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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10화 (210/342)

Chapter 210 - 사랑 받는다는 것.(3)

"미아, 어디 있니? 미아?"

다시 시간이 흘렀다.

미아는 빠르게 자라나기는 했지만, 드워프라서 그런지 엄청 크게 자라지는 않았다.

물론 그런데도 레이나보다는 컸기에 그런 미아를 보면서 레이나는 언제나 입술을 비죽 내밀 뿐이었다.

"마마, 나도 크고 싶어! 이~만큼 크고 싶어!"

"그래, 그래. 레이나도 쑥쑥 클 거야."

지금이 몇 살 정도일까.

하나는 단신 종족에 하나는 장수하는 종족이다 보니까 대충 나이가 가늠이 되지를 않았다.

성인은 되었으려나?

아니, 그 정도는 아닐 것 같기는 하지만서도...

"그나저나, 레이나. 미아 본 적 있니? 오늘 도통 보이지를 않는구나."

원래라면 딱딱한 말투를 고수했겠지만, 아이들이 나긋나긋한 말투를 더 좋아해서 최대한 고쳐냈다.

물론 다른 이들을 대할 때는 여전히 똑같았기에 딱히 이상한 시선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미아? 못 봤는데..."

"그렇구나. 아, 그래. 낮잠 잘래? 아까 그렇게나 뛰어다녔으니까 많이 피곤할 텐데."

"잘래!"

아이를 슥 들어서는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어째 레이나는 도통 자라지를 않네.

나를 올려다 보며 방긋방긋 웃어대는 엘프 아이에 마찬가지로 입꼬리를 비죽 올려보였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으움."

역시나라고 해야 할지, 빨리 잠드는구나.

순식간에 잠든 레이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일단 지금은 미아를 찾는게 우선이었다.

최근 들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최소한 어디 갔는지 정도는 알고 싶었으니까.

"아리엘냥."

"랴뇨리, 혹시 찾았느냐?!"

"당연하지냐! 고양이 수인의 코를 얕보지 말라고냥?"

다행이다.

다른 날에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오늘은 특히 더 안 보여서 걱정을 많이 하고 있던 차였다.

혹시 나쁜 사람들에게 해코지라도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너무 걱정이 되어서 참을 수가 없어달까.

"아무튼, 따라오라냥. 너무 놀라지는 말고."

"...놀라다니, 뭘?"

"..."

랴뇨리는 내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한 없이 가라앉은 목소리가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심장이 쾅쾅 뛰었다.

언제나 가벼운 표정과 행동을 하던 랴뇨리가 이런 반응을 보여준다니.

'각오를 해야ㅡ'

"...이 냄새는."

코 끝을 찌르는 비릿한 냄새.

굳이 후각이 발달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법한 죽음의 향기였다.

설마 이거, 이마의?!

"...아."

"..."

"..."

피가 잔뜪 흩뿌려져 있는 골목, 그 중앙에 자그마한 아이가 무릎을 끌어안고는 처량하게 앉아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순간 기겁했는데, 자세히 보면 아이의 몸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미아! 어디 다친 곳은 없니?! 괜찮아?!"

"..."

"...읏."

서둘러 달려가 아이를 붙잡자, 떨궈져 있던 고개가 느릿느릿 나를 향해 들어올려졌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올려진 시선과 마주한 순간, 나는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공허한 눈동자.

평범한 사람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절망에 찬 무언가.

"당신이구나."

"..."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곳에는 인간의 파편이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살점들이 잔뜩 묻어있었다.

설마, 죽인 걸까.

사람을, 죽인 거야?

'...아니, 이건 인간이 아니야.'

구석에 나뒹구는 시체를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언제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시체라는 건.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그 시체가 인간이 아니라는 점일까.

머리 위에 달려있는 뿔을 보자면 아무래도 마족인 듯 싶었다.

그것도 인간들에게 붙잡혀 노예가 된 마족.

"마족을, 죽인 거니? 아니, 기억이 돌아온ㅡ"

"당신이 나를, 그리고 동족들을 죽인 마족들의 왕이었구나."

"..."

증오심이 터져나온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단순한 살심이, 나를 향해 순식간에 뻗어져 나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허약한 몸뚱이 따위로는 피하기는 커녕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푸욱ㅡ

"..."

"..."

아이의 손에 날붙이가 들려있다는 걸 았았다면, 조금 달랐을까.

내 배를 뚫고 들어온 칼날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아프다.

엄청나게, 아파.

"아리엘!!"

"아이한테는, 손 대지 말아줘."

죽지만 않으면 됐다.

죽지만 않으면, 세계수가 치료할 수 있으니까.

최근 들어서 더더욱 커진 세계수는 나에게 조그마한 생채기 하나면 생겨도 즉시 치료해주고는 했으니 말이다.

"...미안, 하구나. 내가, 그리고 내 동족들이 큰 죄를 저질렀어."

"..."

"정말 미안해, 미안..."

"이제 그만 하라냥!"

퍽, 하는 소리와 함게 미아가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분명 아이에게는 손 대지 말아달라고 했는데.

