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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22화 (222/342)

Chapter 222 - 변해간다는 것.(2)

엘리에게 있어서 아리엘이란 존재는 보호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연약하고,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고, 아슬아슬한 존재.

하지만 자신 혼자서는 다른 이들에게서 그녀를 지킬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배를 빌어 태어나는 아이들에게서 지킬 수 없었다는게 맞는 말이겠지만.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모은 이유는, 마왕과 마족들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다.

설령 자신의 말에 약간의 과장이 섞이게 되더라도 말이다.

처음은 마족들이 소환되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바로니스 국왕과 그를 따르는 변절자들.

강제로 소환된 마족들의 아이와, 그 마족들의 아이를 잃음으로 분노한 마족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꾸민 마신까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믿으실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가 지금 드린 이야기는 전부 진실입니다."

전직 성녀라는 직함은 아무리 북부여도 상당히 먹히는 모양이었다.

아니, 애초에 왕국군의 기사들이 대부분 마족으로 변화했다는 점에서부터 자신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에 쐐기를 박을 법한 한 가지가 필요했다.

마족과 인간들이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 그저 육신과 혼이 분리되었던 하나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야만 했다.

"같은 이름을 지닌 인간과 마족이 한 자리에 모이면, 하나의 존재로 거듭나게 됩니다. 바로 저처럼요."

머리 위에 얹어진 베일을 벗어내렸다.

이런 짓 따위를 하지 않아도 설득은 가능했겠지만, 엘리가 보고 있는 건 바로 앞이 아니라 더욱 먼 곳이었다.

이 세계에 남아있는 마족들에 대한 처우.

대부분이 죽어버리기는 했지만, 일부는 노예가 된 채로 대륙 전역에서 고통 받고 있을 터였다.

물론 마족과 합일을 이룬 것 때문에 그들에게 동정심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마족들 만큼은 아리엘을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터였으니 그럴 뿐.

"마족들도 저희와 같은 인간입니다. 물론 그들의 죄를 없던 것으로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저 참회와 봉사의 기회를 주고 싶을 뿐이지요."

북부에서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는 마족 노예들 같은 경우는 어떻게든 끌어모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장소ㅡ 특히 왕국 같은 곳에서까지 순순히 그들을 보내올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마왕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하겠습니다.'

마수와 반쯤 합쳐진 마족 아이의 얼굴을 떠올린다.

아리엘 씨에게 폐를 끼칠 뻔 했다는 사실에 자책하면서도, 대륙에 있는 마족들을 이곳으로 결집시키는 일을 맡겨달라며 자신을 찾아왔었더랬지.

혼자의 몸으로 보내기에는 여러모로 불안한 감이 있었지만, 마족의 신체란 우습게 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 정도라면 충분히 믿고 맡겨도 될 테지.

"이상입니다."

아리엘 씨가 마족들의 손에 죽은 자들을 되살리고 있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아직 그 사실까지 알리는 건 시기가 너무 이르다고 판단한 것도 있고,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섣불리 말했다가는 오히려 그녀를 더욱 위험하게만 만들 터였다.

그러니까 이 사실은 나중으로 미루는 걸로 하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걸까...'

마족의 육신을 얻게 된 이상, 분명 인간의 인지를 벗어난 만큼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겠지.

그것들을 전부 투자한다면 먼 훗날 즈음에는 그녀를 여신으로 추앙 받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망할 여신의 자리를 대체한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나빠졌지만, 빼앗는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었으니까.

"다녀왔어요."

"왔구나, 엘리."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는 아리엘에 엘리가 빙긋 미소지었다.

그녀의 품에는 일곱 명이 아기가 안겨있었는데, 서로 하나 같이 닮지 않아서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하나도 닮지 않은 이들이 하나의 배에서 나왔다니, 정말 재미있네요.

정작 아기들을 낳은 당사자는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전부 사랑스럽다는 듯한 모양새였지만 말이다.

"저보다는 오히려 아리엘 씨가 성녀라고 불려야 할 것 같네요."

"푸흐, 그런 말 말거나. 나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니까."

당신이 착하지 않으면 이 세상 누가 착한 이인가요?

세상 사람들은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데, 누구의 아기였던 상관 없이 사랑을 쏟아내는 그녀의 모습은 가히 성녀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 누가 모르는 이에게 저 정도의 애정을 줄 수 있을까.

자신이었다면 가능했을까?

'아니, 전혀.'

아마 그 누가 와도 그녀와 같은 일을 하지는 못하겠지.

그런 의미에서 아리엘이라는 존재는 존경 받아 마땅한 사람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 종일 곁에 붙어있고 싶었지만, 겨우 그런 걸로는 그녀를 지킬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을 터.

