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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82화 (182/342)

Chapter 182 - 정신병자.(1)

'익숙한 풍경이네.'

어둡고 습한 지하는 이제 익숙함을 넘어 친근하게 껴질 정도였다.

여기에 가둬두고 무슨 짓을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절대 평범한 짓을 하지는 않겠지.

...뭐, 고문이라도 하려는게 아닐까. 아니면 생체 실럼이라던지.

"으, 큭... 콜록! 콜록, 콜록!"

차가운 한기와 함께 기침이 터져나왔다.

바싹 마른 숨결에 섞여 나오는 검붉은 핏덩이에 순간 현기증이 났다.

정말이지, 잠시라도 가만히 놓아두지를 않는구나.

이 빌어먹을 몸뚱이 같으니.

"그러게 마왕님, 왜 북부에 계시지 않았던 건가요? 계속 북부에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환상 주제에 말이 많구나."

환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저 정신병의 일종이라며 되뇌이니 할리벨의 태도가 엄청나게 삐딱해졌다.

비꼬는 건 둘째로 치더라도 실시간으로 의지를 깎아먹는달까.

내가 여러모로 힘들어 할 때마다 나타나는 걸 보니 트라우마로 인한 무언가인 건 틀림 없어 보였다.

"마왕님은 약해요. 인간 아이조차도 당신을 몰아붙일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그런 몸으로 대체 누구를 구하러, 어디로 가겠다는 건가요?"

"...괜한 참견이야."

내가 어디로 가는지, 누구를 구하려고 하는지는 나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였다.

비록 지금은 이렇게 되어버렸지만, 분명 아서가 나를 구하러 와줄 테니까.

"팔자가 참 좋네. 미친 년처럼 혼잣말도 하고."

"...에밀리?"

"왜, 이런 곳에서 만나니까 반가워?"

이곳에서 들리면 안 되는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체 어떻게?

희미하게 보이는 에밀리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 얼굴에 짙은 조소가 떠올랐다.

"모습 드러내지 말라니까 끝까지 말을 안 듣네."

"뭐라는 거야, 쥐새끼 주제에."

"마법도 제대로 못 쓰면 입 다물고 있지?"

그 뒤에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케이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딱 달라붙은 옷차림에 머리를 가리는 후드를 뒤집어 썼는데, 어린아이의 외형과 더불어 괴리감이 상당했다.

뭔가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죄를 짓는 것 같은 의상이잖아, 저거.

"이런게 마왕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네. 대체 뭘 믿고 이런 수상한 곳에 빨빨 기어들어온 거야? 왕도로 가는게 목표였으면 곧장 왕도로 향할 것이지ㅡ"

"걱정 해주는 거니?"

"아니거든?!"

진심으로 싫다는 표정이라 조금이지만 상처 받았다.

그래도, 이렇게 보니까 괜히 반갑고 그러네.

외형적으로는 아직 어린아이들이었지만, 용사와 함께하던 이들이었으니 실력적으로는 확실할 터였다

아직 신체가 어린아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는게 문제였지만서도.

"아무튼, 열쇠 찾을 때까지 닥치고 가만히 있어. 괜히 또 정신병자 마냥 중얼거리면 다른 녀석들이 올지도 모르니까."

"그래, 이 쥐새끼 말대로 혼자 중얼거리지 말고 입 꾹 다물고 기절한 척 해."

아이들의 말에 슬쩍 눈동자를 돌려 할리벨을 바라보였다.

뭘 그렇게 재밌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머리라도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얼굴이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미친 사람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

"그나저나, 역시 둘은 사이가 좋구나."

"누가 이딴 녀석이랑 사이가 좋다는 건데?! 이 녀석과 사이가 좋느니 차라리 마왕을 좋아하고 말ㅡ"

"..."

"ㅡ취소, 취소야!"

이번에도 진심으로 싫다는 듯한 표정.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는 듯 순식간에 뒤로 물러서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마법이라도 사용한 걸까.

평생 동안 마나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방법을 찾아서 적당히 치료한 듯 싶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건강한 것 같아서.

"우읍, 크헥, 우웨에에엑..."

"..."

"...하으, 으, 콜록, 콜록......"

목구멍을 타고 핏덩이가 터져나왔다.

아하, 흐... 이건 조금, 위험하지 않으려나.

댐에 구멍이 난 것처럼 쏟아지기 시작하는 피.

생명력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듯한 감각에 심장이 쾅쾅 뛰어댔다.

'...조금만, 빨리 와 줘.'

나를 이곳에다 가둬놓은 녀석은 아무래도 내 몸 상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데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리 없겠지.

아이들이 나를 발견한 것이 행운이 될지도 몰랐다.

최소한 죽지는 않을 테니까.

"정말 그 아이들이 당신을 구하러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상대는 그 용사 파티라구요. 마족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던!"

"...마족들이 먼저 인간들을 죽여대지 않았더냐."

"인간들이 먼저 마족들을 소환해서 죽여댔죠."

