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3 - 나의 아이들.(1)
일곱 쌍둥이ㅡ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일곱 쌍둥이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내 뱃속에서 한날 한시에 같이 태어난 일곱 명의 아이들은 아주 잘 자라나고 있었다.
이번에도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에밀리 정도의 나이가 되어서야 성장이 멈췄는데, 몸이 커진 만큼 돌보기가 꽤 어려운 모양이었다.
모양이었다, 라는 애매한 말로 얼버무리는 이유라고 한다면 뭐랄까...
"이 말썽쟁이들 좀 어떻게 하거라! 내 꼬리를 마구 잡아당기고 있지 않느냐?!"
"아이들이 미코 씨를 엄청 좋아하시네요."
"뭐, 여우는 사람들을 홀린다고 하지 않느냐. 미코는 어린 외형이니까 그와 비슷한 외형의 아이들을 잘 홀리는 거겠지."
"그런거 아니니까 어서 돕기나 해다오!!"
간절하게 소리치는 미코를 앞에 두고는 엘리와 함께 허허로이 평화를 즐겼다.
평화롭네, 평화로워.
미코에게 달라붙어서는 이곳저곳 잡아당기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녀가 엄청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확실히, 저 황금빛 꼬리에 맛이 들리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기는 해.
언젠가 만져봤던 미코의 털 감촉을 상기하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메이아 씨가 옆에 안 계시네요? 평소 같으면 언제나 옆에 있었을 텐데."
"메이아라면 뭐, 휴가라는 녀석이다."
"휴가요?"
"...그래."
처음에는 분명 휴가를 안 쓰겠다며 호언장담 했었는데, 얼마 전의 그 일이 있고 난 다음에는 조금씩 휴가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 가끔씩은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도 가지고 그래야겠지.
둥글게 부풀어 오른 배를 슥슥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한숨을 토해냈다.
아무래도 아이를 가지게 되면 세계수로 오는 것이 엄청 안심이 되고 그랬다.
요 며칠 사이에 또 크기를 키워서 그런지 이제는 그늘이 생길 정도였으니까.
"마마~"
"읏차, 레이나."
숲의 요정이라는 말이 허명은 아니었는지, 분명 내 품 위로 툭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처음 이렇게 나타났을때는 엄청나게 기겁했는데 말이지.
빙긋 웃으며 레이나의 머리카락을 슥슥 쓰다듬었다.
귀여워, 귀여워. 엄청 귀여워.
"이번에는 어떤 아이가 나올까."
"착한 아이였으면 좋겠네, 응."
레이나의 손길이 내 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엘프의 체온도 마족보다 훨씬 더 따뜻하구나.
자그마한 아이의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온기에 바보 같은 웃음이 멈추지를 않았다.
"아리엘! 이 녀석들 좀 떼어놓아라! 네가 어미이지 않느냐!"
"네가 이모 같은 느낌이니까 조금 놀아주고 그러거라.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기분 좋다고 한 건 네쪽 아니었나?"
"그것도 한둘이어야지! 일곱은 무리다! 절대 무리야!!"
아이들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내 앞까지 다가온 미코가 신경질적으로 귀를 뿅뿅 흔들었다.
무리라고 말하면서도 힘을 써서 뗴어놓지는 않고 있구나.
새삼스럽지만 미코의 상냥함이 엄청 대단하다고 생각 해버렸다.
명절 때마다 조카들의 투정을 받아주는게 얼마나 힘들고 고되던지...
'...지금은 삼촌 같은 느낌이 아니라 그냥 엄마가 되어버렸지만.'
그때의 가족들이 나를 본다면 과연 무어라 말을 할까.
어쩌면 말을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물론 이거 어느 누구의 기억인지도 확실하지 않았지만서도.
지금 생각해 보면, 방구석에 쳐박혀서 야겜을 하던 녀석과 가족들을 잃고 반지하에 살던 녀석의 기억이 서로 다른 사람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엉망진창으로 섞여있구나."
쓰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불평 가득한 눈동자의 위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자, 뾰족 솟아있던 귀가 슬슬 머리 위를 덮어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는 머리 쓰다듬는건 좋은 모양이구나.
이렇게 보니까 여우가 아니라 개 같았다.
여우는 개과였지만서도.
"...뭐냐, 그 귀여운 애완동물을 바라보는 것 같이 푸근한 미소는."
"애완동물이라기보다는 반려ㅡ 같은 느낌이지."
"바, 반려라니..."
이번에는 꼬리가 흔들린다.
꼬리에 매달린 아이들이 재밌다가 꺄꺄 소리를 질러대는 와중에도 미코의 꼬리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음, 아무리 봐도 여우보다는 강아지쪽에 가깝단 말이지.
물론 강아지보다 훨씬 더 귀여웠지만.
"그나저나, 저번에 떠난 아이에게 소식은 있느냐?"
"...잘 모르겠구나. 겨우 쪽지 하나만 남기고 떠난 거라서."
