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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34화 (234/342)

Chapter 234 - 나의 아이들.(2)

예상치 못한 만남, 이라고나 할까.

아니, 애초에 생각 자체를 하고 있지 않았는데 말이지.

내 눈앞에 보이는 세 쌍의 드워프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고 있는 건데도 불구하고 껄끄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그래.

내 아이를 빼앗아간 드워프.

그 이름은 가렌 고르돌 랜드록.

"오랜만이군, 마왕. 상태를 보니 아직은 괜찮아 보이는군."

"...너도,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구나."

그가 불행하기를 바라지는 않았기에 일단은 축하의 말을 건네줬다.

정작 그 말을 들은 당사자는 꽤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서도.

왜 이곳으로 찾아온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고르돌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이유를 말해보자면, 그래.

눈앞의 있는 아이ㅡ 미아 때문일까.

...물론 진짜 이름이 미아이지는 않겠지만서도.

"...저번에는, 죄송했습니다."

"여보..."

"..."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는 아이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사과를 한 뒤 무언가 조금 편해진 듯한 표정을 짓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나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찾아온 듯 싶었다.

고르돌을 찾는 것만으로도 먼 길을 갔을 텐데 설마 다시 돌아오기까지 하다니.

딱히 아이의 사과를 바란게 아니었다.

차라리 행복하게 살아준다면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최고의 사과였는데.

"그렇게 미안했으면 찾아오지 말지 그랬어?"

그리고 잠시의 침묵 끝에, 뾰족한 목소리가 허공을 찢었다.

물론 내 입에서 튀어나간 소리는 아니었다.

애초에 나는 이런 말을 할 일이 없을 뿐더라, 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살아있었군, 에밀리. 그 모습을 보아하니 한 번 죽은 뒤 다시 살아났나보군."

"너도 징하게 살아있구나, 고르돌. 설마 네가 아리엘을 찌른 녀석을 데리고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흥, 못본 사이에 마왕에게 정이라도 든 모양이군. 그런 짓을 했으면서."

순식간에 으르렁거리기 시작하는 두 사람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금이라도 사이좋게 지내주면 안 될까.

싸우는 걸 보기 싫은 것도 있었지만, 에밀리가 다른 누군가와 다툰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착하게 있어주면 좋을 텐데.

몸은 아이라도 머리가 어른이라 그런지 물러섬이 없었다.

아니, 아이라서 더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건가?

"자, 에밀리. 화내지 말고 이리 오련."

"...하아, 내가 저번에 했던 말을 한 번 정도는 더 생각 해보도록해."

저번에 했던 말이라면 어떤 말을 말하는 걸까.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들에게 너무 매달리지 말라는 말?

에밀리에게 들은 말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뭐, 나를 걱정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으니 상관 없지 않을까.

"이제 전부 끝났으니, 싸워야 할 필요도 없지 않니."

"하아, 이렇게 헤퍼서야..."

한숨을 푹푹 내쉬는 에밀리를 품에 가두고는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왼손으로는 안전 벨트를 하듯이 허리를 끌어안은 상태로 정수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자면 마치 반려 동물을 대하는 것 같다고 하는데, 반려 동물을 대하듯이 대하는 거면 정말 좋아하는게 아닐까.

뭐, 에밀리도 딱히 싫어하지는 않으니까.

"나는 괜찮다. 사과를 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낸다면 나는그것 만으로도 충분하거늘."

"...마왕."

마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마왕이라고 듣는 건 꽤 오랜만의 일이구나.

메이아를 제외한다면 이제 나를 마왕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메이아는 마왕이 아니라 마왕님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서도.

"이제는 마왕이 아니라 아리엘이라고 불러다오. 마왕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지긋지긋하니까."

"..."

그 말만 들으면 무언가 적의를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영 별로였다.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깎아먹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까지의 시간을 되돌아 봤을 때는 마왕이었던 것보다 아리엘이었던 것이 훨씬 더 행복했었더랬다.

그러니까 이제 나를 마왕이 아닌 아리엘이라고 불러줘.

솔직히 말하자면, 마왕이라는 호칭은 조금 정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리엘 씨."

"그래."

"제 이름은 소나라고 해요."

"...소나."

그런 이름이었구나.

아이의 진짜 이름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구나.

소나라는 이름이 있었어.

"하지만, 당신이라면 저를 미아라고 부르셔도 괜찮아요."

"..."

이런 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아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미아라고 불러도 된다고? 대체 왜?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도,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한 가지 가능성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건, 진짜 이름을 허락하지 않겠다는ㅡ"

"그런게 아니에요. 당신이 지어준 이름을, 진짜 제 이름으로 사용하겠다는 뜻이랍니다."

