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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21화 (221/342)

Chapter 221 - 변해간다는 것.(1)

잘못된 선택을 한게 아니었을까.

응,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게 맞는 것 같아.

"아리엘, 괜찮아?"

"...죽을 것 같구나."

농담이 아니라 진짜 죽을 것 같았다.

엘리의 말에 따르면 뱃속의 아기들이 내 내장을 전부 짓눌러서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피도 제대로 통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었나.

가만히 있기만 해도 몸이 너무 저려서, 아서가 팔 다리를 주물러주지 않으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앞으로는 그런거 마시지 마. 알겠지?"

"...그러마."

편법을 쓰려고 한 자에게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법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엄청나게 충동적인 결정이었네.

심지어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는 수인화가 풀리지도 않아서 더 고역이었다.

"흐으으..."

"괜찮아, 괜찮아. 할 수 있어, 아리엘."

그나마 세계수 곁에 있어서 다행이지, 만약 조금이라도 벗어났다면 금방 죽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무게에 짓눌려 죽는 어미라니, 그만큼 비극적인 일이 또 있을 수 있을까.

내 머리를 쓰다듬는 아서의 손길에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쓰다듬을 수 있도록 토끼 귀를 슬쩍 움츠렸다.

"...이번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언제나 하는 질문이었다.

어떤 아이들이 태어나는지, 그 아이들이 커서 어떤 모습을 지니게 될지, 그리고 나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까지.

분명 이 굴레는 내가 백만 명을 전부 낳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터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읏..."

"아리엘."

"아서."

이제 나오려나봐.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떴다.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아서 그런지 분명 낮인데도 불구하고 시야가 어질어질 돌았다.

평소에는 하나, 많아야 둘의 움직임만 느껴졌었는데, 이번에는 그 배가 넘는 숫자가 움직이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으, 으으으으윽!!!!!"

아기들의 움직임과 함께, 자그마한 균열이 억지로 벌려졌다.

어미의 배보다 큰 아이들이 태어나는데, 그 길 또한 자그마해서 내장이 그대로 뽑혀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서, 아서... 거기, 거기 있지?"

"응, 나 여기 있어. 나 여기 있으니까,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나 진짜 바보였구나.

하나를 낳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죽으려고 했으면서, 여러 명을 낳는게 쉬울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러다가 잘못되서 아기가 잘못되거나 죽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데?

"미안, 미안해... 내가 다 잘못 했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짓 안 할게..."

엉엉 울면서 잔뜩 빌었다.

앞으로는 한 번에 하나만 낳을 테니까, 제발 한번만 살려주세요.

누구한테 비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진심을 다해서 빌었다.

그 덕분인지, 아기가 태어날 쯤에는 정신이 반쯤 날아가기는 했지만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흐아, 흑, 흐으윽..."

"이걸로 둘이야, 아리엘. 조금만 더 힘 내!"

"으, 으으으으윽!!!"

얼마나 남았으려나.

엘리의 말로는 여섯이나 일곱 정도였는데.

침을 질질 흘리며 고개를 돌리니, 아서가 아기 둘을 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엄청 작아.

분명 토끼 수인이 아니라 평범한 아기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작았다.

"으, 으으으..."

그래도, 아기들의 모습을 보니 힘이 났다.

더 낳을 수 있어.

그러니까 힘 내는 거야, 아리엘.

열심히 낳아야 언젠가 나나 아서를 닮은 딸을 낳지, 응?

"수고했어, 아리엘."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을 차릴 무렵에는 둥글게 부풀어 올랐던 배가 홀쭉해진 채였다.

몸도 뭔가 엄청나게 자란 것 같았고.

자란게 아니라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말하는게 맞는 말이겠지만.

"아기, 아기들을ㅡ"

"여기 있어. 다들 건강하게 잘 태어났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서로 전혀 닮지 않은 일곱 쌍둥이의 모습에 겨우 평정을 되찾았다.

모두들 건강하게 태어났구나.

혹시라도 이상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아기들을 받아들고는, 열심히 젖을 먹였다.

품에 안긴 아이의 숫자가 일곱이라 한 번에 두 명 밖에 먹이지 못했지만, 다행히 다른 아이들이 칭얼거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꼬르륵...

"...배가 고프구나."

"뭐라도 먹을까? 에반젤린 여왕에게 부탁하면 분명 마음껏 먹을 수 있을거야."

한참이고 먹지를 못했다 보니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지경이었다.

임신하고 있을 때는 위장이 눌려서 먹는 족족 토해냈으니까 말이지.

원래라면 아기들을 돌본다고 말했을 테지만, 지금은 배가 너무 고팠다.

