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4 - 마신.(2)
하나인 세계, 그리고 하나의 신.
마계가 마계라고 불리기 훨씬 전의 이야기.
마신이 아닌ㅡ 아니, 신이라고 불리기 이전, 그 당시의 이야기.
'외롭다.'
처음 떠올린 생각은 그것이었다.
외롭다.
이 세계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너무도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와 같이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또 있을까?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세상을 담을 수 있는 구체. 대지를 품을 수 있는 발판, 그리고 세계를 쥘 수 있는 가느다란 가지들.'
눈이 생겨나고, 발이 생겨나고, 그 뒤에는 손이 자라났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공간에 무언가가 탄생했다.
그 무언가는 외로움을 가지고 있었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를 강렬히 바라고 있었다.
지성이란 결국 고독을 불러오고, 고독을 느낀 지성체는 결국 동류를 원하게 된다고 했던가.
'...윽, 으흣, 흐으으윽......'
고통의 연속이었다.
영혼을 떼어내고, 신체를 빚어내고, 피와 살 전부를 쏟아 만든 분신ㅡ 혹은 친구.
최초의 인간은 그렇게 탄생했다.
자신과 똑 닮은 아이를 바라보며, 여인은 한참이고 울었더랬다.
'아가, 내 아가... 내 반쪽, 이야...'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분신ㅡ 아이의 탄생이었으니까.
하지만 하나로는 부족했다.
만약 자신이 사라지게 된다면 아이 또한 외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러니까ㅡ 하나가 더 있는 편이 좋겠지.
'내가 없어도, 반쪽들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거야.'
반쪽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고통을 쾌락으로 뒤바꾸고 그만큼 만들어지는 시간을 늘렸다.
반쪽을 낳을 때의 고통은 그대로겠지만, 하나가 아닌 둘이라면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엄마.'
'어머니.'
'신이시여.'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자신이 낳은 존재들이 불멸이기를 바랬으나, 떼어내진 조각들은 언젠가 먼지가 되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처음 낳은 반쪽이 사라지고, 그 반쪽이 낳은 반쪽이 사라지고, 또 그 반쪽의 반쪽의 반쪽이 낳은 반쪽이 사라졌다.
그 사이마다 여인은 엄마가 되었고, 어머니가 되었고, 신이 되었다.
'신이시여, 당신의 힘을 취하면 저 또한 불멸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한 아이가 물었다.
백만스물칠십번째 반쪽이 죽은 다음에 들었던 질문이었다.
불멸이 가지고 싶었던 걸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을 쏙 빼닮았던 반쪽은 그 형체를 잃어버린 채였다.
과연 눈 앞에 있는 이것을 내 반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앞에 두고, 신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하지만 내치지 못했던 건 가장 처음의 반쪽 때문이겠지.
그 얼굴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던 그 얼굴이 잊혀지지가 않아서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신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신이시여.'
결국, 그 칼 끝이 내 심장을 향하게 된 것이겠지.
어리석은 일이었다.
신이라는 것은 불멸.
그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순간부터 그것은 사실이 되었기에, 욕심쟁이 반쪽은 끝내 자신을 죽이지 못했더랬다.
'나는 당신들에게 죽이는 것 따위 알려주지 않았는데, 어째서...'
애초에, 자신조차 알고 있지 못한 사실이었다.
죽음이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다른 이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행위 자체를 알고 있지 못했다.
그렇게 때문에 더욱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과 나는, 어째서 이 정도로 달라지게 되었는가.
어째서ㅡ
'저를 이토록, 분노케 하는 건가요.'
슬픔에 빠진 나머지 세상을 돌아보지 않았던게 죄였나?
그것도 아니라면, 반쪽을 만들던 고통 때문에 반쪽을 만드는 것을 반쪽에게 떠넘긴 것이 문제였을까?
세상은 난장판이었다.
피와 살육이 넘쳐났다.
힘을 위해 다른 이들을 죽이고, 그 위에 서기 위해서 다들 미쳐 날뛰고 있었다.
이런 건, 내가 바라는 반쪽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당신들은 힘을 숭상한다고 했었죠.'
한참이고 굳어져 있던 입꼬리가 천천히 귀에 걸렸다.
당신들이 나를 닮지 않았다면, 결국은 내가 당신들을 닮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당신들이 힘과 피와 살육을 원한다면, 나 또한 그것들을 원하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신, 마신님... 부디 자비를, 자비를 내려주소서, 제발...!!'
피가 튀었다.
살점이 날았다.
불에 타고 남은 재처럼 흩날리는 반쪽들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몸을 타고 흘렀다.
이건 슬픔인가, 절망인가, 혹은 분노인가.
제 발 밑에 엎드려 우는 반쪽을 바라보며 숨을 토해냈더랬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냥 이 세상에 있는 반쪽들을 전부 죽이고, 처음부터 다시 낳을까?
아니면ㅡ
'당신, 잠시만 이쪽으로.'
지금의 반쪽들은 나를 이었지만, 내가 아닌 존재였다.
그렇다면, 나를 섞는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반쪽에게 힘을 부여한다면, 더 이상 내게 칼날을 향하지는 않겠지.
'마신님...'
'쉿, 조용히.'
쾌락이란, 마신이 제 반쪽들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언젠가부터 몽마, 혹은 음마라고 칭해지기 시작한 이들ㅡ 그들은 쾌락이라는 것에 한정해서는 그녀를 가장 닮은 반쪽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들이 주는 쾌락조차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인데, 그들의 원류인 마신이 주는 쾌락은 어느 정도일 것인가.
체액이 섞이고, 뇌가 타올랐다.
