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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15화 (215/342)

Chapter 215 - 의미.(3)

다행히 끝까지 가지는 않았다.

둥글게 부푼 배를 꼭 껴안으며 아기가 있을 때는 절대 안 된다고 했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솔직히 그대로 계속 했다면 아서의 가랑이를 걷어찼을지도 모를 노를이었다.

"...정말이지, 그렇게나 빨아대고는."

가슴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기도 했다.

크기가 작아진지는 모르겠지만.

아기가 먹을 것을 그렇게 빼앗아 먹고도 웃는 얼굴이던 모습이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용사라는 인간은 대체 어디까지 변태가 될 생각인 걸까.

남자는 전부 변태라고는 했지만, 내 마음 속 희미하게 잠들어 있는 유교 드래곤이 8자로 날아다니며 아서를 마구 소리를 질렀다.

'저건 남자가 아니라 짐승이야, 짐승!'하면서.

"이러다가 진짜 아이 먹을 것도 안 나오는 건 아니겠지?"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이내 문 밖에서 들려오는 요란스러운 소리에 잠시 걱정을 접어두었다.

이 정도로 소리를 내며 방에 찾아올 사람은ㅡ

"아리엘! 아리엘!"

"잠깐, 엄마?!"

고양이들이었다.

분명 고양이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고양이 수인은 또 다른 모양이었다.

어디를 가도 같이 다니고, 시끄럽게 굴어도 같이 시끄럽게 굴고.

벨이 말린다고는 하지만 어른스럽다고는 해도 리에나 디르 쪽이 더 나이가 많았이에 여간 쉬운 일이 아닌 듯 싶었다.

어른의 관록으로 그만큼 더 쉽게 도망치는 법을 깨달았다니.

어떻게 보자면 고양이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우와, 배가 또 불렀어!"

"이 정도면 토끼들이랑도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은 걸~"

아이들은 이제 질리지도 않는지 불룩해진 내 배를 봐도 여전히 눈을 빛냈다.

뭐, 이런 면이 귀여운 거였지만.

내 배에 찰싹 들러붙는 고양이들의 머리카락을 마구 쓰다듬었다.

귀여워, 귀여워.

"그나저나, 토끼라니. 무슨 토끼를 말하는 거니?"

"음, 토끼 수인들은 아기를 많이 낳거든요. 자주 낳기도 하고요."

"그렇구나..."

내가 지금 겪는 일들이 토끼 수인들에게는 흔한 일이려나.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혼자가 아니니까 할 수 있어.

물론 그 당사자들을 직접 본 건 아니었지만, 이야기 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된달까...

"그러고 보니, 요즘 마녀 꼬마가 신기한 걸 만들고 있었어!"

"...마녀 꼬마?"

"에밀리 씨를 말씀하는 거에요."

마녀 꼬마.

마녀 꼬마라니.

에밀리 본인이 들었다면 분명 화냈을 법한 별명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자라지 않는다며 불평 가득이었는데, 꼬마라고까지 부르면 노발대발 할 텐데 말이야.

그래도 뭐, 딱히 어울리지 않거나 하는 별명은 아니었다.

그런 구식 마녀 고깔모자를 쓰는 사람은 에밀리 외에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신기한 걸 만들고 있다니..."

"마시면 하늘을 날 수 있어! 둥실둥실 해서 기분도 좋아..."

"머리가 헤롱헤롱해져!"

마시면 하늘을 날 수 있고, 둥실둥실 해서 기분 좋고, 머리가 헤롱헤롱ㅡ

설마, 아니지?

아니, 그보다 그걸 애들한테 먹였단 말이야?!

"디르, 혹시 에밀리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니?"

"어저기 엄청 멀리 있어! 으응, 우리 방 밑에?"

"고맙구나."

고양이들의 머리카락을 한 번 씩 더 쓰다듬은 뒤에 서둘러 방을 빠져나왔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걸 애들한태 먹이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에밀리! 대체 애들에게 뭘 먹인ㅡ 에밀리?"

"...마침 잘 왔어. 이것 좀 풀어줄래?"

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건 하얗고 투명한 무언가였다.

그러니까, 구름? 같은데.

그 구름 같은 것에 거꾸로 매달린 에밀리가 불퉁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둥둥 떠있네..."

"..."

"둥실둥실 떠있으니까 기분 좋, 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거꾸로 뒤집혀져 있으니까 머리가 헤롱헤롱 할 테고..."

"...저기, 지금 내 말 듣고 있어?"

멍청히 중얼거리다가도, 으르릉거리는 듯한 에밀리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래, 에밀리를 도와줘야지.

구름 같은 것에 붙잡혀서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으니까.

'...잠깐.'

그런데, 이건 기회가 아닐까?

에밀리가 이렇게 얌전히 있는 것도, 무방비 한 것도 전부 처음이었다.

물론 자의가 아니기는 했지만서도...

만지작.

"...무, 뭐 하는 거야?"

"...볼을 만지고 있는데."

"그러니까 그걸 왜 지금 하냐고!"

"지금이 아니면 못 하니까?"

요래, 요래.

에밀리의 말랑한 볼따구를 만지작거리다가, 좌우로 주욱 늘렸다.

