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3 - 마신.(1)
머리가 어지러워.
분명 교단 안으로 들어온 것 같은데, 너무 어두워서 어딘지를 모르겠어.
아니,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가 있나?
엘리의 품 안에 안겨서는 한참이고 거친 숨을 토해냈다.
고통스러워.
아파.
죽을 것 같아.
"...괜찮으세요?"
"...으."
주변이 너무 더웠다.
몸을 뒤덮고 있는 옷가지들이 뜨거워, 느린 움직임으로 전부 떨쳐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ㅡ
"몸이 불덩이에요, 아리엘 씨."
"..."
주변이 더운게 아니라 내 몸에서 열이 나고 있던거였구나.
헛웃음을 토해내며 팔을 축 늘어뜨렸다.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
당장에라도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어서, 반쯤 오열하는 듯한 목소리로 엉엉 울었다.
"엘리, 나, 나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어... 너무 아파서, 이제 그만ㅡ 흑..."
"조금만, 조금만 참으세요. 바로 앞이니까, 네?"
짙은 피 냄새가 바로 앞쪽에 있다며, 엘리가 나를 어르고 달랬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 이 정도로 칭얼거린다는 건 조금 부끄러울 법도 했지만, 지금은 자존심 같은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온 몸의 세포를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면 조금 설명이 될까.
차라리 죽는게 더 나을 정도의 통증이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 느낌, 느껴본 적 있어.'
언젠가 겪은 격통.
여신이 지닌 신성력이 내 몸뚱이를 쑤셔댈 때 느끼던 감각이었다.
설마 교단 안이라서 그 녀석의 영향력이 나한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걸까.
어쩌면 다른 이들의 예상이 맞을지도 몰랐다.
마신은 여신의 천적이다.
혹은, 마신이라면 여신에게 대응할 수 있다.
"바로 앞이에요, 이제 조금만 더 가면ㅡ"
"어디를 그렇게 급히 가십니까?"
바로 앞.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느다랗게 떠진 눈동자가 붉게 빛나고,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에서 질척한 핏덩이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조금 전까지 살아있던 무언가를 도착해낸 사람처럼, 상대의 몸뚱이에는 붉은 선혈이 가득했다.
"빅토르 경!"
"설마 이곳으로 향할 줄은 예상도 못 했지만, 필요한 것이 직접 찾아오니 기분이 꽤 좋군요."
깔끔하게 뒤로 넘어간 머리카락을 따라 쓸어내며 빅토르가 기분 좋은 웃음을 토해냈다.
그 웃음의 순수함은 마치 어린아이가 곤충의 날개를 뜯어낼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 순간적으로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날 정도였다.
미친 놈.
분명, 미쳐도 단단히 미친게 틀림 없었다.
"마왕님과 성녀님이 이토록 각별한 사이일 줄은ㅡ 어라, 마탑의 마법사 분도 계셨군요. 분명 죽은 줄만 알고 있었는데 설마 그런 모습으로 살아계실 줄이야."
"...큭."
"설마 되살아나기라도 하신 겁니까? 정말 대단하시군요.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된 죽은 자의 부활을 이뤄내다니. 역시 대륙 역사상 최고의 천재 답군요."
엘리의 등 뒤에 매달린 에밀리가 상대를 보고는 기분 나쁘다는 듯한 소리를 토해냈다.
당연히 그러겠지.
저 수상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나 행동거지를 본다면 그 누구라도 기분이 나쁠 테니까.
"아리엘 씨, 죄송하지만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셔야 할 것 같아요."
"...엘리."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나를 바닥에 내려주는 엘리에, 마른침을 삼켰다.
나 혼자 가도 되는 걸까.
너를 두고, 이렇게 혼자 가도 되는 거야?
상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지금껏 성녀로 지내왔던 엘리보다는 훨씬 잘 싸울 터였다.
아니, 그래도 마족의 신체를 가지고 있으니 괜찮을지도 모르지.
"내가 같이 갈게."
"당신 상태도 별로 안 좋으면서ㅡ"
"...네 등에 업혀 오면서 어느 정도 회복 했어. 그리고, 내가 여기에 있으면 오히려 너한테 방해일걸?"
엘리의 등 뒤에서 뛰어내린 에밀리가 조금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내 앞에 섰다.
여전히 식은땀으로 젖어있는 가녀린 몸이 신경 쓰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잖아, 에밀리.
무리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제발ㅡ
"빨리 가기나 해. 시간을 계속 끌다가는, 아무런 의미 없이 와버린게 되니까. 알겠어?"
"...그래."
작은 속삭임에, 어떻게든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한 가지.
일자로 주욱 이어진 복도를 막고 있는 저 빌어먹을 신부 녀석이 문제였다.
"지나가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ㅡ"
쾅!!!
"어서 가세요!"
"이런, 못 본 사이에 상상 이상으로 야만스러워지셨군요. 성녀님."
"이미 성녀라는 이름은 버렸습니다, 빅토르 보르곤체프!"
커다란 굉음과 함께 빅토르의 몸뚱이가 주욱 밀려났다.
신경질적으로 일그러면 표정과 함께, 엘리가 제 손목을 탈탈 털어댔다.
길이 열렸어.
마치 납덩이를 달아놓은 것처럼 전신이 무거웠지만, 어떻게든 걸음을 옮겨낼 수 있었다.
