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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92화 (192/342)

Chapter 192 -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6)

어디로 간 거야.

언제나 내 옆에 있겠다고 약속 했잖아.

전신을 물들인 식은땀에서 기분 나쁜 냄새가 풍겨왔다.

시큼하고, 동시에 시체 썩은 냄새를 풍기는 몸뚱이에 순간 구역질이 치솟았다.

"아서, 아서, 아서...!!!"

이불을 그러쥐고는 하염없이 외쳤다.

이건 꿈일까.

내가 너무 그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겪고 있는 악몽일까?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손을 붙잡고 있었는데,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거야.

설마 나에게 질려버린 걸까.

아니면 내 죽음이 두려워져서 도망친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ㅡ

"나, 나 버리고 가지마... 아서, 아서어어어어!!!!"

"아리엘?"

"흣?!"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이 찢어져라 이름을 부르니, 문이 열리고 가장 보고 싶었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 갔던 거야.

내가 깨어날 걸 생각해서 옆에 있었어야지, 응?

"아, 앞으로 어디 가지마. 응? 응?!"

"조심해, 그러다가 떨어지겠어."

상체를 휘적이며 몸을 움직이니, 아래로 곤두박질 칠 뻔한 것을 아서가 붙잡아줬다.

싸늘한 몸체가 맞닿는 사람 특유의 따스한 온기에 경직되었던 정신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이게 없다면, 나는 바로 죽어버리고 말 거야.

응, 분명 그러겠지.

"...어디 갔다가 온 거야?"

"잠시 근처를 조금..."

아서가 말을 얼버무렸다.

무언가 숨기는게 있는 것 같았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만약 나에게 비밀이 있다면 그건 나를 걱정하게 만들 것 같은 무언가거나, 나를 위한 일이겠지.

안도의 한숨을 토해내며 몸에 담겼던 힘을 쭉 풀어냈다.

혼절하는 사람처럼 흐물흐물 늘어지는 몸뚱이를 받친 아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괜찮아?"

"...응. 훨씬 낫네."

악몽을 꿨다.

할리벨이, 그리고 린이 나를 보며 손가락질을 하는 꿈이었다.

분명 떨쳐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지.

죽음이란 영원한 잠이라고 했던가.

현실에서 도망쳐 꿈 속의 세계에서만 살고 싶었던 내 마음과는 다르게, 잠이라는 것은 나에게 행복한 꿈 같은 건 단 한 조각도 허락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마치 현실 세계에서 끝낼 일이 있지 않느냐는 듯이 계속 다그치고, 협박하는 듯한 꼴에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아서."

"...응, 아리엘."

"아무래도 끝을 봐야할 것 같구나."

이제 곧 있으면 끝을 보게 될 터였다.

그것이 과연 비극으로 끝날지 희극으로 끝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겠지만, 종지부를 찍게 된다는 것 만큼은 확실했다.

"...아리엘, 왕도를 돌아다니며 여러 정보들을 모았어."

바로니스 국왕이 사람들을 납치해 교단으로 끌고 간다는 이야기를.

마신의 소환 의식을 위한 재료들을 준비하는 것이 분명할 터였다.

그저 추측일 뿐이었지만, 바로니스 국왕은 우리들이 왕도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가마."

"안 돼."

"내가 아니면 안 된다. 아니, 상황 자체가 나만 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구나."

얼마 전이라면 몰라도 뿔을 몸에서 떼어내게 된다면 반드시 죽게 될 터였다.

토혈을 쏟아내는 순간부터 떼어낸 적이 없었기에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그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붙잡힌 마족 아이를 먼저 구하고 싶었지만, 그 아이를 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죽어버린다면 지금까지의 여정이 아무런 쓸모도 없어지게 되겠지.

아니, 어차피 그 아이 또한 교단에 있을 터였으니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전부 해내면 될 뿐이었다.

"내가 가마. 대신, 바로니스 국왕을 맡기마."

비틀거리는 몸체를 억지로 일으켜, 두 다리로 바닥을 내딛었다.

다른 마족들에 비하면 단 한 줌 정도 밖에 되지 않는 힘과 몸뚱이였지만, 지금 만큼은 사력을 다해 전부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마신이 과연 나를 회복시켜줄 수 있을까.

불확실한 미래에 모든 것을 걸어대는 꼴이라니.

"함정일지도 몰라."

"함정이라도 가야지. 가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어버릴 테니까."

차라리 세계수의 곁에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었을까.

인간이라는 생물은 궁지에 몰리면 언제나 만약의 경우를 상상한다고, 지금 내 꼴이 딱 그런 것을 보니 나도 인간은 인간인 모양이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쪼개야겠네."

방 안을 들어온 에밀리가 운을 띄웠다.

내 비루한 몸뚱이가 무사히 의식을 위한 장소로 향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자신이 따라붙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확실히, 그녀의 마법이 있다면 약간의 주의 정도로도 충분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아서가 너무 무방비하게 노출된다는 점이 문제였다.

