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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88화 (188/342)

Chapter 188 -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2)

마왕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마왕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자, 봐.

머리에 뿔도 없고,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도 않잖아.

그렇다고 피에 목마르다며 미쳐 날뛰지도 않고.

사람이랑 똑같이 생겼잖아?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닥쳐봐. 지금 집중하고 있는거 안 보여?"

"집중은 무슨, 지랄을 해라. 지랄을."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욕설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도 시선을 절대 떼지 않는다.

그런 자신을 보며 미친 사람을 바라보는 듯 일그러지는 천재 마법사님의 시선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무시하지 못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옆에서 속이나 긁고 있는게 짜증났지만서도.

"어떻게 친해졌는지 말해봐."

"뭐?"

"저 여자랑 어떻게 친해졌는지 말해보라고."

그렇지 않아도 일그러져 있던 표정이 두 배로 일그러졌다.

와우, 이 정도면 사람이 아니라 그냥 오크ㅡ 아니, 그냥 오우거 수준인걸?

못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한 표정이 참 일품이었다.

마법사긴 마법사네. 이런 마법 같은 표정도 지을 수 있고 말이야.

"너는 나랑 쟤가 친한 걸로 보여?"

"아니?"

빈말로도 친하다고는 못하겠지.

저 여자가 에밀리를 보는 건 몰라도, 에밀리가 저 여자를 보는 것에는 여러가지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으니까.

단순히 '친하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간결한 감정은 아니었다.

마냥 적대적이냐고 묻는다면 또 아니었지만.

"...그러면 나한테 왜 묻는 건데? 네가 그렇게 좋아 죽는 용사님한테나 물어보지 그래?"

"아서는 나를 싫어하거든. 아마 내가 저 여자랑 친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은데, 역시 아서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면 먼저 저 여자랑 친해져야 하지 않겠어?"

"미친 년."

"사랑하는 여자는 전부 미친 법이야. 너도 마찬가지고."

자신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이 혐오스러워 미치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딱히 부정의 말이 튀어나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생각 이상으로 복잡해진 얼굴로 입술을 비죽 내밀 뿐이었지.

'뭐야, 저 행동은? 자기가 진짜 애라도 되는 줄 알고 있는 건가?'

언젠가 보았던 천재 마법사님의 모습과는 꽤 괴리가 있었다.

뭔가 잔뜩 삐진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랄까.

제 스승을 언급하면 분명 불덩이라도 날릴 줄 알았는데 말이야.

날아오는 불덩이를 피해 달아나며 저 여자의 품에 안기는 것이 첫번째 계획이었는데, 눈치 없는 마법사님 덕분에 벌써부터 잔뜩 어그러져버렸다.

"저 여자라면 그냥 가서 네가 엄마라고 불러주기만 해도 좋아할걸?"

"..."

"뽑아버리기 전에 눈깔 치우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의심이 솟아올랐다.

상대가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쪽을 골려주기 위해서라는 만약의 경우가 있었으니까.

표정이나 반응을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았지만서도.

"그러면, 믿는다?"

"알아서 해. 시끄럽게 앵앵거리지 말고. 쥐새끼 주제에."

그렇게 말하며 땅바닥에 침을 내뱉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불량하던지 한때 뒷골목을 전전하며 봤던 불량배의 면상이 떠오를 정도였다.

마법사가 아니라 양아치를 했다면 참 적성에 맞았을 텐데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키득거리기를 잠시, 여전히 우울한 모양새로 앉아있는 여자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거기 예쁜 엄마."

"...응?"

"으음, 이게 아닌가? 안녕, 예쁜 엄마? 아니, 이것도 어색한데..."

어쩌면 엄마라는 단어 자체가 어색할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자신에게 있어서 엄마란 가족보다는 원수에 가까운 단어였으니까.

친근한 느낌으로 엄마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에는 아직까지도 과거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심지어 죽다 살아났는데도 불구하고.

"...아가."

"몸은 확실히 애긴 하지. 정신 연령은 이미 먹어도 한참 먹었지만."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타박타박 걸어가, 여자ㅡ 아리엘의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고개를 돌려 저와 눈을 마주치려는 황금빛에 순간적으로 시선을 피할 뻔 했다.

'황금색이라니, 너무 부담스럽잖아.'

그 안에 담겨있는 사랑과 미안함, 안타까움, 그리고 슬픔이 마치 별빛처럼 반짝였다.

이러니까 황금이 아니라 은하수 같기도 하고.

피하려고 했던게 거짓말 같이 그 눈동자에 시선이 머물렀다.

부드럽고, 동시에 처량하게 휘어져 있는 눈꼬리.

오똑하게 솟은 코.

잔뜩 부르텄지만 선명한 붉은색을 잃지 않은 입술.

그리고 투명하다고 느낄 정도의 창백한 피부까지.

"...진짜 예쁘네."

"...아가?"

"그러게, 아가가 아니라니까?"

손을 들어올리자 움찔거리는 모습이 참 가련했다.

마왕이 겁을 먹었네.

겨우 손만 들었을 뿐인데.

자랑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무안함에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확실히, 저번의 일은 조금 심했던 것 같기도 하고...'

