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1 - 내가 가장 사랑하고 싶은.(6)
'조심해'라는 말이 나를 향한 건 맞았지만, 꼭 내 신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부모라는 존재를 쥐고 흔드려면 자식만한 존재가 없기는 했다.
"아, 아이가. 아이가..."
"진정해, 바보야! 네가 그렇게 패닉에 빠져있으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일단 진정하라고!"
내 어깨를 마구 두들기는 에밀리에 숨을 집어삼켰다.
이런 내 주변에 있는 건 다른 모두들.
하지만 일곱 쌍둥이들 중 하나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래, 마치 등가교환을 하듯 쪽지 하나만 남겨두고 사라져 버렸지.
[아이를 살리고 싶다면 혼자서 찾아오도록.]
최근 골칫거리가 된 집단이라고 한다.
군부나 귀족들의 세력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 만든 반 마족 세력.
내가 왕궁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신변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어째서 자신들의 아이들은, 가족들은, 동료, 친구, 친척, 옆집 사는 사람, 거래처, 혹은 건너 건너 아는 지인을ㅡ
ㅡ모두를 되살리지 않는지.
"애초에 바보 같은 일이야. 네가 되살린 아이를 죽인다면 그들 또한 마족들과 똑같은 족속들이 될 텐데ㅡ"
"큼."
"아, 네 이야기는 아니었어."
"...아닙니다. 잠시 숨이 막혀서."
메이아는 표정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런 인간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은 것이 싫다기보다는 아이를 가지고 협박하는 그 행태에 대해 분노한 듯 싶었다.
하긴, 인간들에게 아이를 잃었으니 그런 반응을 보여도 이상하지 않지.
"이건, 내가 가야해."
"바보야, 진짜?"
답이 없었다.
저들이 나를 원한다면, 일단 내가 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내 목숨을 희생해야 한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ㅡ
"정신차려!!"
"...읏."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이 왜 모여있는지 모르는 거야? 왜, 구경이라도 하려고 모인 것 같아?!"
"그래, 아리엘. 우리는 너를 돕기 위해서 여기 있는 거야."
에밀리의 외침에 아서가 내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그래, 그렇네.
혼자가 아니니까, 혼자서 안절부절하지 않아도 돼.
그때와 달리, 나는 혼자가ㅡ
'그만, 내 영혼에 이물을 섞어넣지마.'
'그만, 그만, 그만, 그만!!!'
'나를, 다른 것으로 만드려고 하지마.'
'어머니가 주신, 내 혼을 더럽히지ㅡ'
"큭..."
머리를 움켜쥐었다.
가까스로 막아두고 있던 기억의 흐름에 틈이 생겨, 그대로 내 뇌를 두들겨 댔다.
아니, 지금은 아니야.
떠올리더라도 지금은 아니야.
지금 떠올리게 되면 참을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참아, 아리엘.
참고, 또 참으라고.
"아리엘 씨, 괜찮으신가요?"
"괜찮, 괜찮다."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내 심장 속에서 끓어오르는 이 감정을, 전부 토해내고만 싶었다.
인간, 내 아이를 훔쳐간 인간들을 싸그리 죽여ㅡ
'안 돼.'
생각조차 하지마.
그냥, 아무런 생각을 하지 말라고.
머리카락을 부여잡고는 품에 안긴 아이를 꼭 껴안았다.
아이는 여전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아니, 주변을 인지하고 있기는 한 걸까.
몇몇 사람들은 내 품에 안겨 있는 아이가 이 일을 꾸몄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특히 엘리, 여신에게 가장 지독하게 속아왔던 그녀가 아이를 제일 의심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아이는 아니야. 거의 대부분 내가 함께 있거나, 내가 자리를 비우면 메이아가 돌봤으니까 다른 짓을 했을 리가 없어."
"...하지만, 여신은 계시를 내릴 수 있어요."
"에밀리가 신성력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 계시란 것이 신의 능력이라면 신성력 없이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사실 나보다 더 이성이 증발한 건 엘리가 아닐까.
내가 슬프하는 것을 죽어도 볼 수 없다는 입장의 그녀는, 피해자인 사람들을 찾아내 벌하는 것보다는 다른 핑계 하나를 찾아내고 싶어하는 듯 싶었다.\
그 핑계가 지금껏 우리들을 괴롭혀 왔던 여신이라면 그만큼 더 쉽게 밀어붙일 수 있을 터였다.
...다행히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기는 했지만서도.
"그러면 일단은 아이가 납치된 장소를 알아내는게 우선이겠네요. 어떻게 납치했는지도 알아야겠지만ㅡ"
"그것들은 내가 알고 있다."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은 엘리의 말과 동시에, 문이 열리며 에반젤린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언제나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미간이 조금 찌푸려져 있는 것이 북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꽤 거슬리는 듯 싶었다.
