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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95화 (195/342)

Chapter 195 - 마신.(3)

마왕은 이름이 없었다.

마왕은 태어날 때부터 마왕이었다.

아무런 이름도 없어, 마족을 힘을 찍어누를 뿐인 존재.

그렇다고 신에게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신은 자신을 만들어낸 창조주이자, 어머니이기도 했으니까.

'아리엘, 이름은 아리엘이 좋겠어.'

이름이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가지지 못했다.

그렇기에 마신을 가장 닮은 자신이 낳은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더랬다.

아리엘.

마족들의 언어로, 신의 사자를 뜻하는 말.

'어쩌면 나 자신에게 붙이고 싶었던 이름일지도 모르지만, 신께서는 나에게 이름을 내려주시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너에게 주마.'

그렇게 반쪽의 반쪽은 아리엘이 되었다.

이름을 얻고, 이름을 얻어 하나의 존재가 되었다.

반쪽의 반쪽이 아닌 아리엘로.

'아리엘, 내 아가. 이리로 오려무나. 이리로, 어서.'

'...어머니.'

몇 날 며칠 동안 앓다가 제 딸을 불렀더랬다.

시간이 갈수록 약해지는 몸뚱이와 영혼.

아이를 낳으면 낳을수록 더욱 그렇게 되었지.

마신을ㅡ 어머니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어서 그랬는데.

...결국에는 이렇게 되어버리는구나.

'너는, 아이를 낳지 말거라. 너는, 잃는 슬픔을 느껴서는 안 되니까.'

'...어머니.'

'마신님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구나. 상처가 많은 분이시니까.'

생명이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신의 혼을 직접적으로 물려받았다고 해서, 불멸까지 물려받은 건 아니구나.

안타까웠다.

당신을 닮은 아이를 다시 한 번 낳는다면, 그 얼굴에 행복 가득한 미소를 그려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리엘.'

너를 두고 가는게 나의 유일한 미련이구나.

조금만 더 보고 싶었는데.

조금만 더 함께 있고 싶었는데.

내, 아이.

내, 사랑스러운 아이.

부디 행복하기를.

***

아이가 죽었다.

내 사랑스러운 아이가, 결국 죽어버렸다.

어째서?

무슨 이유로?

대체, 왜?

'...그러게, 내가 낳지 말라고 그렇게나 이야기 했는데.'

반쪽을 잃었다.

가장 처음 느꼈던 상실과 같은 수준의 고통이, 심장을 찔러왔다.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

하나를 더 낳기에는 상실의 고통을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 그래도 하나가 남았잖아.'

이미 사라진 아이를 닮은 아이.

내 귀여운 마왕님이 낳은ㅡ 귀여운 아이.

하지만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 아이 또한 죽어버리면 어떻게 해.

만약 나를 원망한다면?

나 때문에 그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할 건데?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만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모습을 보이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지.

'마왕님을 위해서, 마왕님을 위해서, 마왕님을 위해서!'

마족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마왕에게 딸이 있다는 것도, 그 마왕이 죽었다는 것도 전부 알아차릴 수 없었다.

하물며 그 딸이 마왕이 되어 저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들은 알 수 없었다.

마왕을 쏙 빼닮은 아이가 마왕의 행세를 하고 있다는 상상을 감히 누가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 당신은 필요 없습니다, 마신.'

그 아이가, 나를 배신할 것이라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로.

웃기지도 않는 사실이었다.

결국은 내가 생각했던 모든 것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뜻이었으니까.

나를 닮으면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니, 그럴 리가.

그냥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어야만 했다.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어야해.

'내 귀여운 마왕님, 당신이 저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

불가능해.

신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불멸.

아무리 같은 대지 위를 밟고 있는 존재라고 해도 격의 차이는 쉽게 채워질 법한 것이 아니었다.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죽이는 것 이외의 방법을 사용했더랬지.

'어떻게, 어떻게 저에게 이런 짓을ㅡ'

'당신은, 마족들에게 쓸모 없는 존재입니다. 당신이 제 형제들을 하나 하나 죽일 때부터 절절하게 느꼈죠.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더더욱.'

내가 죽인게 아니야.

너희들이 죽인 거지.

내가 그 아이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얼마나 아끼고 있었는데 감히 그런 망발을 지껄여?!

'증오한다.'

'...'

'나를 배신한 마족들 전부, 저주한다!'

미친듯이 외쳤다.

너희들의 육신은 대지에 얶매여 있지만, 너희들의 혼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

이대로 아무것도 없는 무저갱 속으로 빠질 것이라면, 차라리 이 육신을 버리겠다.

동시에 너희들의 혼 전체를 거두어 언젠가의 복수를 위한 양식으로 사용해주마.

'무슨, 짓을ㅡ'

아이의 혼을 빼앗았다.

나와 가장 가깝게 이어진 아이였기에, 그 혼을 빼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대지와 이어지며 자체적인 혼이 생겨난 이들은 의식을 잃지 않았지만, 내가 직접 만든 반쪽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순식간에 자신을 잃어버렸다.

안타깝구나, 정말로.

'저를 배신한 마족들을,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부 없애버리겠어요.'

