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8 - 내가 가장 사랑하고 싶은.(3)
배가 불러온 건 근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 지난 뒤였다.
처음에는 밋밋하던 평면이 둥글게 부풀어 오를 무렵이 되어서야 안심하게 되었달까.
어쩌면 이 모습 자체를 내가 원하고 있던 것일지도 몰랐다.
"...괜찮아, 마마?"
"......응? 응, 괜찮단다."
최근 들어서 잠이 많아졌다.
어떤 아기가 나올까.
부디 귀여운 아이면 좋을 텐데.
지금은 신경 쓰지 않고 있던 뿔의 절단면이 조금이지만 아려왔다.
왜 지금 와서 아픈 걸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내 팔을 흔드는 손길에 퍼뜩 고개를 돌렸다.
"레이나."
"응, 마마."
"...거기 있었구나."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쾅쾅 뛰어대던 심장이 레이나의 얼굴을 보자 차츰 가라앉았다.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대체 왜?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더더욱 불안했다.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었고, 어디 다친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 어딘가 아픈 사람이 있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었고.
'어쩌면ㅡ'
슬며시 내려간 고개가 볼록 튀어나온 배를 향했다.
아니,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바보야.
아기 때문에 내가 불안해 할 리가 없잖아?
출산에 대한 불안은 처음 정도로 충분했다.
이제 와서 아이를 낳는 것 때문에 덜덜 떠는 건 우스운 일일 터였다.
하지만ㅡ
"으, 으으으으윽..."
"마마?!"
이번에는 투명한 것이 아닌, 붉은 것이 떨어져 내렸다.
양수 대신 터져나온 붉은 핏줄기에 레이나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다.
"아기, 아기, 아기가..."
"이, 일단 누워보세요!"
분명 세계수 근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어째서지?
대체 어째서일까.
대체 무엇 때문에ㅡ
"...마마."
"......"
내 뱃속에서 나온 핏덩이를 눈에 담았다.
아닌, 핏덩이를 온몸에 덕지덕지 바른 아기를 눈에 담았다.
흑색의 머리카락에 황금색의 눈동자.
지금까지 태어났던 그 어떤 아기보다 나를 닮은 아기.
"..."
하지만 좋아할 수 없었다.
내가 죽인 존재 중에서 이런 외형을 가진 존재는 단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설마 그 저주의 대상이 본인까지 포함되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마신ㅡ 여신이야."
"...응?"
"...설마 내 몸을 빌어서 다시 태어날 줄은 몰랐는데."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증오에 찬 눈동자가 떠올랐다.
죽여야 해.
당장 죽여서, 없애버려야만 해.
손을 뻗어서 아기의 목을 조르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못, 하겠어. 못 죽이겠어. 나, 이 아기를, 죽일 수가 없어..."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던 얼굴이 조금이지만 씻겨져,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창백한 피부가 겉으로 드러났다.
나를 닮은 아기를 원하고 있어.
언젠가 아서에게 말했던 그 사실이 하필 지금 이 순간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아니야, 비록 닮았어도 이건 네가 원하는 그런 아기가 아니야. 이런 건 절대, 절대로ㅡ'
"흐엑."
자그마한 소리가 들려왔다.
태어났는데도 울지 않던 아기가ㅡ 여신이 낸 소리였다.
울음 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음성.
무어라 말이라도 하려고 했던 걸까.
멍하니 아기를 내려다 보다가, 문득 아기가 숨을 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확히는, 숨을 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이대로 놓아둔다면 분명 죽어버리고 말겠지.
신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숨을 쉬지 못하는 상태로 계속 두면 죽는다는 것 정도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렇게 된다면 내가 죽인 것이 아니기에 다시 태어나지도 않을 터였다.
여신과의 지독한 연결 고리를 끊을 절호의 기회.
이 기회를 놓친다면, 분명 앞으로 불행한 삶을 보내게 될ㅡ
"흐엑, 흑, 흐아아아아아앙!!!!"
"하아, 흐으, 흐으으윽..."
못, 하겠어.
못하겠어.
아기가 죽는 걸 방관하는 것 따위, 절대로 못하겠어!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뻗어져 나간 손이, 그대로 아기의 입을 벌리고 압박해 목에 걸려있던 핏덩이를 토해내게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울음 소리를 내는 아기에 나는 결국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아가, 아가, 아가아아아......."
피투성이인 아기를 안고, 피투성이인 채로, 그렇게 한참이고 울었다.
옆에서 레이나가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너무 크게 울어서 그런지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
"흐으으응..."
"...바보 같구나."
