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00 - 엔딩?
"아아, 정말! 그 짜증나는 여신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람?!"
"...할리벨?"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찌나 놀랐는지 쏟아지던 눈물이 도로 쏙 들어갈 정도였달까.
아니, 그보다 여신이 만들어낸 환상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 보고 있는 것도 여신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몰랐지만ㅡ
"우웩, 마법사 년이 왜..."
"...나도 기분 나쁘거든?!"
에밀리와 할리벨의 시선이 마주쳤다.
뭐야.
뭐야 이게.
뭐지?
머리 위로 떠오르는 무수한 물음표의 향연에 머리가 멍해졌다.
에밀리가 할리벨을 보고 있잖아.
대체 어떻게?
"마왕님, 제가 말했잖아요. 몽마는 불멸이라고."
"...그건 그냥 나를 안심 시키려고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사실 맞아요, 안심시키려고 한 거."
할리벨이 쓴 웃음을 지으며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내 머리 위에 제 가슴을 올려주고, 턱과 목을 감싸서는 한숨을 푹푹 내쉰다.
무게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분명 내 근처에 있다는 것 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마왕님."
"...그래."
"세계수로 향하면, 더 오래 사실 수 있어요."
내 몸을 지속적으로 회복시켜주는 세계수라면, 분명 뿔이 없어도 살아남을 수 있겠지.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걸어온 걸음의 숫자가 너무나도 많았다.
"그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걸 위해서 이렇게 나타난거니까."
"무언가,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분홍빛 눈동자에 아주 조금이지만 아쉬움이 흘렀다.
그리고 짙은 슬픔도.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마치, 곧 떠나갈 사람처럼.
겨우 이렇게 다시 만났는데, 대체 왜?
"뿔이라면, 한 쌍 더 있잖아요."
할리벨의 손가락이 내 목덜미를 향했다.
고개를 숙여 목덜미를 바라보자, 잘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목걸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할리벨의 뿔로 만든 목걸이.
하지만 이건ㅡ
"괜찮아요, 마왕님."
"...할리벨."
"어차피 저는 죽었으니까, 그깟 뿔 정도는 아무런 쓸모도 없다구요? 봐요, 봐."
할리벨이 팔을 흔들자, 이리저리 휘둘리던 손이 내 몸을 자연스럽게 통과했다.
...그렇구나.
할리벨은 이미 죽었지.
이미 죽었으니까, 당연히 뿔 같은 건 필요 없을 터였다.
"드세요, 마왕님. 그게 바로 저를 위한 일이니까."
"...고마워, 마지막까지."
"흐응, 마지막까지 희생해야 진짜 충신 아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 할리벨!"
"응?"
"마왕님에게 사랑의 키스~♥"
쪽, 하는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감촉이 있지는 않았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할리벨의 얼굴에 다시금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았지만, 다시 못볼 것도 아니었으니 어떻게든 참아낼 수 있었다.
"자, 드세요. 어서."
"..."
점점 느려지는 심장 박동에 위기감을 느낀 탓일까, 나는 할리벨이 한 말에서 그 어떠한 이상함도 느끼지 못한 채 그대로 뿔을 입에 넣었다.
으득, 으드득, 으득ㅡ
"...!!"
"...아, 이런."
두 개 중 하나를 완전히 씹어삼킨 순간, 할리벨의 몸이 반쯤 흐려졌다.
아니, 흐려지는 것 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이 마치 금이 간 것처럼 갈라져 있었다.
"할리벨, 설마ㅡ"
"아하하, 이렇게 빨리 들켜버릴 줄은 몰랐는데..."
"..."
"맞아요. 뿔이 없으면, 이렇게 환상 형태로 살아있는 것 또한 불가능해요."
그런 걸, 먼저 말했어야지.
그랬다면 먹지 않았을 텐데.
...아니, 이건 내가 멍청해서 벌어진 일이야.
할리벨이 희생이라는 단어를 쓸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차라리 여신을 살려두고 세계수로 돌아가는 건ㅡ"
"소용 없어요. 여신의 영혼이 망가진 이상, 마왕님의 몸 속에 있는 신성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테니까요."
몸 속의 신성력이 사라진다는 건 곧 내 심장 또한 멈춘다는 것을 의미했다.
애초에 이미 죽은 몸을 내 뿔이 억지로 움직이게 하고 있었는데, 그 뿔이 없어진 이상 남은 건 여신의 신성력 뿐.
그런데 그런 신성력마저 없어진다면 그 어떠한 여지도 없이 그대로 죽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한 가지 알려주자면, 제 뿔을 먹어치운다고 해도 세계수까지 가는 건 불가능하답니다."
"그러면 대체 왜!!!"
쿵, 하고 심장이 뛰었다.
아니, 멈췄다.
너무 급격하게 멈춘 나머지 뛰는 것처럼 느껴졌을 뿐.
"켁, 케흑..."
"...가여운 마왕님. 당신은, 이런 일을 겪을 사람이 아니었는데."
가슴을 부여잡으며 쓰러진 내 위로, 할리벨의 손길이 닿았다.
여전히 어떤 느낌도 들지 않았지만 자그마한 온기 정도는 전해진 것 같기도 했다.
"거기 빌어먹을 마법사, 부탁 하나만 해요."
"..."
