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83 - 정신병자.(2)
평생 동안 다시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 줄 알았는데.
어두운 지하실을 돌아다니며 감옥의 열쇠를 찾아다니던 에밀리가 작게 기침을 토해냈다.
"그러게, 몸도 안 좋으면서 나는 왜 따라온 건데?"
"...닥치고 열쇠나 찾아."
마나를 사용할 때마다 혈관이 불에 타듯이 뜨거워지고, 비명을 질러댔다.
그래도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 보다는 낫겠지.
정말 죽을 맛이었지만.
"그렇게나 마왕을 증오하던 우리 천재 마법사께서 지금은 마왕을 구하기 위해서 열심히 움직이는 꼴이라니, 정말 재미있네."
"닥치고, 찾으라고."
케이의 빈정거림에 에밀리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본인도 좋아서 이러고 있는게 아니었다.
그냥, 그냥... 스승님께 지은 죄를, 그리고 은혜를 좀이라도 갚고 싶어서 하는 일일 뿐이었으니까.
'스승님...'
스승님이 남겨주신 사역마.
그 자그마한 선물 덕분에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최소한 만큼은 회복할 수 있었더랬지.
여전히 몸 상태는 엉망이었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히 움직일 정도는 되었다.
"...흑마력의 향기가 나."
코를 찌르는 짙은 흑색의 마력.
그 무엇보다 검고 질척이는 흐름에 에밀리가 표정을 살풋 찡그렸다.
대체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고통 받았을까.
붉게 물들어 있는 바닥을 내려다 보며 혀를 차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구슬 하나가 그녀의 발치에 굴러왔다.
"별 쓰레기 같은 물건을 다 보겠네."
"그러는 너도 단탈리온의 체액을 가지러 갔다가 아서를 만난 주제에."
"이딴 짓을 한 녀석이랑은 다르거든? 나는 어디까지나 죽은 놈들을 연구 했지, 산 놈을 죽이거나 하지는 않았ㅡ"
"왜 그래?"
흑색으로 물든 구슬 사이로 희미하게나마 새하얀 빛이 번쩍였다.
분명 마족으로 만든 것일 텐데, 어떻게?
손목을 타고 흐르는 고통을 최대한 무시하며, 구슬 안쪽으로 천천히 마나를 흘려보냈다.
마족의 신체를 분해하고, 압축하고, 정제해서 만든 구슬.
겉면의 탁한 기운 때문에 가히 실패작이라고 부를 정도의 물건이었지만, 내부까지 파고들면 이야기가 또 달랐다.
"...신성력과, 마기의 결합이라고?"
보통 실력의 마법사가 아니었다.
인간과 마족을 하나로 엮어, 마기와 신성력을 결합시키는 매개체로 사용한다고?
마탑이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었다면, 세기의 천재라며 갈채를 받을 정도의 업적이었다.
물론 아직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두 상반된 힘 사이에 머물러 있는 희미한 보라색의 힘 만큼은 진짜였다.
"열쇠나 찾으라던 녀석이 그런 거에나 한눈 팔다니, 쯧쯧."
"...조용히 해."
"열쇠, 찾았다는 말도 하지 말까?"
케이의 손가락에 달랑달란 매달려 있는 열쇠를 보며, 에밀리가 표정을 찡그렸다.
찾았으면 진즉 말하란 말이야, 빌어먹을 쥐새끼가.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심장을 타고 흐르는 검고 질척한 감각.
인간이 가지면 안 될 법한 힘의 파편이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하루? 이틀? 아니면 한 시간도 안 지났다던지.
입을 열려고 했지만, 무언가에 꽉 막힌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읺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ㅡ
"으, 콜록, 흐..."
"분명 몸 상태는 최악임이 분명한데, 용케도 살아계시는군요."
언제쯤 정신을 잃었었더라.
세번째 손톱을 뽑았을 때? 아니면 여덟번째 발톱을 뽑았을 때려나.
살점이 붙어 보기 흉하게 되어버린 손톱들을 바라보며 실소를 토해냈다.
"역시 당신은 마왕이 맞습니다."
"..."
과다 출혈로 죽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피가 많이 났는데, 참 고맙게도 조치를 해줘서 죽지는 않을 수 있었다.
손목에 꽂혀있는 기다란 대롱에서 생명의 전여물들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내 몸 속을 흘러들어오는 피.
검붉은, 피.
생명을 억지로 유지시키는 고통의 근원은, 인간이 아닌 마족의 것이었다.
마왕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짓들을 해서 이렇게 된 걸까.
아니, 애초부터 나는 마왕이 아니었는데.
"당신을 믿고 따르던 동족들의 생명력이 느껴지십니까?"
"..."
"곧 죽을지도 모를 당신을 살아있게 만들어주는 생명수이니, 부디 기뻐하며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빌어먹을 새끼.
가운데 손가락이라도 올려줄까 싶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내가 죽어가는 이유가 누구 때문인데.
