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8 - 동족.(6)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는 했지만, 이쯤되면 조금 불안했다.
매일마다 아서의 손짓을 견디기 위해 혼자만의 해소를 한 것도 벌써 일주일 쨰였다.
여전히 아서와 메이아는 사이가 안 좋았고.
마지막 시점에서 지금까지 아서는 내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설마 나한테 실망한 건가?'
제 스킨쉽ㅡ 혹은 유혹을 계속해서 거절하니까 이제 그만 두기로 한 걸까.
내가 말하는 건 메이아와 함께 있을 때 그러지 말란 말이었지, 완전히 그만하라는 뜻이 아니었는데.
...물론 메이아가 나한테서 떨어지지 않기는 하지만서도.
"...아서."
"응, 왜?"
"...아무것도 아니다."
분명 해소를 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허벅지 사이가 근질거렸다.
안달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아랫 입술을 꾹 깨물었다.
또 이 느낌.
설마 나를 안달나게 하려고?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진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읏..."
"괜찮아?"
"괜찮아!"
슬쩍 아래로 내려가는 손을 억지로 멈춰세웠다.
멈춘게 아서의 손이 아니라 내 손이라는 건 꽤 충격이네.
이래서야, 내가 욕구 불만인 것 같잖아.
'...사실 욕구 불만보다는 아기를 가지고 싶다, 쪽이 더 맞는 말인 것 같지만.'
이것도 일종의 저주인 걸까.
아니면 최근 너무 많이 낳아서 낳는 것에 익숙해졌다던지?
고간 쪽에 가지 못한 채 멈춰버린 손을 천천히 아랫배 위에 얹었다.
큥♥
"흐으읏..."
"...아리엘?"
느낌이 왔어.
자궁이, 아기를 원하고 있잖아.
원래라면 더 참을 수 있었겠지만, 최근 들어서 자기 위로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자극이 너무 가해진 듯 싶었다.
...혼자만의 시간이었는데 그걸 아기를 가지고 싶다는 걸로 알아들은 거야?
쿵쿵 뛰어대는 자궁의 움직임에 살짝 몸을 움츠렸다.
'이대로라면 안 돼...'
메이아가 있는 앞에서 아서에게 달려들지도 몰라.
슬쩍 몸을 움직여 아서의 팔에 들러붙었다.
아서, 나 좀 조금 잡아주지 않을래?
내가 너를 덮치지 못하게.
"조금만, 잡아다오."
"표정이 안 좋은데, 정말 어디 아픈 건 아니지?"
"...마왕님."
이럴 때는 또 반응이 똑같구나.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비슷하게 변하는 표정들에 작게 웃음을 토해냈다.
앞으로 두 사람이 같이 있을 때는 계속 아픈 척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
어색하게 웃으며 더더욱 몸을 기댔다.
조금이라도 몸에 힘이 들어갔다가는 충동적인 행동을 할 것만 같았다.
'언제까지 이럴지는 모르겠지만ㅡ'
부디, 금방 지나가기를.
***
최근 마왕님의 상태가 이상했다.
잠을 깊게 자지 못하는 것인지 매일마다 피곤하신 듯한 얼굴을 하시고, 눈 밑은 점점 거뭇하게 물들었다.
분명 괜찮다고 말씀은 하고 계시지만 누가 봐도 괜찮지 않으신 모양새셨다.
'고민이 있나면 저한테도 말씀해주시면 좋을 텐데.'
아직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뜻일까.
아니면, 용사가 무슨 수를 쓰고 있다던지ㅡ
아니, 그건 아니겠지.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용사라는 인간이 마왕님을 사랑하는 건 진짜였으니 말이다.
"어쩌면 뿔 때문에..."
뿔이 잘려서 괜찮은 마족은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마왕님께서 가장 양호한 편이셨지만, 그게 멀쩡하다는 뜻은 아닐 터였다.
그 어떤 마족이 봐도 지금 마왕님의 상태는 죽기 직전의 그것과 유사했다.
만약 세계수가 없었다면ㅡ
"...쓸데 없는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그저 마왕님을 모실 생각만 하는게 맞았다.
마왕님이 어떤 상태라고 해도, 육신과 혼을 전부 바쳐 성심성의껏 모신다.
마음 같아서는 뿔의 치료라도 해드리고 싶었지만, 지금껏 잘린 뿔을 도로 붙인 경우는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똑똑.
"마왕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거라."
며칠 사이에 걸쳐, 마왕님의 목소리가 점점 매말라 가는 것만 같았다.
괜찮으시겠지?
부디 괜한 걱정이기를 바라며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메이아."
"네, 마왕님."
"조금만, 둘만의 시간을 가지게 해주면 안 되겠느냐?"
"..."
둘만의 시간이라는 건, 분명 용사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을 말씀하시는 것이겠지.
