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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43화 (243/342)

Chapter 243 - 행복해지고 싶어.(2)

이 정도면 아이와 친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

"신기하니?"

불룩해진 내 배를 신기하다는 듯 만지작거리는 아이의 손길에 슬쩍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번에는 어떤 아이들이 태어날까.

언제나 하는 생각이었지만, 최근에는 그 생각이 조금 더 긍정적인 쪽으로 바뀌었달까.

일곱 쌍둥이들이 나를 너무 좋아해줘서 그런지, 이번 아이도 좋은 아이ㅡ 혹은 아이들이 태어날 것만 같았다.

"따지고 보면 나도 네 딸의 딸이었다만... 지금 말해도 의미는 없겠지."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니, 부들부들한 감촉이 잔뜩 느껴졌다.

나를 닮은 아이.

정확히는 내가 닮은 아이.

이렇게 보면 지금까지 내가 원하던 나의 아이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었다.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단다."

"..."

사랑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니?

네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고, 계속 보고 싶고, 앞에 있으면 손을 뻗어서 꼭 껴안아 주고 싶은ㅡ

그리고, 입술을 맞추고 온기를 느끼고 싶은 것을 바로 사랑이라고 부른단다.

조금 우스운 일이지만, 지금 내가 너에게 그런 것들을 느끼고 있어.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주렴.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내가 사랑할 수 있게.

"여신이라서 그런지 빨리 크는 거냥?"

"랴뇨리."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나?

고양이들이 워낙 자유분방해야 말이지.

아무튼, 오래간만에 보는 얼굴이라 그런지 꽤나 반가웠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도 꽤 볼만 했고.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또 처음인데냐~"

"..."

"네가 신기한가보구나."

"그러냥? 뭐, 여신도 아이 때는 귀엽구냐."

좌우로 느릿하게 흔들리는 꼬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아이가 꼬리의 흔들림에 맞춰서 고개를 움직였다.

이 정도로 격한 반응을 보며주는 건 또 처음인데 말이지.

겨우 고개를 움직이는 정도가 격한 반응이면 평소에는 어떻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 평소에는 뭐...

눈을 깜빡이는 정도면 꽤나 격하다고 할 수 있지, 응.

"기분이다냥, 꼬리 한 번 만져볼래냥?"

"얼마든지."

"흐냥?! 네, 네 이야기가 아니었다냥!"

당연히 나한테 말하는 건 줄 알았지.

랴뇨리가 혹시라도 무를 것을 대비해 서둘러 잡느라 조금 힘을 주기는 했었다.

...그 정도로 아팠나? 나름 힘이 약하다고 자부하고는 있는데.

진심으로 놀란 듯한 반응에 조금이지만 미안해졌다.

"그, 미안하구나..."

"...그렇게 미안해 하면 뭔가 내가 잘못한 것 같지 않냥."

슬그머니 내 눈높이에 위치하는 꼬리에 눈을 빛냈다.

만지게 해주는 거야?

눈빛으로 물으니 뭔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비장할 필요가 있으려나.

물론 나는 꼬리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말이지.

텁ㅡ

"냥?"

"응?"

"..."

하지만 이번 건 내가 아니었다.

손을 내밀어 랴뇨리의 꼬리를 잡으려고 했는데, 나보다 먼저 잡은 손이 있었다.

내 것보다 훨씬 자그마한 손.

아이의 손이었다.

"흐냥... 손이 엄청나게 작다냥..."

아이는 뭔가 라뇨리의 꼬리를 신기한 생명체 다루듯이 했다.

좌우로 움직이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했고, 털이 가장 많은 부분을 슬슬 쓸어내리며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확실히, 마계에는 고양이 수인 같은게 없었지.

이렇게 보니까 완전 그 나이 또래의 어린 아이로만 보였다.

말수가 엄청 적고, 표정 변화가 없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런 애가 크면 그 여신이 된다고냥?"

"여신을 직접 본 적도 없지 않느냐."

"직접 본 적은 없어도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냥."

세상에서 제일 가는 빌어먹을 년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랴뇨리의 표정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다행히 '빌어먹을ㅡ'이라는 대목이 나올 때 즈음 아이의 귀를 막는데 성공했다.

듣고 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이런 건 안 듣는 편이 좋으니까.

"그래도, 너무 그러지 말거라. 지금은 그저 어린아이일 뿐이니까."

"기억이 돌아오면 어쩌려고 그러냥? 미코 씨가 엄청나게 걱정하구 있다고냐."

미코.

그렇지, 미코도 있었지.

생각보다 나와 아이의 관계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래서야 폐만 끼치는 사람이구나, 정말이지.

"또 이상한 생각했지냥."

"...내 주변 사람들은 내 표정을 어떻게 그리 잘 읽는지 궁금하구나."

잠시 안 좋은 생각을 했다고 바로 알아차리는 것에 꽤나 놀라버렸다.

나름 평범하게 표정 관리 정도는 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여도 일명 '마왕 표정'이 디폴트로 되어 있었기에, 극한으로 당황하거나 마음을 풀지 않는 이상에야 표정이 깨질 일은 잘 없었다.