남편과 딸이 있는 곳으로 향하겠다.
짧게 휘갈겨 쓴 듯한 쪽지 하나만 남기고 사라졌더랬지.
과연 잘 도착했을까.
가는 길에 이상한 녀석들을 만나지는 않았을까?
만약 만났다면,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까.
'...미아.'
물론 그녀의 이름은 따로 있겠지만서도.
억지로 잊고 있었는데, 미코 덕분에 떠올라 버렸다.
딱히 미코를 탓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말이지...
"미안하구나. 내가 괜한 말을 했어."
"아니다, 잊는 것보다는 차라리 계속 기억하는 편이 더 낫겠지."
아프다며 전부 잊지 말고 행복을 빌어주는게 바로 부모가 할 일일 터.
...진짜 부모는 아니지만.
***
오래간만에 오는 고향은 마지막으로 봤던 광경과는 상당히 달랐다.
분명 마족들에 의해 파괴당하고, 피와 살점이 난무하던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깨끗하게 정리가 된 채였다.
고르돌,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직도 이곳에 있을까?
마왕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되었으니, 분명 그 또한 고향집으로 돌아와 살아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고르돌?"
그리고 마침내 그 오두막.
내가 죽은 그 장소의 마당에서, 그를 보았다.
조금 더 늙었고, 조금 더 지쳐보였지만, 동시에 자그마한 행복을 눈에 담고 있는 존재.
"...소나?"
"고르돌."
살아있었구나.
그리고, 행복을 되찾았구나.
내가 죽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당신은 알고 있어?
당신이 잘 지낼 수 있을까.
혹시라도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어.
"다녀왔어."
처음에 한 말은 그것이었다.
언제나 고르돌이 나에게 하던 말.
대장간에 가서, 하염 없이 철덩이를 두들기다가 집에 와서는 가장 처음 했던 말.
그 말을 자신이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내가 드디어 미친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당신."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더 늙고, 더 어려졌지만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나의 사랑.
나의 행복.
그리고, 나의 반쪽.
평생 눈물이라고는 흘리지 않을 것 같은 강철 같은 남자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울지마, 당신."
"...소나."
"이제 다 끝났어. 이제, 아무런 불행도, 악몽도 없으니까ㅡ"
마키나를 재울 때 하던 허밍을 천천히 중얼거렸다.
고르돌, 고르돌, 고르돌.
당신의 얼굴을 보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인지 몰랐어.
당신의 목소리를, 숨결을, 온기를, 그리고ㅡ
"엄마?"
"...마키, 나?"
그리고, 사랑의 결실을.
"마키나!"
"엄마!!"
비슷한 크기의 몸이 서로 겹쳐져,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소중한 아이를 다시 안아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고 하지 못했는데.
어쩌면 이건 신께서 내려주신 은혜가 아닐까.
'아니, 틀려.'
이건 신이 내려준 은혜가 아니었다.
신이 아닌, 신과 대척점에 있는 존재가 내려운 은혜.
기쁨에 겨우 잊고 있었지만, 이 행복을 되찾아준 존재는 따로 있었다.
"마왕이, 당신을 되살렸나?"
"...응."
"...그렇군. 그랬어. 아직 살아서, 아이들을 낳고 있었던 모양이군."
고르돌의 표정이 반쯤 넋이 나간 듯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마왕에 대해서?
아니면 마왕이 자신을 낳아서까지 되살렸다는 사실에 대해 새삼스러움을 느끼고 있는 걸까.
"그녀의 처우는 어떻지? 여전히 다른 일행들이 박하게 대하나?"
박하게 대한다ㅡ 라고 순화를 하기는 했지만 실상은 다르겠지.
그 고통에 익숙하다는 듯한 표정은 절대 평범한 경험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래, 내가 날붙이로 그 가련한 몸뚱이를 찔렀을 때 보였던 감정은 고통이나 공포가 아닌 미안함이었다.
자신 따위를 찌르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하다는 듯한 얼굴이었지.
미련하게도.
"마왕은, 용사님과 결혼했더라."
"허어, 결혼을?"
남편은 정말 놀랐다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어찌나 놀랐던지 눈의 크기가 2배가 될 정도로.
확실히, 자신 또한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있었다.
마왕과 용사라니, 그것 만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있을까.
이건 마치 불과 물이 하나로 섞였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일 정도였다.
"여보, 아무래도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돌아가다니, 어디로?"
"북부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대체 왜 그곳으로 돌아가야하는 것이냐고 묻는 듯한 얼굴.
물론 혼자 가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 같이 가자는 뜻이었지.
"아무래도 마왕을 다시 만나봐야 할 것 같아."
"..."
아무리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는 해도 잘못은 잘못이었다.
증오를 담아 찌른 칼날에 대한 용서를 구해야만 했다.
과연 그녀가 용서를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살아갈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여보. 북부로 가자."
"그게 당신의 뜻이라면 기꺼이."
고르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다음 행선지가 정해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