...
아니, 그보다 방금 뭐라고?
"아이가 납치된 장소를 알아냈다고?!"
"그래. 아무래도 그때 바로니스의 끄나풀들을 전부 쳐내지 못했던 모양이야."
북부와 왕국의 전쟁 당시, 의심되는 자들을 최전방에 두어 전부 몰살했다고 생각했건만.
쯧, 하고 혀를 차는 그녀의 말에 잠시 방 안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만약 의심하는 자들 중에서 무고한 자가 있다면 어떻게 했으려고, 같은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이 자리에서 그녀를 의심할 수 있는 사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의 판단은 곧 북부의 판단.
물론 그런 것 이외에도 에반젤린 폰 트리슈라움이라는 인간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런게 바로 카리스마라는 것이겠지.
"장소는 대충 파악하고 있다. 강경파는 어느 순간에나 존재했고, 그건 나의 백성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으니까."
"...혹시 그들에게 손을 쓰거나 하지는 않았겠지?"
이런 말을 하면 조금 바보 같을까.
하지만 나는 아이를 납치한 인간들이 어떠한 해도, 상처도 입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들 또한 또 다른 피해자에 불과했다.
아무리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고 해도, 그런 짓을 하면서 과연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아니, 절대 그렇지 않겠지.
"내 휘하의 전사들이 주변을 감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 또한 어디까지나 북부의 신민. 되도록이면 상처 입히지 않는 편이 좋겠지."
"...고맙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에서 힘을 풀었다.
품 안에 안긴 아이가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아이를 찾으러 갈ㅡ
잠깐만, 뭐?
"아가?"
"으으으응..."
나와 꼭 닮은 황금빛 눈을 깜빡이며 몸을 움직이는데, 그 자그마한 행동 하나가 어찌나 반갑던지 지금 내가 처한 상황도 잊어버리고 눈을 동그랗게 떠버렸다.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뻗어진 손바닥이 내 뺨에 닿을 무렵에는 그만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설마 나를 위로 해주려고 한 거니?
조금 힘을 주어 아이를 꼭 껴안자, 아이 특유의 체향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자, 진정 됐으면 가자꾸나. 분명 그들과도 대화로 잘 풀어낼 수 있을 게다."
그 뒤에 들리는 에반젤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분명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조금이지만 자신감이 생겼다.
***
"여왕님, 어째서 마왕의 편을 드는 겁니까! 저건 우리들의 동지와 가족들을 죽인 존재입니다!"
쉽지 않으리라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슬픔과 분노.
그런 것이 그리 간단하게 사라질 리가 없었으니까.
"...미안하구나."
"..."
아이를 납치한 이는 에반젤린이 일곱 쌍둥이의 호위 겸으로 붙여둔 전사였다.
분명 그도 소위 말하는 강경파 중 한 사람이겠지.
그리고 그가 강경파라는 것은, 마족들의 손에 소중한 이들을 잃은 사람이는 것.
그렇기에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을 했다.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구한다.
단지 그뿐이었다.
"전부 내 죄이니, 내가 떠맡겠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마족들에게 희생 당한 이들 모두 되살리겠다고 약조하마. 그러니까, 그러니까 부디ㅡ"
아이는, 무사히 놓아다오. 그 아이 또한, 다른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니까.
차마 내 아이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누가 봐도 나를 하나도 닮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를 납치한 건 내가 그만큼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걸 봤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상대에게 이 진심이 전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너는, 어떻게 그리 태연할 수 있지? 진짜 네 아이가 아니라서 그런 건가?"
"진짜 내 아이가 아니라도, 내가 품고 내가 낳은 아이다. 소중하지 않을 리가 없지."
"하지만 어떻게 그리 태연히 말할 수가ㅡ"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들 또한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들이기에, 다른 이의 소중한 것을 쉽사리 망가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아무리 이성이 없다고 해도 그런 짓까지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이 빌어먹을 세계에 아직 최소한의 선 같은 것이 남아있으리라고.
바로 그것들을ㅡ 그런 자그마한 것들을, 믿으니까.
믿고 있으니까.
아니, 믿게 되었으니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하마."
고개를 숙임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렸다.
주변은 이미 침묵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어느 한 사람은 저것들이 전부 연기일 것이라고 말했고, 다른 한 사람은 마왕이 자신의 대역을 내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끝까지 이어지지도 않았다.
"...아가."
뒤쪽의 인간의 옆에, 납치 당한 아이가 서있었다.
아이는 나를 혼란스럽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알고 있어.
너희들의 기억이 돌아왔다는 것 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나의 이 희미한 미소에 움츠러드는 건 내가 무섭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까.
조금이지만 심장이 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