물론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이 방에서 나가면 될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왕님."
"...아니, 괜찮다."
처음으로 입 밖에 낸 거절의 표현.
깔끔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간결하게 내뱉어진 거절에 스스로도 놀라버렸다.
나라는 마족은 마왕님께서 용사와 단 둘이 계시는 것을 끔찍할 정도로 싫어하는구나.
심지어 그것이 마왕님의 명령ㅡ 아니, 부탁을 거절하는 형태가 된다고 하더라도.
"흐읏..."
"마왕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괜찮, 괜찮다..."
달뜬 숨을 토해내며 배를 감싸쥐시는 모습이 어찌나 가련하던지.
언제나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던 것과는 대비를 이루어서 훨씬 더 충격이 커다랬다.
만마의 지배자이신 마왕님께서 이렇게 약한 모습을 무방비하게 드러내시다니.
이 정도라면 자신이라도ㅡ 아니, 자신이 아닌 그 어떤 마족이 와도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였다.
'부디 건강을 되찾으셔야 할 텐데.'
마족의 대부분은 마왕님께 순종적이었지만, 그 중의 일부는 그녀의 힘에 굴복하여 따르는 부류들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현재 마왕님의 상태를 알아차린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분명 그 목을 취하고 본인이 마왕의 자리에 오르려고 하지 않을까?
마계에서 마왕이 되기 위해서는 마왕의 목을 취해야 한다는 법칙이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법칙이 세워진 뒤로 지금껏 마왕이 바뀐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지만서도.
"안 되겠습니다."
"...메이아?"
"더 이상 다른 마족들을 불러 모으시는 건 당분간 중단하도록 하죠."
"...어째서?"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았다.
너무도 순수한 질문.
왜 마족들을 불러 모으면 안 되는 것인가에 대해서 하루 종일이라도 설명할 자신이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만약 본인이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면 듣기 싫은 것까지 전부 듣게 되실 테니까.
그렇게 된다면 스스로의 무력함에 대해서 확실하게 깨닫고, 무너지시게 될지도 몰랐다.
물론 마왕님이시라면 그것 또한 이겨낼 거라고 믿고 있지만ㅡ
'이겨내시기 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큰일이다.'
아니, 이겨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큰일이었다.
평범한 인간보다 약해진 몸은 필연적으로 스스로는 지키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심지어 돌봐야 하는 아이들까지 있는 이상, 그녀가 지켜야 하는 범위는 더더욱 늘어나게 되겠지.
그런 의미에서 용사라는 존재는 마왕님을 지키기에 안성 맞춤인 존재였다.
절대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그 강함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지금은 저 혼자만으로 충분하시지 않습니까? 만약 이 장소에 마족들이 모이기 시작한다면, 인간들 또한 의심을 시작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마왕님께서 다시금 병력을 모아, 인간들의 국가를 침공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요."
"...그렇구나."
한껏 침울해진 얼굴에 심장이 미어지는 듯 했지만, 지금은 이것이 최선이었다.
딱히 본인이 한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기에 번복할 생각도 없었고.
"그러니 부디, 지금은 저에게만 의지 해주시길."
이것이 불경이라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런 짓 따위, 몇 번이고도 더 해내고야 말 터.
훗날 제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해도 이 목숨, 언제라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흐아, 읏...♥"
"그리고, 몸이 아프시면 부디 저에게 곧바로 말씀 해주시길. 인간들보다는 같은 마족인 제가 마왕님의 몸 상태를 더 잘 알지 않겠습니까?"
괜찮다는 말을 믿고 싶었지만, 저 정도로 얼굴을 붉히고 계신다면 차마 못 본 척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말씀하시지 않는 일을 굳이 끌어내는 것이 옳을까.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가느다란 신음을 토해내는 마왕님에 걱정이 스물스물 채워져 올랐다.
저 이불을 벗겨서, 당장에라도 그 몸을 확인하고 싶다.
의학적 지식이 풍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곳이 얼마나 아픈지 정도는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마왕님, 부디 그 옥체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ㅡ"
"손 대지 마!!!!"
"..."
하지만 제 손이 이불에 닿는 순간, 온 힘을 다한 비명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자마자 멈춘 건 그녀를 향한 실망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었다.
바보 같은 녀석.
마왕님께서 지금 무슨 상태이신 줄 알고 그런 짓을 하려 한 거지?
마왕님께서 지금 무슨 심정이신 줄 알고 감히ㅡ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
그녀의 비명 가튼 고함에 담긴 건 분노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과 반대되는ㅡ 짙고 짙은 공포였지.
그래, 그녀는 같은 동족이자 제게 충성을 맹세한 몸종에게마저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취약해진 상태였던 것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마왕님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괜찮다. 소리 질러서 미안하구나."
"..."
하지만 한 가지 변한 것이 없다면, 그녀를 향한 무한한 충성.
단지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