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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84화 (184/342)

Chapter 184 - 용사라는 것은.(1)

...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쥐새끼 주제에..."

칼날이 번뜩임과 함께, 그림자의 몸뚱이가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상체인지 뭔지 모를 것이 꿈틀거리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나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러니까,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무래도, 더 이상 지켜볼 수는 없었기에."

아서가 온 줄 알았지만, 저 그림자 너머에 보이는 건 자그마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목소리. 내가 생각하는게 맞다면 목소리의 주인은 분명ㅡ

"...라일라."

"괜찮으십니까? 너무 늦게 개입해서 죄송합니다."

제 몸뚱이보다 훨씬 커다란 검을 용케 들어서는 이쪽을 향해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선다.

마른 기침을 내뱉으며 그 앳된 얼굴을 올려다 보니, 그 눈동자에 짙은 걱정이 서려 있었다.

"...고마워."

"감사 인사는 나중에ㅡ 큭?!"

"정말이지, 재미있는 순간이었는데 말이죠..."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분명 잘려나갔을 터인 상체가 다시 하체와 이어져, 하나의 형상이 되었다.

하수구의 오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기괴함에 절로 구역질이 솟아올랐다.

저 녀석은 과연 거울을 보기는 하는 걸까.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미쳐버린 존재와는 역시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었다.

"알단 도망치세요. 여기는 제가 막고 있겠습니다."

"하지만ㅡ"

"지금은 이런 모습이어도, 한때 용사를 가르쳤던 몸입니다. 겨우 흑마법사 따위에게 당하지는 않아요."

믿음직스러운 등이었지만, 그 크기가 작다는게 문제였다.

내가 진정 마왕으로서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렇게 도망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몸, 조심하렴."

"저보다는 자기 자신을 걱정 해주세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라일라가 자신에게 쏘아져 오는 그림자를 베어냈다.

무언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지만, 지금 제일 도움이 되는 건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 밖에 없겠지.

한숨을 토해내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손목에 들러붙은 대롱이 도망가지 말라는 듯 끈질기게 붙잡아 왔다.

미안하지만, 가야 해.

힘을 줘서 바늘을 쑥 뽑아내니, 순간적로 피가 튀었다.

"금방, 금방 돌아올게."

"천천히 오셔도 상관 없습니다."

손톱이 뽑혀져 나간 손가락이 쓰라렸지만 어떻게든 움직일 수는 있었다.

아서를 찾아야 해.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아서 밖에 없었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를 찾아서ㅡ

"뭐야, 알아서 잘 나왔네?"

"...에밀, 콜록, 콜록 콜록!!"

후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이러다가 몸 속에 있는 피를 전부 쏟아내는게 아닐까.

손바닥에 들러붙는 검은 핏덩이를 움켜쥐며 한숨을.토해냈다.

"...도와다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사실 무서워.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아.

시큰둥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분홍빛 눈동자 위에, 한때의 광기가 덧붙여졌다.

하지만, 그래.

"좋아."

그때와는, 달라.

***

어둠이 내려앉은 저택 내부에서 피바람이 불었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그림자는 하나.

막아서는 것은 여럿.

하지만 숫자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단 한 사람을 막아내지 못했다.

"자작님께는 갈 수 없ㅡ 커헉?!"

"비켜."

압도적인 힘이네, 압도적인 기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단순한 휘두름.

그것만으로도 용사의 앞을 막아선 것들은 마치 들판의 허수아비처럼 힘 없이 쓰러지는 것이었다.

어느 누가 감히 그를 막아설 수 있을까.

이 저택에 있는 모두?

"어째서! 자작님은 바로니스 국왕의 변절에 의견을 던지셨는데!"

"그런 것 치고는 수상한 움직임이 많더군. 내가 이렇게 나올 줄 어떻게 알고 앞을 막아서고 있는 거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실소를 내뱉으며 검자루를 움켜쥐었다.

붉고 희게 빛나는 칼날이, 그대로 눈앞의 벌레를 도려내었다.

"너희들은 여전히, 변한게 없더군."

용사라는 이름이 과연 어떤 무게를 가지고 있는지.

용사라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고 있는지.

너희는 여전히 깨우치지 못했구나.

손에 쥐고 있는 힘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기고만장해서는 날뛴다.

저들보다 약자들을 착취하고, 정의에 눈을 돌리며 제 배를 불려대지.

"아까 전의 식사를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착취한 거지? 너희들의 그 옷들, 너희들이 먹고 자는 것들 전부 사람들의 피와 생명이 잠들어 있을 터다."

용사란 비단 마왕을 처단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부패 귀족.

인류의 배신자.

그리고 범죄자까지.

마족들이 들끓는 세상이라고 해도, 마족보다 더 사악한 인간들은 더러 있었다.

오히려 세상이 어지러워진 틈을 타서 마치 바퀴벌레처럼 들끓었지.

어쩌면 그것이 기회였을지도 몰랐다.

제 세상이 왔다며 좋아하는 녀석들의 목을 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베르드 자작은 어디에 있지? 저택 안? 저택 밖? 아니면 다른 어딘가?"

"...케, 케흑."