랴뇨리를 타박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ㅡ

"케흑, 케흣..."

"이, 일단 세계수로 가자냥!"

미아를, 데리고 가야 하는데.

멀어지는 의식 속 희미하게 보이는 시야 끝에서, 미아가 비틀비틀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안 돼.

미아, 미아가ㅡ

***

"...여긴."

"세계수야."

멍하니 눈을 뜨자 아서의 얼굴이 가득 보였다.

걱정으로 가득 찬 표정.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분위기에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서 입장에서 보면 과연 무슨 느낌일까.

언제나 다쳐서 오는 나를 보고 불안감을 가지고 있겠지.

"미안해, 아서."

"나는 네가 스스로를 너무 험하게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는 자기 자신을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데, 나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 가치 있으니까ㅡ"

"..."

"그러니까 제발, 다치지 말아줘. 부탁이야, 아리엘."

그래, 아서 말이 맞지.

아이들도 있고, 무엇보다 나는 이제 아서의 것이니까.

이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면 민폐만 끼칠 뿐이었다.

"...미아는?"

"미아는 괜찮으니까, 지금은 네 몸부터 신경써."

몸이 이 지경이 되어도 아이를 먼저 신경 쓰는 건 정신병이려나.

하지만, 엄마가 아이를 가장 먼저 신경 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내 배 아파서 낳은 내 아이인데, 내가 아니면 대체 누가 신경 쓰는데?

"다른 아이들도 엄청 걱정했으니까, 응?"

"...으응."

하지만 이 간절한 눈빛을 마주하고 대체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어.

몸을 일으키려다가, 그대로 아서의 품에 안겼다.

몰라, 그냥 오늘은 이대로 있을 거야.

"...아서."

"응, 아리엘."

"...다음에 태어난 아이들도, 미아 같은 반응을 보일까?"

애초에 그게 정상이었다.

라일라부터 시작해서 케이, 미아까지.

마족에게 살해당한 이들이 나를 보고 좋은 인상을 가질 리가 없었다.

어쩌면 앞으로 낳게 될 아이들 전부 미아 같은 반응을 보여줄지도 몰랐고.

"아아, 왜 하필이면 마왕으로 태어나서는..."

"그렇네. 그냥 어디 구석진 시골에 사는 농사꾼의 딸로 태어났어도 좋았을 텐데."

"..."

차라리 그 편이 너 좋았을지도 몰라.

차라리 내가 소꿉친구인 아리엘이었다면, 그랬다면 이런 일이 애초에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허무맹랑한 가정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만약의 행복을 상상하며 그것에 깊이 빠져 살다가는 현재의 행복 모두를 놓쳐버리게 될 터였다.

"쯧, 볼 때마다 골골거리기나 하고. 이번에는 꼬맹이 칼에 찔렸다면서?"

"에밀리."

"뭐야 이게. 스승님이 태어나실 때도 이러면 진짜 가만히 안 둘 거야. 그렇게 되면 내가 대체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는 건데?"

슬쩍 모습을 드러내는 에밀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요즘 들어서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더니 무슨 바람이 들어서 이렇게 나왔으려나.

나를 놀리려고 온 걸까.

아니, 어쩌면 나를 걱정해서 온 걸지도 모르고.

"예쁜 엄마! 괜찮아?! 이 백옥 같은 피부에 흉터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시끄러워, 쥐새끼."

"천배 마법사였던 것은 조금 빠지지?"

"...큿."

원래라면 서로 끝까지 기싸움을 했겠지만, 에밀리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조금이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서로 여전히 티격태격거리는 건 똑같았지만 에밀리가 먼저 접고 들어가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달까.

확실히 마법도 없이 케이와 몸싸움을 하기에는 거의 나 다음으로 몸이 안 좋은 사람이었으니 말이지, 에밀리는.

"굳이 예쁜 엄마를 적대하는 아기들까지 포용하려는 이유가 뭔데? 아니, 애초에 아기를 낳는 이유가 뭐야? 이제 여신도 죽었겠다, 낳지 않아도 되는거 아니야?"

"..."

맞는 말이었다.

나를 괴롭히는 여신이 사라진 이상, 더 이상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해코지를 당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오늘 같은 일 없이 쭉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행복이 과연 얼마나 이어질 수 있을까.

내 과오를, 죄를, 그리고 후회를.

그 모든 것들을 가슴에 심어, 다시금 새로운 싹을 피워내야만 했다.

"...하지만, 되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린.

내 딸.

내 배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가장 내 아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존재.

가장 커다란 사랑을 주고, 가장 커다란 사랑을 받았던 존재.

그리고, 내 손으로 죽여버린ㅡ 내 손에 죽어가면서도 내 행복을 바라던 존재.

반드시, 되살리고 싶은 존재.

"그러니까, 지금은 계속 낳을 수밖에 없어."

물론 그것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케이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마족들에게 죽은 것에 대해 내 잘못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책임을 지려는 것 뿐이었다.

그저 일부분이 아닌 전부.

처음부터,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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