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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90화 (190/342)

Chapter 190 -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4)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흘렀다.

"긁지마."

"..."

"긁지마, 덧나니까."

"..."

"긁지 말라니까?!"

신경질을 내며 손을 붙잡았다.

상처가 어떻게든 아물기는 하는데, 아무는 상처가 가렵다고 마구 긁어내리기나 하다니.

무슨 어린애야?

그새 터져서 붉은 피를 뚝뚝 흘려대는 손가락에 혀를 찼다.

"관심이 필요하면 아서한테나 가서 그래. 내 앞에서 그러지 말고."

"...미안."

"미안하다고 할 시간에 손이나 가만히 놔둬."

짜증 섞인 한 마디에 몸을 움츠리는 꼴이란.

왕도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아리엘의 상태는 점점 나빠져만 갔다.

몸은 괜찮았지만, 주로 정신이.

매일마다 악몽을 꾸는 건 일상에, 가끔 제 입술을 물어뜯거나 목덜미를 긁어내리기도 했다.

숨 쉬는 것 자체를 답답하게 느낀다고 제 목에 구멍을 내려고도 했고.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와? 아니면 뭐, 죽고 싶다는 거야?!"

"..."

에밀리의 인내심은 별로 깊지 않았다.

특히 그 상대가 마왕ㅡ 아리엘이라면 더더욱 그랬고.

그녀를 볼 때마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나무늘보가 떠올랐다.

그것도 상처를 아주 잔뜩 입은 어린 나무늘보.

조금이라도 시선을 떼면 죽어버릴 것 같은데, 그렇다고 보고 있기에도 속이 터져 보는 사람이 죽어버릴 것 같은 느낌.

겨우 이런 정신으로 누구를 구하겠다느니 뭐니, 웃기지도 않았다.

"정신 차려, 멍청아. 대체 너 때문에 몇 명이나 더 고생해야 하는ㅡ"

"자, 자. 우리 천재 마법사님께서 말씀이 조금 심하시네."

"...이거 안 놔?"

하지만 그녀의 독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을 맞이했다.

소리도 없이 나타난 케이가 그대로 에밀리를 제압하더니, 그대로 구석 저 멀리 내던졌다.

자그마한 비명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별로 신경 쓰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저 망할 마법사 따위가 아니라 눈앞의 마왕이었으니까.

"손이 못생겨졌네. 예뻐져야지, 응?"

"...미안."

"엄마가 다쳤는데 왜 나한테 사과를 해? 그 그림자 자식이 엄마한테 사과해야지. 물론 지금은 죽고 없어서 사과 같은 걸 하지는 못할 테지만."

뒷골목에 흘러들어온 코흘리개를 달래듯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이제는 엄마라는 단어도 익숙해졌구나.

아무리 말해도 구역질은 커녕 거부감조차 들지 않게 되어버리다니.

웃기는 여자라니까, 진심으로.

"자, 밥 먹으러 가자. 오늘은 엘리가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고맙구나."

"그래, 잔뜩 고마워 하라고."

제 손을 잡고 일어서는 마왕의 무게는 그 무엇보다 가벼워서, 과연 살어있는 사람인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면 얼굴도 창백하고, 잡고 있는 손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죽어간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질 정도로.

"...그리고, 어디 아프면 바로 바로 말 하고."

"...그래."

어쩌면 그저 라일라가 죽은 것만이 이유의 전부가 아닐지도 몰랐다.

마족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죽어간다는 감각은 그 무엇보다 고통스럽고 괴로울 테니까.

물론 그건 본인 또한 겪어봤기에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 죽는 건 무섭지.

곧바로 오는 것도 아닌 천천히 찾아오는 죽음이라면 더더욱.

"아, 오셨네요, 아리엘 씨."

앞치마를 두른 엘리가 빙긋 웃으며 마왕을 맞이했다.

마왕을 위해서라는 목적 하에 열심히 노력해서 만들어진 음식들이 제 위장을 잔뜩 자극해댔다.

진작부터 이렇게 만들었다면 타도 마왕 시절에 맛 없는 식사를 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때의 식사는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해서라는 느낌이 강했으니까 말이지.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따뜻한 음식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힘이 없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집어드는데, 금방이라도 떨어뜨릴 것 같아서 불안하다고 할지ㅡ

땡그랑.

역시.

"...미, 미안."

"괜찮아요, 아리엘 씨. 여기 새 숟가락ㅡ"

땡그랑.

"왜, 왜 이러지? 아하, 흐, 흐읏..."

잘게 경련하는 손을 반대쪽 손으로 움켜쥐지만, 겨우 그 정도로 멈출 리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잡고 있는 쪽의 손도 엉망으로 떨리고 있잖아.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 표정의 마왕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귀찮은 엄마구나.

"자, 아."

"..."

"아, 하래도? 숟가락을 못 쥐는 엄마에게 주는 선물이니까, 잔말 받고 입 벌려."

안 그러면, 강제로 벌려서 먹인다? 그건 싫지?

빙긋 웃으며 말하니 더듬더듬 입을 벌려댄다.