분명 처음에는 꽤나 먹혔던 걸로 알고 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으려나.

속으로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슬쩍 손을 뻗어 아이와 함께 랴뇨리의 꼬리를 만졌다.

응, 역시 부드럽네.

"아리엘 너는 생각하는게 표정에 다 보인다구냐~"

"...그래? 그러면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맞출 수 있나?"

"음, 내 꼬리를 만지며 감촉이 환상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냥?"

어떻게 알았지?

눈을 동그랗게 뜨니, 눈을 감아도 그 정도 쯤은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눈을 감으면 내 표정을 볼 수가 없는데 대체 어떻게 알아.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산더미였지만 굳이 하지는 않았다.

랴뇨리의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아이의 손에 쥐여진 꼬리를 빼앗길지도 모르니까 말이지.

"그냥 내 꼬리를 계속 만지고 싶은 거잖냥."

"...지금 내 생각을 읽은 건가?"

"...생각을 읽은게 아니라, 방금 전부 중얼거렸다냥."

그래? 그럴 수 있지.

부끄러움이 너무 커서 그런지 되려 뻔뻔해졌다.

뻔뻔해져라, 뻔뻔해져라...

응, 에밀리가 나는 조금 더 뻔뻔해져도 좋다고 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

어디선가 '그런 쪽으로 뻔뻔해지라는 듯이 아니라고, 이 바보야!' 같은 소리가 들려온 것 같기도 했지만, 분명 기분 탓이겠지.

"그나저나, 꼬리를 엄청 좋아하는구나."

"마계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는 미코의 꼬리를 진상하도록 해볼까.

미코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그녀의 탐스러운 꼬리라면 분명 지금보다 더 대단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미안, 미코.

네가 최근 일곱 쌍둥이를 돌보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꼬리는 너만이 가지고 있단 말이야.

"아무튼, 충분히 만졌으면 이만 가볼게냥."

"고맙구나, 시간 내서 찾아와줘서."

"뭘, 내가 좋아서 찾아온 건데냐~ 앞으로도 종종 찾아올 테니 기대하고 있으라냥."

"그래."

시원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랴뇨리에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랴뇨리가 남자였다면 분명 여자 여럿을 울리고 다녔겠지.

처음 만났을 때는 냥체를 쓰는 이상한 수인인 줄 알았지만 이상한 건 말투 뿐이었으니까, 응.

지금은 뭐, 귀여운 말투라고 생각하지만.

뭐랄까, 고양이 수인이 쓸 법한 말투의 표본이라고나 할까?

"...또 무슨 이상한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냥, 이만 가볼 테니 배웅이나 해라냥!"

"그래, 잘 가려무나. 다음에 또 오고. 그때는 꼭 멸치를 준비해주마."

"멸치라니... 내가 그런 걸 기대하는 고양이 수인으로 보인 거냥?!"

내 말에 잔뜩 성을 낸 랴뇨리가 씩씩거리며 문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말하면서 귀는 마구 쫑긋거리고 있잖아.

북부에서는 물고기가 귀해서 그런지 가장 작은 종만 해도 고양이 수인들은 아주 환장을 하던데.

...아닌가? 리에와 디르만 그런 건가?

"아쉽니?"

"..."

꼬리가 사라졌는데도 손을 쥐락펴락 하는 아이에 눈웃음을 지었다.

역시 미코를 초청하는게 좋겠어.

이 정도면 아이가 좋아하는 것 옆에 수인의 꼬리를 적어두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외모 말고도 공통점이 또 생겼구나.

"나도, 랴뇨리의 꼬리를 좋아한단다."

정확히는 꼬리의 감촉이지만.

***

"여신이라고는 했지만, 진짜 아리엘이랑 똑같이 생겼단 말이지냐..."

분위기가 꽤 다르기는 했지만, 느낌이 비슷했다.

처음 봤을 때는 진짜 '아리엘의 아이?!' 같은 생각을 했을 정도였으니까.

심지어 냄새까지 비슷해서 정말 그런 착각까지 했었더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리엘을 닮은 아이가 여신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기는 했지만서도.

"이야기로만 듣던 여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귀여움이었지냥."

랴뇨리가 봐도 엄청난 미인인 아리엘을 쏙 빼닮아서 그런지 눈으로 보는 즐거움이 엄청났다.

아리엘이 가지고 있는 아슬아슬함이나 애절함 같은게 없어서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고.

아이를 만났다는 건 원래 아무한테도 말할 생각이 없었지만, 이제 보니 괜히 자랑하고 싶어졌다.

미니 아리엘이라니, 이걸 말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벨은 무조건 올 거고, 벨이 오면 벨의 부모님도 오겠지냐..."

정확히는 벨의 부모님을 따라서 벨이 오는 거겠지만...

아무튼, 머릿속으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상상하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분명 방방 뛰면서 당장 만나러 가겠다고 보채겠지.

'어라, 이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갸웃, 하고 기울어진 고개에 맞춰 꼬리가 살랑거렸다.

응, 역시 일단은 벨한테만 말하는 걸로 하자.

랴뇨리의 현명함이 소폭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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