"여보."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니, 고르돌이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드워프들의 첫 번째 이름은 보통 은인들에게 부탁해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 첫 번째 이름을 내가 지어준 것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은인 같은 걸 할 사람이 아닌데 말이지.

애초에 동족들의 죗값을 대신 치르는 거라고 생각하면 은인이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고상한 것이 되지 못해."

"은인이라는 건 은혜를 입은 사람이 정하는 것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저의ㅡ 더 나아가서 가족들의 은인이죠."

"..."

그렇게 말한다면 또 할 말이 없었다.

정말 내가 이들의 은인이 될 자격이 있는 걸까.

여기까지 와서 자격 운운하는 것도 참 우스운 일이기는 했지만, 무언가 자격 같은 것이 있다면 확인 받고 싶은 기분이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그 누구에게도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으니까.

'또 우울한 생각이나 하고 있구나...'

에밀리의 시선이 느껴져 슬쩍 고개를 내리니, 분홍빛 눈동자가 나를 잔뜩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 생각해.

지금은 지금만 생각하란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듯한 눈빛에 깊은 숨을 뱉어내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미아."

"네, 아리엘 씨."

"나를 은인이라고 불러줘서 고맙구나."

진심을 담아서 감사 인사를 전했다.

누군가의 은인이 되어보는 건 또 처음이구나.

이런 값진 경험 같은 건 분명 쉽게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겠지.

방긋 웃는 얼굴을 보이니, 미아는 물론 고르돌의 얼굴마저 요상하게 변했다.

'...그 정도로 이상했으려나.'

그래도 뭐, 웃고 싶었는 걸 어떻게 해.

***

세월이 흘렀다고 느끼게 만들어 주는 요소는 자신의 수염 뿐이라고 생각했거늘, 전부 착각이었다.

그늘이 드리운 나무 밑에서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왕ㅡ 아리엘을 바라보며 고르돌이 속에 쌓여있던 무거운 숨을 최대한 길게 토해냈다.

아리엘, 아리엘이라고 했었나.

분명 마키나를 낳던 것이 엊그제만 같았는데, 지금은 십수명이나 낳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 전에는 일곱 쌍둥이를 낳았었다고 했었지.

순수한 의미에서의 쌍둥이는 아니겠지만서도.

"행복한 것 같아서 다행이네."

"당신은 괜찮겠어? 마키나가 마왕ㅡ 아니, 아리엘의 품에 안겨있는데 말이야."

아직 마왕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았다.

전부 끝났다고 생각 하면서도, 마음속 어딘가에는 여전히 그 상처가 남아있는 채였다.

익숙해지려면 분명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

'마키, 나. 마키나, 마키나...'

마키나를 다시 만났을 때의 아리엘의 얼굴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해, 결국은 참지 못하고 울어버렸더랬지.

원래는 아이의 안전을 생각해서 따로 둔 것이었는데, 순식간에 울음 바다가 되어버린걸 보면 아이를 따로 놓은게 좋은 선택이었던 듯 싶었다.

처음부터 마키나를 만났다면 제대로 된 대화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까.

"빼앗겼던 아이를 되찾은 엄마와도 같은 울음 소리였지."

"...딱히 빼앗은 건 아니다만."

정확히 말하자면 돌려받았다는게 맞겠지.

잃어버린 것을 되돌려 받다.

그래, 그게 맞는 말일 터였다.

...그녀의 눈물은 절대 잊혀지지 않겠지만.

"마키나도 아리엘 씨를 잘 따르는 것 같고. 아무래도 뱃속에 있던 기억이 있는 걸까?"

"당신은."

"응?"

"당신은, 기억해? 아리엘의 뱃속에 있던 그 순간들을 말이야."

"..."

제 아내가 입을 다무는 것을 보며, 고르돌이 다시금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기억하는 것 같구만.

입맛이 조금 떫어서 술이라도 마실까 싶었지만, 딱히 끌리지는 않았다.

애초에 지금 마시려고 한다면 따가운 손길이 등짝을 내려칠 것이 분명하기도 했고.

"부디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했지."

"..."

"아프지 않게 나와달라고 부탁도 했고."

"...그렇군."

"될 수 있으면, 미워하지도 말아달라고도 말했었지."

그렇게나 부탁했는데 왜 들어주지를 못했던 걸까.

다시 떠올려 보면 이렇게나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소나의 혼잣말에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 자그마한 어깨 위에 슬며시 올렸다.

"너무 자책하지마."

"...그래. 또 내가 자책하면 본인 때문에 내가 자책한다고 생각할 사람이니까, 저 사람은."

어째 아리엘이라는 마족의 인상이 마왕에서 다른 무언가로 바뀌어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저 모습을 보고 단번에 마족을ㅡ 심지어 마왕을 연상시킬 만한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싶지만서도.

분명, 같은 마족이라도 알아보지 못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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