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89화 (189/342)

Chapter 189 -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3)

"우리 예쁜 엄마, 그렇게 울고 있으면 마족이 잡아간다?"

"...그렇다기에는 나도 마족이다만."

능글맞게 말하는 케이에 슬쩍 말꼬리를 잡았지만, 별로 효과가 있지는 않았다.

내가 라일라를 떠나보낸 뒤부터 친근하게 들러붙는 아이에 무슨 반응을 해야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색해.

하지만, 어색한 것 이상으로 아이가 친근하게 굴어주는게 좋았다.

"마왕이라는 건 원래 이렇게 예쁜 거야? 딱히 관리를 하는 것 같지도 않던데."

"...저, 그."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마족으로 태어날 걸 그랬네. 아아, 아쉬워라~"

"...하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제 할 말만 하는 아이였다.

조금 과장을 섞어서 말하는 것 같기도 한데, 또 진심인 것 같기도 해서 그만 하라고 타박할 수가 없달까.

...예쁘다는 칭찬은 그만 해줬으면 좋겠지만.

'...이래서야, 슬퍼할 정신도 없네.'

라일라를 떠나보낸지 얼마나 지났다고, 정신이 조금이지만 괜찮아졌다.

원래라면 아직까지 땅을 파면서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있었을 텐데, 옆에 하루 종일 칭찬만 해대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우울할 틈이 없었다.

어쩌면 그걸 노리고 하는 행동들일지도 모르겠지만.

"엄마."

"으, 응?"

불쑥 튀어나오는 얼굴에 반사적으로 이상한 목소리가 튀어나갔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지 모르겠지만, 부담스러우니까 조금 뒤로 가주지 않을래?

조심스럽게 아이의 어깨를 밀어내려고 하자 그대로 손목을 붙잡혔다.

"혹시 아서 버리고 나랑 같이 살 생각 없어?"

"..."

진심인지 놀리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와 말투였다.

표정도 그렇고, 하나 같이 진짜 같네.

속으로는 나를 엄청나게 싫어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분명 좋은데, 싫어. 그냥 처음처럼 나를 싫어하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들에게 사랑 받고 싶다는 욕망과 더불어, 증오를 품었던 상대가 주는 호의를 믿을 수 없다는 의심이 잔뜩 뒤섞였다.

받아들이고 싶은데도 차마 받아들일 수 없다고나 할까.

...이것들도 전부 내 문제였지만서도.

"자, 이런 거 말고ㅡ"

"안 돼!"

내 왼손 약지에서 반지를 빼려는 손길에, 반사적으로 손을 빼내 품 안에 꼭 껴안았다.

"...이건, 안 돼."

"......"

내가 얻어낸 최고이자 유일한 행복.

그것이 설령 내 아이라고 한들 절대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이건 유일하게 내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물건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이 정도 욕심 정도는 괜찮잖아?

하나 정도는, 가져도 되는 거잖아.

"진심으로, 아서를 사랑해?"

"응."

즉답이었다.

만약 이 세상에 100명의 남자가 있다고 한들, 나는 아서를 사랑할 터였다.

1000명의 남자가 있었어도 나는 오로지 그만을 사랑했겠지.

어쩌면 아서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해도 내가 후회할 일은 없을 터였다.

절대로.

"에밀리한테는 전부 들었어. 그 녀석이 너에게 한 일들. 지금까지 대충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그런데도 그 녀석을 사랑한단 말이야?"

케이의 얼굴에는 조금이지만 한심함이 들어차 있었다.

동시에 아서를 향한 약간의 혐오감도 함께.

에밀리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말할 걸 그랬으려나.

아니, 이건 전부 당시의 이야기를 할 거라고 상상도 못한 내 잘못이겠지.

"응. 이 세상 누구보다, 아서를 사랑해."

만약 나를 시험할 생각이었다면, 혹은 포기하게 만들 생각이었다면 단어의 선택이 틀렸다.

차라리 너 따위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더 효과가 좋았을지도 몰랐다.

나 자신 조차도, 조금 정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바보 아니야?"

물론 케이는 불만이라는 듯한 얼굴이었지만서도.

***

보면 볼수록 정이 든다고 했었나?

처음에는 그렇게나 혐오하던 마왕이었는데, 계속 보니 조금은 예뻐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불쌍해 보였다는게 맞는 말이었지만서도.

"진짜 그런 짓을 했다고?"

"...그래."

"그런 주제에 그 여자 앞에서 잘도 고개를 들고 다니네. 역시 철면피 하면 따라올 사람이 없으신 마법사님 아니랄까봐."

케이가 가장 대화를 많이 나누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에밀리였는데, 여기까지 같이 온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극과 극이 느끼는 동질감 때문이었다.

동시에 한 번 죽었다가 아리엘의 몸을 빌어 다시 태어났다는 것까지 같았고.

"한 마디만 더 하면 죽여버릴 거야."

물론 놀릴 때의 반응이 좋다는 것도 한 몫 했지만.

"저 여자, 진짜 마왕이 맞는 걸까. 갑자기 어디선가 자기가 진짜 마왕이라고 말하는 녀석이 튀어나오거나 하지는 않겠지?"

"...모르지, 그건."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마왕을 바라보며 에밀리가 숨을 토해냈다.