"괜찮아?"
"...이제 마지막이니까, 견뎌낼 수 있ㅡ 큭, 크헥, 흑..."
붉은색이 아니었다.
이제 완전히 흑색을 띄는 핏덩이에 에밀리의 눈이 하염 없이 떨려왔다.
"너, 설마ㅡ"
"..."
천천히 다가온 손이 내 손목을, 그 다음에는 가슴을 짚었다.
두근거리는 맥동이 느껴졌다.
내 것이 아닌, 에밀리의 것이.
이 고독한 공간 내에서 울려퍼지는 건, 안타깝게도 그것이 전부였다.
"하, 웃기지도 않네."
어처구니 없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생명체라는 것이 심장이 멈춰도 움직일 수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일단 가자. 일단 가서, 마신을 강림시킨 다음 네 웃기지도 않은 몸뚱이를 되살리던지 뿔을 붙이던지 해야지. 응?"
"...응."
잘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품 안의 뿔을 꺼내들었다.
예쁘구나.
맑은 보라색으로 빛나는 뿔조각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북부에서 출발할 때 먹어치웠던 마족의 머리통.
아무래도 그것 덕분에 여태까지 연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동족을 먹어치운 것이 이 정도로 도움이 될 줄이야...'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문을 향해 슬쩍 손을 뻗었다.
분명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는 밀어낼 수 없는 크기의 문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쉽게 열렸다.
"악질이네, 진심으로."
피로 그린 마법진.
찢겨진 심장.
곳곳에 놓여져 있는 마석.
그리고 마족들의 뿔.
생명체의 부산물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집합체에, 구역질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이것들로, 마신을 강림시킬 수 있다고?"
하, 하고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니, 이건 헛웃음이 아니라 비웃음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이딴 것들로 강림시킬 수 있는 신이라면, 얼마나 역겨운 녀석일까.
잘못 판단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피어올랐지만, 이제 와서 그만둘 수는 없을 터였다.
'아서, 케이, 엘리, 에밀리ㅡ'
그리고 나를 위해, 나로 인해 희생한 모두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마신을ㅡ
"콜록, 흐, 콜록, 콜록!!"
"아리엘?!"
"...괜, 괜찮... 아직, 괜찮, 아..."
버틸 수 있어.
아직 죽지 않아.
마족은 심장이 뛰지 않아도 살아있을 수 있으니까.
하물며 그게 마왕이라면, 더더욱.
"...마신."
목에 걸려있던 뿔을 꺼내, 반쯤 기어가듯이 소환진의 중앙으로 향했다.
"...마신!"
목구멍에 걸린 핏덩이를 토해내며, 그 이름을 다시 한 번 불렀다.
와.
어서 오라고.
너를 이 세계에 불러내기 위한 준비가 끝났으니까, 뜸 들이지 말고 당장 오란 말이야!!!
"...아."
검게 죽은 피 몇 방울.
손에 들린 마왕의 뿔.
죽은 신체.
보라색이었던 것.
이제는 이제는 새하얀 색으로 빛나는ㅡ
"..."
주변에 놓여있던 마석들이 보라색이 아닌 새하얀 빛을 내뿜음과 동시에 이변이 일어났다.
어느 순간 나타난 사람의 그림자ㅡ 혹은 형체가 몸을 웅크린 체로 바들바들 떨어대고 있었다.
마치 검은 천처럼 길게 이어진 머리카락이 바닥 전체를 덮을 듯이 굽이쳤다.
"...마신? 저게 마신이라고?"
"..."
에밀리의 경악 섞인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음산하기 짝이 없는ㅡ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마주한 사람처럼 몸을 덜덜 떨던 그녀가, 그대로 내 뒤로 제 몸을 숨겼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였던 적 없는 자존심 높은 마법사인 그녀가 이렇게나 겁을 먹었다고?
"에밀리, 대체 무슨 일ㅡ"
"...도망쳐. 당장, 도망쳐."
다른 이유 따위는 없었다.
에밀리는 나에게 그저 도망치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계속해서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아니, 에밀리가 말하고 있는게 맞나?
이건 에밀리가 아니라ㅡ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내 몸에 남아있는 모든 신경과 감각이 외치고 있는 것이었다.
왜, 어째서?
마신이란 건 그렇게나 위험한 존재였나?
절대로 손을 뻗어서는 안 되는, 그런 존재였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
"빨리, 움직이라고. 어서! 저건 마신 같은게 아니라고! 아직도 모르겠어?!"
쿵, 하고 다시금 심장이 뛰었다.
멈춰있던 것이 분명했을 터인 심장이, 마치 되살아난 것처럼 다시금 생기를 되찾았다.
아니, 이건 되살아난게 아니라 속에 담긴 힘 때문에 강제로 맥동하고 있다는 것이 맞는 이야기일 터였다.
이를 테면ㅡ
"마신이 아니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텅 빈 공동에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질리도록 자주 들었던 음성.
혐오스럽고, 증오하고, 분노하며, 꺼려하고ㅡ
ㅡ동시에,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그것.
"고마워요, 내 귀여운 마왕님. 당신 덕분에 이렇게, 두 발로, 아름다운 세상 위에 다시 설 수 있게 되었네요."
여신.
그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