사랑이지만 사랑이 아닌 것이, 무릎 꿇은 마족의 몸뚱이를 서서히 먹어치웠다.
'자, 부디 저에게ㅡ'
당신의 정을 주세요.
입꼬리가 움직여, 고혹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더 이상 마족에게는 이성이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건 그저 쾌락에 따른 거친 움직임 뿐.
'헉, 허억, 흐억...'
'수고하셨어요, 당신.'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을까.
하루, 이틀? 아니면, 일주일이라도 지났나?
둥글게 부풀은 마신의 복부와는 반대로, 마족의 몸뚱이는 수분이 전부 빨려나간 지렁이처럼 바짝 말라있었다.
반쯤 금이 가버린 뿔을 천천히 쓸어내린 그녀가 쿡쿡 웃으며 창백해진 뺨을 슬며시 쓸어내렸다.
고생하셨어요, 당신.
덕분에 이렇게 새로운 반쪽을 얻게 되었으니까.
그러니까ㅡ
'안녕히.'
뿔이 부러졌다.
비명은 들려오지 않았다.
깔끔한 죽음이었다.
'마족들의 왕이 될 존재인 당신은, 필연적으로 저를 가장 많이 닮게 되겠죠.'
말 그대로의 분신.
가장 처음 만들었던 아이처럼, 그 모든 부분이 자신을 똑 닮을 터였다.
그래, 이 아이를 마족들의 왕으로 만드는 거야.
더 이상 내 반쪽이 아니게 된 이들을 지배하는 존재ㅡ
이를테면, 마왕이라던지.
'마왕님께 무한한 영광을! 마왕님께 무한한 영광을 마왕님께 무한한 영광을!'
새롭게 다타난 절대적인 존재의 앞에, 마족들은 무릎을 꿇었다.
힘. 그리고 더욱 압도적인 힘.
그것을 지닌 존재의 등장은 감히 반항이라는 것을 떠올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만마를 지배하는 지배자.
첫번째 마왕의 탄생이었다.
'믿고 있었어요.'
제 품에 안긴 마왕의 뺨을 쓸어내리며, 한껏 웃었더랬다.
이제 모든 일들이 끝났다고, 더 이상 저들이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마신님.'
'...'
'봐주세요. 제, 제 아이입니다.'
마왕의 품에 안긴 아기를 봤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더라?
귀엽다? 예쁘다? 아니면 아무런 생각도 안 했었나?
아니, 생각을 하기는 했었더랬지.
분명, 그러니까ㅡ
'당장 죽이세요.'
'...네?'
싸늘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잔뜩 지친 듯한 표정을 한 마왕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왜 그런 말을 하냐는 듯한 표정에, 마신은 입술을 꾹 깨물 수밖에 없었다.
태연하게 넘어갔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일들이 어느새 날카로운 트라우마가 되어 그녀의 심장을 찔러대고 있었다.
'당신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대체 왜 반쪽을 만든 건가요?! 당장, 당장 죽이세요! 당신이 죽이지 않으면 제가 죽여버릴 테니까!'
반쪽이 낳은 반쪽이 나를 닮았다고 해도, 그 반쪽의 반쪽이 낳은 아이가 나를 닮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이렇게 된다면 먼 훗날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반쪽이 아니게 된 반쪽들이 다시금 제 심장을 찔러오기 위해ㅡ
'안, 됩니다.'
'...'
속았다.
속아버렸다.
그 얼굴에.
그 표정에.
그 슬픔에.
'...대신, 앞으로 태어날 아이가 당신을ㅡ 그리고 저를 닮지 않으면 전부 죽여버리겠어요.'
'......자비에 감사를.'
차라리 그때 죽였어야 했다.
아이를, 당신을, 그리고 이 세계에 있는 마족 전부를.
나를 닮았던 첫번째 반쪽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아서, 결국에는 손을 뻗어내지 못했더랬다.
차라리 냉정한 신이었더라면.
그들이 말하는 절대자처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판단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래서야, 신이라고 부를 수 없을 터였다.
'이번 아이는 우리를 닮지 않았네요.'
그렇기에,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신이 되기 위하여.
그들이 원하고, 당신이 원하는 진짜 신이 되기 위해서.
'...'
둘째를 죽였다.
머리카락 색이 흑색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마왕은 울지 않았다. 다만, 그 눈썹을 움찔거릴 뿐이었다.
셋째를 죽였다.
이번에는 눈동자의 색이 황금빛을 띄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마왕은 울지 않았다. 다만, 언제나 일자로 굳어져 있던 입술을 살짝 아래로 짓누를 뿐이었다.
넷째를 죽였다.
이번에는 남자아이였다.
마왕은 울지 않았다. 다만, 손톱으로 제 손바닥을 꿰뚫을 뿐이었다.
다섯째를 죽였다. 이번에는 표정이 일그러졌다.
여섯째를 죽였다. 이번에는 그만 죽여달라는 말을 했다. 당연한 말이었지만, 마신은 그녀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일곱째를 죽였다. 마왕이 울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마치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마신은 그런 마왕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다음 아이가 자신이나 마왕을 닮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그러시는 겁니까... 어째서...'
'당신이 아이를 낳지 않으면 되는 일 아닌가요?'
단순한 의문이었다.
왜 그렇게 반쪽을 만드려고 하는가.
이미 성공적으로 만들어진 반쪽이 있는데도, 왜 그렇게 집착하고 있는 걸까.
당신을 닮지 않은 반쪽은, 결국 당신을ㅡ 그리고 나를 향해 칼날을 향할 뿐이랍니다.
작게 속삭였다.
마왕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서야 만족스러운 미소로 그 가녀린 몸을 껴안았더랬지.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존재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