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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01화 (201/342)

Chapter 201 - 해피 엔딩.

한 가지 잊고 있던 사실이 있다면, 그건 바로 성검의 존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검의 재료.

마신의 뿔을 이용해 벼려진 성검은, 어떻게 보자면 마신의 뿔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와득, 와득, 와드득ㅡ

"..."

"..."

지금까지 마족들의 피를 묻히며 집약되어진 생명들이, 점점 내 몸 안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생명. 넘치는 생명.

마신이ㅡ 여신이 지금껏 갈취해왔던 마족들의 혼.

두근, 두근, 두근ㅡ

"...아서."

"응, 아리엘."

목소리가 떨려왔다.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살 수 있어.

아니, 살아 있어.

나, 지금 살아있어. 멀쩡하게, 살아있어.

"나를, 구했구나. 내 목숨을, 살렸어."

"..."

분명 기뻤음에도 눈물이 터져나왔다.

처음에는 한 방울 두 방울씩 떨어지던 물방울이, 이제는 두 개의 줄기가 되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살았어. 나, 살았어.

아서.

"사랑해, 아서."

"나도 마찬가지야, 아리엘."

입술이 맞닿고, 틈 사이로 말랑한 살덩이가 오갔다.

혀와 혀가 얽히고, 타액과 타액이 섞여 마침내 시선이 맞는 순간ㅡ

"...거기 애정 행각 하는 건 좋지만 저기 좀 보지?"

"읏?!"

사람이 있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에밀리가 있는지도 까먹어 버렸달까ㅡ

무리하게 마법을 사용하느라 지쳤으면 슬슬 기절할 법도 한데 말이지.

절대 아서와의 진한 키스를 방해 받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절대.

"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비참한 최후구나."

"그러네."

발끝부터 서서히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여신의 모습을 보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체형이나 크기가 조금 다르다고는 해도 나와 똑같이 생겨서 그런지 느낌이 묘하다고나 할까.

그건 아서도 마찬가지였는지 표정이 조금 찡그려져 있었는데, 그 얼굴이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푸흐, 너무 심각한 표정 짓지마. 저건, 내가 아니니까."

"그렇지."

"설마 우리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를 생각한 건 아니지?"

"...아니야."

그렇다면 다행이고.

나도 딱히 여신 같은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물론 그게 내 마음대로 될지는 또 다른 이야기였지만.

"이제 끝이구나."

"그러네."

아서의 품에 안긴 채로, 잠시 감상에 젖어있었다.

여신의 죽음과 동시에 찾아온 내 목숨의 연장.

언젠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문구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해피 엔딩]

[마왕은ㅡ 당신은 결국 사악한 마신을 쓰러뜨리고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디 위대하신 마왕님 앞에 영원한 사랑과 영광이 가득하기를 바라며, 농밀한 교미와 숭고한 출산이ㅡ]

아니, 이게 아니라ㅡ

[지금까지, 플레이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행복하시기를.]

당연하지.

당연히 그래야지.

해피 엔딩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해져야지.

"...그래서 아서, 이제 뭐 할까?"

"..."

슬쩍 몸을 일으켜, 아서의 귓가에 속삭였다.

내 몸에서 나왔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숨결이 그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아기 만들기 할ㅡ 꺄앗?!"

순식간에 뒤바뀐 시야와, 눈앞을 가득 채운 아서의 얼굴까지.

그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건 오직 심장 소리 뿐이었다.

쿵쿵거리며 뛰고, 두근거리며 달리는 두 개의 심장이 천천히 걸음을 맞추는 순간ㅡ

끼이익ㅡ

"..."

"..."

"아, 방해했으면 미안. 나는 이 녀석 데리고 나가있을 테니까, 둘이서 물고 빨고 핥던 알아서 해."

마족 아이의 꼬리? 촉수? 아무튼 길게 튀어나온 무언가를 붙잡은 에밀리가 그대로 커다란 문 밖으로 사라졌다.

이제 이 공동에 남은 것이라고는 나와 아서 뿐.

잠시 에밀리가 떠나간 공간을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꿈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아서의 얼굴이 시야 가득 들어차 있었다.

""푸흡.""

아하하하하하!!!

즐거운 웃음 소리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것도 많았고, 아물어야 할 상처도 많았지만 지금만큼은 잔뜩 행복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건, 그 행복의 첫 걸음이자 증거가 되는 행위가 될 터였다.

"사랑해, 아서."

그게 뭔지는, 물론 비밀이었지만.

***

"뭐야, 살아있었네?"

"너야말로."

밖으로 나가면 엘리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엘리는 없고 빌어먹을 쥐새끼 하나가 있었다.

용케도 살았네.

콱 죽어버리지.

"너 방금 '콱 죽어버리지.' 같은 생각 했지?"

"...눈치는 더럽게 빨라서는, 쯧."

날카롭게 자신을 쏘아보는 쥐새끼의 시선을 피하며 한숨을 토해냈다.

겨우 아공간을 열었다고 해서 평생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 리가 없잖아.

찍, 찌익...

"..."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역마를 향해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스승님이 나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스승님과 나를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 고리.

싸늘하게 식어가는 온기를 품에 안고는 고개를 숙인다.

"고생했어."

찍, 찌익...

