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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25화 (225/342)

Chapter 225 - 동족.(3)

메이아가 오해를 푼 건ㅡ 아니, 무기를 내려놓은 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다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서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와 내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가 같은 것이라는걸 확인한 뒤였다.

경악, 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허망, 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내 손의 약혼 반지를 멍하니 바라보는걸 보면 어지간히 출격을 받은 듯 싶었다.

"설마, 마왕님께서 저 녀석과 혼약을 맺으셨을 줄이야..."

"그러게 내가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느냐."

메이아에게 그렇게나 당부를 했는데도, 결국은 철퇴를 꺼내들었지.

아서는 내 남편이래도?

억지로 결혼한게 아니라 진짜 사랑을 나누고, 미래를 속삭이며 결혼식까지 올린 사이란 말이야.

...물론 첫 만남은 그 어떤 연인들보다 최악인 형태였었지만서도.

"소개하마, 내 남편인 아스테리아라고 한다."

"...큭."

이제는 불한당의 손에 넘어간 소중한 아가씨를 바라보는 힘 없는 메이드 같은 표정이 되어버렸다.

분명 쿨계의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엄청나게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구나.

속으로 작게 감탄하면서도 아서의 팔뚝에 내 팔을 둘렀다.

만약에라도 메이아가 아서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절대 강제로 혼인을 했다거나, 협박을 당했다거나, 최면이나 저주 기타 등등으로 인한 이유 때문이 아니니까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말거라."

"그, 그렇지만 설마... 마왕님께서 용사를 사랑하게 되실 줄은ㅡ"

아니면 그런 거려나.

서로를 죽일 만큼 싫어하는 두 종족의 머리가 서로 사랑에 빠져서?

메이아 입장에서는 배신이라고 느낄 요소가 있기는 했다.

역시 여신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자세히 해주는 편이 나았으려나?

'...죽어서도 도움이 안 돼, 그 망할 여신.'

여신을 직접 마주한 뒤로 계속 든 생각이었다.

원래부터 호감이 가지는 않았지만, 당한 것이 많아서 그런지 떠올리기만 해도 이가 절로 갈렸다.

이건 여신을 직접 만난 뒤로 이 몸이 반사적으로 가지게 된 적대감 같은 거려나.

...잘 모르겠네.

"...그래도, 그것이 마왕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딱히 따르지 않아도 좋기는 하지만, 아서를 공격하는 것 만큼은 멈춰다오..."

물론 아서가 쉽게 당할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아서가 공격 당하는 것을 보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라서 말이지.

이런 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메이아가 아서를 공격하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나는 믿고 있으니까, 응.

"그렇게 하겠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남자와 마왕님이, 큭..."

"이런 남자라니, 무슨 남자인데?"

"쉿, 아서. 지금은 말꼬리 잡지 말고 입 다물고 있어라."

초면의 마족에게 혐오 당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꼬왔는지, 아서의 말투가 조금이지만 거칠어졌다.

너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었는데 왜 흥분하고 그래?

예전에 봤던 아서의 모습과 지금의 아서를 비교하면 완전히 애가 다 되어버렸다.

설마 용사라는 족속들은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정신 연령이 퇴화하거나 그런 건가?

"자, 계속 그러고 있지 말고 잠시 자리에라도 앉거라."

오랜만에 보는 아서였다.

먼젓번에 내 뱃가죽을 걸레짝으로 만든 뒤에는 미안해서 그런지 얼굴을 잘 비치지도 않았으니까.

얼굴을 잘 비치지 않는다는걸 미안해 하는 때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몇 번이고 말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그 본능을 거스르고 억지로 나를 만나지 않으려고 하다니, 정말.

"두 사람은 조금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어 보이는구나. 아니, 애초에 인간과 마족이 친하게 지내야겠지만."

마계로 돌아가는 방법이 나오지 않는 이상 마족들은 결국 이곳에서 살아야 할 터였다.

그렇다면 인간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편이 좋겠지.

실제로 한 존재가 분리된 느낌이기도 했으니까, 분명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마왕님의 뜻이니,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아서?"

"...그래."

나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앉은 두 사람의 모습에 푸스스 웃어보였다.

마치 친구의 친구 사이를 보는 것 같아서 재미있네.

정작 당사자 둘은 서로 어색한 것을 넘어서 사이가 안 좋을 지경이었지만서도.

"아서, 아직도 마족이 불편하느냐?"

솔직히 말하자면, 아서는 머리 위에 뿔 달린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혐오하는 듯 싶었다.

소꿉친구의 일도 그렇고, 가족들이나 지인들의 일도 그렇고 전부 마족들의 짓이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아무리 내가 마족이라고 해도 뿔이 달리지는 않았기에 딱히 혐오감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메이아의 뿔을 자르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누군가와 어울리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희생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심장과 비슷한 부위가 될 필요는 없을 테니까.

"...딱히 불편하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불편해 하고 있다는게 티가 났다.

