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86 - 연구일지.
마족이란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토록 인간과 다른데, 이토록 인간을 빼닮은 종족은 태어나서 처음 봅니다.
파괴적이고, 잔인하고, 동시에 자비가 없는ㅡ 매력적인 생명체들.
지금까지 쌓아왔던 인간들의 정보가 이토록 도움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거, 위대하신 베르드 자작 아니십니까. 이 비루한 연구자에게는 무슨 연유로 찾아오셨는지?"
"네 도움이 필요하다."
마족을 연구한다고 해서 인간들의 편을 드는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죽여온 생명들의 수를 세어본다면 마족보다 인간들을 더 많이 죽였을 테니까.
그렇다고 마족의 편에 섰냐고 묻는다면ㅡ
아니, 전혀.
"저에게 도움을 구하실 필요까지야 있겠습니까? 저는 마법사도, 흑마법사도, 하물며 귀족도 아닙니다. 그저 사람을 죽인 살인귀, 정신이 나가버린 연구자일 뿐이지요."
"도움을 준다면, 마족을 연구할 수 있게 도와주마."
"..."
구하기 어려운 재료를 산채로 공급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만큼 즐거운 이야기이기도 했고.
베르드라는 남자는 그렇게 재미있는 자는 아니었지만, 그가 들고 오는 마족들 만큼은 자신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크, 크헤에에에에엑?!!?!!?!?"
"내장의 구조가 인간과 딱히 다를 바가 없군요. 이거 진정 다른 세상에서 온 존재가 맞단 말입니까?"
기이할 정도로 인간을 닮은 생명체.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라면 무릇 괴물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어야 정상 아니던가?
제 손에 쥐여진 내장 조각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토해냈더랬다.
재미있군.
정말 재미있어.
어디서 어디까지 같을지 기대가 돼.
"인간의 내장을 적출하고 마족의 내장을 채워넣는 실험, 31차. 아직까지는 성공적이지만, 인간의 신체는 인간의 피를 원하지만 마족의 내장은 마족의 피를 원하는군요."
실패.
남겨진 당신들의 육신은 제가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암전.
"좋은 물건이 들어왔다."
"좋은 물건이라니. 뭐, 교단의 성직자라도 가지고 오셨습니까?"
"정답이다."
제 눈앞에 떨어지는 여자를 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마침 연구하고 싶었던 재료인데 이렇게 알맞을 정도로 손에 들어올 줄이야.
"신성력이라는게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지, 신성력이 어째서 마족에게 적대적인 건지, 혹은 정말로 적대적인 것인지."
그 첫 번째 실험.
신성력이라는 것을 다뤄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추출해내는 것에도 꽤 애를 먹었더랬다.
보통 심장에만 존재하는 마나와 다르게, 신성력은 몸 전체에 걸쳐 골고루 퍼져 있었기에 물길에서 사금을 캐내듯 아주 소량에 소량 만큼만 얻어낼 수 있었다.
"아, 아아, 여신, 여신님..."
"아직까지 신을 부르짖고 계시는 겁니까? 뭐, 그러는 편이 저에게는 더욱 도움이 됩니다만ㅡ"
"아, 아아아아아!!!!"
"쉬이, 그렇게 발작하다가는 심장이 멈출 수도 있답니다."
교단의 성직자를 구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서 말이죠.
안정제를 주사한 다음에는 언제나와 같은 탐구의 시간이었다.
신성력이 마족을 거부하는 이유.
아니,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
"더 많은 신성력이 있었더라면..."
이 답을 얻어낼 수 있을까.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런 과정 자체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즐거웠다.
그렇다면, 일단은 더 많은 신성력을 얻어내는게 우선이었다.
"신성력은 신체가 아닌 혼에 깃든다."
혼이라는 것을 눈을 볼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추출한 신성력을 다른 인간이나 마족의 신체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을 본다면 일리 있는 추측이었다.
마력과 마기는 가능하지만, 어째서 신성력은 불가능한가.
왜지?
어째서?
신이 내리는 은총이란, 육체가 아닌 영혼에 깃드는 것이었나?
흥미롭군.
"신성력의 생성량을 알아보는 실험. 열다섯번째."
"신성력의 총량을 알아보는 실험. 서른세번째."
"신성력의ㅡ"
"신성력을ㅡ"
. . .
그리고 마침내.
"신성력과 마기의 공통점을 알아보는 실험. 여든일곱번째."
신성력과 마기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힘이며, 그 특성이 다를 뿐이다.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신성력과 마기의 결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렇게 결합된 힘을 인간에게 주입한 결과ㅡ
"마족과 같은 힘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시간이 흐른다면 인간과 마족의 완전한 결합 또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내일. 혹은 그 다음날.
"...못본 사이에 많이 변했군."