육신을 버리고 찾아낸 또 다른 세계에서, 나는 그것들과 똑같은 존재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새로운 육신과 가지고 온 혼을 집어넣어 만든 새로운 마족.

아니, 마족이 아니라 그것들과 똑 닮은 다른 무언가.

'똑같은 존재들끼리 피를 흘리고, 싸우고, 결국 죽이면, 그것 만큼 최고의 복수도 없겠죠.'

웃음을 터뜨렸다.

나에게서 비롯된 당신들이 나에게 칼을 겨눴으니, 이제 당신들에게서 비롯된 존재들이 당신들에게 칼을 겨눌 차례였다.

그리고 그런 당신들의 우스운 꼴을 내가 직접 구경하는ㅡ

'...뭐?'

지상에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무언가가 팔을 얽매어, 마족들을 닮은 것에 손을 쓸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거대한 혼, 혹은 힘의 덩어리.

한때 마왕이라고 불리었던 아이가 낳은 빌어먹을 반쪽.

'그딴 꼴이 되어서까지, 나를 방해하겠다고?'

지상으로 내려갈 수가 없었다.

나를 붙잡는 이 영혼을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하지?

분명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었지만, 하나의 대를 거쳤기에 쉽사리 흡수할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불가능하다고 봐야할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ㅡ

'당신, 제가 지상으로 내려가는 것만 막고 있네요?'

우스운 사실이었다.

마지막으로 남겨진 본능이 겨우 이런 것이었다니.

헛웃음을 토해내며 다시 마계로 향했다.

내 육신이 봉인되어 있는 장소에는 손도 댈 수 없었지만, 마왕의 처소로 쓰였던 장소에는 쉽사리 도달할 수 있었다.

'이대로 이 혼을 당신의 육신에 집어넣으면, 당신은 다시금 저를 적대하게 되겠죠.'

그러니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만 했다.

혼을 가질 수 없다면, 사용할 수 있게 변질시킨다.

진한 먹물에 계속 물을 타넣으면 언젠가 맑아지듯이, 마왕의 영혼에 계속해서 다른 영혼을 섞어 넣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 혼을 사용할 수 있게 될 터였다.

'부디 당신도 겪어보시길.'

내가 느꼈던 분노와 슬픔, 절망까지 전부.

***

다른 세계의 영혼을 준비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떠한 힘도 가지지 않은, 신성력도 마기도 가지지 않은 영혼이 자그마치 70억이나 존재하는 세계가 존재했으니까.

전기의 마나가 흐르는 그곳에 자그마한 오락거리를 던진 뒤 음마의 힘으로 영혼을 뽑아내 마왕의 혼과 뒤섞는다.

원래 세계의 마족을 닮은 것들ㅡ 소위 인간들에게는 이미 마계와 세계를 잇는 방법을 내려보낸지 오래였다.

그것을 위해 겨우 회복한 힘을 전부 소모했지만, 마신은 후회하지 않았다.

'이걸로 시작이에요, 제 귀여운 마왕님.'

하지만 완전한 간섭을 위해서는 저 대지 위에 이 혼이 강림해야만 했다.

몸을 붙잡고 있는 마왕의 혼을 떼어내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못할까.

'으, 으아, 으으으으으으......'

뿔을 도려냈다.

제 머리에 있는 뿔을 거둬들인 순간 영혼이 반쯤 깨져나갔다.

분명 봉인되어 있는 육신 또한 비슷한 꼴이 되었겠지.

손에 들린 뿔에는 핏자국이 가득했지만, 복수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고통 쯤이야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

'제 뿔에 당신의 피가 머물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반드시ㅡ'

혼은 육신에 깃들고, 동시에 피를 통해 흐른다.

다른 세계의 영혼을 수백, 수천, 수만 번 집어넣어 흐려진 마왕의 영혼.

그 영혼에 이 뿔이 닿게 되는 순간이 바로 자신의 강림의 때가 될 터였다.

'...그러니까, 용사님.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답니다.'

마왕을 쓰러뜨려주세요.

만약 그렇게 해주신다면, 이미 죽은 당신의 소중한 것들을 되살려 드리겠습니다.

아서, 아스테리아.

이미 죽은 내 귀여운 마왕님이 그 가증스러운 반쪽을 잉태하게 만든 존재여.

이제 그대의 손으로 그 가증스러운 반쪽을 갈라내는 겁니다.

내 뿔을 재료로 벼려낸 칼날ㅡ 성검으로.

'마음 같아서는 직접 죽여버리고 싶지만, 너무 무리를 해버렸네요.'

실체화된 뿔을 그대로 가증스러운 반쪽의 심장에 내려꽂고 싶었지만, 깨져나간 영혼은 그 무엇도 붙잡을 수 없었다.

결국 남은 건 인내 뿐.

용사가 우리 귀여운 마왕님을 갈라낼 때마다 그 육신에 섞인 혼이 흡수되어, 언젠가는 내가 지상에 강림할 수 있을 정도까지 힘을 회복할 수 있을 터였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반복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ㅡ

'그것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 되겠죠.'

ㅡ분명, 미소를 지은 채로 그 길고 긴 시간들을 보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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