정말이지, 표정만 봐도 당장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갈 것 같은 느낌이잖아.

아서가 먼저 움직이기 전에 내가 먼저 얼른 선수를 쳤다.

움직이지마.

그냥 여기에서 가만히 있어.

"아리엘."

아서의 손이 슬며시 내 손에 얽혀왔다.

은근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나와 단 둘이 있고 싶은 모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 둘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한다는게 맞겠지만서도.

'남자는 다 짐승이라더니...'

그렇게나 낳게 했으면서 또 그러고 싶을까.

물론 싫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냥 뭐랄까, 메이아도 있는데 은근히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게 부끄럽다고 해야 하나.

아리엘은 내 것이다ㅡ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제스쳐가 조금이지만 귀여웠다.

"메이아, 잠시 자리를 비워줄 수ㅡ"

"안 됩니다."

"...응?"

"안 됩니다. 이런 짐승 같은 인간과 마왕님을 단 둘이서만 둘 수는 없습니다."

단호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단호했다.

절대 나를 아서와 단 둘이 있지 못하게 하려고 작정한 듯, 표정이 아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것 같지만 말이야...

"제가 죽지 않는 이상ㅡ 아니, 제가 죽더라도 절대 허락할 수 없습니다."

"..."

어쩌면, 아서와 다시 관계를 맺게 되기까지는 꽤 험난할 것 같았다.

***

그 뒤에는 뭐, 눈치 게임의 시작이었다.

나와 단 둘이만 있으려는 아서와 그걸 절대 두고 보지 않으려는 메이아.

둘의 사이에 낀 모양새가 되기는 했지만, 굳이 누구 편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서의 편에 더욱 가까웠다.

"마왕님, 부탁하신 차를 가지고 왔ㅡ"

"...큼, 흠. 고맙구나."

"..."

메이아도 눈치 챘겠지.

내가 아서에게 조금 더 마음이 가 있다는 것 정도는.

방금 전까지 내 볼에 키스를 하던 아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태연한 표정이었지만.

'즐기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

아무래도 메이아에게 들킬 듯 들키지 않을 듯 한 그 느낌을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보통 이러면 설득을 해서 둘만의 시간을 가지거나 하지 않나?

은근한 손길로 내 허리를 슥슥 쓰다듬는데, 뭔가 나를 안달나게 하려는 속셈인 것 같기도 했다.

태닝만 안 했지 이건 그냥 금발 양아치잖아.

"흣?!"

순간적으로 엉덩이골 사이로 내려가는 손가락에 흠칫 놀랐다.

그런 내 반응에 메이아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지만, 아서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못됐어 정말.

상대는 남자도 아니고, 나를 유혹하지도 않았고, 그냥 나랑 같은 동족일 뿐이잖아.

설마 질투라고 하는 거야?

"그만해."

"미안."

아서의 팔을 찰싹 때리며 말하자 그제서야 그만 둔다.

내가 누구 것인지 각인하려고 하는 걸까.

정말이지, 어린아이 같은 발상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주변에 있는 남자의 숫자보다 네 주변에 있는 여자 숫자가 훨씬 더 많잖아?

아니, 애초에 내 주변에 있는 남자라고는 아서 하나 밖에 없었지만서도.

"...정말, 어린애도 아니고 뭐 하는 짓인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째 애를 하나 더 키우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이려나.

남자들은 나이를 먹어도 애라더니, 딱 그 꼴이었다.

나이를 먹어서 얻은 머리를 이런 곳에다만 쓰다니.

"마왕님, 혹여 이 자가 하는 짓이 무례하다고 생각 되신다면 곧바로 말씀 해주시길."

"그래, 걱정 해줘서 고맙구나."

"..."

메이아를 향해 빙긋 웃어보였다.

그런게 아니래도 그러네?

내가 아서에게 희롱 당하는 걸 억지로 참고 있는 걸로 보는 듯한 시선이잖아, 그거.

이 오해를 대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고민 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겠지만서도.'

골치 아픈 문제는 천천히 생각하는 편이 좋았다.

억지로 해결하려 들다가는 더 힘들어지니까 말이지.

마음 같아서는 아서 쪽이 알아서 그만 둬줬으면 좋겠지만, 얼굴을 보니 딱히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무표정이지만 누가 봐도 장난기 가득이잖아.

"아서."

"안 그런다니까?"

"...하아."

그 말이 정말 지켜질까.

누가 봐도 지킬 생각이 하나도 없어보이는 태도에 한숨이 푹푹 튀어나왔다.

엘리, 네가 그렇게 인간과 마족들의 조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도 이 둘 만큼은 안 될 것 같아.

메이아나 아서 둘 다 기억이 싸그리 지워지지 않는 이상은 분명 절대 맞닿을 수 없는 평행선 같은 사이로 지내겠지, 분명.

"사이 좋게 좀 지내다오, 두 사람 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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