다른 마족들에 비해 한참이고 부족한 힘과 신체 능력.

그렇다고 특이점이 없냐고 한다면 또 그렇지도 않았다.

'아직까지 살아있을 수 있다니, 어떻게?'

반은 인간이고 반은 마족이신 스승님조차 뿔이 잘린 뒤로는 수명에 한계를 느끼시지 않았던가.

그런데, 순수 마족인 존재가 뿔이 잘렸음에도 여태껏 살아있을 수가 있다고?

피를 토하고, 현기증을 호소하는 시간이 많아지는데도 어떻게든 그 생명을 연장시키는 모습이란.

"살고 싶어서 어떻게든 발버둥치는 마왕이라..."

슬쩍 손을 뻗어 찡그려져 있는 미간을 슬슬 문질렀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좋은 내용은 아니겠지.

며칠 동안 본 바로는 잠을 자기만 해도 울 정도로 지독한 악몽에 시달리는 모양이었다.

"손 대지 마."

찰싹,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나가는 손에 표정을 찡그린다.

너무 과보호 아니야?

그런 짓까지 한 주제에.

손등에서 느껴지는 얼얼함에 상대를 노려보니, 상대 또한 지지 않고 마주 노려봐왔다.

"자기가 보호자라도 된다는 듯이 행동하지마, 역겨우니까."

"...하."

한 차례 불꽃이 튀었다.

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천재 마법사께서는 뒷골목에서 몸이나 팔아먹던 창녀를 믿지 못하시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토록 귀하신 몸이시니까.

품 안에 잠들어 있는 단검의 위치를 가늠하며 얼마든지 뽑아들 준비를 마쳤다.

적당히 팔 정도만 망가뜨리고 잔뜩 괴롭혀 줄ㅡ

"정말, 또 싸우고 계신 건가요?"

"읏..."

"저 녀석이 먼저 시비 걸었어."

순식간에 뒷덜미를 잡혀서는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졌다.

과거 일행이었던 이들 중에서 가장 변화가 심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분명 엘리겠지.

평소라면 둘이 싸우는 모습을 봐도 그저 웃어 넘겼을 사람이 이제는 손을 들어 말리기까지 한다.

머리에 쓰고 있는 베일이 아니라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복장이 바뀌기도 했고.

"아리엘 씨 주무시고 계시니까, 싸우실거면 나가서 싸우시죠."

"..."

"봐, 진짜 보호자란 이런 거니까."

마왕이 정말 소중하다는 듯이 구는 엘리도 엘리였지만, 일단 지금은 저 망할 마법사님을 놀려주는게 우선이었다.

당장에라도 자신의 얼굴을 불태우고 싶다는 표정이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쉽게 마법을 쓸 정도는 아닐 터였다.

만약 쓸거면 진즉 썼겠지.

"아리엘 씨, 아리엘 씨?"

"...응, 으응?"

"식사 하고 주무세요. 상처가 나으려면 잘 먹어야 한다구요?"

엘리는 어느 때는 친구 같이, 어느 때는 언니 같이, 또 어느 때는 엄마 같이 굴었다.

물론 그것도 전부 마왕 한정으로 보이는 모습들이기는 했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에 괴리감이 들 정도였다.

내가 기억하는 엘리는 언제나 미소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기만 했는데 말이지.

고귀하신 성녀께서 이토록 인간 친화적ㅡ 아니, 마왕 친화적으로 바뀐 줄은 상상도 못했달까.

"지금은 별로 배가 고프지 않구나."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어야 해요. 봐요, 이렇게 비쩍 말라서는."

이게 과연 타도 국왕, 타도 여신을 위한 여정인 걸까.

지금 눈앞의 상황만 본다면 곧 죽는 시한부 환자를 위한 최후의 여행인 것 같은데 말이지.

눈에 띄게 수척해진 마왕에 혀를 끌끌 찼다.

저렇게 약해서야 이 험난한 세상에서 대체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딱히 걱정을 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이대로 죽어버리면 조금 찝찝할 것 같아서 그럴 뿐이지.

"자, 어서 먹으러 가요. 용사님도 기다리고 계시니까."

"...응."

아서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눈동자에 생기가 도는 마왕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혹시라도 아서를 속여서 무언가 이루고 싶은게 있었나 싶었지만, 저 정도로 진심이어서야 의심하고 싶어도 의심할 수가 없었다.

진심으로 아서를 사랑하는구나.

그런 짓을 당했는데도.

"...왜?"

엘리의 손에 이끌려 가던 마왕이 잠시 멈춰서더니, 자신과 에밀리를 향해 조심스럽게 시선을 보냈다.

"같이 먹으러 가자꾸나."

"됐ㅡ 아니, 그래."

거절하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서글퍼지는 눈동자에 결국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옆에서 웃음을 참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팔꿈치로 명치를 찔러주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래, 뭐.

밥 정도는 같이 먹어줄 수 있지.

"야, 콜록, 거기 안 서?! 야, 야!!"

아아, 안 들린다. 하나도 안 들려.

뭐, 천재 마법사님이시니 명치 좀 얻어맞아도 금방 회복하고 나오실 수 있겠지.

설마 뒷골목 창녀한테 맞았다고 한참 동안 빌빌 기겠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