"그렇다고 그들이 한 짓이 정당화 되지는ㅡ"

"당신이 마왕이라는 사실은 기억하고 계신가요?"

"..."

뭐, 그렇기는 하지.

비록 몸뚱이 뿐이었지만.

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할리벨에 괜히 의기소침해졌다.

정말이지, 도움이 하나도 안 되는 정신병이야.

환각을 보는 이들이 어째서 자살을 많이 하는 건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깨어나셨군요, 마왕님."

"...그래."

어둠을 헤치고 그림자 같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베르드 자작은 아닌데, 대체 누구지?

표정을 찡그리며 상대의 얼굴을 응시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저 일렁이는 덩어리를 얼굴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서도.

"아무래도, 정신을 잃은 걸 만지는 것보다는 정신이 깨어있는 걸 만지는 편이 더 좋더군요."

"예를 들자면?"

"비명 소리가 감미롭다던지."

악취미야.

딱 생긴 것처럼 노는 종자였다.

더럽고, 끔찍하고, 혐오스럽고ㅡ

아무튼.

"자, 당신을 통해서 얻어내고 싶은게 잔뜩 있습니다."

손톱.

머리카락.

내장 조각.

피.

피부.

눈.

심장ㅡ

"마왕이란 존재가 다른 마족들과 얼마나 다른지 알아볼 생각입니다."

만약 마왕이 다른 마족들과 다르다면 흥미로운 결과가 되겠지요.

하지만, 다른 마족들과 같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습니다.

"인위적인 마왕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증거가 될 테니까요."

"...마족과 다를 바 없구나."

"모르셨습니까? 인간은 원래 마족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동시에, 마족 또한 인간과 같지요."

마족을 증오하는 건가 싶어서 싸구려 도발을 날려봤지만, 상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말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지.

차라리 화를 내고 분노했다면 이 정도로 불안하지는 않았을 텐데.

조용히 미친 광인이 제일 무섭다고, 저 새빨간 눈동자에 담긴 감정이 마치 피의 늪처럼만 보였다.

"마족은 마치 광전사처럼 달려들죠. 비유하자면 그래, 오우거와 같습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생각했지만, 딱히 그렇지만도 않더군요."

"..."

"마족은 신경이 인간에 비해서 날카롭고, 예민합니다. 그럼에도 전투에 돌입하면 통각이 차단되듯이 신경이 둔해집니다. 아니, 둔해진다기보다는 전투를 위해 끌어다 쓴다는게 맞겠죠."

"..."

"하지만 그렇게 감각이 둔해진 마족이라고 하더라도 고통을 느끼는 곳이 있더군요."

뿔, 꼬리, 날개.

물론 마족 별로 꼬리와 날개는 제각각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뿔 만큼은 공통적인 것.

아무리 신경이 둔해져도 뿔이 잘리게 된다면 마족들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미쳐 날뛴다.

"심장을 잃어도 살아있는 마족은 봤지만, 뿔을 잃고 살아있는 마족은 없더군요."

당신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마왕님, 그건 당신이 특별해서 그런 겁니까? 아니면, 당신이 다른 마족들보다 더욱 강력한 존재라서 그런 겁니까?"

내가 대답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나보다 눈앞의 기분 나쁜 그림자 자식이 마족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참 많이도 연구 했구나.

만약 마족 연구 학과가 있었다면 그 학과의 교수가 눈앞의 녀석에게 A+를 주지 않았을까.

'...그만큼 많이 죽였다는 뜻이겠지만.'

인간과 마족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 주제에 대체 얼마나 많은 마족들을 죽여온 걸까.

어쩌면 마족이 나타나기 전에는 인간을 연구했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자, 시작하시죠. 고통을 참아내는 모습이던, 고통에 젖어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던 뭐든지 좋습니다. 부디 저에게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시길."

"역시 제정신이 아닌 놈이로구나."

"자고로 이런 세상에서는 제정신이 아닌 놈이 살아남는 법이지요."

정말이지, 단 한 마디도 지려고 들지 않는구나.

헛웃음을 내뱉으며 몸을 늘어뜨렸다.

어차피 갇혀 있는 입장이기에 도망치는 것 보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게 낫겠지.

유체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모양새로 스물스물 다가온 남자가 그 혐오스러운 면상을 바짝 들이밀었다.

"특별히, 가장 처음 뽑아낼 부위는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하겠습니다."

"..."

"답하지 않으셔도 상관 없지만, 그때는 제가 가장 취하고 싶은 부위를 가져가도록 하지요. 이를테면, 심장 같은 것 말입니다."

미친 놈.

...뭐,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았지만.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고개를 들어올려 남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일단은,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해.

"손톱, 으로 하지."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보통의 인간은ㅡ 그리고 마족은 손톱을 뽑는다고 해서 죽지 않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정말 기쁩니다."

그림자가 움직여, 천천히 내 손을 감싸쥐었다.

미지근한 물ㅡ 혹은 진흙에 파묻힌 것과 같은 감촉이 피부 전체에 전해져왔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고통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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