"그녀를ㅡ"

아리엘을.

지금, 당장, 내 눈 앞으로.

"데려 오라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옆의 벽이 움푹 파였다.

벽에 부딪힌 무언가는 이미 인간의 형체를 잃어, 엉망으로 망가져 있었다.

손속에 자비 따위는 없었다.

마족들을 사냥하던 육신으로 인간을 죽여내는 것 쯤이야 어린아이의 손목을 비트는 것 만큼 쉬운 일이었으니.

"밤 중에 너무 소란스러우신거 아니십니까?"

"...베르드 자작."

아수라장 속에서도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허허로이 웃으며 등장했다.

피와 살점 투성이인 세상 속에서 저 혼자 말끔한 모양새라니.

지금까지 만나왔던 적들과 다르게 고고하려고 하는 꼴이 어찌나 역겹던지, 성검을 내던지고 구역질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녀를, 어디로 데려간 거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만, 용사님. 부디 노여움을 거둬주시죠."

"시치미 떼지 마."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어둠이 내려앉은 복도를 가득 채웠다.

그런 위협적인 분위기에도 베르드 자작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용사 따위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듯이.

"마왕님을 아주 소중히 여기시는 듯 하군요. 특히 그 왼손의 반지. 설마, 마왕과 혼인을 맺은 겁니까? 용사가?"

"..."

마치 개와 고양이가 어울리는 것을 본 듯한 얼굴이었다.

분명 그 얼굴은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눈동자 한 구석에는 비웃음과 경멸이 가득했다.

"마족의 힘을 사용하는 저희와 마왕과 맺어진 당신이 그 어디가 다른지 잘 모르겠군요. 결국 저나 당신이나 똑같은 인류의 배신자인 건 같지 않습니까?"

"궤변이다."

"궤변? 지금 궤변이라고 하셨습니까? 하하, 이렇게 사람들을 죽이시고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용사님."

죽어 마땅한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일념하에 지금까지 살아왔고, 그 한 가지를 지키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더랬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의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과연 인간은 깨끗하기만 한 존재인가.

마족의 편에 서서 학살과 약탈을 일삼는 인간.

마족의 편을 들지 않아도 본성이 추악한 인간까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구별하는 방법은 결국 스스로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너를 죽인다."

아리엘ㅡ 그녀를 사랑하게 된 뒤로부터 자신의 모든 선은 그녀를 기준으로 바뀌었고, 모든 악 또한 그녀를 중심으로 바뀌었다.

그녀에게 해가 되는 것들은 전부 악이며, 도움이 되는 것들은 전부 선이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의 버러지는 더럽고, 추잡한 악에 불과했다.

"내가 지금까지 용사라고 불렸던 이유를 아나?"

"..."

젖혀진 커튼에서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밝은 빛줄기 아래에 선 성검이 기묘한 울음 소리를 내며 잘게 떨려왔다.

아서, 아스테리아라는 남자가 여태껏 용사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

"끝까지 살아남아서, 전부 죽였기 때문이야."

"흐, 하하하하하핫!!! 그 고귀하신 용사님과 공통점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것 하나 만큼은 기묘할 정도로 똑같군요."

끝까지 살아남아서, 전부 죽인 건 저 또한 마찬거지거든요.

여덟 갈래로 갈라지는 것 같은 목소리와 함께 베르드 자작의 몸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머릿가죽이 벗겨져 그 안에서 여섯 개의 뿔이 솟아오르고, 등 뒤로는 세 쌍의 날개가 돋아났다.

이윽고 인간의 탈을 전부 벗어낸 인간ㅡ 괴물 하나가 거대한 팔을 휘적이며 용사의 앞에 내려섰다.

"마족 여든 일곱과 인간 천의 힘을 감당해낼 수 있다고? 감히 네 놈 따위가?"

"..."

"이제 나에게 남은 건 마왕의 힘ㅡ 아니, 마신의 힘 뿐이다."

웃기지도 않았다.

생명을 희생시켜 얻어낸 힘에 그 어떠한 가치가 있단 말인가.

제 힘을 뽐내는 부류는 얼마든지 있었다.

대지를 부수고, 장정 백이 덤벼들어도 이길 수 없는 자들.

하지만 어째서 그들이 아닌 자신이 이 자리에 서있는 걸까.

그건 바로ㅡ

"전부, 내 손에 쓰러졌기 때문이야."

"웃기지도 않는 소리!!"

어깨를 짓누르는 진한 살기에 베르드 자작이 서둘러 몸을 날렸다.

단 한 번.

단 한 번이면 겨우 인간의 몸뚱이를 한 저 용사 녀석을 죽여버릴 수 있ㅡ

하지만, 단 몇몇의 동료들만으로도 마왕성의 공략에 나섰었던 용사를 지금 이 세상 그 누가 막아설 수 있단 말인가.

"지옥에나 떨어져라, 쓰레기 같은 놈."

짧은 읊조림, 그리고 일격.

처음은 거대한 벽, 그 뒤에는 저택의 풍경이 반으로 잘려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ㅡ

"...말도, 안ㅡ"

ㅡ인간이었던 것의 몸뚱이가, 허공을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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