과거의 그 일은 설마 마왕이라는 작자의 몸뚱이가 뒷골목의 꼬맹이들보다 약할 줄은 상상도 못해서 벌어진 일종의 사고였다.

어느 누가 마왕이, 잘 봐줘서 마족이 겨우 어린아이가 휘둘러대는 조각상에 갈비뼈가 부러질 거라고 생각하겠어?

분명 아무도 없겠지.

"그러면... 케이?"

"그걸로 충분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모습에 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뭐야, 이 녀석.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성숙해 보이던 얼굴이 지금은 앳되게 변해 있었다.

마법? 아니면 이상한 수라도 쓴 건가?

"왜 그러니?"

"아무것도 아니야."

마왕을 귀엽다고 생각하다니, 미친 걸까.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였는데, 생각 머리를 조금 고쳐먹었다고 이런 인식이 되어버린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무튼, 예쁜 엄마랑 친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

"..."

속내가 너무 뻔히 보이는 질문이었으려나.

어디까지나 아서의 마음을 얻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진짜로 진해지고 싶다는 건 아니었고, 그냥 친해지는 척만ㅡ

"읏?!"

"...흑."

"우, 울어?! 왜?!"

한 아름에 안겨서는 그대로 붙잡힌다.

귓가에 들려오는 흐느낌에 당황해서는 에밀리를 바라보자, 꼴 좋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봐 왔다.

저, 저 빌어먹을 년이!

당장 저 얄미운 면상을 때려주고 싶었지만, 이렇게 꽉 붙잡힌 상태여서야 불가능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가, 아가아아... 흐윽..."

"왜 우냐니까?!"

상정조차 안 했던 상황에 당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빠져나갈 구멍이 없나 찾아봤지만, 지금은 그저 몸을 맡기고 있는 편이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정말, 이게 마왕이 맞단 말이야?

"저기, 진정 좀 해주지 않을래? 나, 누가 우는거 질색이거든?"

"...미안, 하구나."

거짓말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눈물은 기분을 먹먹하게 만들 뿐이었으니 말이다.

슬며시 떨어지는 마왕에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한 마디라도 해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마주친 순간.

"...읏."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저런 표정은 반칙이잖아.

그렇지 않아도 곧바로 사라질 것 같이 아슬아슬한 분위기였는데, 눈까지 촉촉하게 물들이니 이쪽이 엄청나게 나쁜 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마왕이라서 그런지 인간의 마음을 참 잘도 가지고 노는구나.

"뭘 잘 했다고 울어. 바보 아니야?"

"...미안하구나. 나 때문에, 그리고 동족들 때문에 너희들을 고통 받게 만들어서. 그리고, 죽게 만들어서."

진심 어린 사죄였다.

물론 어떤 말을 해도 용서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이었지만, 이야기를 듣는 것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더 이상은 아무도 죽지 않게 하려고 했는데, 내가 너무 멍청해서... 그리고, 너무 한심해서 그렇게 하지를 못했구나."

뜨거운 눈물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특유의 서늘한 체온을 지닌 마족의 눈에서 떨어져 내렸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뜨거움이었다.

그 열기가 피부에 닿는 순간 흠칫 놀라 마왕을 바라보면, 잔뜩 일그러진 얼굴에서 진한 슬픔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라일라가, 라일라가 나 때문에... 내가, 내가, 흑..."

겨우 막아두고 있던 감정의 둑이 터져나간다.

자그마한 구멍은 거대한 균열이 되어 그대로 케이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나 때문에 죽었어.

내가 쓸모 없을 정도로 약해서 죽었어.

스스로의 영혼을 깎아내는 듯한 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증오하고 저주하는 단어의 연속에 케이가 입술을 짓이겼다.

'내가 나빠서 이렇게 된 거지?'

'아빠, 내가, 내가 나빠서 이런 거지? 내가 나빴으니까 이렇게 벌을 받은 거야.'

'엄마,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잘못했으니까 제발 버리지 마세요! 착한 아이로 지낼 테니까! 아빠한테도 제대로 사과 할 테니까, 제발!!'

아아, 그래.

이제야 알 것 같네.

내가 왜 증오스럽기 그지 없는 마왕 따위를 죽이지 않고 가만히 놓아두고 있는지.

빌어먹을 마족 따위의 체온에 왜 몸을 맡기고 있는지.

목숨을 앗아간 원수의 설움을 이토록이나 받아내고 있는지.

전부 알 것 같았다.

"네 탓이 아니야."

"..."

"당신 탓이 아니야."

당신도 알고 있잖아.

이 모든 건 그저 사고일 뿐이라는 것을.

지독한 우연에 우연에 겹쳐서 일어난 불행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잖아.

그저 다른 사람의 탓을 하고 싶지 않아서.

거듭되는 불행에 언제나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탓을 하고 있는 거잖아, 안 그래?

"겨우 그 정도에 울거면 마왕 때려쳐."

"...마왕 따위, 되고 싶지 않았어."

"좋아. 그러면 지금부터 그만두면 되겠네."

"..."

마왕ㅡ 아니, 아리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렇게 보니까 여태껏 마왕은 어떻게 해온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달까ㅡ

참으로 멍청한 얼굴이었다.

여태껏 이런 녀석을 증오한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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