괜찮아요. 원래 친구 끼리는 서로 폐도 끼치고, 돕고 사는 거니까요."
친구, 친구라...
응, 그랬지.
친구였었지, 우리.
그 사실이 괜히 기뻐서, 키득키득 웃음을 토해냈다.
울면서 웃다니, 분명 바보 같아 보이겠지.
"그러면 폐 좀 끼칠 테니까ㅡ 도와줘, 엘리."
간절함을 담아, 엘리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몇 번이고 스치는 거절의 목소리가 내 트라우마를 자극했지만, 이번만큼은 도망치지 않고 상대를 마주볼 수 있었다.
"물론이죠, 아리엘 씨."
당연하게도, 답은 긍정이었다.
***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 숭고하며, 고통스럽고, 험난한 법이었다.
단지 사람 하나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그러했는데, 전선 하나를 지키는 건 또 얼마나 힘들까.
몇 번이고 성벽을 두들겨 오는 왕국군에 아서가 깊은 숨을 토해냈다.
전쟁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었나.
마족이 인간을 죽이는 세상이 끝난다면 분명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 믿고 있었는데, 마족이 인간을 죽이는 세상이 끝나니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용사님, 적이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도 마족화 된 기사인가?"
"...맞습니다."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
그 누구보다 마족을 증오하던 자들이, 결국 마족이 되어 같은 인간들을 죽여대는 꼴이라니.
이런 빌어먹을 세상을 만든 건 과연 누구일까.
하늘에 있는 여신?
만약 그렇다면 그건 선신이 아닌 악신일 것이 분명했다.
아아, 그래.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생각하면 악신이 분명하겠지.
"출정한다. 마족을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을 제외하면 전부 뒤로 물리도록."
"알겠습니다, 용사님."
이 칼날에 얼마나 많은 마족들의 피를 묻혀왔던가.
손에 쥐여진 성검을 내려다 보며, 아서가 혀를 차냈다.
얼마나 죽고, 죽여야 이 죽음의 연쇄가 끝나게 될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의문들이 너무도 많았다.
바로니스 국왕이 어째서 마족들을 소환했는지, 어떻게 인간을 마족으로 탈바꿈 시켰는지, 그리고 그 지식들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까지.
"아리엘..."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는 그 의문점들을 풀어낼 필요가 있었다.
바로니스 국왕과 여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만 한다면 다시 평화가 찾아올 것이 분명했다.
"결국, 다시 왕도로 향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바로니스 국왕의 머리통을 도려내지 못한 것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생생했다.
만약 그곳에서 녀석을 죽여낼 수 있었다면, 이곳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지 않아도 됐겠지.
결국 지금의 상황은 전부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그는 책임을 져야만 했다.
언제나와 같이, 계속해서.
***
용사님, 당신이라면 해내실 수 있답니다.
당신의 힘으로, 이 세계를 집어삼키려 하는 마족들을 전부 쓰러뜨려주세요.
차근차근 악의 무리들을 처단해 마침내 마왕의 앞에 도달해서, 부디 그 몸통에 분노의 칼날을 휘둘러 주시기를.
성검의 칼날에 더러운 마왕의 피를 스며들게 한다면, 그것이 비로소 강림의 때가 될 테니.
그렇게 된다면 온 마족들이 신의 힘 앞에 무릎을 꿇고, 결국은 머리를 조아리게 되리라.
가증스러운 버러지들에게 신의 철퇴를.
가증스러운 버러지들에게 신의 분노를.
가증스러운 배신자들에게 나의 증오를.
"우리 귀여운 마왕님이 슬슬 찾아올 때가 됐는데... 으응, 조금은 더 걸리려나."
교단의 지하실에 처박혀 있는 마족의 모습을 굽어 살피며, 키득키득 웃음을 토해낸다.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검은 장소에서 그저 아래를 내려다 보기만 하는 건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직접 아래로 내려가, 마음껏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직접 그녀를 만나서 그 마음 속에 나의 분노(사랑)을 잔뜩 담아ㅡ
"어머."
점멸하듯이 깜빡거리는 기척에 고개를 돌려, 빙긋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화가 잔뜩 나셨네, 우리 마왕님.
계속 그렇게 화를 내다가는 화병나서 몸져누우실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