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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23화 (223/342)

Chapter 223 - 동족.(1)

솔직히 내가 마족을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오히려 인간을 더 많이 봤으면 많이 봤지, 마족이라면 뭔가 오랫 동안 만나지 못한 동향 사람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갑자기 마족 이야기를 왜 꺼냈느냐고 물으면 그 귀한 동향 사람이 바로 내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

"..."

시선이 따갑다.

...시선이, 따갑다?

분명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기는 했지만, 부정적인 의미의 따가운 느낌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이건 마치ㅡ

"...죽여주시옵소서, 마왕님. 이 불충을, 증오스러운 인간들의 손에 마왕님을 더럽히도록 둔 저희에게 벌을ㅡ"

"괜찮, 괜찮으니 고개를 들거라. 어서!"

그렇게 왜치며 바닥에 머리를 쿵쿵 박는데, 어찌나 세게도 내려치던지 울리는 소리가 저 멀리까지 퍼져나갈 지경이었다.

저러다가 머리에서 피가 나는 건 아닐까.

아니, 마족이니까 그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고생은 네가 더 했지, 나는 편하게 있었다. 아주 편하게!"

"...그렇습니까."

아무리 봐도 '그렇습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잖아, 그거.

누가 봐도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고통스러운데도 불구하고 괜찮다고 말하는 상사.'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잖아.

무어라 설명을 해주고 싶었지만, 설명을 한다고 들어먹을 것 같은 상태가 아니었다.

원래 마족들은 다 이런 걸까?

그 아이도 그렇고, 지금 눈앞의 마족도 그렇고...

'할리벨이 특이한 편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네.'

반쯤은 장난으로 그런 것 같지만, 나를 덮치려고 했던 전적이 있었으니까.

뭐, 지금에서 떠올리면 아련한 추억이었지만서도.

"마왕님께서 감히 무슨 짓을 당하셨을지, 저는 상상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일개 마족에 불과한 저조차 이 정도의 수모를 겪었는데, 마왕님이라면 얼마나 더 고초를 겪으셨을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볼 수 있겠나?"

상처를 후비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저 궁금했을 뿐이었다.

노예가 된 마족들이 무슨 짓을 당했는지.

그리고 무슨 취급을 당했는지.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기는 하지만, 직접 당사자에게 듣는 편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

지금은 떠나고 없지만, 내가 구해주었던 아이는 뿔에 대못이 박히고 있었더랬다.

아마 마족에게 가족을 잃은 이가 복수심에 고문하고 있던 거겠지.

할리벨의 같은 경우는 창관에 팔아남겨져 강제로 몸을 팔았었다.

몽마가 된 몸으로 공포를 느낄 정도까지 범해지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 그녀의 고통이, 과연 정당한 것일까.

"저는, 그러니까..."

"떠올리는 것이 괴롭다면 말하지 않아도 좋다. 그런 건, 불충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아닙니다, 말 하겠습니다."

눈앞의 마족 같은 경우에는 머리에 뿔이 멀쩡히 솟아있었다.

전신을 덮는 망토 때문에 정확한 신체가 보이지 않아서 상태를 알 수는 없었지만, 정상은 아닐 것이라고 막연히 예상할 뿐이었다.

"그 전에, 제 몸을 마왕님께 보여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그래, 좋다."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마족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주면서 설명하고 싶다면, 그리 하는게 옳을 테니까.

그리고 직접 상태를 보고 싶기도 했고.

"...!!"

"...추하지 않습니까? 이런 몸이 되어서는."

상처가 많다던지, 혹은 고문의 흔적이 있다던지 하지는 않았다.

가슴을 겨우 가리는 천조각과, 성기의 노출을 아슬아슬하게 막아주는 가죽 조각까지.

육감적인 몸매를 전부 드러낸 복장은 누가 봐도 욕정할 정도로 한껏 음란하게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그 중 한 군데.

마치 칼날로 헤집어 놓은 듯한 길고 긴 흉터가 그녀의 아랫배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인간들에게 범해져 아기를 가졌었는데, 그마저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

"증오스러운 인간의 아기라며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려고 했는데, 잘 되지를 않더군요."

분명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았지만, 내 눈에는 그녀가 하염 없이 우는 것으로만 보였다.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이 괴로워 했을까.

천천히 손을 뻗어, 마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생했다."

"..."

"고생했어, 정말로."

스스로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가장 불행한 사람 몇을 꼽으라면 나도 포함되어 있다고는 생각해봤더랬다.

하지만 이곳에 나와 똑같은 슬픔을 가진 존재가 있었다.

제 뱃속에 있던 아기를 죽음 곁으로 떠나보낸 존재가 대체 어떻게 멀쩡할 수 있겠는가.

여태까지 가시지 않은 슬픔이었다.

앞으로도 지워지지 않을 터였고.

"으, 으흑, 으아..."

"...울어도 좋다. 그 눈물 또한 기꺼이 받아들일 터이니."