"마왕님의 입을 벌려서, 억지로라도 제 뿔을 먹이세요. 그렇지 않으면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실 테니까."
"..."
"아니면 그런 건가요? 아직까지도 마왕님을 원망하고 있어서, 마왕님 따위 콱 죽어버리라는거?"
할리벨의 말에 에밀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무언가 생각이 많아보이는 듯한 표정으로 나와 할리벨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할리벨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여전히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 남아있어서 내가 죽기를 바라는 걸까.
'...차라리, 그러면 좋을지도 모르겠네.'
할리벨의 뿔을 먹어치움으로 할리벨이 완전히 죽어버린다면, 차라리 나 또한 같이 죽고 말겠다.
애초에 죽은 목숨이라면 억지로 연명하는 것보다는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죽는 건 무섭지만.
죽고 싶을 정도로 죽는게 싫었지만.
그리고, 죽을 만큼 아서가 보고 싶었지만ㅡ
"그냥 이대로 죽ㅡ 으읍?!"
"씹어. 잘근잘근 씹어서, 삼켜."
입 안에 들어온 뿔을 뱉어내려고 하기도 전에, 에밀리의 손길이 내 손을 틀어막았다.
무리하게 마법을 사용하느라 허약해진 것이 분명할 텐데, 내 몸은 그녀의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아니, 손을 뿌리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는게 맞는 말이겠지만.
으득, 득, 으득ㅡ
"시, 시러, 싫ㅡ"
"간만에 좋은 일 했네요, 마법사 씨."
"...너 좋으라고 한 일 아니니까 닥치고 뒤지기나 해."
뿔이 부서지고, 쪼개지고, 가루가 될 때마다 점점 할리벨의 몸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싫어.
싫어, 그러지마.
그런 짓을 했다가는 정말 할리벨이 사라져버려.
이제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어버린다고?!
"마왕님."
"으, 흐아... 할리벨, 제발... 제발... 가지마..."
"마왕님을 만난 건, 제 인생 최고의 행운이자 행복이었어요."
"할리벨..."
자기 할 말한 하고 그렇게 가버리는게 어디 있어.
자그마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할리벨의 자취를 쫒았지만, 발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
그녀는ㅡ 할리벨은 이대로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그런 짓을, 왜, 왜..."
"너를 살리고 싶었으니까."
어떻게 보자면 매정하다고 말할 수도 있는 대답이었다.
내가 분노를 느끼는 것도 어떻게 보자면 당연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얼굴을, 그 표정을, 그 눈을 보고 나니 감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ㅡ 그런.
"...에밀리."
에밀리라는 인간이 나를 상대로는 절대로 보여주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표정이었다.
겨우 내 죽음 따위에 에밀리가 저런 표정을 짓는다고?
어차피, 곧 죽을 텐데.
'봐, 심장 박동이 다시 느려지고 있잖아.'
두근거리며 뛰던 심장이 다시금 박자를 늦추기 시작했다.
할리벨의 희생으로 얻어낸 생명조차 겨우 5분을 가지 못하는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차라리 깔끔하게 죽는 편이 나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이 틀렸다고 외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쿵ㅡ
"...아."
무언가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
아니, 부딪히는 듯한ㅡ
끼이익ㅡ
"아리엘."
"...아, 서?"
찬란한 금발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온몸에 피칠갑을 덕지덕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실을 풀어낸 듯한 머리카락만큼은 더러워지지 않았다.
정말, 죽을 때가 되니 환상이라도 보는 걸까.
할리벨에 이어서 아서의 환상이라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죽음일지도ㅡ
"고생 많았어."
"아?"
어라.
고개를 갸웃했다.
나를 안아드는 손길이 너무도 생생했다.
마치 진짜 아서가 나를 품에 안아든 것처럼.
이 온기, 이 감촉, 이 떨림까지.
무엇 하나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 아으, 흑..."
진짜잖아.
진짜 아서잖아.
아서, 아서, 아서, 아스테리아, 내 사랑.
마지막의 마지막이 되어서는 그 얼굴을 볼 수 있구나.
그래도 다행이야, 내 마지막을 너와 함께할 수 있어서.
내 마지막을 지켜주는 것이 너라서.
"사랑해. 사랑해, 흑. 정말 사랑해. 이 세상 누구보다, 너를 사랑해..."
"...나도야, 아리엘."
입을 맞추고, 다시 맞추고, 또 다시 맞췄다.
열정적으로 달려들어, 내 남은 수명 전부를 바쳐 사랑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앞으로 주고 싶었던 사랑ㅡ 그 수십 배를 지금 당장 주고 싶었다.
상실의 슬픔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었기에, 나의 죽음으로 얻게 될 상처가 치명상이 되지 않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츄읍, 츄으, 츗ㅡ
"하아, 하으, 흐..."
"...아리엘."
다시금, 내 이름이 들려왔다.
귓가에 들러붙는 달콤한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입을 벌렸지만, 제대로 된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키스 때문에 혀가 잔뜩 녹아내려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동시에, 심장 박동 소리가 영혼 전체를 통해 거대하게 울려퍼졌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끝을 알리는 북소리처럼.
'안돼.
대답해야 하는데.
마지막 부름 만큼은 대답하고 죽어야 하는데ㅡ'
두근, 두근, 두근, 두근ㅡ
두근ㅡ
두, 근ㅡ
"아..."
서ㅡ
와드득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