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4 - 동족.(2)
인간이라는 것은 혐오스러운 생물이다.
처음 이 세계에 불러온 뒤로부터 쭉 생각하던 것이었다.
자신들의 힘과 권력, 부를 위해서 마족들을 희생시킨 존재들.
동족들의 복수를 위해 있는 힘껏 날뛰었지만, 돌아온 건 목을 옭아매는 밧줄 뿐이었다.
'제발, 제발 아기 만큼은 손대지 말아다오. 무엇이든 할 테니까 제발ㅡ'
분명 처음에는 혐오스러울 뿐이었는데.
인간들로 인해 만들어진 아기 따위 그냥 죽어버리라고만 생각했었더랬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배가 불러오자, 거짓말처럼 생각이 바뀌고 말았다.
내 아기.
그 단 세 글자가 뇌를 마비시켰다.
'죽여,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 내 반드시 네 녀석들을 찢어 죽ㅡ'
"...안 좋은 기억을 떠올려 버렸구나."
혀를 차내고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배를 갈라서, 뱃속에 있는 아기를 꺼냈지.
아직 완전하게 자라지 않아 쭈글쭈글 했지만, 내 뱃속에서 나온 내 아이였다.
그런데 그런 아이를, 무참하게ㅡ
"진정, 진정하자. 지금은 마왕님을 모시는 것에만 집중하는 거야."
희어지도록 깨물린 입술이 당시의 제 얼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래, 차라리 지금 쏟아내고 가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지.
마왕님 앞에서는 실수하고 싶지 않으니까.
"마왕님..."
흉부와 고간을 겨우 가리던 천조각이 아닌 제대로 된 옷.
비록 시녀의 복장이기는 했지만, 마왕님의 시녀라면 업겁의 시간이라도 해낼 자신이 있었다.
받들어 모셔야 할 분.
마족들이 우러러 봐야 할 분.
그리고, 그 누구보다 고통 받으셨던 분.
'나는 정말 괜찮다.'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를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괜찮지 않으시잖습니까.
누가 봐도 상처 받은 표정을 하고 계시면서, 저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런 거짓말을ㅡ
"저, 저기ㅡ 오늘 새로 일하시게 된 분이라고ㅡ 히엑, 마, 마족?!"
"..."
인간.
시끄러운 인간.
제 얼굴을 보며 자지러지는 인간 꼬마를 보며 표정을 찌푸렸다.
마음 같아서는 눈앞의 인간을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마왕님께서 인간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셨기에 어쩔 수 없이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시끄럽다는 것 빼고는 별로 해를 끼친 것도 아니니.
"...무슨 일이지?"
"저, 저, 그으... 그냥! 그! 잘 지내보자고, 인사하러 왔습니다... 네엡..."
"..."
유약한 인간이었다.
마족은 커녕 같은 인간이나 죽일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닭의 목을 비트는 것마저 못할지도 모르지.
"저, 저기요?"
"...그래, 잘 지내보도록 하지."
"넵!"
곧바로 차렷 자세가 되어서는 잔뜩 기합이 들어간다.
이건 겁을 먹었기에 나오는 행동인 걸까, 아니면 원래부터 이런 인간인 걸까.
궁금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마왕님을 모시겠다는 생각 뿐.
"할 말이 끝났다면, 이만 가보마."
"앗, 넵! 힘내세요!"
힘을 내라는 건 마왕님을 보필하는걸 힘 내라는 뜻일까.
아니면 인간들을 증오하는걸 힘 내라는 뜻일까.
인간 하나만 방에 남겨두고 오기에는 기분이 조금 그랬지만, 어차피 방에 두고 있는 물건 따위는 없었다.
도둑 맞을 것도 없을 뿐더러, 무언가 알아갈 것 또한 없을 터였다.
똑똑.
"마왕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거라."
근엄한 말투였지만 목소리 만큼은 상냥했다.
역시 만마를 아루르시는 우리들의 마왕님 다우시다.
속으로 마왕님을 찬양을 외치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본래라면 마왕궁에 계실 분이 이런 누추한 곳에 적을 두고 있으실 줄이야.
"오늘부터 내 곁에 있다고 들었다. 잘 부탁한다, 메이아."
"...이렇게 마왕님의 곁에서 일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영광까지야, 뭘."
마왕님이 손사레를 치셨다.
마치 해탈한 것처럼 나른하게 풀린 눈동자가 그녀의 심정을 일러주는 것 같았다.
강제로 인간계에 불려온 마족들과 마왕님.
그리고 용사에게 패배해 가지게 된 치욕스러운 순간까지.
'우리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더 있었더라면ㅡ'
혹은 다른 누군가가 용사 일행들을 궤멸시켰었더라면.
하지만 전부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이미 지난 일에 미련을 가져도 현재가 바뀌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저 지금의 일에 충실할 뿐.
"아, 메이아."
"...네, 마왕님."
"잠시만 가까이 와보거라."
살랑살랑 손짓하는 마왕님에 몸을 가까이 했다.