내 젖을 물며 신음을 흘리는 아기에 쓴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ㅡ 특히 아서의 반대가 가장 컸지만, 결국 내가 끝까지 우겨서 아기는 키우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아무리 여신이라도, 기억을 되찾기 전까지 잘 대해준다면 바뀔지도 모른다는게 내 주장이었다.
물론 간단하게 논파 가능할 정도로 엉성한 주장이었지만 말이다.
'일부러 져줬다고 하는게 맞는 말이겠지.'
아기가 태어난 뒤로는 내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일이 없었다.
만약 모유를 먹일 때도 생명력이 빠져나간다면 곧바로 죽여버리겠다며 에밀리가 으름장을 놓았지만, 아기가 내 젖을 물어도 몸이 약해지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아기의 힘이 강해진다거나 그러지도 않았고.
"흐응, 흐아앙, 흐으으응..."
"또 무엇이 서러워서 울까, 우리 아가. 응? 엄마랑 있는게 싫은 거니?"
아기들은 자주 운다고 하지만, 이번 아기는 특히 더 많이 울었다.
안아들고 있으면 울고, 그렇다고 안지 않으면 더 크게 운다.
달래주려고 박자를 타며 몸을 흔들어도 울고, 흔들며 달래주지 않으면 더더욱 울어댄다.
이 정도로 까다로운 아기가 있었던지 곰곰히 생각을 해봤지만, 전례가 없었다.
"...아니면, 이미 기억을 되찾은 걸까."
이미 여신의 기억을 전부 찾아서, 내 뱃속에 있을 때부터 모든 것을 계획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아기가 태어날 때 양수가 아니라 핏덩이를 쏟지도 않았겠지.
"아가, 아가, 아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아기의 배에 내 얼굴을 가져다 댔다.
아기 특유의 분내가 머릿속을 잔뜩 물들이자 조금이지만 마음이 안정됐다.
여신에게서는 더러운 시궁창의 냄새만이 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구나.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고개를 들어올리자, 방금까지 울고 있던 아기가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는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 눈물 자국이 생겼네."
눈가 근처를 붉게 물들인 자국에 손가락을 뻗어 슥슥 닦아줬다.
겨우 손끝에 닿는 감각인데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부드러웠다.
'만약 기억을 되찾지 못한 상태라고 친다면, 기억을 되찾을 때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직도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여신과 친하게 지낸다는 상상 자체를 쉽사리 해낼 수가 없었다.
그런 것 따위 불가능해.
나를 그토록 증오하고, 나에게 그런 짓을 한 녀석을 용서할 수 있을 리가ㅡ
'아리엘.'
하지만, 용서했잖아.
용서해본 적 있잖아.
나를 강간하고, 때리고, 뿔을 자르고, 멋대로 다룬 녀석을 용서하고 결국 혼인까지 맺었잖아.
'달라.'
그런 것과는 달라.
아서가 한 짓은, 여신이 한 짓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
여신이 나에게, 그리고 동족들에게 한 짓은 그 어떤 사죄로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내가 너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다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것을 알게 된다면, 너를 용서할 수 있을까?"
아기의 황금빛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쳤다.
마왕으로써의 기억을 되찾는다면, 그리고 내가 어째서 여신을 대적하게 되었는지 깨닫는다면 우리는 화해할 수 있을까.
너무 아득한 이야기였다.
얼마나 거슬러 올라가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모르겠어."
"..."
"하지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이 관계는 죽을 때까지 계속되겠지."
어쩌면 영원히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이빨을 드러내는 관계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되는 건 나에게도, 아기에게도 비참한 결과가 되어버리겠지.
죽고 죽이는 불행의 연결 고리를 끊는 건 그 무엇보다 쉬웠다.
아기를 다른 누군가가 죽인다면 전부 끝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걸 내가 용납할 수 있을까?
'절대.'
절대 용납할 수 없겠지.
만약 아기를 죽인다면 다름 아닌 내 손으로 죽이게 될 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내 손으로 죽인 아기를 다시금 잉태해, 다시금 낳게 되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한 도돌이표였다.
"너를 죽이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제발, 제발 나를 미워하지 말아주렴..."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지, 알아듣지 못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이 말을 아기의 기억 속에 담아두고 싶을 뿐이었다.
아무리 증오했던, 증오하고 있는 존재라고 해도 내가 낳은 아기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이미 겪어본 절망과 고통을 반복하기에는 내 정신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만 같았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아기에게 비는 쪽을 택했다.
제발 나를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억만 분의 일이라도ㅡ 아니, 나유타 분의 일이라도 네가 나를 미워하지 않게 된다면ㅡ"
그렇게 된다면,
"ㅡ우리는, 분명 좋은 가족이 될 수 있을 거야."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것 정도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입에 올리는 건 미련하기 때문일까, 혹은 내 진심이 그 희미한 확률을 뚫어내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일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기도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