이렇게 짧은 순간만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예쁜 아기들이네요, 아리엘 씨."

"우후후, 그렇지? 심지어 자그마치 일곱 쌍둥이다. 일곱 쌍둥이."

아기들을 낳았을 때는 분명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자그마한 몸뚱이인 채셨겠지?

만약 그렇다면 또 다시 죽을 고비를 넘기셨던 걸지도 몰랐다.

하나를 낳아도 신체가 망가지는데, 일곱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아리엘 씨가 낳을 아기를 제가 대신 낳아주면 좋을 텐데."

"마음만 받으마. 나를 생각 해줬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 혹여나 진심으로 아이를 가질 생각은 하지 말고."

...역시 당신은 행복해야만 하는 존재예요.

방긋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아리엘에, 엘리는 다시금 다짐했다.

반드시, 그녀에게 완전무결한 행복을 선물하고야 말겠다고.

***

"미안, 네가 임신하게 될 아기들의 크기를 생각하지 못했어."

"괜찮다, 살아만 있으면 됐지."

보통의 토끼 수인은 임신을 하게 되면 뱃가죽이 탄성 있게 변한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숫자의 아기를 임신해도 배가 찢어지지 않으며, 별 다르 이상이나 압박 없이 아기들을 무사히 낳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토끼 수인이 토끼 수인 아기를 임신 했을 때나 해당되는 이야기였지, 인간의 아기라면 또 달랐다.

"그 자그마한 몸에 일곱이나 되는 숫자가 어떻게 들어가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사히 나았다니 다행이네. 뭐, 잘못 됐다고는 해도 세계수가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냈겠지만."

"그런 것 같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에밀리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천재 마법사라도 가끔씩은 빼먹는게 있구나.

뭔가 어린아이 같은 면을 발견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날 이후ㅡ 에밀리가 나를 엄마라고 부른 다음부터 우리들의 관계는 조금이지만 바뀌었다.

"무릎 베고 누울래."

"그래."

그 까탈스럽던 에밀리의 어리광이라니.

괴리감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그건 불쾌하다기보다는 기분 좋은 괴리감 쪽에 가까웠다.

아이가 엄마에게 어리광 부리는 것이 싫다면 분명 부모 실격이겠지, 응.

허벅지 위에 올려져 있던 손을 슬쩍 들어올리니, 에밀리가 제 머리 위에 씌워져 있던 커다란 고깔모자를 옆에 내려놓더니 그대로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몸이 안 좋으면 세계수라도 찾아가 보렴."

"...응."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뒤로부터 에밀리의 몸은 가끔씩 고통을 호소할 정도로 쇠약해졌다.

생명에 지장이 있다던지 그런 건 아니었지만, 가끔씩 기침을 토해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너무 안쓰러워서 두고 볼 수가 없달까.

어째서 세계수를 찾아가지 않는 걸까.

어쩌면 다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데.

"마법을 다시 사용하고 싶지는 않니?"

"...별로."

에밀리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마법을 다시 사용하고 싶은데 일부러 이렇게 대답하는 건가 싶었지만,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가 퉁명스럽게 답하는 이유는 그저 더 이상 마법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인 듯 싶었다.

그 증거로ㅡ

"마법으로 너를 다치게 했으니까, 그냥 별로 사용하고 싶지는 않은데. 세계수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가능할지 모르겠고."

"...에밀리."

천천히 분홍빛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기특한 생각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안쓰럽다고 해야 할까.

예전의 그 일ㅡ 저택을 불태운 마법을 사용한 것이 아직까지도 마음에 남아있는 듯 싶었다.

...나는 이제 딱히 신경쓰지 않는 것 같은데 말이지.

피해자는 이미 용서했지만, 가해자 스스로가 용서하지 못하는 죄라니.

"...아무튼, 포션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든 개량할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몸이 작아지지 않고, 수컷을 발정시키지 않는 선에서 한 번 만들어 볼 테니까."

"고맙구나."

몸에 힘을 완전히 풀어낸 에밀리에 프흣, 하고 웃었다.

이제는 하나도 경계하지 않는구나.

아니, 경계라기보다는 혐오가 더 맞는 말이겠지만.

"아아, 정말. 원래라면 이렇게 평화로운 일상 따위 상상도 하지 못했어야 정상인데..."

"..."

"그래도 뭐ㅡ 엄마랑 같이 있으니까 기분은 좋네."

둥글게 호선을 그리는 입꼬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분홍빛 눈동자에 비치는 내 미소는, 놀라우리만큼 에밀리와 닮아있었다.

마치, 진짜 가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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