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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75화 (175/342)

Chapter 175 - 다시 그곳으로.(3)

"그래서, 북부로 향하고 있는 건가?"

"네, 그러니까ㅡ"

"아리엘, 아리엘이라고 불러다오."

"아리엘 씨."

사정을 들어보면 그러했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왕궁 내의 기사들이 마족으로 변한 것을 확인하고, 아이들을 북부로 피신시켰다는 이야기.

하필이면 왜 북부인가 싶었지만, 북부에 믿을 만한 지인이 있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쟁통에 아이들을 들이밀다니...'

어쩌면 그 정도로 위기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왕도에 있는 것이 아이들을 북부로 보내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으려나.

안타깝게도 아이들이 도착하는 것보다 전투가 벌어지는 쪽이 더 빠르기는 했지만ㅡ

생각해보면, 전투가 벌어진 건 우리 탓 아닌가?

"아서. 이 아이들, 도와줘야하지 않을까?"

오지랖이기는 했지만, 가만 둘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 왕국군에게 잡힌다면 분명 큰일 날 테니까.

그런 의미를 담아 아서를 바라보니 뭔가 복잡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확실히, 갑자기 이런 말을 들어버리면 당황할 법도 하지.

이 아이들을 도와준다는 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상황이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전투 중이어도, 전투가 끝났어도 북부로 향하는 건 어려울 거야."

전투 중이라면 눈 먼 칼에 맞을 위험이 있고, 전투가 끝났다면 경계가 강화되어 지나가지 못할 터였다.

유일한 희망이라고 한다면 북부가 왕국군에게 대승을 거두는 것 뿐이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두고 가기에는 조금 미안한데. 위험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자면 우리 때문에 차질이 생긴거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심지어 어린애들이고.

왕도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려면 다리도 엄청 아팠을 텐데, 왕국군들과의 전투 때문에 북부를 코앞에 두고도 도착하지를 못하는 그 허탈함까지.

"...만약 괜찮다면, 우리와 같이 가겠느냐?"

"아리엘."

"끝까지 같이 가겠다는 뜻이 아니야, 아서."

북부가 아닌 다른 안전한 곳에 아이들을 데려가려는 것 뿐이었다.

왕도로 향하는 길목에도 분명 몸을 피할 장소 정도는 있을 테니까.

아이들의 아버지가 믿을 만한 사람이 북부에 있다고는 했지만, 꼭 북부가 아니더라도 믿을 법한 사람은 있을 터였다.

"혹시 왕국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나? 북부로는 갈 수 없으니, 최소한 그곳까지는 바래다주마."

"...로엔 경."

"...북부가 아니더라도, 아가씨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면 어디라도 상관 없습니다."

이러면 허락도 받은 걸까.

잠시 고민에 빠져든 아이를 두고,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머리통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원래라면 비위가 엄청 약해서 구역질이라도 했었을 텐데, 지금은 뭔가 저런 걸 봐도 아무렇지가 않았다.

'당한게 많아서 그런가? 여러모로...'

조금 슬픈 생각이기는 했지만, 그것도 내가 이토록 태연한 것에 대한 지분이 있을 터였다.

그렇게 따지자면 오히려 좋을지도 모르겠네.

타박타박 걸음을 옮겨 쪼그려 앉자, 바닥에 뒹굴거리던 머리통의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직 살아있구나."

"..."

"죽은 척을 하려면 좀 똑바로 하거라. 눈에 생기가 그렇게 넘쳐나는데 죽은 척은 무슨 죽은 척을... 쯧쯧."

머리가 잘려나가도 살 수 있는 생명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의 마족만큼은 예외였다.

설마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거려나.

몸뚱이는 그대로 엎어져 있는 걸 보면 그냥 머리만 잠시 살아있는 것일지도 몰랐지만.

"그렇게 노려보지 말거라. 전부 자업자득이니."

"..."

"그나저나, 네 녀석ㅡ"

꿀꺽, 하고 마른침이 삼켜졌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갈증이 바닥에 흘러내린 피를 가리키고 있었다.

뭘까, 이 느낌은.

옷 안에 숨겨져 있던 뿔을 꺼내들자, 뿔이 보랏빛으로 발광하고 있었다.

"ㅡ맛있어 보이는구나."

"...!!!"

입맛을 다시자, 머리통이 있는 힘껏 몸부림쳤다.

뭐, 그래봤자 머리통이라서 겨우 앞뒤로 까딱거리는게 전부였지만서도.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만큼은 뭔가 본능을 따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ㅡ 으응.

"잘 먹겠습니다."

아삭, 이라도 해야할까.

아니면 콰득?

그리고 뭐라고 해야 하나... 으응.

맛, 있나?

맛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

그런데, 마족을 먹은거면 동족을 먹은거 아닌가?

동족 포식이라니, 뭔가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설정 같네.

"하필이면 그런 꼴이 되어서도 살아있어서는, 불쌍하게도."