"누구 때문이긴요, 당연히 용사 때문이죠. 마왕님의 뿔을 자른 건 용사잖아요?"
"..."
그렇지. 아서 때문이지.
아서가 내 뿔을 잘랐기 때문에ㅡ
아니, 자른 건 아서지만 자르게 만든 사람은 따로 있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이 아니라 신이었지만서도.
"자, 이것 좀 보시죠."
"..."
남자의 발 밑을 물들인 그림자들이 꿈틀거리며 옆에 놓여 있던 시험관을 집어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안쪽에 담겨 있었는데, 그 안으로 손톱을 집어넣으니 부글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액체가 점점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험관 밖으로 거품이 흘러넘칠 듯 솟아오르는 순간.
넘치기 직전까지 솟아오른 거품이 가라앉음과 동시에 정체불명의 액체가 희미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역시 대단하시군요. 단순한 손톱일 뿐인데도 이 정도의 완성도라니..."
"그게, 대체 뭐지...?"
"인간들에게 희망을 주는 물건이지요. 힘을 주고,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고통을 잊게 만들고, 기쁨과 희열을 불어넣죠."
...마약이라도 만든 걸까.
마족을 해체해서 만드는게 겨우 마약 따위라니 웃기지도 않았다.
각별한 동족 의식 같은 건 없었지만, 인간과 같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저건 그저 사람을 재료로 만든 쓰레기에 불과했다.
"마약보다 더 대단한 점은, 중독성이 약물에서 오는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
"인간이 언제 제일 갈증을 느끼는지 알고 계십니까?"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인 직후?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날?
아니면, 사막의 한 가운데서?
"아니, 전혀 아니죠. 인간이 가장 갈증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ㅡ"
ㅡ얻었던 힘을 잃은 바로 그 순간입니다.
"하지만 정말 신기한 점은 쉽게 얻은 힘일수록 그 정도가 훨씬 심해진다는 것이죠."
밑바닥에 처박혀 있던 인간이 위쪽으로 올라간 뒤 다시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렇게 된다면 인간은 이렇게 생각하고 마는 것이었다.
'내가 왜 다시 이런 곳으로 돌아와야 한 거지?' 하고.
원래 자신이 있던 곳이 하늘 위라고 착각한 벌레는 결국 다시 한 번 약에 손을 대고, 다시 거짓된 하늘을 부여잡게 된다.
그리고 다시 추락.
"상승과 추락. 그 가파른 변화에서 인간은 절박함, 절망, 쾌감, 희열, 그리고 갈증을 얻게 되는 법이죠."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만, 절망과 희망이 반복될수록 인간은 자기 최면을 걸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불행은 절대 영원하지 않은 것이라며, 결국 순간의 불행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취급하게 되죠."
왜냐하면, 자신은 다시 위쪽으로 올라갈 존재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점점 아래로 처박히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늪에 빠져드는 물소처럼 말이죠.
"본인이 점점 나락으로 처박히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의 삶을 관찰하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법이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저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군요."
"...역시 미친 놈이로구나."
"예, 저는 미쳤습니다. 그래서, 다음 부위는 정하셨습니까? 대화를 나누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됐군요."
평탄하기 그지 없는 말투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완전히 장난감으로 보고 있구나.
이렇게 되면, 오기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눈으로 하지."
"...괜찮으시겠습니까?"
"만신창이가 된 내 몸이 먼저 죽을지, 아니면 네 즐거움이 채워지는게 먼저일지 한번 시험해보자꾸나."
자고로, 미친놈에게는 미친년이 약이라고 했다.
사실 딱히 떠오르는 부위가 없는 것도 있었지만, 눈 하나 없는 미친년이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 조금 겁이라도 먹지 않을까 싶어서 저지른 일이기도 했다.
...솔직히 조금 후회가 됐지만서도 언젠가 겪어본 적 있는 일ㅡ
'...겪어본 적이, 있다고?'
언제였지?
언제, 어떻게. 그리고, 왜?
아주 잠시 뿐이지만 순간적으로 여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의 귀여운 마왕님.'
첫번째 마을.
축제.
어둠.
도망.
마수.
그리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지?
'팔이 잘렸었나? 분명 눈도 하나 녹아내렸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못된 건가?'
나를 향해 천천히 뻗어져 오는 그림자와 함께, 여신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나의 마왕님.
귀여운 내 마왕님.
당신이 그렇게 쉽게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장난감이 된 기분이라고 했던가.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구나."
"..."
"절망과 희망이 반복되면, 절망에 둔해진다고 했던가."
그 과정 자체가 행복이 아닌 절망으로 향하는, 결국 파멸을 향해 내달리는 벌레 한 마리일 뿐.
그리고, 하늘에 있는 누군가는 그것을 보며 즐거움을 얻는다.
과연 그것만큼 절망적인 상황이 있을 수 있을까.
아니, 전혀.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아. 이 모든게 여신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던 거였다고?'
점점 다가오는 그림자를 끝으로 눈을 감았다.
빌어먹을 세상.
그냥 멸망하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