"선턱해야해. 내 상태가 정상이었다면 마구잡이로 마법을 쏟아내서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간단한 마법 정도를 사용하는게 전부니까."

"퍽도 자랑이다. 자폭하려고 그 꼴이 된 주제에 당당하게도 말하네, 멍청하게도."

"...닥쳐, 쥐새끼."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케이와 엘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나와 같이 에밀리를 도발하는 케이와 말 없이 나를 응시하는 엘리까지.

한 자리에 모이게 된 일행들에 괜히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러고 보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전부 용사 파티라고 불렸던 전적이 있구나.

마왕도 같이 있다는 사실이 꽤 아이러니 했지만서도.

"아무튼, 1차적인 목표는 마신을 불러내는ㅡ"

쿵!!!

"...빌어먹을."

여유를 부릴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근처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귀를 틀어막자, 에밀리가 손가락을 잘게 떨며 이를 갈고 있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겠지만, 걸렸어. 빨리 움직여야해. 지금 당장!"

"아리엘을 부탁할게, 다들."

"아서?!"

가장 먼저 뛰어나간 것은 아서였다.

그의 뒷모습을 붙잡기 위해 뻗어진 손은 엘리에 의해 곧바로 가로막혔다.

어째서, 어째서?!

망연한 얼굴로 상대를 바라보자, 엘리가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지금은 마신을 불러내는 것이 우선이에요.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용사님이시라구요? 분명 무사하실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리엘 씨."

"그래, 그랬지... 용사, 였지..."

무려 마왕을 쓰러뜨렸던, 마족들을 도륙내고 다니던 그 용사니까.

그러니까 분명 무사할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서둘러 움직이죠."

"...동감이야. 큭, 젠장."

엘리가 나를 업고, 케이가 에밀리를 업는 모양새로 순식간에 바깥으로 뛰쳐나간다.

머리에 뿔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이들이 근처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보였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 이쪽에 관심을 주는 이가 없었다.

분명 에밀리의 마법 덕분이겠지.

"그런데, 위치에 대해서 들은 건 있어?!"

"교단이라고 들었다. 바로니스 국왕이 사람들을 잡아서 교단으로 끌고 간다는ㅡ"

그런데, 어째서 교단이지?

아니, 지금은 그런 것 따위를 생각할 때가 아니야.

집중해.

집중하고, 의식을 잃지 않도록 정신 똑바로 차려.

"천재 마법사님, 뭔가 다른 마법은 사용할 수 없는 거야?!"

"지금은 이 정도로도 한계야! 정신 사나우니까 말 걸지 말라고, 쥐새끼!"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다.

엘리 쪽은 별로 지친 기색이 없었지만, 케이 쪽이 문제였다.

순수한 인간의 육체ㅡ 그것도 어린아이의 몸을 지닌 케이가 그 등에는 에밀리까지 업고 있었으니 그만큼 지치는 속도도 훨씬 빠른 모양이었다.

"...큭, 조금만 더ㅡ"

"에밀리?!"

교단이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주변을 배회하던 이들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우리들을 향했다.

마법이 풀렸구나.

식은땀을 흘리며 축 늘어져 있는 에밀리의 모습에 심장이 쾅쾅 뛰어댔다.

"엘리, 교단의 지리는 네가 잘 알고 있잖아?"

"그건 그렇지만ㅡ 읏?!"

하늘을 날듯이 날아온 에밀리를 받아낸 엘리가, 잘게 떨리는 눈동자로 케이를 바라봤다.

겪어본 적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도 분명 넝마가 된 에밀리를 케이가 던지고, 자신이 그걸 받아내다가 넘어진 기억까지 있었더랬지.

"어쩔 수 없잖아. 이런 일도 해본 사람이 잘 한다고, 그렇지?"

"케이ㅡ"

"가!!! 마음 변해서 도망치기 전에!!"

케이의 품에서 날카로운 단검이 뽑혀져 나왔다.

아아, 세상이란 것은 이 얼마나 잔혹한가.

어째서 과거의 비극을 다시 한 번 겪게 하는가.

이를 악문 엘리가 그대로 몸을 날렸다.

"케이!!!!"

아리엘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사방을 가득 채웠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멈춰버리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허사로 돌아가게 될 테니까.

더 이상 멈출 수 없었다.

아리엘 씨를 회복시켜야만 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

"...가란다고 진짜 가버리다니, 역시 너무한 녀석들이라니까."

홀로 남겨진 케이가 마족들을 바라보며 하하, 하고 웃음을 토해냈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갈비뼈 값 정도는 충분히 치를 수 있겠지.

거슬러 받을 잔금이 없다는게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서도.

"아아, 어떻게 죽어야 우리 예쁜 엄마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겨질 수 있을까나~"

손에 쥐여진 칼날이 날카로움을 품고 번뜩였지만,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잘게 떨려오고 있었다.

...한 번 죽어보기는 했지만, 역시 죽는 건 무섭구나.

그런 의미에서 길동무 한 둘 정도는 괜찮겠지.

눈앞에 둔 적들을 상대로, 케이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다시 만나서 반가웠어,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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