"이게 전부 자작님의 은혜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마기와 신성력. 상반된 두 힘에 너무 오래 노출된 몸뚱이는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의 몸뚱이는 마치 제 발 밑에 꿈틀거리는 그림자처럼ㅡ 혹은 내면의 어둠을 형상화시킨 것처럼 처참하게 변화하였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흥미로웠다.
마족이라는 것의 본질, 인간이라는 것의 기원에 대해 한 발자국 다가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최초의 인간은 거인족과 소인족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졌지만..."
과연 그럴까?
겨우 전설 속의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가.
더욱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이 세계에 대한 근본을 파헤쳐야만 했다.
인간이 어디서 왔는지, 그 근원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자신의 연구는 지금보다 한 차원 더 도약하게 될 테니까.
"흥미롭지 않습니까, 엘? 마족들에게도 신이 있다는 모양입니다. 그 무엇보다 사악하고, 강력하고,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신이."
"..."
"자애롭고, 현명하고, 따뜻하신 여신님과는 참 많이 다른 신이지요."
"..."
"이런, 이제는 여신님께 기도하시지 않는 겁니까? 그렇게 된다면 신성력이 채워지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또 약을 사용할 수밖에 없겠지요."
마족들은 어째서 자신들의 신을 믿지 않는 것인가.
그들은 그 누구보다 힘을 숭상하는 종족일 터인데, 어째서 마신이라는 존재를 숭상하지 않지?
마족들을 고문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것들은, 직접 마계로 가지 않는 이상 얻어낼 수 없는 정보들이었으니까.
"엘, 혹시 마계에 가볼 생각 없으신지요? 당신의 넘치는 신앙이라면 분명 그곳에서도 충분히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엘이라는 것이 그녀의 이름인 건 아니었다.
그저 고대의 언어ㅡ 신이라는 글자에서 따온 이름일 뿐.
허공에 늘어져 있는 새하얀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웃음을 지었다.
"제가 당신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아십니까? 아마 당신은 모르겠지요. 절대로."
여신이라는 작자는 참으로 자비로워서, 그저 자신의 어린 양이 제 이름을 부르짖기만 해도 신성력을 아낌없이 내려주었다.
이미 그녀는 여신의 기적을 불신하고 있었지만, 몇 개의 약물과 자그마한 전기 자극으로 다시금 그 신실한 믿음을 불러올 수 있었다.
그 결과가 저렇게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이었지만, 아무튼.
"언젠가 다시 보도록 하죠. 그곳에서는 부디 평온하게 지내시길."
마나를 다룰 수는 없었지만, 마나를 다루게 해주는 장치 정도는 충분히 다룰 수 있었다.
그나마도 한 줌 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에 많은 것을 할 수는 없었지만, 격철을 당기는 용도 정도로는 충분히 써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마족을 불러올 수 있다고 알려진 마법진 위에 마기와 신성력을 적절히 결합한 결과물ㅡ 엑체도 고체도 아닌 무언가를 끼얹고는 그대로 마나를 이용해 버튼을 누른다.
"이걸로 당신은 인류 최초로 마계에 가본 존재가 될 것입니다.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이죠. 당신의 그 몸뚱이와, 위대하기 그지 없는 여신님의 축복과 함께 말이죠."
점점 사라져가는 여인의 몸뚱이를 보며 한참이고 웃었더랬다.
인간들이란 참으로 신기해.
마족의 힘이, 마신의 힘이 그토록 매력적이었다면 본인들이 직접 마계로 향하면 될 것을 대체 왜 그들을 불러오지 못해 안달인 거지?
대체 그들의 뒤에 있는 것들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마족에 집착하는 걸까.
'사실 별로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교단에서 직접 전해주더군요. 성녀가 되지 못한 실패작이라고.'
"흥미로운 가설이 떠올랐습니다."
끈적거리는 액체가 묻은 손을 대충 닦아내고는 그대로 펜을 들어올린다.
뾰족한 촉 끝에 묻은 질척한 잉크가 새하얀 도화지를 물들이고, 있어서는 안되는 이야기들을 천천히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인간은 마족이다.]
[동시에, 마족은 인간이다.]
[마족이 이 세계로 불려올 수 있는 것처럼, 인간 또한 마계로 향할 수 있다.]
[마기와 신성력은 그 근본이 다를 뿐, 근본은 같다.]
[인간의 신성력은 영혼에 깃들고, 마족의 마기는 신체에 깃든다.]
[인간은 그저 다산과 사랑을 주는 것일 뿐인 여신을 무한히 신앙하지만, 마족들은 그들의 우상이라고 할 수 있는 파괴적인 힘을 지닌 마신을 신앙하지 않는다.]
결론ㅡ 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것.
아니, 지금부터 알아내야만 한 것.
[여신은 무엇인가?]
[마신은 무엇인가?]
[어느쪽이 선이고, 어느쪽이 악인가?]
[마계에서 불려온 마족은 있지만, 이곳에서 인간이 마계로 불려간 경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답은, 대체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 답을 얻을 때까지, 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