마치 아기새가 모이를 찾는 것처럼 조막만하게 벌려진 입 안으로 숟가락을 슬쩍 집어넣었다.

옳지. 그렇게 먹어, 그렇게.

"맛있어? 내가 먹여주니까 더 맛있지?"

"...응."

자그맣게 튀어나오는 대답이 어찌나 귀엽던지, 순간 스스로가 및친 줄만 알았다.

설마 서큐버스라던지 그런 건 아니지?

꼬리나 날개가 없는 걸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는데, 사람을 홀리는 짓은 아주 자연스럽게 잘 했다.

어딘가의 몰락 귀족 같은 말투와 평범하게 내뱉어지는 말투의 괴리감이 상당하다고나 할까.

아서도 그것 때문에 끔뻑 넘어간걸까 싶기도 하고.

"자, 한 번 더 먹어."

"아."

"그래, 옳지. 옳ㅡ"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게 있다면, 마왕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일까.

"콜록, 콜록 콜록!! 으, 우에에엑..."

방금 전에 먹은 음식은 물론 피까지 쏟아내는 모습에 손에 들린 숟가락이 붉게 물들었다.

이렇게 여유부리고 있을 시간 없어.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곧 있으면 죽는다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마왕의 몸뚱이가 전력을 다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리엘 씨!!"

엘리가 달려들었다.

바닥에 주저앉아서는 덜덜 떨고 있는 몸뚱이에 손을 얹더니, 천천히 맥박을 재기 시작했다.

그런 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품 안으로 손을 넣었다.

'고통스러워하게 그냥 둘 바에는 그냥 깔끔하게 끝내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이건 일종의 자비나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면, 차라리 더 이상 고통을 받기 전에 빨리 죽는 편이 그녀에게도 이로울 터였다.

죽느니만 못한 고통은 주변의 이들까지 힘들게 만들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주변의 이들이 힘들어지면 받을 고통은 더 늘어날테고.

"에, 엘리..."

"아리엘 씨, 지금은 말을 아끼세요. 피가, 피가 계속 나오니까ㅡ"

"나, 나 죽고 싶지 않아..."

가느다란 손길이, 온 힘을 다해 엘리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절박함에 그녀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지만 눈앞의 이를 두고 차마 눈물을 흘릴 수 없는 것 같달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었다.

애쓰는구나, 정말이지.

"몸을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야? 잘려진 뿔을 붙인다던지 그런 것들."

"...불가능해요. 신성력이 아니라면ㅡ 아니, 신성력이라고 해도 잘려진 뿔을 다시 붙이지는 못하겠죠."

하나 뿐이라도 뿔만 다시 이어붙일 수 있다면 충분히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 터였다.

뿔은 마족의 두 번째 심장이라고, 심장이 하나도 없는 것보다는 그나마 반쪽이라도 있는 편이 나을 테니까.

"그러면, 신은 어때? 예를 들자면, 여신이라거나."

"...여신이라면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ㅡ"

역시 안 되겠지.

애초에 용사를 선택한 것도 여신.

성검을 내려준 것도 여신.

마왕을 처단하라고 부탁한 것도 여신이었으니까.

그 여신이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마왕의 뿔을 치료해주는 일 따위 하지 않을게 분명했다.

하지만, 여신이 아니라면?

"마신은 어때?"

꼴에 마족들의 신이니까 불러내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도움을 주지 않을까.

물론 마신 또한 다른 마족들처럼 피와 살육만 쫒는 미친 녀석일지도 몰랐지만, 마왕 같은 경우도 있으니 사실은 좋은 신일지도 모르지.

여신처럼 정신 나간 신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서도.

"분명 마신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으흑."

"아니, 가능해야만 해요. 그게 아니라면, 더 이상 희망은 없으니까."

애초에 여신을 처단하기 위해서는 불러내야만 하는 존재였다.

그저 우선 순위가 뒤바뀔 뿐이었지.

예를 들자면 마족 아이를 구하거나, 바로니스 국왕을 치기 전에 마신을 소환한다던지 하는.

"왕도로 가죠. 최대한 빨리."

"..."

신중을 기해서 나아가야 할 때였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왕도에 도착하기도 전에 마왕이 죽어버리고 말 테니까.

그렇게 허무하게 마왕이 죽어버리는 건, 아서나 엘리에게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결과가 될 터였다.

그렇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속도를 낼 수밖에 없겠지.

사지를 향해.

그리고, 지옥을 향해.

"어째, 아서나 너나 마왕을 토벌하러 갈 때보다 더 무모해진 것 같네. 그때는 최소한 생각이라는 걸 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그만큼 마왕이 저 둘에게 소중한 존재하는 뜻일까.

두 사람이 지금까지 무슨 과정을 겪어온 건지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이 참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만약 자신도 그 과정을 같이 경험했다면, 엘리나 아서처럼 마왕을 각별히 여기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었지만서도.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에요. 그것만이, 가장 소중한 친구를 살릴 수 있는 길이니까요."

소중한 친구, 소중한 친구라...

성녀의 가장 소중한 친구, 마왕.

"재밌네."

재밌는 걸 놓칠 수는 없으니, 나도 같이 가야겠어.

그래도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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