아기들을 돌보는 것도 일단은 살아있어야 가능한 일이니 말이지.

"아기들은 저에게 맡겨주세요, 마마."

"레이나."

"엘프들은 아기들을 잘 돌본다구요?"

가슴을 쭉 펴며 말하는 레이나에 마음껏 안심 해버렸다.

그래, 그러면 이번에는 레이나에게 맡겨두는 걸로 할까...

조금 정도는 쉬고 싶으니까 말이지, 으응.

***

"몇 번째 출산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출산 축하한다."

"...고맙구나."

축하 인사를 건네는 에반젤린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제는 내가 출산을 한다는 사실 자체를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구나.

내 그릇 위로 음식을 덜어주는 친절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물론 진짜로 울지는 않았지만.

"그러고 보니, 마족과 마왕에 대한 수업을 시작했더구나."

"..."

"반발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다행히 다들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는 했다는 모양이야."

마냥 마족을 옹호하는 내용은 아닐 테니까 말이지.

만약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사람들이 끝까지 들을 리가 없었을 테지만서도.

조금 비겁한 이야기였지만, 이 모든 일의 시작이 인간들로 인해 벌어졌다는 말을 하지 않은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인간들'이라는 말 대신 '바로니스 국왕과 그들을 따르는 인간들'이라는 말을 사용했기에 그나마 설득이 가능했겠지.

아무리 같은 인간이라고 해도, 죄 지은 자를 포용할 만큼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터였다.

"아무래도 전장에서 마족화 된 왕국군을 목격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말이 맞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한 편으로는 그 자 덕을 본거로구나..."

만약 바로니스 국왕이 마족화 된 병사들을 이용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

원래라면 마족이란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존재가 되었어야 맞을 것이었다.

어떻게 보자면 그들이 마족을 이용하여 정복 전쟁을 벌이려고 했던 덕분에 어느 정도 인식 개선이 이루어지기는 한 것이겠지.

그렇기에 엘리가 말하는 진실들이 그만큼 더 잘 먹혀든 것이겠지.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북부에서 만큼은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해주마."

"...고맙구나, 진심으로."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면 당연히 에반젤린이겠지.

그녀가 북부의 여왕이 아니었더라면, 그녀가 마왕이라는 존재에게ㅡ 나에게 조금이라도 호의적이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을 실행은 커녕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까.

하물며 에반젤린이 약했더라면?

혹은 이 정도로 강력한 왕권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만약을 상상하니 조금이지만 어깨가 떨려왔다.

"뭘 그렇게 고마워할 것까지야. 친구를 돕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

"새삼스럽게 뭘 또 감동 받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그러는 거냐."

별 것 아니라는 것처럼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에반젤린에 조금이지만 울 뻔 했다.

뭘랄까, 감수성이 충만해졌다고나 할까.

눈물샘이 찡해져서 조금 훌쩍거리니 푸흐, 하는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웃으니까 어린애가 되어버린 것 같잖아.

"...너무 그렇게 웃지 말거라."

"그렇지만 귀여운 것을 어떻게 해."

그러게, 나한테 귀엽다는 이야기도 하지 말래도?

에반젤린은 아무래도 나를 놀리는게 퍽이나 즐거운 모양이었다.

북부의 지배자라고 한다면 차가운 모습만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고정관념인 모양이었다.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 북부의 지배자?! 같은 느낌으로.

"그나저나, 이번에는 일곱을 낳았다지?"

"...그래."

조금 무리하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낳기는 했더랬다.

이렇게 보니까 토끼 수인의 몸, 정말 대단하구나.

그 작은 몸에 일곱을 넣고도 전부 무사히 낳을 수 있었다니.

물론 세계수가 생명력을 불어넣어준 덕분도 있겠지만서도.

"그 아이들도 레이나처럼 착한 아이들이면 좋겠군."

"레이나를 만나본 적 있나?"

"물론이지. 세계수에 갈 때마다 보는데."

그렇구나...

세계수에서 에반젤린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그녀가 레이나를 만났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업무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가끔 세계수로 향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북부에서 봄을 경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도 들었던 것 같고.

"아, 최근 들어 세계수의 끝자락 부분에서 농사를 시작하는 백성들이 있더군."

"농사?"

"그래. 척박한 북부의 땅에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축복과도 같은 일이지."

에반젤린의 얼굴에 마치 성녀와도 같은 미소가 걸렸다.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에서 나오는 안심과 환희.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감사의 감정에, 몸둘 곳이 없었다.

...언제나 말하는 거지만, 나는 딱히 한게 없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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