차라리 죽어있었다면 산 채로 먹히는 공포를 경험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뭐, 이미 지나간 일이었지만.

"...명복이라도 빌어주마."

바닥에 남겨진 뿔을 집어올려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라색으로 빛나는 내 것과는 다르게 딱히 빛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족의 근원은 뿔이라고 하던데, 이것도 먹으면 괜찮으려나.

"아, 앙..."

깍, 하고 이빨과 뿔이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엄청 단단하잖아, 이거.

...먹을 수 있는거 맞아?

물론 그런 말을 하기에는 이미 남겨진 머리통을 뼈째로 전부 먹어치운 상태였지만서도.

그래도 그건 뭐어, 본능적으로 먹어치웠다고나 할까...

"으, 으우으으으으읍..."

뭔가 부서지는 것 같기는 한데, 이게 뿔이 부서지고 있는 건지 내 이빨이 부서지고 있는 건지를 모르겠네.

눈을 꼭 감고는 다시 한 번 턱에 힘을 주자, 입 안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으, 피 나는 것 같은데.

으득, 으드드득, 으득.

"으음..."

그래도 일단 뿔을 먹어치우기는 했으니 괜찮겠지.

조금 전보다 더 활력이 도는 몸에 기분 탓인가 싶기도 했지만,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니 확실히 전보다 나아진 것 같았다.

뭐랄까, 으응...

동족을 잡아먹는 건 또 어떠려나 싶기도 했지만, 어차피 그것들은 전부 인간들이 마족이 된 것일 테니 딱히 상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 안쪽에 상처가 났구나."

혀를 움직여 입천장을 톡톡 두드리니, 그 두드림에 맞춰서 찌릿하고 아릿한 고통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입 안이 다치면 밥도 제대로 못 먹을 텐데.

그 생각을 하자니 괜히 슬퍼져서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그러게 뿔도 좀 딱딱한게 아니라 말랑말랑한 걸 달고 있지, 끝까지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네.

"아리엘 씨."

"...응?"

"목적지가 정해졌어요. 일단 왕국쪽으로 향하는 건 맞고, 저 아이들과는 아마 에트엘에서 헤어질 것 같아요."

엘리의 설명에 일단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솔직히 에트엘이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명을 듣고 위치를 알기에는 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서, 으응.

"그러면, 에트엘 영지까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용사님."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서로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것을 보며 푸스스 웃음을 토해냈다.

예정과 달라지는 것 같아서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아서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안심할 수 있었다.

'...부디 그 아이가 무사했으먼 좋으련만.'

나 때문에 붙잡힌 마족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자 심장이 따끔거렸다.

이건 걱정이려나, 아니면 죄책감이려나.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아이는 고통 받고 있을 텐데, 내가 여기에서 웃고 있어도 되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에 기분이 우울해졌다.

"가자, 아서."

"응."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에 슬쩍 팔을 뻗어 아서의 손을 잡았다.

내 몸보다 훨씬 뜨거운 체온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손난로라도 쥐고 있는 것처럼 따뜻했다.

사람의 온기란 이 정도로 뜨겁고, 포근하구나.

아서의 손을 잡으니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기도 했다.

"아서, 잠시만."

"응?"

촉, 하고 붙었다 떨어지는 입술에 헤헤 웃음을 지었다.

너무 심각한 표정 하지 말고, 응?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잔뜩 피식거리는 아서의 모습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왁 안겨들었다.

옷을 껴입어서 조금 둔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만족할 만한 속도였다고 할지ㅡ

"저, 혹시 두 분은 사이가 어떻게 되시는 건가요?"

아.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깨닫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물론 여전히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있기는 했지만,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거니까.

우리 둘 사이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뭐어, 나와 아서의 왼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고 알아서 깨달은 것 같지만서도.

"서, 설마 용사님께서 이미 약혼자가 계실 줄은ㅡ"

"부부다."

"네?"

굳이 두 번 답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알던, 모르던, 혹여 부정하던 아서가 내 것이라는 건 절대 변함 없을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어째 어린 아이의 꿈이나 환상 비슷한 걸 깨부순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ㅡ

'...아무리 애라도 절대 양보 못하지, 응.'

아이들을 엄청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게 아서를 줄 수 있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 유일한 내 것.

동시에 내 전부를 준 존재니까.

그러니까,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어.

"그, 그렇군요..."

"바보야, 용사 정도 되는 사람이 너랑 맺어질 리가 없잖아. 현실을 직시하라고, 멍청아."

잔뜩 실망한 것 같은 표정의 아이를 타박하는 목소리에 조금이지만 동정심이 생겼다.

얼핏 들은 이야기지만 왕국은 일부일처제라지?

비록 왕국과는 척을 지고 있다고 해도 아서는 어디까지나 왕국의 사람이니, 나 이외의 반려는 만들지 않을 터였다.

그래, 가장 사랑했던 소꿉친구를 제치고 선택한게 바로 나였으니까.

절대 나 이외에는 사랑하지 않겠지.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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