머리를 향해 뻗어지는 손을 보니 반사적으로 몸이 굳었지만, 가까스로 도망치는 것을 참아낼 수 있었다.
마왕님의 손길에서 인간들이 흉수를 떠올리다니 이 어찌 불경한 일이란 말인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엎드려 잘못을 빌고 싶었다.
물론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니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자, 됐다."
"..."
마왕님이 하신 것은 정말 간단한 일이었다.
내 얼굴을 가리는 앞머리의 일부를 거둬들여, 두 갈래로 만든 뒤에 그것을 다시 한 갈래로 땋아내셨을 뿐.
그 행동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기에 딱히 깊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마왕님의 행동이시니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이 모시는 자가 할 일이었으니.
"이렇게 보니 내가 아는 자를 닮았구나."
"...그렇습니까?"
"그래."
마왕님의 눈은 그리운 무언가를 바라보는 듯 했다.
누구를 떠올리시는 걸까.
마왕님께서 떠올리시는 존재와 만나볼 수 있을까?
목구멍 직전까지 질문이 불쑥 치고 올라왔다.
어쩌면, 이런 표정의 마왕님을 더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튀어나온 질문이었을지도 몰랐다.
"지금 떠올리시는 존재는, 어떤 분이십니까?"
"어떤 사람이라.."
"..."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지."
그리움이 짙게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그 안에 조금의 슬픔이라도 담겨있었다면 곧바로 머리를 숙였겠지만, 다행히 마왕님이 행동에는 조금의 슬픔조차 스며들지 않아 있었다.
언젠가 내가 떠나간다 해도 마왕님께서 나를 그리워해주실까.
분명 그렇게 해주시겠지.
누가 뭐라고 해도, 마왕님이시니까.
***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지만, 시녀복을 입은 메이아를 보니 무언가가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게임 속의 등장인물.
메이드복을 입고, 단발과 장발 사이의 머리카락을 한 은발의 캐릭터ㅡ
아무튼.
색 배합은 조금 달랐지만, 일치율이 50%가 넘어가는 듯한 외형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ㅡ'
비슷하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메이아의 얼굴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한 줄기로 땋아내리자 내가 기억하던 그 모습이 더욱 선명해졌다.
그래도 역시 게임 속 일러스트보다는 현실 인물이 훨씬 낫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속으로 후후 웃었다.
'어쩌면 어른이 된 걸지도 모르겠네.'
여전히 철이 없다고는 했지만, 과거와 같이 방 안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진 편이었다.
물론 이 세계에는 컴퓨터 따위 존재하지 않았지만서도, 만약 컴퓨터가 있다고 한들 그것만 붙잡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엄마가 되어서 놀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지, 암.
"혹시 내가 낳은 아이들은 봤느냐?"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귀여운 아이들이니, 언젠가 꼭 소개시켜주마."
"...감사합니다."
메이아는 정말 내가 무슨 말을 하기만 해도 전부 감사했다.
머리를 땋아줘도 감사하다고 했고, 게임 속 캐릭터를 닮았다고 해도 감사하다고 했다.
이러다가 내가 손이라도 잡으면 엄청나게 감격하는거 아닌가 모르겠네.
딱히 비꼬려는 건 아니었다.
그저 그런 반응 하나하나가 너무 귀여워서 참지 못하는 쪽에 가까웠으니까.
"너무 딱딱하게 있지 말고 이리로 오거라."
"하오나ㅡ"
"부탁이다."
내가 앉아있는 침애 옆을 팡팡 두드리자, 메이아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분명 거절하려고 했던거겠지.
명령이다, 같은 말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딱히 명령 같은 걸 하고 싶지는 않았다.
솔직히 마왕이라는 건 직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런 걸 해봤자 내쪽이 더 불편할 뿐일 터였다.
어째 부탁이라는 말을 사용하니 더 송구하는 것 같지만서도.
"제가 어찌 감히 마왕님과 동석을 하겠나이까..."
"괜찮데도. 내가 이렇게 있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 말거라."
황송해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한 제스쳐였다.
...그냥 말투를 바꿔보는 편이 좋으려나.
가끔씩 튀어나가는 가벼운 말투를 사용한다면 메이아도 나를 편히 대해줄지도 몰랐다.
'아니, 아니다. 지금은 때가 이른 것 같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전에 에반젤린이 말투를 바꿔 말한 것을 떠올리고는 곧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도 그때 그렇게나 놀랐는데, 메이아는 얼마나 더 놀랄까.
지금까지 근엄한 말투를 사용하던 마왕님이 갑자기 평범한 이들이나 쓸 법한 말투로 말을 건다?
어쩌면 그런 상황 자체를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나저나 메이아, 한 가지 묻고 싶은게ㅡ"
"아리엘, 혹시 엘리 본 적 있ㅡ"
"용사!!"
이런, 하고 혀를 차기 직전 메이아의 손에 커다란 철퇴가 들려졌다.
...그건 대체 어디서 꺼낸 거야? 보관한 장소가 없지 않나?
내 상체 크기의 철퇴가 바닥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과 동시에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음, 아무리 봐도 모형이나 그런 것 같지는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