"그러니까, 이제 푹 쉬렴."

찍...

숨이 끊어진 생명체는 더 이상 생명체라고 부를 수 없는 법이었다.

근처의 땅을 파서 자그마한 무덤을 만들어준 에밀리가 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케이에 쯧, 하고 혀를 찼다.

괜한 녀석 앞에서 이상한 짓을 해버렸네.

분명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다고 잔뜩 놀려대겠지.

"고마워."

아니면, 고맙다고 하던지.

"뭐?"

"내 목숨, 살려줘서 고맙다고. 천재 마법사 에밀리 씨."

"...하."

웃기지도 않았다.

너 따위의 목숨을 살리느라 평생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몸뚱이가 되어버렸는데, 겨우 세글자로 끝내버린다고?

고맙다, 라는 말은 누구든지 할 수 있어.

심지어 얼마든지 할 수 있지.

"나쁘지 않네."

하지만, 그게 용사 파티의 도적이 천재 마법사에게 건네는 감사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평생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한 마디.

그 정도라면 뭐, 나쁘지 않은 거래지 않을까.

"아, 지쳤어. 완전 지쳤어!! 이제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싫어!"

"동감이야."

엉망진창이 된 바닥에 풀썩 주저앉는 케이를 따라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마신과 바로니스 국왕의 죽음.

그리고 마왕의 생명 연장까지.

분명 마신ㅡ 여신의 선택을 받은 뒤, 바로니스 국왕의 부름을 받아서 마왕을 처단하기 위해 시작한 여정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결국 마왕을 처단하기 위한 걸로 시작해서 마왕을 살리는 걸로 끝나버렸네."

소설을 이렇게 쓴다면 분명 독자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을게 분명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정말.

"그보다, 예쁜이 엄마는 어떻게 됐어? 무사하지?!"

"아아, 아마 지금쯤 아서랑 몸을 섞고 있지 않을까."

"뭐야, 당장 보러 가자!"

"보러 가긴 뭘 보러 가. 닥치고 여기 가만히 있기나 해."

당장 교단의 건물 안으로 들어갈 기세인 케이의 소매를 붙잡아, 도로 자리에 앉혔다.

마음에 안 드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지만 간만의 행복한 시간을 훼방놓을 정도로 경우 없지는 않으니까 말이지.

"아리엘 씨는 무사한가요?!"

"엘리!"

허겁지겁 달려오는 엘리의 상태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반쯤 녹아내린 옷에 이리저리 찢어진 상처들까지.

붉은 피로 물든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다가온 그녀가, 곧바로 아리엘을 찾았다.

역시 그 녀석을 제일 좋아하는 녀석 답다니까.

"아리엘ㅡ 큼, 마왕은 무사해. 그래도, 안으로 들어가는 건 추천하지 않겠어."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죠?! 아리엘 씨!!"

쿵쿵거리는 발걸음과 함께, 엘리의 모습이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안 말려도 됐겠어?"

"아아, 몰라. 마족의 몸뚱이를 지닌 녀석을 대체 어떻게 말리라는 건데?"

"역시 성격 안 좋네, 천재 마법사 에밀리 씨."

"너만 할까."

서로 가벼운 잽을 주고 받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민망하다던가 부끄러웠다던가 하는 이유가 아닌, 단순히 지쳤기 때문이었다.

말 한 마디 할 때마다 수명이 5분씩 깎여나가는 듯한 기분이라고 할까.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는다면 곧바로 기절할 것만 같았다.

"으, 으으으으으..."

"그러게 가지 말라고 했잖아, 바보야."

"그, 그치만 두 분이 그런! 그런, 격렬한 교미 행위를 하고 계실 줄은 몰랐단 말이에요!"

엘리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으, 고막 찢어지겠어.

어째 마족이 되더니 발성이 수십 배는 더 좋아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이려나.

"진심, 진심으로 그런 야한 광경은 처음 봤어요..."

허벅지를 비비적거리는 꼴이 참...

그 케이조차도 조금 깬다는 듯한 표정으로 엘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같이 다닐 무렵에는 조용하고 말도 별로 안 하던 녀석이었으니까 말이지.

"그래서, 그 녀석은 어떻게 했어?"

"빅토르 경이요?"

"그래, 그 기분 나쁜 실눈 녀석."

음, 하고 고민을 하기 시작한 엘리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 말이죠ㅡ

"힘으로 밀리니까 갑자기 밖으로 도망치길래 쫒아갔더니 거기에 마수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전부 찢어죽이고 그 녀석도 똑같이 만들어줬어요."

"..."

"오른팔부터 뽑아내기는 했는데ㅡ 아, 왼쪽 다리부터였나? 아니, 먼저 바닥에 얼굴을 갈아버렸던 것 같기도 하고ㅡ"

갑자기 혼자만의 세상에 빠진 엘리를 두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일단 지금은 말 걸지 말고 가만히 두는 편이 좋겠네.

...잘못 걸렸다가는 죽을지도 모르니까.

"...엘리는 애가 어쩌다가 저렇게 된 거야?"

"원래 저런 녀석이었을 수도 있지."

"...그게 더 무서운데."

몸을 감싸며 부들부들 떨어대는 케이를 보며, 에밀리가 코웃음을 쳤다.

별걸 다 무서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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