어이가 없다는 듯한 눈빛이 조금 아프기는 했지만, 화를 내는 것 같지는 않았기에 계속하기로 했다.

그냥 자라지 말고 계속 이 상태면 안 될까.

언젠가 에밀리가 어른이 되어버린다면 이 정도로 살갑게 굴지는 못하게 될 것만 같았다.

'...큰 에밀리는 솔직히 무리니까.'

아직까지도 기억이 생생했다.

나를 죽여버리려고ㅡ 아니,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 꼴을 만들고야 말겠다며 달려드는 그 괴물 같은 모습이.

...역시 싫네.

내 고간에 지팡이를 꽂아넣고는 몇 번이고 파이어볼 따위를 사용하려고 했으니 말이지.

'어라, 이거 지금 생각하면 딱 좋은 복수 기회가 아닌가?'

기왕 이렇게 된거 지금까지 묵혀온 한을 잔뜩 푸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나중에 에밀리가 자란 뒤에 원망 해버리면 그건 너무 보기 안 좋을 것 같았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잔뜩 만지자.

미래의 에밀리와 내 관계를 위해서 지금의 에밀리가 잠시 정도만 희생하면 되니까 말이지.

"이허 노흐하 해하?"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구나. 으응, 부드러워..."

"...헤흐."

뭔가 방금 한숨 쉬는 것 같았는데 기분 탓이겠지?

뭐, 한숨을 쉬어도 절대 멈추지 않을거지만.

유치하다고 해도 상관 없었다.

이 부드러운 볼은 지금부터 내 차지니까!

"으앗?!"

"어이쿠..."

하지만 에밀리의 몸을 붙잡고 있는 구름이 무한적으로 지속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치는 자그마한 몸뚱이를 서둘러 받아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부터 떨어졌으면 큰일 났을지도 모르겠네.

생각보다 높은 곳에 있었으니까 말이지.

"고맙다는 말은 안 할 거야."

"화를 내주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해."

"...흥."

내 품에 안긴 채로 고개를 돌려도 말이지...

잔뜩 삐진 에밀리를 품에 안고는 살살 달랬다.

확실히 예전보다 무게가 늘기는 했지만, 이쪽도 몸 상태가 아주 약간이지만 좋아져서 막 놓쳐버릴 정도로 무거워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왜 그렇게 서둘러 온 건데? 대체 그 고양이들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길래, 응?"

"그게 말이지ㅡ"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 설명을 다 들은 다음에는 뭔가 이상한 사람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오해할 법 했잖아?

하늘을 날고, 둥실둥실하고, 머리가 헤롱헤롱한다니.

누가 봐도 영 좋지 못한 목적을 위해 만든 중독성 강한 약물 같은 느낌이 풀풀 풍기지 않아?

...뭐, 결국은 구름 같은 무언가를 만드는 것 뿐이었지만 말이지.

"내가 그런 걸 만들 리가 없잖아. 바보 아니야?"

"미안하구나, 의심해서."

"미안해야지. 위대하신 천재 마법사를 더러운 약쟁이 취급 했는데."

"...미안."

아무리 사과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나라도 자신을 약쟁이 취급한다면 별로 기분이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에밀리가 화가 난 것에는 꼭 그런 이유만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나쁜 쪽으로 의심을 당했다는 점에서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그렇네. 내가 나빴구나. 내 아이, 아가라고 하면서 마음대로 의심하기나 하고.'

내 배로 낳으면 다 내 아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

결국 에밀리가 다시 태어나기 전에 겪었던 일을 아직까지 놓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소리나 지껄였다니.

갑자기 자존감이 팍팍 떨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바닥 근처에서 놀던 자존감이 마침내 바닥에 닿자, 그 밑에 묻혀있던 우울감이 비죽비죽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나 말해주자면, 울면서 사과 하지마."

"...응."

"그런 울 것 같은 표정도 짓지 말고. 애초에 네가 왜 사과 하는 건데?잘못은 나한테 있는데."

에밀리는 자신을 향한 내 의심이 당연하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어찌나 당당하게 말하던지 내가 의심했을 때의 표정이 순간 잊혀질 정도였다.

결국 잊지는 않았지만.

"나였다면, 차라리 어딘가에 가둬버렸을 거야. 아무리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마법사의 지식은 꼭 마법에만 국한되어 있는게 아니니까."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에밀리가 말했다.

그저 마법을 사용할 수 없을 뿐이지, 시간과 인내만 있다면 대충 여러가지는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덤이었다.

이번의 구름 같은 것도 그 경우에 해당했고.

"그래서, 이번에 만든 그 구름ㅡ"

"구름 생성 포션."

"그래, 그건 어디에 쓰려고 만든 물건이지?"

"공중 침대를 만드려고 조합한 포션인데, 고양이들이 뛰어드는 바람에 실패했어. 분명 출입 엄금이라고 문 앞에다 붙여놨는데 말이지."

그러고 보면 방 문 앞에 그런게 적혀져 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오랜만에 만드는 포션이라서 간단한 것부터 차근차근 만들고 있는 중이었어. 익숙해만 진다면 언젠가는 더 유용한 것들도 만들 수 있게 되겠지."

"그렇구나..."

그렇다면, 토끼 수인이 되는 포션도 만들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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