"마왕, 님. 윽, 그흐, 하..."

마치 우는 것을 모르는 사람 같은 모양새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울지 않은 사람이 쌓여진 슬픔을 억지로 토해내기 위해 그 울음을 따라하는 것만 같았달까.

그렇기에 더더욱 안타까웠다.

가장 처음의 눈물이 아이를 잃은 슬픔에서 나오는 눈물이라니.

나 또한 흘려본 적 있는 눈물이기에, 그 누구보다 확실히 공감할 수 있었다.

***

"...추태를 부려 죄송합니다, 마왕님."

"추태가 아니었다. 부모라면 당연한 것이었으니."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것이 죄스럽다는 듯, 마족이 고개를 연신 조아렸다.

물론 나는 그 행동을 곧바로 제지했지만 상대는 아무래도 성이 차지 않는 모양인지 계속해서 송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이지, 마왕이라는 직함은 하등 쓸모도 없구나.

같은 마족에게 이렇게 섬김 받는 역할 같은 건 차라리 다른 이가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큼, 이제야 묻기에는 조금 늦었지만,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도 되겠나?"

"당연히 여쭤보셔도 좋습니다, 마왕님. 오히려 먼저 이름을 소개하지 않은 제 불충을 벌해주시ㅡ"

"벌하지 않을 테니, 어서 말해다오."

너무 깍듯이 대하는게 아닐까, 진심으로.

또 머리를 바닥에 들이박으려고 하길래, 서둘러 그 어깨를 붙잡았다.

어찌나 행동이 빠르던지, 자해를 막으려고 한 팔이 삐걱거릴 정도였다.

"...메이아, 메이아라고 합니다."

"메이아, 메이아... 좋은 이름이구나."

이름을 불러준 것만으로도 감격하길래, 그대로 자리에서 일으켜줬다.

마족과 마왕의 관계는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오로지 힘만으로 이루어진 관계라고 하기에는 기이할 정도로 공포감이 없었다.

그렇다고 편하게 대하는 건 또 아니었는데, 이 정도로 예의를 차리며 지내는 건 윗사람이 아니라 마치 신앙을 하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신앙이라니, 웃기지도 않아.'

애초에 나라는 존재는 누군가의 신앙은 커녕 누군가의 책임조차 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허튼 생각 그만 하고 남은 마족들에 대한 처우부터 생각하는게 좋겠지.

지금은 비록 하나 뿐이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숫자가 더욱 늘어날 터였다.

그들이 인간들에게 배척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무슨 수를 내야만 했다.

이를테면, 인간들을 도우며 산다던지.

"메이아, 부탁할 일이 있다."

"...하명하옵소서."

"인간들과 마족들의 관계 개선을 위해 힘써줄 생각이 있나?"

못할 짓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인간의 손에 아기를 잃은 마족에게 인간들과 마족들의 관계 개선을 위해 힘써달라는 이야기를 하다니.

스스로가 생각해도 참 못할 소리였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서라면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언젠가 태어날 내 아이와 내 아이의 아이들이 차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마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해야 해...'

어쩌면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몰랐다.

미래에 태어날지, 태어나지 않을지 모를 아이를 위해 한 사람의 상처를 후벼파는 부탁을 한다.

그것 만큼 피도 눈물도 없는 짓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래서야, 나 또한 여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마왕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고맙구나. 그렇다면ㅡ"

"그렇다면, 이곳의 시녀로 일해보는 건 어떤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만 있던 방의 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무늬만 마왕인 나와는 다르게 왕의 기품ㅡ 혹은 아우라를 지닌 진짜 여왕.

에반젤린이 방 안으로 들어서더니,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런 미소에도 불구하고 메이아는 잔뜩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지만서도.

아무래도 인간과 한 공간 안에 있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듯 싶었다.

"...시녀라니. 지금껏 인간들의 노예로 생활한 나에게 또 다시 인간의 밑에 들어가 개처럼 일하라고 말하는 건가?!"

"아니, 내가 말하는 시녀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곳의 시녀라는 건 곧ㅡ 아리엘의 전속 시녀를 뜻하지. 어때, 이 정도면 구미가 당기지 않나?"

"..."

말은 없었지만, 그 침묵이 긍정적인 의미의 침묵이라는 것 정도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전속 시녀라는 건 말 그대로 그 사람 곁에 하루 종일 붙어있어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그 대상이 나라면, 더더욱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터였고.

"마침 하루 종일 그녀를 돌볼 마족ㅡ 사람이 부족하던 차였거든."

에반젤린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쐐기를 박았다.

확실히, 마족이라면 내 신변에 이상이 생겼을 때 더욱 도움을 줄 수 있겠지.

같은 마족끼리는 무언가 통하는게 있을 테니까.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제안을 받은 당사자의 동의 여부겠지만ㅡ

"...승낙하지."

아무래도, 수락으로 결정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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